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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51화 (151/171)

# 151

학사환생 151화

마교 광마존의 시야에 북해빙궁의 전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광마존과 부하들이 지나온 설원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무림인들은 물론, 민간인과 가축들까지도 모조리 학살했기 때문.

그러나 광마존은 아직 피에 목말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여라!”

지금까지 강경책과 회유책을 병행해 온 마교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실패한 북해빙궁에 회유책을 다시 사용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북해빙궁을 철저히 짓밟을 계획이었다.

광마존이 이번 작전의 지휘를 맡은 것도 그런 목적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물론 광마존의 진격에 그대로 짓밟힐 북해빙궁이 아니었다.

북해빙궁은 북해천단을 중심으로 병력을 외곽에 배치시켜 마교에 대항했다.

북해빙궁의 외곽을 에워싼 빙벽을 중심으로 결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북해빙궁의 궁주전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궁주전은 북해빙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장소.

궁주 자리에 오른 삼공녀가 북해빙궁의 요인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신임 궁주의 부름에 응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부름에 응해 모여든 요인들도 저마다 셈법이 복잡했다.

‘삼부의 수장들이 보이지 않는군.’

‘오각의 수장들도 마찬가지다. 역시 아직 신임 궁주는 빙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삼공녀는 자력으로 궁주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사실 죽은 대공자나 칠공자보다 훨씬 세력이 미약했던 그녀다.

만일 천신우와 산군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절대 신임 궁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궁주 자리에 오른 이후로도 그녀의 입지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보긴 힘들었다.

산군의 정치적 도움을 받았음에도 아직 신세연은 북해빙궁의 절반밖에 장악하지 못했다.

‘운명이란 참으로 예측하기가 힘들군. 신임 궁주는 차근차근 빙궁을 장악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대로만 진행됐더라면 궁주는 북해빙궁을 완전히 장악했을 것이다. 비록 속도는 조금 더뎠겠지만.’

그러나 마교가 본격적인 침공을 시작하면서 정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신임 궁주에게 위기를 수습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가 삼부와 오각의 이탈이었다.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이기도 했다.

산군이 원로들의 수장이라고는 하나, 북해빙궁의 모든 파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기에.

‘하긴 그나마 산군이 있기에 이 정도라도 모인 거겠지.’

그때.

저벅.

궁주전에 발소리가 울렸다.

신임 궁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상사태로 인해 전혀 꾸미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형식적인 절차는 대부분 생략하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본궁 최대의 위기입니다.”

궁주전에 모여 있던 북해빙궁의 요인들은 내심 감탄했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음에도 궁주는 의외로 침착했다.

대공자와 칠공자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전화위복이라고. 이번 위기만 넘긴다면 궁주는 북해빙궁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매김하겠군.’

물론 세상사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법이다.

“궁주님!”

궁주의 심복이 궁주전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워낙 긴급한 상황이라 누구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긴장한 얼굴로 보고가 이어지길 기다릴 뿐이었다.

“긴급 상황입니다!”

“무슨 일이지?”

“반란입니다! 삼부와 오각의 무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뭣이!”

궁주전에 모여 있던 요인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때마침 그들의 귀에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차차창!

“크아악!”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삼부와 오각에서 바로 반란을 일으킬 거라곤 생각지 못한 그들이었다.

“너무하는군! 힘을 합쳐 마교에 대항해도 모자랄 판에!”

“마교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은 것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미친 짓을 벌일 리가.”

“모두 조용히 하세요.”

장내를 진정시킨 것은 궁주였다.

삼공녀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녀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그때와는 달랐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그녀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지요.”

그녀는 입을 열기에 앞서 문득 생각했다.

천신우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지금 시간 부로 삼부와 오각의 무인들을 반란자로 선포합니다!”

그녀의 선택은 철저한 응징이었다.

* * *

북해빙궁의 정점이 궁주라면 중추는 삼부다.

그리고 삼부에서도 가장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적혈부였다.

