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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61화 (161/171)

# 161

학사환생 161화

천신우라고 모르지 않았다.

얕은 속임수 따위론 진마존을 절대 따돌리지 못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단행한 것은 방금 전의 상황 때문이었다.

천신우는 원래 승천단의 효과를 끌어올려 진마존을 단숨에 제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마존도 덩달아 증폭환을 복용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증폭환부터 복용할 줄이야. 이래서는 단숨에 끝내기 힘들다.’

시간을 지체하다간 희생이 얼마나 커질지 몰랐다.

그리고 그들 중엔 가주 천무흔이나 동생 천신혁이 포함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천씨세가 본진에 합류해 상황을 살피기로 마음먹은 천신우였다.

‘제2의 거점으로 삼을 만한 곳이라면 역시 거기겠지.’

천신우의 예상대로였다.

천씨세가 무인들은 내당으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재정비해 마교에 맞서는 중이었다.

그곳은 격전의 도가니였다.

누구도 천신우의 등장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크헉!”

어느 진영의 것인지 모를 비명이 울려 퍼졌으며.

모두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핏물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이제 천신우가 그곳으로 들어섰다.

서걱! 서걱!

마교 고수들을 베어 넘기는 천신우의 표정에 망설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뒤다!”

“적의 지원이다!”

한발 늦게 마교 고수들이 외쳤다.

다급히 돌아선 그들의 눈엔 의구심이 가득했다.

“……혼자라고?”

그들 모두 천씨세가를 공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원이 투입됐는지 알았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포위망을 뚫고 이곳까지 다다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천신우는 지친 기색조차 아니었다.

포위망을 역으로 뚫으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사신이 따로 없었다.

“형님?”

난전 속에서 천신우를 알아본 천신혁이 소리쳤다.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천신우는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스스로가 누군지 증명했으니까.

“젠장! 막아!”

뒤늦게 정신 차린 마교 고수들이 벌 떼처럼 천신우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콰아앙!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그들이 모조리 쓸려 나갔다.

사방을 뒤덮은 먼지구름 속에서 천신혁이 다급히 외쳤다.

“형님!”

그 순간 천신우가 벼락처럼 반응했다.

천신혁을 향해 몸을 날린 것이다.

따다다다당!

상대의 검과 맞부딪친 천신우의 자운검이 바르르 떨렸다.

그것만 봐도 상대가 누군지는 분명했다.

진마존이 천신우를 쫓아온 것이다.

방금 전에 진각으로 지면을 박살내놓은 것도. 천신혁을 노린 것도.

모두가 진마존의 소행이었다.

미리 예상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진마존의 검은 천신혁을 꿰뚫었을 것이다.

먼지구름이 걷힌 자리.

천신우와 진마존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의 검은 아직까지도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먼저 멈춘 것은 천신우의 검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진마존의 검이 떨림을 멈췄다.

진마존이 입가를 비틀었다.

“믿을 수가 없군.”

증폭환까지 복용한 그였다.

천신우에게 내공이 밀린다는 것은 자존심을 떠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공의 부족함을 핑계 삼을 수는 없었다.

“오랜만이군. 나보다 내공이 앞서는 상대를 맞상대하는 것은.”

진마존은 반쯤 눈을 감았다.

강자와 맞설 때마다 그와 유사한 상대를 떠올리는 것은 진마존의 오래된 버릇 가운데 하나였다.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경험의 서고.

그곳에서 진마존은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흑마존의 싸움을 지켜봤던 기억이었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더라니.’

천신우의 검법은 흑마존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팔마존들 가운데 최강자로 불리는 흑마존.

그는 세력을 거느리지 않았음에도 다른 팔마존들에게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진마존 역시 흑마존이 두려웠다.

그렇기에 언젠가 흑마존과 맞설 순간을 대비해 그의 무공을 연구해 온 진마존이었다.

솨앙!

