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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48화 (148/171)

# 148

학사환생 148화

공동 지하에 잠들어 있던 것은 거대한 유적이었다.

드르륵.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원형의 거대한 구조물이 지면 위로 솟아나고 있었다.

스스스.

구조물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며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루마리가 찬란하게 빛났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만상서고의 여섯 번째 단서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고 보니…….’

넋을 놓고 지켜보던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망향곡 유적과 비슷한 구조군.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들더니만.’

마침내 모래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지며 구조물 전체가 위용을 드러냈다.

원형 구조물 위에 놓인 것은 진흙으로 빚어진 조각상이었다.

‘모두 셋인가.’

천신우는 신중하게 조각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매우 정교했다.

이목구비는 물론.

옷깃의 주름 하나까지도 현실감 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당장 살아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잠깐.’

천신우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공동의 뚫린 천장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조각상에 닿으며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쩌저저저적-!

조각상 외부를 감싸고 있던 진흙이 갈라지며 파편이 하나둘 벗겨져 나갔다.

마침내 조각상의 크기는 성인남성과 비슷한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아니. 원래부터 이 크기였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꿀꺽.

천신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조각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천신우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자운검 역시 진동했다.

우우우웅!

지금까지 강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왔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그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본능에 가까운 떨림이었다.

천신우가 본능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조각상이 눈을 번쩍 떴다.

* * *

“이곳인가. 천신우 그놈이 사라진 곳이.”

설산을 올려다보는 복면인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는 마교 광마존의 오른팔 광령.

광마존의 지시로 천신우의 행적을 쫓아 마침내 설산까지 도달한 것이다.

휘이이잉!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설산 주위는 불길한 눈보라로 가득했다.

눈을 제외하곤 얼굴 전체를 바람막이로 가린 광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어째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지?”

물론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하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이곳에 천신우 그놈이 있다는 사실만 보고하면 그만.”

천신우를 대하는 광령의 태도는 지금까지 마교의 다른 고수들과는 달랐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강함을 증명한 천신우였다.

괜히 객기를 부리다 목숨 버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광마존이 직접 천신우를 맹수의 먹이로 던져주겠다고 공언했으니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곳은 본교의 금지 같은 느낌이 드는군.”

마교에는 누구의 출입도 불허하는 금지가 존재했다.

심지어 마존들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구역.

오직 천마만이 그곳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곳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그곳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물론 금지의 아성에 도전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대로 마교 내엔 천마에 맞서려는 절대강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비책으로 금지를 찾았다.

하지만 금지에서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체조차 찾지 못했지.’

바로 눈앞의 설산이 광령에겐 금지와 비슷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궁금하군. 이곳에 뭐가 있는지.’

잠시 고민한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미수.”

“부르셨습니까.”

광령의 뒤에서 강렬한 기도를 뿜어내는 흑의인이 나타났다.

미수라는 별호를 가진 그는 그림자처럼 수많은 임무를 수행해 온 고수.

특히 은신과 잠입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기에 미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믿음이 가득했다.

“설산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존명!”

미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숙였다.

마교의 금지가 아닌 이상 그가 들어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이윽고 미수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설산으로 진입했다.

미수의 부하들 역시 모두 몸이 날랜 고수들.

잠입 임무를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광령은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무슨 짓을 꾸미든 천신우 네놈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광령의 눈빛이 설산의 눈보라만큼이나 스산하게 빛났다.

* * *

같은 시각.

천신우는 조각상을 피해 몸을 날렸다.

직접 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 상황.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조각상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무공을 익힌 고수처럼 빠르고 위협적으로.

‘이건 도대체……!’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강해지고 빨라졌다.

그나마 위안인 점은 움직이는 조각상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체격도 다른 조각상들에 비하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꽈앙!

조각상의 주먹이 공동 벽을 강타했다.

천신우도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았다.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다음 바로 자운검을 내질렀다.

조각상은 천신우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팔을 들어 자운검을 막아냈다.

스가가각!

격렬한 마찰음에 천신우가 눈을 부릅떴다.

“……!”

아무리 그래도 흠집조차 내지 못할 줄이야.

지금껏 강자들과 격돌해 단 한 번도 밀리지 않았던 자운검임을 생각할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천신우는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자운검이기에 그나마 부러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군.’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찰나.

이미 조각상은 천신우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꽈아아앙!

조각상의 주먹이 공동 벽을 뚫고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천신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피해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온몸이 벽에 파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저곳이 바로 무덤이 됐으리라.

하지만 천신우는 피해냈다.

단순히 피한 것이 아니라 조각상의 머리 위로 공중제비를 돌며 뒤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돌아서며 검을 내지르는 순간.

“……!”

천신우의 동공이 확장됐다.