지금 적혈부의 부주 맹공산은 북해빙궁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그라고 북해빙궁의 분열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은 대공자를 지지하며 누구보다 북해빙궁의 통합을 바랐던 맹공산이었다.

하지만 마교의 침공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신임 궁주에겐 마교의 침공을 막아낼 힘이 없다.’

맹공산의 눈엔 보였다.

마교의 공세에 무너지는 북해빙궁의 미래가.

지금이라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현실이 될 터였다.

‘다행히 마교는 투항하는 자들에게 관대하다고 알려졌다. 이대로 멸망할 바엔 차라리 고개를 숙이고 후일을 도모하는 편이 낫다.’

물론 북해빙궁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해 내린 선택은 아니었다.

대공자가 죽고 나서 찬밥 신세로 전락한 맹공산이다.

아직까진 적혈부의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지만 언제 물러나게 될지 몰랐다.

반란을 일으켜 북해빙궁을 장악한 다음, 마교에 투항하는 것.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이번 일만 성사시킨다면 적어도 지금 산군의 자리는 노려볼 수 있겠지. 마교와의 거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 이상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맹공산의 눈빛이 궁주전을 향했다.

삼부와 오각의 고수들이 이미 궁주전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빙궁을 지키는 수비병력은 이미 모두 제압한 후였다.

사실 평소였다면 이토록 반란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교의 침공을 막기 위해 북해빙궁의 주력이 외곽에 배치됐기에 가능한 일.

“자아! 단숨에 끝내는 거다!”

맹공산의 외침이 북해빙궁에 울려 퍼졌다.

* * *

“반란군이 궁주전 코앞까지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보고하는 무인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하지만 정작 보고를 듣는 중년인의 눈빛은 담담하기만 했다.

그의 이름은 고진성.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구왕도에 잠입했다가 천신우와 인연을 맺은 고수였다.

고진성은 천신우의 도움으로 복수에 성공한 이후, 줄곧 백산도의 정비를 맡아왔었다.

그러다 만금소의 죽음으로 백산도의 관리가 불필요해지자, 북해빙궁 파견임무를 맡은 것.

‘이렇게 빨리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천신우의 지시대로 맞서 싸우면 그만.

“모두 무기를 점검하고 전투를 준비해라. 반란군을 진압하고 마교를 저지할 것이다.”

위험한 일임을 안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목숨도 아깝지 않다.

이미 가족의 원수를 갚았기에.

‘이제 내 목숨은 천 소가주의 것.’

죽을 각오를 마친 고진성이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가자!”

* * *

궁주전의 진입로엔 1년 내내 녹지 않는 얼음다리가 있었다.

한음빙정에서 가져온 얼음으로 만들었기에 어지간한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았다.

또한 얼음다리 주변엔 얼음을 깎아 만든 꽃들이 운치를 더했다.

하지만 지금 그 꽃들은 피로 붉게 물든 후였다.

“크헉!”

“젠장! 막아! 이곳이 뚫리면 끝장이다!”

얼음다리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침입자와 막으려는 자.

적혈부주 맹공산이 이끄는 반란군과 궁주의 친위무인들이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푸욱!

궁주 친위대 무인의 배에 칼날이 박혔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돌보는 대신 검을 휘둘러 상대의 목을 베어냈다.

서걱!

동시에 새로운 칼날이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그는 끝까지 몸으로 진입로를 틀어막았다.

“궁주님…… 부디 보중하시길.”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반란군은 얼음다리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맹공산이 궁주전 문을 막아선 무인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문만 뚫어내면 우리가 북해빙궁의 주인이다!”

바로 그때였다.

측면에서 일단의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진성이 이끄는 천씨세가의 고수들이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당장 반란군을 처단하라!”

맹공산은 고진성이 천씨세가에서 보내온 고수들 가운데 하나임을 알아보았다.

“네놈은 분명 천씨세가의…….”

적혈부주 맹공산은 말을 잇지 못했다.

파앗!

고진성이 비호처럼 몸을 날려 맹공산을 공격해 온 것이다.

