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학사환생 155화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몸을 일으킨 것은 마교 광마존이었다.
“역시!”
지켜보던 마교 고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전이었다.
거기서 승리했으니 사기가 오를 수밖에.
“와아아!”
분기탱천한 마교 고수들이 북해빙궁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북해빙궁 무인들의 반응은 정반대.
“이런…….”
탄식과 한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그들에겐 마교 고수들의 파상공세를 받아낼 투지마저 부족해 보였다.
특히 궁주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정략적 선택이었으나 천신우와 혼인까지도 생각했었던 그녀다.
눈앞의 광경에 크나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궁주님! 어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무인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궁주의 심복이 다급히 외쳤다.
무력이 부족하다고는 해도 북해빙궁에서 궁주가 가지는 상징성은 절대적이었다.
북해빙궁엔 그녀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 버리며 싸울 무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와 심복 모두 착각한 것이 있었다.
바로 광마존이 홀로 서 있다고 해서 그것이 승리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 * *
천신우와 광마존이 함께 합을 겨루며 추락하던 마지막 순간.
천신우는 광마존이 날린 회심의 일격을 흘려냈다.
광마존 입장에선 단순히 공격이 빗나간 수준이 아니었다.
그전부터 수없이 해온 공격은 이번 일격을 위한 포석이었기에.
천신우의 행동반경을 제약시켜 도저히 피할 수 없게 만들고서 전력을 쏟아부었건만.
천신우가 광마존의 예상을 벗어난 대처를 보여준 것이다.
“……!”
의구심에 사로잡힌 광마존의 목을 천신우가 양발로 휘어 감았다.
지금까지 검만으로 싸워왔던 천신우이기에 광마존의 대처는 한발 늦었다.
우두둑!
어지간한 상대라면 목뼈가 부러지고도 남을 상황.
하지만 강골인 광마존은 격렬하게 저항하며 가까스로 천신우를 떨쳐냈다.
* * *
“제법이구나!”
광마존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모두의 웅성거림을 애써 부정하듯 광마존이 바닥에 처박힌 천신우를 향해 주먹을 내려쳤다.
그 순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천신우가 몸을 튕기며 광마존의 주먹을 피해낸 것이다.
심지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위협적인 일검을 날렸다.
솨악!
광마존이 몸을 젖혀 피해냈지만 머리털이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누가 봐도 광마존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져 있었다.
그에 반해 천신우의 몸놀림은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지이잉-!
천신우의 자운검에 내공이 주입되기 시작했다.
천신우도 많이 지쳤는지 아까처럼 검강을 뽑아내진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광마존보다 우세하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죽여!”
광마존의 패배를 직감한 마교 고수들이 전장에 난입했다.
“막아요! 당장!”
북해빙궁 궁주가 다급히 외쳤으나 마교 고수들 전부를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북해빙궁 무인들이 세운 인의 장벽을 뚫고 마교 고수들이 전장에 난입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처참한 죽음이었다.
꽈앙!
광마존이 마교 고수의 머리를 터뜨려버린 것이다.
“이 몸의 싸움에 끼어들지 마라.”
여전히 어지간한 고수들은 황천으로 보내버릴 힘을 간직하고 있는 광마존이었다.
누구라도 승부를 방해한다면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으으…….”
얼굴이 하얗게 질린 마교 고수들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지금이다! 가세한다!”
궁주의 심복이 내린 명에 따라 합류하려던 북해빙궁 무인들은 천신우가 막아 세웠다.
“여긴 괜찮으니 마교의 잔당들을 막아주십시오.”
물론 천신우의 의도는 광마존과 달랐다.
북해빙궁 무인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상처 입은 맹수가 오히려 무섭다고.
북해빙궁 무인들의 무력으로 광마존을 감당해내기란 무리였다.
“이제 슬슬 끝내지.”
천신우는 승리를 자신했다.
물론 방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와 광마존의 실력 차이는 결코 크지 않았다.
