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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60화 (160/171)

# 160

학사환생 160화

언젠가부터 마교에게 가장 눈엣가시는 천씨세가였다.

물론 현재 천씨세가의 세력이 도천이나 무신궁을 넘어선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천씨세가는 마교의 행사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았다.

그로 인해 마교는 지대한 타격을 입었고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 중심엔 천신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마교는 천신우와 천씨세가를 응징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기에.

하지만 본격적인 무림침공을 시작한 지금.

더는 응징을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자청한 것은 당연하게도 천신우에게 애제자 진사명을 잃은 진마존이었다.

이미 여러 세력을 마교 발밑에 복속시킨 진마존은 이제 천씨세가 공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저곳인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전각군들이 보였다.

최근 들어 증축과 개축을 거듭한 천씨세가는 웅장한 풍경을 과시했다.

아직 올라가지 못한 건물들마저 완공된다면 그 위용은 어마어마할 터였다.

물론 진마존은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천신우 그놈의 행방은?”

“북해빙궁에서 목격됐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합니다.”

무림 전역에 펼쳐진 마교의 정보망은 무림맹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보망을 피해 움직일 방법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장 진마존만 해도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움직일 자신이 있었다.

혼자서 움직인다는 가정하에.

“어쩌면 이곳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금쯤이면 무림맹의 정보망에 우리 움직임이 포착됐을 테니.”

천신우가 천씨세가로 복귀한다면 전황은 분명 달라질 터였다.

“무림맹에서 지원이 오기 전에 서둘러 마무리하지.”

무엇보다 눈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천씨세가를 보고 울부짖는 천신우의 모습을.

“진사명 그 아이가 하늘에서라도 보면 좋아하겠군.”

물론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광마존이 천신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보고 받은 상황.

만일 천씨세가 공략이 끝나기 전에 천신우가 도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천씨세가의 모든 것을 말살한다!”

드디어 진마존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 * *

천신우는 보고 말았다.

저 멀리 불길에 휩싸인 천씨세가의 전경을.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익숙한 외침이 들려왔던 것.

“최전방은 포기한다! 후방으로 물러나 전열을 재정비할 것이다!”

“아!”

천신우의 아버지이자 천씨세가의 가주인 천무흔의 목소리였다.

비록 친아버지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이후 천신우에게 혈육 이상의 울림을 남겼던 천무흔.

그가 살아 있었다.

“먼저 피하십시오! 적들의 추격을 조금이라도 늦춰보겠습니다!”

천신우가 철혈성 비무대회에서 직접 영입한 신중현의 음성도 들렸다.

천신우의 몸놀림이 한층 빨라졌다.

“뒤다!”

뒤늦게 천신우의 존재를 알아차린 마교 고수가 소리쳤다.

그라고 외곽에서 들려온 호각소리를 듣지 못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설마 혼자서 저지선을 돌파하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놈을 막아!”

하지만 다급한 외침만으로 천신우의 발목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적의 외곽침투를 대비해 펼쳐진 포위망이 아니었다.

천씨세가 무인들의 탈출을 저지하는 용도.

당연히 외곽에서의 침투엔 상대적으로 허술할 수밖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위망을 돌파하는 천신우의 속도는 예측을 불허했다.

파파파팟!

질주하는 천신우 앞에 양쪽에서 또 다른 마교 고수들이 튀어나왔다.

쉭쉭!

그들의 검은 천신우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스윽.

자세를 낮추고 미끄러지듯 적의 공격을 피해낸 천신우가 다시 바닥을 박찼다.

파앗!

“젠장!”

“막아!”

천신우를 놓친 마교 고수가 버럭 소리쳤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천신우가 쉽게 피해내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물론 상한 것은 자존심만이 아니었다.

울컥!

뒤늦게 목을 움켜쥔 그였지만 이미 시작된 출혈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천신우가 그들을 지나치며 비수를 정확히 꽂아 넣었던 것이다.

‘대체 언제…….’

고꾸라지면서 동료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동료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이 심연으로 가라앉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가 들은 소리는 비명소리였다.

“크어억!”

