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학사환생 145화
진마존은 무림맹 제9지부장 공덕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진마존 휘하 마교 고수들은 이미 무림맹 제9지부를 거의 장악한 후였다.
모든 창고가 불타고 전각이 무너져 내렸다.
사방에 울려 퍼지던 제9지부 무인들의 비명도 어느덧 잦아든 상황.
임무를 마친 진마존의 수하들이 보고했다.
“1번대 임무 완료했습니다!”
“2번대 이상 없습니다!”
“3번대 임무 완료!”
마존들은 무려 스무 개의 무력조직을 거느렸다.
사실상 마존 개개인의 세력이 한 영역의 패자를 자처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
그렇기에 무림맹 제9지부를 무너뜨렸음에도 진마존은 전혀 만족한 얼굴이 아니었다.
“아직 부족하다.”
제자 진사명의 넋을 달래고 마교의 위대함을 알리려면 훨씬 많은 피가 필요했다.
“이대로 진격하여 무림 전체를 피로 물들일 것이다!”
진마존의 선언에 마교 고수들이 천둥과 같은 함성을 토해냈다.
마교 무림침공의 서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 * *
임무를 위해 출정준비를 하던 천신우에게 장윤호가 찾아왔다.
“좋지 않은 소식이네.”
“설마…….”
제9지부로 떠난다던 공덕과 송별 술자리까지 함께했던 천신우다.
제9지부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도 공덕의 생사였다.
“제9지부가 함락당하고 지부장님도 돌아가셨네.”
“아아…….”
천신우가 탄식을 흘렸다.
전생에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의 희생자였던 용천세를 구했던 것이 올해 초다.
그런데 용천세의 친구인 공덕이 마교의 습격으로 죽은 것이다.
‘운명이란 참으로 가혹하구나.’
장윤호가 실의에 잠긴 천신우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괜찮은가?”
사안이 워낙 심각해선지 평소와 달리 농담도 하지 않는 장윤호였다.
“괜찮습니다.”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군.”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말도 천신우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물론 언제까지 슬퍼하고만 있을 천신우가 아니었다.
“무림맹에선 대규모 조사대를 보내겠군요.”
“아마 제9지부가 세워진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제9영역 땅을 밟게 되겠지.”
장윤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 터였다.
천신우가 만나본 맹주 진무극은 풍뢰권이나 독야행과는 달랐으니까.
그는 충분히 현실적인 데다 정치적인 감각도 갖춘 인물.
대외적으로 무림맹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대규모 인원을 투입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흉수를 찾아내 복수하리라.
‘하지만 문제는 제9영역이 아니다. 제9지부는 선전포고이자 무림인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포석. 본격적인 침공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천신우는 하나의 선택지를 지웠다.
‘그렇다고 마교가 정면대결을 고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병력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은 무모한 판단이다.’
전생에선 결국 마교가 무림맹을 무너뜨렸지만.
처음부터 마교의 전력이 무림맹을 압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무림맹과 마교의 전력은 대등하다고 봐야 한다.’
무림맹 수뇌부와 군사들이 내렸던 결론 역시 마찬가지.
승부를 가른 것은 마교의 배후공작과 전략이었다.
마교는 수많은 음모를 통해 집요하게 무림맹의 전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무림을 유린했다.
차라리 마교가 대놓고 정면으로 침공해 왔다면 무림맹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터.
‘결국 무림맹이 제9영역에 집중하는 동안 마교는 다른 영역을 급습할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무림맹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으면서.
동시에 무림맹이 미처 대비하기 힘든 곳.
‘유력한 후보지는 셋 정도.’
물론 무림맹의 고소들을 후보지에 배치하자고 건의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투입할 수 있는 무림맹 고수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특정지역에 많은 인원을 투입하면 다른 곳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첩보전에 도가 튼 마교에서 그 공백을 놓칠 리 없다. 결국 마교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 무림맹의 가장 강력한 패는 무명의 존재였다.
무명의 구성원들은 개개인이 하나의 세력이라 불려도 과하지 않은 고수들.
‘하지만 마교가 과연 무명의 존재를 모를까?’
무림맹주와 무신은 이미 대외적으로 너무 유명한 인물들.
거기에 풍뢰권과 독야행의 존재도 마교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럼 남는 것은 검신뿐.
하지만 마교가 검신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
가장 큰 문제는 무명의 힘만으론 마교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무림맹이나 다른 세력들도 변수를 창출할 수 없다고 봐야겠지.’
