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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49화 (149/171)

# 149

학사환생 149화

크르릉!

새하얀 북해의 눈을 처음 밟은 맹수들이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마교 광마존은 그런 맹수들을 옆집 강아지처럼 쳐다보았다.

“크크큭! 귀여운 녀석들. 조금만 기다려라. 연한 살코기를 마음껏 먹게 해줄 테니.”

광마존의 뒤로는 혹한의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수백 명의 마교 고수들이 서 있었다.

회색의 피풍의만으로 몸과 얼굴을 가린 그들의 눈빛이 향하는 곳은…… 바로 북해빙궁이 자리 잡은 제23영역이었다.

제8영역을 급습해 수많은 무인을 도륙했던 광마존이 이번엔 북해빙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광마존은 철저하게 마교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광마존의 목표는 북해빙궁.

제8영역의 중견문파를 휩쓸었던 것은 일종의 여흥인 동시에.

제8영역의 지배세력들을 마교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힘을 과시해 위압감을 심어준 다음 당근책을 제시하는 것이 마교의 기본전략.

이미 마교는 무림정복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었다.

“제8영역은 어떻게 됐다고?”

“염마존께서 직접 진행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

광마존은 팔마존들 중에서도 특히나 우월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머리를 쓰는 부류들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런 광마존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인간이 바로 염마존이었다.

“늙은 생강이 직접 나섰으니 걱정할 필요 없겠군. 그나저나 광령은?”

“천신우를 찾았답니다. 지금 당장 채비를 할까요?”

광마존의 얼굴에 참기 힘든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일단 북해빙궁부터 해치우자고. 원래 가장 맛있는 것은 나중에 먹어야 하는 법이지.”

광마존이 눈짓을 보내자.

마교 고수들은 일제히 검은 물결이 되어 북해빙궁의 영역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숫자는 수백.

북해빙궁이 보유한 무인들의 숫자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다.

하지만 광마존은 물론.

북해빙궁의 영역을 향해 진격하는 마교 고수들의 표정에서도 두려움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수의 적을 살상하기 위한 훈련을 평생에 걸쳐 해온 그들이었기에.

다음 순간.

검은 물결이 설원을 뒤덮었다.

* * *

그야말로 찰나였다.

천신우에게 조각상 셋이 동시에 덤벼든 것은.

심지어 마지막 조각상은 검까지 들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예사로운 검이 아니었다.

천신우의 본능이, 자운검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쏴악!

조각상의 검법은 간결하면서도 정교했다.

바둑을 두듯 천신우의 움직임을 제약하며 밀어붙였다.

거기에-

꽈아앙!

연계되는 다른 조각상들의 주먹과 일장까지.

어느새 공동 내부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됐다.

무너진 벽과 휑하니 뚫려 버린 천장.

바닥에는 잔해들이 나뒹굴었다.

폐허를 배경으로 천신우와 조각상의 검무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차차차차창!

천신우와 조각상은 쉬지 않고 위치를 바꿔가며 검격을 주고받았다.

눈에 보이는 광경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천신우가 더욱 기세를 끌어올렸다.

주인의 의지에 호응하듯 자운검이 길게 진동했다.

우우우우웅!

명목은 시험이라지만 조각상들은 천신우를 죽일 듯이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천신우는 이곳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터였다.

‘승천단의 힘을 빌리는 것도 오랜만이군.’

승천단의 기운까지 끌어낸 천신우의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조각상들도 순간 멈칫할 정도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며 천신우가 몸을 날렸다.

그것은 천신우가 던진 승부수였다.

계속 끌려다니다간 답이 없기에 상황을 주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천신우는 마지막 조각상을 목표로 잡고 자운검을 휘둘렀다.

쉭쉭쉭쉭!

천신우가 내지른 검이 연이어 허공을 갈랐다.

마지막 조각상의 보법은 정말이지 놀라운 것이었다.

갈대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천신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공격하는 입장에선 아쉬움을 느낄 만도 했지만 천신우는 냉정했다.

‘견적을 칼처럼 내는군.’

조각상은 천신우의 움직임을 정확히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눈과 몸의 협응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천신우가 더욱 속도를 올렸다.

연이어 펼쳐진 다섯 차례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조각상은 오히려 공격 사이의 틈을 노려 반격했다.

“……!”

천신우조차 깨닫지 못한 빈틈이었다.

처음 공격을 마음먹은 순간에도. 검을 휘둘러가던 순간에도.

그리고 지금 상대의 반격을 피해 몸을 비틀면서도.

천신우는 허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을 천신우가 아니었다.

몸을 뒤집으며 날아오른 천신우가 기습적으로 자운검을 내질렀다.

쐐애애액!

자운검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기운이 조각상의 정면을 노렸다.

천신우의 공격을 받아낸 것은 2번째 조각상이었다.

쌍장과 천신우의 검이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폭발음을 기다리지 않고 천신우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래로 빠르게 따라붙는 조각상들이 보였다.

천신우의 자운검이 내리쳐졌다.

스가가각!

이번엔 처음 조각상이 두 주먹을 동시에 내지르며 천신우의 자운검을 쳐냈다.

천신우는 계속해서 날아올랐다.