비명이 울린 곳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퍽퍽퍽!

천신우는 달리는 와중에도 그를 덮쳐오는 상대들의 가슴에 주먹을 꽂았다.

천씨세가 앞에 조성된 울창한 숲을 지나는 순간.

천신우의 머리 위로 그림자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그들 위로 화약통이 쏟아졌다.

그들은 자살특공대였다.

몸으로 천신우를 막아내는 사이 화약통을 폭발시킬 속셈이었다.

천신우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마교 고수들을 쳐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불붙은 화약통들을 보는 순간 천신우는 지체하지 않고 비수를 날렸다.

비수에 직격당한 화약통들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콰콰콰쾅!

연쇄폭발에 천신우가 양팔로 얼굴을 감싸며 몸을 날렸다.

등 뒤에서 불길이 치솟았지만 천신우의 호신강기를 뚫진 못했다.

척.

바닥에 착지한 천신우가 즉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숲의 끝자락에서 대기하던 마교 고수들이 눈을 부릅떴다.

천신우의 움직임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판단이 너무 빨랐다.

한 번쯤 당황하고 멈칫할 법도 한데.

천신우는 마치 사전에 합을 맞춘 배우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처했다.

물론 천신우의 경쾌한 움직임은 배우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순간 상대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천신우가 코앞에 나타나며 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걷어찬 상대의 멱살을 공중에서 움켜쥔 다음 그대로 허공에 내던졌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놈의 시체가 동료들을 들이받았다.

우당탕탕!

시체와 뒤엉켜 바닥에 나뒹구는 적들 위로 천신우가 내려섰다.

“……!”

불신으로 가득한 적들의 숨통을 끊어놓은 천신우가 허리를 폈다.

탁 트인 시야.

이제 천씨세가는 한 번의 도약이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하지만 중후한 음성이 마음 급한 천신우를 막아 세웠다,

“자넨가.”

불타는 천씨세가를 배경으로 한 노인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젊군. 진사명 그 아이도 자네만큼 젊었지.”

심상찮은 기도를 뿜어내는 노인은 진마존이었다.

“자네라면 방금 한 말만으로도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하네만.”

과연 천신우는 진마존의 말에서 진사명과의 관계를 유추해냈다.

“긴말하지 않겠네. 오늘 나는 자네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거둬갈 생각일세.”

진마존의 등에서 검이 뽑혀져 나왔다.

솨아악!

벼려진 칼날만큼이나 날카로운 기도를 뿜어내며 진마존이 말했다.

“물론 그게 자네의 혈육이든. 천씨세가 그 자체이든. 진사명 그 아이의 목숨에 비할 바는 아닐세.”

진사명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새 천신우를 향한 분노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진마존의 기도도 변화해갔다.

날카롭던 그의 기도에 불꽃처럼 맹렬한 기운이 더해졌다.

이 순간, 진마존은 용광로에서 막 끄집어낸 한 자루 검과 같았다.

천신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당신이 더 낫군.”

진마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신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것이다.

“지존이라면 모를까. 자네에겐 나와 광마존을 비교할 자격이 없네.”

천신우는 대화에 응하지 않고 진마존을 향해 쇄도했다.

어느새 뽑혀져 나온 자운검이 진마존의 급소를 노렸다.

하지만 천신우의 자운검이 찌른 것은 진마존의 잔상이었다.

“성질 한번 급하군.”

멀찌감치 뒤에서 다시 나타난 진마존이 눈짓했다.

그러자 진마존을 수행하던 다섯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나이는 제각각이었지만 실력은 엇비슷했다.

“일단 이 아이들부터 상대하시게. 오귀라 불리는 아이들일세.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걸세.”

과연 천신우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이미 수많은 무림인들을 살해한 그들이었다.

“이미 많은 아이들을 쓰러뜨리고 여기까지 왔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여서 말일세. 이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자네의 숨겨진 한 수 정도는 꺼내게 만들 수 있겠지.”

진마존의 판단대로 천신우는 전혀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진마존도 오귀들을 내세워 천신우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오귀를 희생시켜 조금이라도 천신우의 힘을 빼려는 의도였다.