노림수를 던졌고 그게 먹혔을 뿐이다.
반대로 광마존의 노림수를 한 번이라도 허용한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반전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단순히 우위를 내준 정도가 아닐 것이다.
직접 경험한 광마존의 파괴력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파아앗!
천신우가 날았고 광마존이 뒤늦게 뛰어올랐다.
쉭쉭쉭!
천신우의 검이 빠르게 광마존을 찔러갔다.
분명 지쳤음에도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쾌검이었다.
단지 빠른 것만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광마존을 제외하곤 천신우의 일격을 받아낼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북해빙궁 진영에도. 마교 진영에도.
단발성에 그치던 천신우의 공격이 하나의 흐름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무공이 탄생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단순한 찌르기가 초식이 되고.
초식이 모여 다시 검법이 되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러왔고 수많은 고수를 상대한 광마존조차 처음 보는 무공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익숙한 무공이기도 했다.
광마존은 천신우의 검에 담긴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건!”
광마존이 외치는 순간 천신우의 검이 가슴을 베어냈다.
푸아악!
광마존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물론 피를 흘렸다고 위축될 광마존이 아니었다.
광마존은 오히려 힘을 끌어올렸다.
마치 스스로를 불태워 주위를 비추는 양초처럼 그는 마지막 투혼을 불태웠다.
쾅쾅쾅!
대기를 떨어 울리는 주먹이 날아들 때마다 천신우의 몸이 공중에서 크게 출렁거렸다.
물론 천신우도 광마존도 알았다.
이것만으론 승부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하지만 급한 쪽은 광마존이었다.
“흐아아아압!”
기합과 함께 근육을 한껏 부풀린 그가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최단거리로 날아드는 광마존의 일격을 보며 천신우는 판단했다.
어지간한 각오로 맞섰다간 권풍에 휩쓸려 버릴 거라고.
절체절명의 상황.
천신우의 선택은 역시나 정면돌파였다.
꽈앙!
뼈가 부러졌는지 내장까지 충격을 입었는지는 몰랐다.
확실한 것은.
촤아아악!
천신우의 자운검은 정확히 광마존의 심장을 갈랐다는 것.
광마존은 눈을 부릅뜬 채로 서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졌음에도 쓰러지기는커녕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그런 광마존을 향해 천신우의 자운검이 백광을 뿌렸다.
서걱!
잘려 나간 광마존의 목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보며 천신우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치명상까진 아니지만 당분간 정양해야 하는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그리고 마교 고수들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사신처럼 그들이 천신우를 향해 쇄도했다.
광마존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충격을 수습할 시간도.
그들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어림없다!”
궁주가 호위무인들과 함께 막아섰지만 사방에서 밀려드는 마교 고수들을 막기엔 역부족.
애초에 북해빙궁의 전력으로 마교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내부후계경쟁으로 전력손실이 상당한 지금 시점에선 더더욱.
그러나 마교 고수들 전부가 천신우에게 도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가주님을 지켜라!”
고진성을 필두로 천씨세가의 고수들이 전장에 합류했고.
“적은 마교의 모든 것들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하나도 남김없이 섬멸하라!”
북해빙궁을 담당하는 무림맹 제23지부 무인들이 가세했으며.
“지금부터 우리 멸악전단은 악을 멸절한다.”
천신우의 직속상관 멸악전단 단주 심인기가 휘하 고수들과 함께 등장했다.
“와아아아!”
천신우를 사이에 두고 무림맹과 마교의 고수들이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한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군.”
천신우 역시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격전 끝에 광마존을 꺾었음에도 천신우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곧 승천단의 부작용이 밀려들 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자운검을 고쳐쥔 천신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시작인 거다.
* * *
중년인이 숲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헉헉…….”
숨을 헐떡이는 그는 중견문파 협선문의 문주였다.
협선문은 도천의 오랜 우방.