마침내 공동의 천장을 통과해 허공에 떠오른 천신우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자 그렇게나 격렬했던 방금까지의 싸움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파괴된 공간은 설산 전체를 놓고 보면 한 줌조차 되지 않았다.

“아!”

그 순간, 천신우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깨달음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조각상들이 파고 들어왔던 허점까지.

‘그렇군. 마음의 틈이었어.’

연이어 펼쳐진 동작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무조건 통할 거라는 안일한 마음가짐이 상대의 반격을 예상 못 하게 만든 것이다.

어느새 천신우 주위로 조각상들 전부가 떠올랐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 하나씩 상대하려는 당초 계획이 무산된 상황.

하지만 천신우는 좌절하지 않았다.

하나를 상대하든 한꺼번에 전부를 상대하든 결국 마교와의 결전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동요할 이유도 없었다.

첫 번째 조각상이 연이어 주먹을 내질렀다.

쐐애애액!

공간을 찢어발기는 위력에 천신우의 온몸이 저릿했다.

두 번째 조각상은 양팔을 좌우로 펼쳤다.

쌍장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기운에 설산 상단이 문자 그대로 날아갔다.

그에 반해 마지막 조각상의 검은 간결했다.

공간을 찢지도, 주변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오직 천신우의 심장만을 가르기 위해 내질러진 공격이었다.

지금까지 천신우가 경험한 어떤 한 수보다도 정확하고 위력적이었다.

그 검을 향해 천신우가 쇄도했다.

이 순간, 천신우는 자운검과 하나처럼 조각상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다음 순간.

슁-!

한 줄기 바람이 천신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은 뺨을 찢고 허공의 한 점을 정확히 타격했다.

천신우는 알 수 있었다.

방금 공격을 허용했다면 심장이 완전히 갈라졌을 것임을.

하지만 다음 순간, 천신우는 그 생각마저 날려 보내며 조각상과 충돌했다.

푸욱!

천신우의 자운검은 조각상의 가슴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검이 파고든 상처에선 피 대신 모래가 흘렀다.

스르륵.

마치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듯, 조각상이 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신비로운 광경이었지만 천신우는 그걸 감상하는 대신, 자세를 낮추며 왼팔로 일장을 날렸다.

꽈아앙!

천신우의 일장이 두 번째 조각상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두 번째 조각상이 날렸던 일격은 천신우의 머리 위를 지나 맞은편 설산 절벽을 타격했다.

콰아아앙!

설산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살아남은 조각상은 눈사태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몸을 거꾸로 뒤집으며 조각상이 주먹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마치 벼락이 땅에 내리치는 듯했다.

쾅!

충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여진을 일으키며 동심원 모양의 충격파가 설산 전체로 퍼져 나갔다.

조각상은 허공에 떠오른 채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조각상의 눈빛엔 앞서 소멸된 조각상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천신우를 쓰러뜨렸다는 소회도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서걱!

경쾌한 파공음이 눈보라를 꿰뚫고 들려왔다.

조각상의 목이 베어지며 모래가 쏟아져 내렸다.

자운검을 늘어뜨린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천신우의 입에서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하아…… 하아…….”

어떻게 이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치열한 싸움이었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 수는 없었다.

이곳을 찾은 목적은 만상서고의 여섯 번째 단서를 얻기 위함.

비록 조각상들과의 사투를 통해 한 단계 성장을 이뤘다지만, 만족하긴 일렀다.

그런 천신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두루마리가 빛나기 시작했다.

* * *

마교 고수 미수는 부하들과 함께 설산을 오르고 있었다.

광마존의 오른팔 광령에게 지시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그다.

하지만 지금 미수의 안색은 설산에 쌓인 눈보다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그였다.

“…….”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벌써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죽어 나갔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다시 그만한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다.

어쩌면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전부 죽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걱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가장 먼저 이변을 느낀 것은 그들 중에 최고수인 미수였다.

쿠구구구구!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당장……!”

미처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눈폭풍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미수는 온몸이 얼어붙음을 느꼈다.

지평선을 가득 메운 눈폭풍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고개를 뒤로 젖혀도 꼭대기를 가늠하기 힘들 높이.

눈폭풍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휩쓸며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년을 자랐을 나무들도. 거대한 바위도. 언덕마저도.

눈폭풍 앞에선 평등했다.

솨아아악!

마침내 눈폭풍이 미수와 부하들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눈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 * *

천신우 앞에 펼쳐진 것은 불가해한 현상이었다.

설산 전체를 뒤덮은 눈폭풍을 배경으로.

조금 전에 쓰러뜨린 조각상들의 잔해가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스스스.

마침내 천신우 앞에 선 것은 가장 처음에 움직였던 조각상이었다.

차이는 있었다.

천신우가 상대한 조각상이 젊고 강인한 모습이었다면, 지금 눈앞의 조각상은 훨씬 나이 든 모습이었다.

그만큼 연륜이 느껴졌다.

‘설마…….’

천신우는 눈앞의 인물이 만상서고의 모든 것을 설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루마리에서 찬란한 빛무리가 천신우의 몸을 뒤덮었다.

“……!”

볼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빛무리를 통해 천신우의 머릿속으로 방대한 정보가 흘러들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림맹이 만들어지기도 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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