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학사환생 163화
아슬아슬한 차이로 진마존의 손이 먼저 구슬에 닿으려는 순간.
번쩍!
구슬에서 쏟아져 나온 빛이 진마존을 뒤덮었다.
동시에 전율에 가까운 충격파가 진마존을 덮쳤다.
“크윽!”
전신에 충격을 받은 진마존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동안 천신우는 구슬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천신우의 손가락이 구슬 안으로 파고들며 미증유의 감각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희미해져 가던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죽어가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온몸의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신체가 재구성되는 느낌.
착각이 아니었다.
우두둑!
뼈가 맞춰지고 피의 흐름이 빨라졌다.
‘이게 만상서고의 설계자가 남긴 마지막 보상인가?’
과거 만상서고의 단서들과 함께 주어진 보상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대장간에서 쇠를 두들기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엔 검을 완성시키는 기분이었다.
“으으…….”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진마존도 천신우의 변화를 깨달았다.
그의 눈에 의문이 번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정확한 내막은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천신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
‘더 늦기 전에 막아야 한다!’
진마존도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증폭환을 복용한 이상 그도 언제 천신우처럼 상태가 악화될지 몰랐기에.
‘그래도 지금이라면!’
진마존은 천신우를 향해 검을 내리치면서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천신우를 막을 수 있다고.
천신우를 둘러싼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에.
하지만 진마존의 검이 천신우의 머리 위로 내리쳐지는 순간.
반쯤 감겼던 천신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끝났다.’
천신우는 알 수 있었다.
만상서고의 설계자가 마지막 단서에 남긴 보상을 완전히 받아들였음을.
그것은 충격적이게도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탈바꿈하는 환골탈태와 흡사했다.
실제로 천신우의 뼈와 근육은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 상태였다.
다만 겉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정말 환골탈태가 맞는지는 의문이었다.
‘어차피 상관없다.’
언제나 원인보다 중요한 건 결과.
덥석!
검을 내리치는 진마존의 팔목을 낚아챈 천신우다.
뜻밖의 상황에 진마존이 눈을 부릅떴다.
“……!”
술집에서 시비 붙은 주당들끼리 팔이나 멱살 따윌 잡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천신우와 진마존 정도 되는 고수들의 싸움에서 그런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압도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진마존에겐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이놈이!”
진마존은 내공을 끌어올려 천신우를 떨쳐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신우에게 붙들린 팔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천신우의 내공이 진마존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처음 마주한 천신우의 내공이 강물처럼 넘실거렸다면.
지금 천신우의 내공은 바다와 같았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압도적인 존재감!
우두둑!
천신우가 진마존의 팔목을 비틀었다.
돌아간 팔이 그대로 뽑혀져 나왔다.
“크아아악!”
팔이 뽑힌 진마존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방금까지만 해도 천신우가 지친 틈을 타서 백중세를 이뤘건만.
이제 천신우와 진마존의 차이는 도저히 극복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마존은 이를 악물었다.
‘이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끝내 이 자리까지 기어 올라왔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고? 웃기는 소리!’
의지로 통증을 억누른 진마존이 남은 팔로 검을 쥐었다.
익숙하지 않은 균형감각에 휘청거린 것도 잠시.
자세를 바로잡은 진마존의 검이 천신우를 향해 내질러졌다.
솨아악!
그러나 강물조차 제대로 베지 못했던 진마존이다.
바다로 변한 천신우를 베는 것은 불가능했다.
차앙!
단 한 번의 격돌에 진마존의 검이 튕겨졌다.
밀려드는 통증에 진마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정말이지 팔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진마존은 검을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 나는 진마존이니라!”
진마존이 남은 팔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팔이 터져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천신우에게 타격을 입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걱!
한발 빠르게 들려온 절단음이 진마존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끄아아아악!”
양팔을 잃은 진마존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런 진마존을 향해 천신우의 자운검이 내리그어졌다.
촤악!
반으로 쪼개진 진마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
이윽고 진마존의 몸이 기울어졌다.
털썩!
쓰러진 진마존을 바라보는 천신우의 시선은 차분했다.
앞서 광마존을 제압했을 때와는 달랐다.
전혀 지치지 않은 천신우였다.
“일단 한숨 돌린 건가…….”
숨을 크게 내쉬는 천신우의 눈에 구슬이 사라지며 나타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단 한 권의 책이었다.
* * *
“괜찮으십니까?”
제자 검귀의 물음에 검신은 그저 술병을 들이킬 뿐이었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정말 굉장한 놈이었지.’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천마혈검대주를 떠올리자 검신의 뺨이 시큰거렸다.
그의 뺨엔 벼락을 맞은 것처럼 기다란 상처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로 조금 전 천마혈검대주에게 입은 상처였다.
만일 상처가 조금만 깊었더라면 검신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전에 상대한 놈의 수하들도 보통은 아니었다.’
제3자가 보기엔 검신이 천마혈검대 고수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것처럼 보였을 터.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검신은 맨발로 칼날 위를 걷듯 위태로운 승부를 펼쳤다.
아주 작은 실수조차 저지르지 않았기에 천마혈검대를 벨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얼굴에 검상과 더불어 적잖은 내상을 입은 검신이었다.
당분간은 안정만 취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나마 풍뢰권처럼 생사가 오락가락한 정도는 아니라는 게 유일한 위안.
‘이런 놈들이 득실거릴 정도라니. 대체 마교의 저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일까.
평소답지 않게 검신은 초조했다.
생각 같아선 당장 생명단을 구해와 풍뢰권을 살리고 싶었다.