날아드는 천신우의 검을 보고 진마존은 스스로의 추측에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에 대응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천신우의 검이 다시금 변화했다.

“……!”

일그러진 진마존의 얼굴을 향해 천신우의 검이 날아들었다.

* * *

마교 혈마존은 손바닥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자신의 피가 아니었다.

바로 철혈성주의 피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혈마존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반면 철혈성주는 피가 콸콸 쏟아지는 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를 부축할 호위들은 혈마존의 수하들과 목숨을 맞바꾼 후였다.

“결국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가.”

한 맺힌 음성을 내뱉으며 철혈성주가 바닥에 허물어졌다.

혈마존은 철혈성주의 죽음을 확인할 새도 없이 호흡을 다스렸다.

철혈성주를 꺾었지만 혈마존이라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철혈성주는 패색이 짙어지자 목숨과 바꿔 혈마존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런 상태로는…….”

혈마존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풍뢰권을 바라보았다.

사실 풍뢰권의 상태는 혈마존보다도 나빴다.

호흡은 불규칙했고 몸은 무거웠으며.

독마존의 독에 당해 혈색이 어두웠다.

그럼에도 풍뢰권은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했다.

살마존을 쓰러뜨림으로써.

권왕을 상대로 기세등등하던 살마존은 이미 바닥에 쓰러진 후였다.

가슴에 구멍이 휑하니 뚫린 상태로.

풍뢰권의 주먹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살마존의 상징과도 같았던 쌍수도끼는 날만 남아 옆에 처박혀 있었다.

혈마존이 살마존의 시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새로 자루를 달아서 무덤에 함께 묻어주지.”

혈마존과 살마존은 오랜 친구였다.

사실 마교에서 우정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교는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복마전이었기에.

혈마존도 여러 차례 배신의 유혹을 견뎌내며 살마존과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무림정복의 대업을 코앞에 두고 친구를 잃은 것이다.

스윽.

혈마존이 손을 들자 핏방울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미 보여준 광경이지만 아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혈마존의 분노에 반응하듯 핏방울들이 마구 요동쳤다.

“…….”

풍뢰권은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상대는 분명 지쳐 있었다.

당장이야 분노로 한계마저 초월한 상황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풍뢰권은 그 이상으로 지쳐있다는 사실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지금 이곳에서 혈마존을 상대로 시간을 벌어줄 실력자라곤 제자인 권왕뿐.

하지만 그 대가로 권왕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풍뢰권은 그러길 원하지 않았다.

직접 혈마존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어디 보자. 확률은 반반 정도인가.’

항상 필승을 자신했던 풍뢰권에게 절반은 너무도 낮은 수치.

그럼에도 풍뢰권은 주저하지 않았다.

쿠구구구궁!

온몸의 진기를 끌어내며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다.

푸른빛이 풍뢰권의 몸을 감돌기 시작했다.

그에 맞선 혈마존의 몸은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콰앙! 콰아앙!

서로 이질적인 기운이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곳곳에서 흙기둥이 솟구쳤다.

번쩍!

먼저 움직인 것은 풍뢰권이었다.

벼락처럼 쏘아지는 풍뢰권의 몸을 핏빛 폭풍이 뒤덮었다.

꽈아아앙!

권왕은 보았다.

붉게 변한 세상에서 한 줄기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핏빛 폭풍을 그야말로 찢어버리며 풍뢰권이 혈마존을 향해 쇄도했다.

혈마존이 핏방울을 쏘아 보냈다.

투두두두둑!

핏방울이 비가 되어 몸을 때렸지만 풍뢰권은 멈추지 않았다.

“……!”

혈마존이 눈을 부릅떴다.

꽈앙!

풍뢰권의 주먹이 혈마존의 복부를 강타했다.

남의 피로 만든 막이 뚫리며 강한 충격이 혈마존의 몸속을 뒤흔들었다.

울컥!

뒤로 날아가며 혈마존이 피를 토해냈다.

오랜만에 자신의 피는 남들처럼 붉었다.