당연히 그곳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조각상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

눈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옆으로 몸을 날리는 찰나.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음이 지반을 뒤흔들었다.

어느새 허공으로 떠올랐던 조각상이 양손을 포개 바닥을 내리친 것이다.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이며 파편이 튀었다.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파편은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위협적이었다.

천신우가 자운검을 매섭게 휘둘러 날아드는 파편을 쳐냈다.

따다다다당!

평범한 돌조각이 아니었다.

내공이 실린 위력에 천신우가 이를 악물었다.

손목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자운검도, 손목도, 잘 버텨주고 있었다.

“흐아아압!”

천신우가 기합을 내지르며 조각상을 향해 쇄도했다.

번쩍!

조각상이 빛이 명멸하듯 천신우 뒤에 나타났다.

그 순간, 천신우 역시 사라졌다가 조각상 머리 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지간한 고수들조차 눈으로 좇기 힘든 추격전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천신우와 조각상은 서로를 꼬리 물듯 따라붙었다.

마침내 천신우와 조각상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조각상의 주먹과 천신우의 자운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충돌은 위치를 바꿔가며 계속됐다.

스가가가각!

사방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처음 생겨난 불똥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곳에서 새로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공동 내부는 수십 개의 불꽃으로 뒤덮였다.

다음 순간.

불꽃이 한데 모이며 천신우와 조각상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앙!

화산폭발이 의심될 정도의 소음이 공동 전체에 울려 퍼졌다.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천신우와 조각상 역시 뒤로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가던 천신우가 헛바람을 삼켰다.

“……!”

껍데기 깨지는 소리가 바람 소리에 뒤섞여 들려왔기 때문.

동시에 천신우의 몸을 무언가 휘감았다.

천신우는 직감했다.

다른 조각상이 깨어났음을.

껍데기 깨지는 소리는 바로 조각상이 깨어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우두둑!

새로운 조각상의 억센 양팔이 천신우의 허리를 뒤에서 휘어 감았다.

완력만 놓고 보면 체격이 작은 조각상보다 훨씬 위였다.

당장 온몸이 박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게다가 반대편으로 날아갔던 작은 조각상마저 벽을 박차며 천신우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크으으윽!”

천신우가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조각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작은 조각상의 주먹이 천신우의 가슴을 강타하기 직전.

천신우는 가까스로 새로운 조각상의 팔을 떨쳐내며 빠져나왔다.

내심 조각상끼리 서로 타격을 입히는 그림을 기대했지만 헛된 희망일 뿐이었다.

충돌하기 직전 진행 방향을 극적으로 틀며 조각상들이 천신우를 따라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제 천신우가 상대해야 하는 조각상은 둘이 되었다.

게다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마지막 조각상도 언제 움직일지 몰랐다.

그러나 천신우는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래. 이건 시험이군.’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의 조각상들은 만상서고의 단서를 남긴 존재가 부여한 시험이라는 것을.

그가 이 시험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도 충분히 짐작됐다.

‘내가 만상서고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거겠지.’

물론 시험치곤 과격했다.

실제로 천신우는 매 순간마다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하지만 두려움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슴이 뛰었다.

두근두근!

이것은 누군가에겐 시험이었지만 천신우에겐 기회였다.

지금까지 익힌 무공을 마음껏 펼칠. 어쩌면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나갈 기회였으며.

동시에 모든 무림인들의 꿈인 만상서고에 들어가게 만들어줄 기회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천신우는 두려움도, 두근거림도 깔끔하게 마음속에서 치워버렸다.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천신우의 자운검에서 거무튀튀한 흑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벽을 넘어 세 번째 계단에 가까워졌음을 느끼며 천신우가 자운검을 휘둘렀다.

쏴아앙!

자운검이 허공을 갈랐다.

작은 조각상이 피해낸 것이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오히려 희열을 느꼈다.

지금까지 조각상들은 천신우의 공격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왔다.

천신우의 공격을 감당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솨아악!

다시 휘둘러진 자운검은 천신우를 뒤에서 덮쳐오던 새로운 조각상의 뺨을 스쳤다.

스팟!

피가 튀는 대신 돌조각이 베어져 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조각상의 얼굴에 분노의 감정이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조각상들과 달리 냉막한 인상의 조각상이었다.

앞서 깨어난 작은 조각상이 학사들을 닮았다면.

새로운 조각상은 차라리 마교 고수들에 가까웠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부류.

그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지며 천신우를 향해 쌍장을 퍼부었다.

번쩍!

모든 것은 찰나였다.

공동의 한쪽 벽이 문자 그대로 소멸했다.

휑하니 뚫린 벽을 통해 달빛이 쏟아지는 것도 잠시.

콰르릉!

천둥 치는 소리가 나며 공동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지막 조각상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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