무림맹으로 달려가 맹주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검신은 알고 있었다.
천마혈검대 전원을 제압한 것이 이번 무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란 것을.
이제는 무대 뒤에서 막이 내리길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권왕 그자가 풍뢰권 어르신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나로선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 이제 지켜보는 수밖에.”
검신의 시선이 잿더미로 변한 철혈성을 지나 권왕이 떠나간 방향에 머물렀다.
* * *
권왕은 사부 풍뢰권을 업고 달리고 있었다.
사부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권왕은 어떻게든 사부가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사부! 스승님! 제발 정신 차려요!”
“젠장! 뭐라고 말 좀 해보란 말입니다!”
“망할 늙은이!”
그러나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풍뢰권에겐 닿지 않았다.
“빌어먹을!”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듯 미친 듯이 질주하던 권왕 앞에 일단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
권왕은 일전을 각오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무림맹 무인들이었다.
철혈성을 지원하기 위해 한발 늦게 증원된 인원들.
“자네는 분명…….”
무림맹 책임자는 권왕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다.
철혈성 비무대회에서 권왕의 활약상을 지켜봤던 것이다.
서로 인사도 나눴기에 권왕도 상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가거라! 곧장 합류하겠다!”
한시가 급했기에 일단 병력을 먼저 보낸 책임자가 권왕에게 물었다.
“설마 철혈성에서 오는 길인가?”
끄덕.
“그럼 철혈성은…….”
철혈성의 상황을 물으려던 책임자가 풍뢰권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군. 의무대가 뒤에 따라오고 있으니 그리로 합류하게.”
권왕이 고개를 흔들며 다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무림맹 책임자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유가장으로 생명단을 구하러 가는 길인가? 미안하지만 유가장은 이미 마교의 습격을 받았다네. 아마 지금쯤이면…….”
유가장 무인들이 대피한 곳을 듣자마자 권왕은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구슬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단 한 권의 책.
겉보기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천신우는 보는 순간 직감했다.
“설마……!”
이번엔 천신우가 직접 손을 뻗을 필요조차 없었다.
책이 스스로 허공에 떠올랐으니까.
촤라락-!
책이 펼쳐지는 순간.
휘황찬란한 빛이 주위를 집어삼켰다.
동시에 천신우의 뇌리로 밀려드는 방대한 지식!
천신우는 어째서 구슬을 만지는 순간 몸이 변화를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조차 만상서고 설계자의 안배였던 것이다.
만상서고의 지식을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선 그에 적합한 육체가 필요했기에.
“이럴 수가…….”
천신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전생과 이번 생에 걸쳐 습득한 것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얻은 것이다.
“그랬군. 만상서고는 특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게 아니었어.”
만상서고는 세상의 모든 무공비급이 보관된 장소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기록된 단 한 권의 책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이 천신우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못했겠군.’
천신우가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처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기 전에 두뇌가 먼저 터져나갈 터였다.
그러나 새로운 육체로 탈바꿈한 천신우는 그 모든 지식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이 그토록 은밀하게 전승해온 무공들이 실은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말이야.’
만상서고의 여섯 번째 단서를 얻으면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던 그때와는 달랐다.
지금 천신우는 모든 무공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지금까지 익힌 무공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당대 무림에 존재하는 어떤 무공이든 깨부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뽑아 펼치는 것보다 쉬웠다.
그저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전생에서 만상서고에 대한 소문은 모두 거짓이었군.’
만상서고의 단서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만상서고의 정수를 얻은 사람이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만일 누군가 만상서고의 온전한 힘을 얻었다면 무림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테니까.
‘어쩌면 진마존처럼 마지막 순간 만상서고에게 거부당했을지도.’
영원히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만상서고에조차 두 번의 삶을 사는 자에 관한 지식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내막이 궁금했던 천신우로선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천신우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났군.’
마침내 만상서고의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자 사방을 집어삼켰던 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한 권의 책 역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주어진 소명을 다한 것처럼.
허공에 부유한 것만 같던 천신우의 의식도 점차 현실감각을 되찾아갔다.
온통 빛으로 뒤덮여 있던 주위의 풍경도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사한가?’
만상서고와 연결돼있는 동안은 시간의 흐름조차 전혀 느끼지 못했던 천신우였다.
가장 먼저 천신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이곳은?’
자신의 침실이 분명했다.
‘내가 의식을 잃었던 건가?’
만상서고의 지식을 받아들일 당시 받은 충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어쩐지 익숙하군.’
전생에서 죽고 천신우의 몸으로 깨어났을 때와 흡사했다.
다만 그때와 달리 침상 옆엔 시비 난정이 보이지 않았다.
천신우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침실 밖에는 천씨세가의 고수들이 철통 같은 경계망을 펼치고 있었다.
천신우가 깨어날 때까지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모두들…….”
천신우는 말을 삼켰다.
때로는 말이 필요하지 않은 때도 있는 법이기에.
천씨세가 고수들 역시 침묵했다.
그저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천신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구석엔 아직 전투의 피로가 남아있는 모습들.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이다.
천신우가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
멀리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급속도로 천신우를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신우의 시야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권왕의 모습이 보였다.
“!”
등에 풍뢰권을 업은 권왕은 씻지도 못했는지 온통 흙먼지투성이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이 달려온 권왕이 천신우 앞에 철퍼덕 쓰러졌다.
“사부를…….”
쓰러지는 권왕을 붙잡은 천신우가 풍뢰권의 상태를 확인했다.
미약하지만 분명 숨이 붙어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고생했다. 지금부턴 내게 맡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