운이 좋다면 천신우가 밑천을 드러내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진마존의 의도와 달리 오귀들은 자신만만했다.

“광마존 선배를 쓰러뜨렸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단 별로군.”

오귀들이 차례로 입을 여는 순간.

천신우가 앞으로 쇄도했다.

‘분명 쉽지 않은 상대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한다.’

광마존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상황이 나빴다.

진마존은 광마존보다 고수였으며 오귀들도 있었다.

거기에 시간마저 천신우의 편이 아니었다.

물론 무작정 서두르진 않았다.

이미 오귀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마친 천신우였다.

상대의 호흡과 준비동작. 뿜어내는 기도.

모든 것이 천신우에겐 상대를 가늠하는 단서가 됐다.

스윽.

천신우를 막기 위해 오귀 가운데 전귀가 앞장섰다.

별호대로 그는 오귀들 가운데 가장 호전적이었다.

파괴적인 내공이 전귀의 주먹에 실렸다.

후우우웅!

휘몰아치는 바람이 심상찮았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쇄도를 멈추지 않았다.

전귀가 비릿하게 웃었다.

“정신이 나갔구나!”

그런 전귀를 비웃듯 천신우의 자운검이 바람을 찢었다.

풍뢰권과 권왕의 권법을 상대해 온 천신우에게 전귀의 주먹은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였다.

서걱!

단숨에 전귀의 가슴까지 베어내는 찰나.

양쪽에서 천신우를 향해 각각 장력과 검기가 날아들었다.

천신우는 일장을 뻗어 장력을 상쇄시키는 한편 자운검을 빠르게 내질렀다.

꽈앙! 차앙!

각기 다른 타격음!

천신우를 향해 달려들었던 오귀들의 가슴이 터져나가고 팔뚝이 찢겨 나갔다.

순식간에 오귀 셋을 제압한 천신우가 나머지 오귀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죽은 자들도 살아남은 자들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이런 젠장!”

뒤늦게 정신 차린 오귀 둘이 검을 내질렀지만 소용없었다.

푸우욱!

살이 찢기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오귀 전부를 쓰러뜨린 천신우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허어.”

진마존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천신우를 노려보았다.

오귀들이 모두 쓰러질 때까지 기회를 엿본 진마존이다.

하지만 천신우는 전혀 허점을 보이지 않았다.

오귀를 희생시켜 알아낸 것이라곤 천신우의 무공이 완전하단 사실뿐이었다.

물론 허점은 있을 것이다.

다만 진마존의 눈썰미로 확인할 수가 없으니 문제였다.

“굉장하군.”

진마존의 진심이었다.

“그래. 이 정도니 진사명 그 아이가 죽었겠지.”

천신우는 대꾸하지 않고 승천단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이곳으로 달려오는 동안 그는 승천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 진마존 같은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아껴둔 것이다.

쿠오오오!

천신우 주위로 들끓는 기운을 보며 진마존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켜본 결과 그나마 천신우의 부족한 점은 내공이었다.

하지만 승천단의 효과를 끌어올리자 그 단점마저 사라졌다.

“증폭환이라도 복용한 것인가? 도대체 그렇게 하면서까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이지?”

대답 대신 천신우가 신형을 빛살처럼 쏘았다.

파아앗!

진마존도 주저하지 않고 단약을 복용했다.

꿀꺽!

마교에서 최상위 고수들에게만 지급되는 단약으로 기존 증폭환에 비해 부작용이 훨씬 덜했다.

온몸에 내공이 끓어오름을 느끼며 진마존이 검을 내질렀다.

쏴앙!

천신우 역시 검을 내리그었다.

그러나 천신우가 노린 것은 진마존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진마존 앞의 땅거죽이 뒤집히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진마존이 검강을 날려 흙먼지를 소멸시켰다.

그러나 천신우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감히 나를 상대로!”

격분한 것도 잠시.

진마존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어차피 천신우가 갈 만한 곳은 천씨세가뿐이었다.

“오냐! 그곳이 네놈 무덤이 될 것이다!”

천신우를 쫓아 진마존이 신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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