그걸 알기에 마교는 별동대를 보내 협선문을 습격했다.
협선문주는 용감하게 맞서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휘하 무인들을 이끌고 탈출해 도천에 합류하는 자구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협선문을 나설 때만 해도 문주를 따르는 무인들의 숫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대로 살아남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협선문주는 절대 주저앉을 수 없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어 나간 무인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살아서 복수할 것이다.
그런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 달려가던 협선문주 앞에 흑의인들이 내려섰다.
그들은 마교의 별동대였다.
앞서 협선문 무인들을 학살한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협선문주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오냐! 내 직접 네놈들을 베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겠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문파를 버리고 달아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협선문주가 마교 별동대와 충돌하려던 그때였다.
콰콰콰콰!
땅거죽이 뒤집히며 거대한 흙벽이 협선문주 앞에 솟아났다.
“이게 무슨?”
가까스로 멈춰선 협선문주는 들었다.
흙벽 뒤에서 모든 것이 휩쓸려나가는 소리를.
마치 홍수가 난 것처럼 숲 전체가 쓸려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흙벽이 무너지며 처참한 잔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 별동대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반대편 숲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어르신!”
협선문주의 외침에 절절한 감정이 담겼다.
상대는 도제였다.
지금껏 도제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던 협선문주다.
하지만 도제가 도를 뽑아든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
방금의 충격을 날려 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렬한 인상이었다.
“가지.”
도제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신…… 네놈도 지금쯤 마교와 맞서고 있을 터. 내가 아는 네놈이라면 설마 이따위 곳에서 주저앉진 앉겠지.’
각자의 위치에서 마교와의 전쟁을 준비하기로 무신과 합의한 상황.
분명 무신궁도 어떤 식으로든 마교와의 일전을 시작했을 터였다.
‘살아남아라. 때가 되면 내 손으로 직접 네놈 목을 날려줄 테니.’
무신에겐 들리지 않을 도제의 마음속 일성이었다.
* * *
도제의 예상과 달리 무림 전역을 통틀어 가장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는 곳은 철혈성이었다.
마교는 철혈성 공략에 총력을 기울였다.
무려 마존 둘을 투입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마교의 최정예들을 가세시킨 것.
오랜 세월 중립을 지켜온 철혈성을 무너뜨림과 동시에.
무림 전역에 마교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더불어 마교에 협조하지 않는 세력들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철혈성 공략을 맡은 혈마존과 살마존이 멀리 내다보이는 성벽을 응시했다.
각각 마교의 양대파벌 강경파와 온건파를 대표하는 그들은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그게 단점보다 장점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다.
서로의 장점이 맞물리며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
“저곳이군.”
비무대회가 열리던 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와 달리 마교가 대놓고 철혈성 공략을 천명한 상황.
그에 대비해 임전 태세를 갖춘 철혈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모한 후였다.
그러나 혈마존과 살마존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물론 서로 생각한 공략법은 전혀 달랐지만.
* * *
같은 시각.
철혈성의 드높은 성벽 위에서 마교의 군세를 내려다보는 인물이 있었다.
강인함과 신중함을 동시에 품은 그는 당대 철혈성주였다.
무신과 도제의 친우인 그는 그들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무력을 갖췄다.
초대 철혈성주의 유훈에 따라 중립을 천명해서 그렇지.
만일 철혈성주가 무림맹에 진출했다면 능히 무신과 도제와 삼파전을 이뤘을 터였다.
“아주 작정했군. 예상은 했지만.”
철혈성주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풍뢰권이었다.
사실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두 사람이다.
하지만 무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어색한 기류는 없었다.
“자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철혈성주의 물음에 풍뢰권은 대답 대신 턱짓했다.
그 순간.
철혈성의 드높은 성벽 위에서 그림자 하나가 뛰어내렸다.
쿵!
엄청난 굉음과 함께 대지에 균열을 일으키며 내려선 것은 바로…….
권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