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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64화 (164/171)

# 164

학사환생 164화

불과 얼마 전.

무림맹 책임자로부터 정보를 얻은 권왕은 유가장 무인들이 대피한 장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풍뢰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생명단은 마교와의 전면전으로 인해 비축분이 남아 있지 않았을 뿐더러.

새로운 생명단을 만들어낼 방법도 없었다.

유가장 비전의 생명단 제조법이 소실된 것이다.

제조법을 복원시키는데 얼마가 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복원시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유일한 희망은.

“천 공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나요?”

유가장 차녀 유설화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예전에 천 공자에게 생명단을 내어준 적이 있어요.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유설화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천신우가 지금까지 이뤄낸 업적이 너무도 화려하기에.

그동안 죽을 위기 한 번이 없었겠는가.

‘분명 이미 사용했을 거야.’

그럼에도 솔직히 말할 수는 없었다.

권왕의 눈빛에 지펴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권왕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권왕의 상태는 이미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하지만 유설화는 그를 말리지 못했다.

그게 권왕이 지금 천신우 앞에 쓰러져 있는 이유였다.

‘권왕도 상태가 말이 아니군. 깨어나더라도 기억할지 모르겠어. 여기 오기까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당연히 천신우는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그저 철혈성에서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풍뢰권이 치명상을 입었다고 추측할 뿐.

‘그래도 다행이다.’

천신우는 줄곧 보관해 오던 약병을 품에서 꺼냈다.

그 안엔 유설화의 사촌동생을 구해준 대가로 그녀에게 받은 생명단이 담겨 있었다.

‘아직 사용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차례의 위기.

당연히 생명단을 복용하고 싶은 유혹도 많았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최후의 순간을 위해 끝까지 생명단을 아껴두었다.

마교 교주와 상대할 그 순간을 위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천신우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풍뢰권의 목숨과 생명단을 저울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천신우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생명단을 물에 녹인 다음, 풍뢰권의 입에 흘려보냈다.

‘전에 유설화가 사촌동생에게 생명단을 먹이는 모습을 봐둬서 다행이군.’

그때와 마찬가지로 죽어가던 풍뢰권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후우…….”

그제야 천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급한 고비는 넘긴 것이다.

천신우가 권왕을 돌아봤다.

‘이 녀석도 죽게 내버려 둘 수야 없지.’

권왕의 상태를 살피던 천신우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괴물 같은 회복력이군.’

기절한 상태에서 권왕의 육체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풍뢰권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상대라면 보통이 아닐 터였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걱정하지도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대신 천신우는 복수심을 불태웠다.

‘풍뢰권 어르신은 내게도 사부나 마찬가지.’

풍뢰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천신우였다.

천씨세가를 세를 키우는 과정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고.

‘반드시 복수한다.’

물론 풍뢰권을 이렇게 만든 상대를 찾아다니진 않을 것이다.

마교를 무너뜨리는 것만큼 최고의 복수도 없기에.

‘일단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부터 파악해야겠지.’

천신우의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 * *

전장을 바라보는 도제의 눈빛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물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도제가 공들여 키운 도천의 고수들이 촌각 단위로 쓰러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도제의 오랜 꿈이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상대인 마교 검마존은 그런 도제의 속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냈다.

“본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을.”

검마존은 팔마존 가운데 가장 특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두루두루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다.

무력도 준수했으며 전투를 지휘하는 능력 역시 수준급이었다.

사실상 단일 세력으로는 무림맹 최강인 도천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은 것은 순전히 검마존의 능력 덕이라고 봐야했다.

물론 마교의 피해도 적잖았다.

“……나도 여유 부릴 때는 아니군.”

검마존이 예비대에게 총공격을 준비시키던 그때.

도제가 마침내 움직였다.

바닥에 꽂아둔 도의 손잡이에 양팔을 올린 그가 외쳤다.

“모두 들어라! 나는 무림의 주인이 될 것이다!”

도제의 외침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도제는 잠든 그 순간에도 무림의 절대자를 꿈꿔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본인의 입으로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항상 언행에 신중을 기했던 그였다.

그런 도제가 지금 가슴속에 품어두었던 웅심을 드러냈다.

눈앞의 전투를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걸 증명하듯 도제의 도가 꽂힌 지면 주위로 기파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땅이 갈라지며 도가 허공에 떠올랐다.

도제가 가죽으로 감싸인 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지잉-!

시리도록 푸른 도광이 도신을 물들였다.

“과연 무림맹 이인자답군.”

검마존 역시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의 검이 붉게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검마존이었다.

도제의 가공할 기세가 검마존을 끌어들인 것이다.

번쩍!

허공에서 나타난 검마존이 검을 내려쳤다.

그의 검은 칠대마검이라 불리는 아귀검.

도제의 광룡도와 견주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보물이었다.

촤아아아악!

검마존의 아귀검 주위로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검막이 펼쳐졌다.

도제는 머리 위에서 공격해 오는 검마존을 노려보며 노호성을 터뜨렸다.

“누구도 내 머리 위에 서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도제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검막이 깨져나갔다.

“……!”