“건방진!”

맹공산도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까앙!

맹공산과 고진성의 검이 부딪치며 싸움이 시작됐다.

* * *

“천씨세가의 무인들이 늦지 않게 합류한 모양이군.”

산군은 흐릿한 눈으로 전장을 응시했다.

북해빙궁의 호랑이라 불리는 그였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눈이 침침해졌고 기력이 쇠해갔다.

하지만 늙어서 노안이 왔을지언정 연륜과 눈썰미만큼은 여전했다.

산군은 정확히 전황을 판단했고 결단을 내렸다.

“궁주.”

“말씀하세요.”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무슨 뜻인지 깨달은 삼공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혼자서 살아남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죽어도 궁주로서 죽겠어요.”

“그런 뜻이 아니올시다. 아마 반란군들은 발을 묶어두는 용도일 거요. 마교가 본궁에 입성하기 수월하도록.”

실제로 다들 반란군을 막느라 외곽은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서 결단을 내려주시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외곽에선 본궁의 고수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외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궁주가 구심점이 되어 마교를 막아내야 하오.”

“그럼 산군께서는…….”

“나야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소이까. 전장에서 죽을 수 있다면 영광이지.”

각오를 마친 산군의 등은 어느 때보다 거대하게 보였다.

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호위무인들을 이끌고 비밀통로를 통해 궁주전을 빠져나가면서 그녀는 기원했다.

부디 산군이 무사하기를.

북해빙궁이 이번 위기를 넘길 수 있기를.

* * *

“……여기까지인가.”

고진성은 숨이 거칠어짐을 느꼈다.

제6영역에서 명성을 날렸으며 천씨세가에 합류한 이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다.

하지만 북해빙궁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인 적혈부주 맹공산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고진성이 분전하는 동안 천씨세가 고수들은 전멸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아직 사망자는 없었지만 한 명이라도 죽는다면, 둑이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져 내릴 터였다.

사실 개개인의 실력은 적혈부주 맹공산이 거느린 정예들보다도 위였다.

하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대단하군.”

적혈부주 맹공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쩌면 본궁의 북해천단보다도 뛰어날지도 모르겠어.”

북해천단은 북해빙궁의 최정예.

하지만 그들은 현재 마교의 진격을 막기 위해 외곽전선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만일 북해천단이 이곳에 있었다면 맹공산의 반란도 실패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래봐야 이제 거의 끝난 듯싶지만.”

반란군은 천씨세가 고수들을 완전히 에워싼 상태였다.

상당수는 이미 궁주전 내부로 진입한 상황.

“이만 포기하고 투항하는 것이 어떤가. 목숨만은 보장하지.”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할 생각 없다.”

검을 고쳐 잡는 고진성.

적혈부주 맹공산이 피식 웃더니 턱짓했다.

“소원대로 해줘라.”

고진성이 비장하게 외쳤다.

“천씨세가의 무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싸우는 거다!”

“대체 천씨세가 따위가 뭐라고 여기까지 와서 개죽음을 자초하는 건지 모르겠군.”

적혈부주 맹공산이 비웃음을 흘리던 그때였다.

콰앙!

뒤에서 엄청난 충격음이 들려왔다.

놀란 맹공산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분명 방금 전까진 아무도 없었던 그곳에 누군가 서있었다.

새하얀 냉기로 뒤덮인 그의 발밑으로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쩌저저적!

급기야 얼음다리가 수천 조각으로 쪼개지며 파편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적혈부주 맹공산은 눈을 부릅떴다.

“……!”

치열한 혈전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얼음다리가 한순간에 박살 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윽.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얼음파편들은 폭풍이 되었다.

뒤늦게 그의 얼굴을 알아본 고진성이 외쳤다.

“소가주님!”

반가움과 놀라움이 한데 뒤엉킨 목소리.

솨솨솨!

휘몰아치는 얼음폭풍의 한복판에서 천신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얼음폭풍이 맹공산과 추종자들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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