콰아아앙!

성벽까지 날아가 처박힌 혈마존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퍼억!

언덕처럼 쌓인 바위 더미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그걸로 끝이었다.

혈마존은 친구인 살마존과 마찬가지로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독마존에 이어 살마존과 혈마존까지.

무려 마존 셋을 쓰러뜨린 풍뢰권의 동공은 공허했다.

마치 매미가 벗은 허물을 보는 듯했다.

“사부!”

권왕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미친 듯이 달려간 권왕이 풍뢰권을 안고 울부짖었다.

“으아아아!”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던 사부가 오늘은 너무도 가벼웠다.

하지만 운명은 권왕에게 목 놓아 울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권왕은 사방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다가오는 기운은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하나같이 예리한 기도를 뿜어냈다.

마존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인 상대들이었다.

특히 풍뢰권이 사실상 가사상태에 빠진 지금은 더더욱.

“사부. 잠시만 쉬고 있어.”

권왕이 풍뢰권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새롭게 나타난 마교 고수들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염마존이 보낸 고수들로 월야라는 조직 소속이었다.

마존을 셋씩이나 철혈성에 투입했으니 충분하다고 여길 법도 하건만.

염마존은 월야의 고수들을 보내 만전을 기한 것이다.

“설마 우리가 나서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군.”

“정말 혈마존과 살마존 모두 죽은 것인가?”

“어쨌든 한 가진 확실하군. 흉수의 시체는 가져가야 조금이라도 계산이 맞겠지.”

물론 철혈성주와 풍뢰권의 시체를 확보한들 마교 입장에선 크나큰 손해였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자존심을 세울 수가 있었다.

“저놈은?”

“권왕이라는 놈이다.”

“누가 상대할 거지?”

“우리가 맡지. 너희들은 흉수의 시체를 확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권왕의 주먹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꽈앙!

권왕은 일격에 상대의 얼굴을 짓이겨놓았다.

“이런 개자식이!”

“일단 놈부터 제압한다!”

월야의 고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들을 향해 권왕의 주먹이 내질러졌다.

그들은 검을 휘둘렀지만 권왕의 접근을 막진 못했다.

날아드는 검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권왕은 적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콰직!

권왕의 주먹에 맞은 상대는 그야말로 머리통이 터져 죽었다.

물론 월야의 고수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염마존이 고르고 고른 마교의 정예들.

권왕에게 죽어 나가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검을 휘둘렀다.

강철처럼 단단한 권왕의 근육이 찢어지고 살점이 베어져 나갔다.

그러나 권왕은 몸을 돌보지 않았다.

사부가 그랬던 것처럼.

꽈앙!

어느새 월야의 고수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덜덜덜.

그는 떨고 있었다.

피를 뒤집어쓴 채로 다가오는 권왕은 공포 그 자체였다.

푸욱!

월야의 고수가 뻗은 검이 권왕의 복부를 찔렀다.

이미 많이 지친 권왕이다.

내공의 도움 없이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론 상대가 찌른 검을 튕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권왕은 이를 악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주먹은 너무도 거대했다.

쾅!

월야의 마지막 고수마저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염마존 최후의 안배마저 무위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물론 권왕도 멀쩡하진 못했다.

풀썩!

비틀거리며 권왕이 풍뢰권을 향해 다가갔다.

“사부……! 스승님!”

권왕이 절규하던 그때.

풍뢰권의 바짝 말라붙은 입술이 달싹였다.

“돼지 멱따는 소리 그만 하고 술이나 구해오너라.”

“아아!”

풍뢰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권왕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멀어져가는 권왕을 지켜보던 풍뢰권이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끝까지 눈치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도…… 그런 네놈이 싫지는 않구나.”

풍뢰권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철혈성을 바라보며 술로 목을 축였다.

술기운이 온몸에 돌며 잠시나마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확장된 감각을 통해 새로운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절대강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가공할 기운이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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