검마존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도제가 하늘을 향해 도를 크게 휘둘렀다.

검마존은 다급히 내공으로 몸을 보호했지만 소용없었다.

도제는 호신강기를 뚫어내며 검마존에게 참격을 선사했다.

꽈아아앙!

“크윽!”

검마존이 신음을 흘리며 힘겹게 뒤를 돌아보았다.

도제의 도강은 하늘마저 찢어버린 듯했다.

“방금 그건…… 뭐였지?”

도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마존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런 공격에 죽으니 억울하진 않군.”

검마존의 신형이 아래로 추락했다.

쿵!

도제는 추락한 검마존의 시체를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도제의 시선이 향한 곳은 본인의 팔이었다.

“역시 무리였군.”

다음 순간.

투두두두둑!

팔뚝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검마존을 제압한 것은 광룡참.

무림맹의 주인이 되려는 도제의 강한 염원이 담긴 초식이었다.

일흔이 돼서도 완성시키지 못한 비운의 초식이기도 했다.

미완의 무공을 사용한 대가는 참담했다.

도제는 검마존의 목숨과 본인의 팔을 맞바꾼 셈.

그럼에도 도제의 표정에서 후회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거면 됐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도제이기에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았다.

“적을 섬멸하라!”

도제의 외침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 * *

마교의 침공이 본격화된 현재.

무림맹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진 않았다.

마교 본산의 위치를 예측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마교 본산으로 추정되는 위치는 바로 이곳입니다.”

무신에게 지도의 지점을 가리킨 것은 바로 장윤호였다.

천신우의 도움으로 공을 거듭 세운 데다.

마교에서 무림맹 정보조직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사건이 겹치면서.

현재 장윤호의 입지는 상당히 올라간 상황이었다.

“가능성이 얼마나 되지?”

무신의 물음에 장윤호가 대답했다.

“5할 이상이라고 봅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확률이군.”

“하지만 문제는.”

장윤호가 지도의 또 다른 경로를 가리켰다.

“철혈성의 대규모 전투가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교의 최정예들이 무림맹 본진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이미 무림맹으로 통하는 길목들이 차례로 뚫린 상황입니다.”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군.”

도천과 달리 무신궁의 전력은 온전히 남아 있는 상황.

마교 본산을 직접 타격할 수도.

반대로 무림맹 본진을 지원할 수도 있었다.

고심 끝에 무신이 결단을 내렸다.

“병력을 준비시켜라. 무림맹으로 간다.”

마교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무림맹을 사수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무신이었다.

“각지에 분산시킨 병력을 불러 모으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손녀 채은수의 대답에 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그때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아니. 먼저 출발할 것이다. 네가 이곳에 남아 무림맹으로 본대를 지휘해 오너라.”

채은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무신을 바라보았다.

조부인 무신을 누구보다 존경하는 그녀다.

남들이 도제와 무신을 비교할 때면 그녀는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무신이 도제를 압도할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무림을 침공한 마교의 전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이미 철혈성주가 살해당했고 무림 전역의 수많은 세력들이 무너진 상황.

아무리 무신이라도 소수의 수행원들만을 거느리고 움직이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걱정 마라.”

손녀의 마음을 헤아린 무신이 미소 지었다.

“누구도 나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신이 자신감을 드러내자 채은수도 더는 만류하기 힘들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나는 전면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때는 네가 무신궁을 이끌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조부님.”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채은수를 무신은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어린아이였던 손녀가 어느새 어엿한 무림인으로 성장했으니 기쁠 수밖에.

“무림맹에서 보자꾸나.”

* * *

무신은 최소한의 수행원들만을 거느리고 길을 재촉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많이 됐다.

‘마교의 계책은 항상 신출귀몰하다. 어쩌면 철혈성 공략에 공을 들였던 것조차 함정일지도 모른다.’

무림 전역의 시선을 철혈성에 집중시키고.

그동안 최정예를 동원해 무림맹의 본진을 치는 전략은 충분히 현실적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었다.

‘결국 천신우 그 아이든 독야행이든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겠지. 무림맹을 구원할지. 마교 본산을 칠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무신은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독야행 그 인간이 들으면 섭섭해 하겠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신우 그 아이와 동일선상에 놓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던 무신이 멈칫했다.

그를 따르는 수행원들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들.

하지만 무신은 직감했다.

눈앞에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무신이 길가 옆의 숲을 바라보았다.

“나오시게.”

스르륵.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무복의 사내였다.

“……!”

뒤늦게 사내의 존재를 파악한 수행원들이 무신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무신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다.”

어느새 무신의 얼굴에선 여유가 사라진 후였다.

“오랜만이군. 이런 느낌을 주는 상대는. 아마도 팔마존 가운데 하나겠지.”

사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뽑았을 뿐이다.

스르릉.

“……!”

반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검에 무신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따다다당!

사방으로 뿌려지는 검기를 쳐낸 무신의 얼굴이 굳어졌다.

검에 실린 위력과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무신조차 전부 막아내기 불가능할 만큼.

막아내지 못한 대가는 참담했다.

“크아악!”

무신의 수행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무신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이미 상대, 흑마존의 검은 무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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