오직 천씨세가만이 유의미한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천씨세가의 전력은 마교라도 절대 무시하지 못할 수준.
다만 그 전력을 총동원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무명 모임에서 결정된 대로 남부지역을 방어하는 데 대부분의 인원을 투입해야 하기에.
따라서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천씨세가의 일부 고수들과.
‘역시 나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천신우만이 아니었다.
장윤호 역시 마찬가지.
“남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교의 침공을 막는데 자네 역할이 크다고 보네.”
장윤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망향곡에서 드러낸 막강한 무력.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준 날카로운 분석력과 냉철한 대처까지. 마교의 침공을 막고자 하늘이 내린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야.”
“과분한 평가를 해주시는 것을 보니 부탁이 있는 모양이군요.”
“눈치도 귀신 같군.”
이내 장윤호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혹시라도 내가 마교 놈들의 손에 죽거든 이걸 홍실이라는 여인에게 전해주게.”
장윤호로부터 단단히 밀봉된 편지봉투를 건네받은 천신우가 대뜸 물었다.
“홍실이 누굽니까?”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
한없이 가볍던 장윤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맡아만 두지요. 나중에 직접 전해주십시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장윤호가 서류를 건넸다.
“이번 임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군.”
장윤호로부터 받아든 서류엔 이번 임무와 관련해 상세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무림맹 임무명령서에도 언급되지 않은 정보들.
아마 장윤호가 직접 발로 뛰면서 알아낸 정보일 터였다.
천신우도 진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 * *
무림맹의 실력자들이 모두 모여 중대안건을 다루는 무림맹 대회의.
무림맹 대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맹주조차 거부하지 못했다.
물론 맹주가 거부하는 사안이 무림맹 대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지만 말이다.
그런 무림맹 대회의가 지금 개최된 이유는 간단했다.
마교의 침공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
맹주 진무극은 무림맹 대전 태사의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다.
무명 모임에서 보여줬던 친근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무림맹주의 위엄을 한껏 드러낸 진무극으로 인해 장내의 분위기는 질식할 것처럼 무거웠다.
물론 저마다 머릿속의 생각은 달랐다.
무신은 자신들의 안위밖에 관심이 없는 대다수 실력자들을 보며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무림맹이 이렇게까지 썩었단 말인가?’
평소엔 정의를 수호하고 대의를 지키는 척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마교라는 위협이 닥쳐오자 본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대체 저런 자들을 이끌고 무슨 수로 마교를 막아낸단 말인가.’
새삼스레 맹주 진무극이 앉은 자리가 고독해 보였다.
그 순간, 도제 역시 진무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도제의 속내는 무신과는 전혀 달랐다.
‘전에 봤을 때보다도 강해졌다. 진무극 저놈이 죽기 전엔 무림맹을 손에 넣기란 불가능하겠구나.’
수천 번이나 맹주 자리에 오르는 상상을 했던 도제다.
하지만 진무극을 제거하고 맹주 자리를 빼앗는 그림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그려지지 않았다.
진무극은 그만큼 거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도제가 다시금 진무극이라는 벽을 실감하는 사이.
무림맹 대회의는 종료됐다.
마교의 침공에 대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논의됐다.
필요한 자금은 무림맹에서 상당부분 부담하기로 결의한 상황.
대전을 빠져나오면서 도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라면 절대 곳간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무림맹 구성원들에게 군자금을 분담시켰을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있겠지만 마교와 내통했다는 구실로 쓸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맹주 진무극과 도제의 성향 차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무림맹을 벗어난 도제는 기거하는 장원으로 돌아왔다.
장원은 도천을 그대로 옮겨놓은 구조였다.
도제는 뒷짐을 지고 거처에서 장원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무수한 전각들과 그곳을 지나는 수많은 무인들.
그리고 무림맹 대회의 이후의 행보를 상의하고자 모여든 실력자들까지.
도제의 장원은 무림맹의 축소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제의 눈빛엔 불만이 가득했다.
‘벌써 내 나이 일흔이다. 그런데도 무림맹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도제는 명실상부한 무림맹의 2인자였다.
무공수준이야 무신과 비슷할지 몰라도 세력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제는 지금의 처지에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2인자는 결국 2인자일 뿐이다.’
도제 위에 있는 사람은 진무극 혼자다.
하지만 도제는 매순간 진무극과의 격차를 실감해야 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앵무새처럼 맹주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이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할 바엔 차라리.’
도제의 표정에 참을 수 없는 권력을 향한 야망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욕망이 분출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돌연 도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뭐하는 놈이냐.”
허락 없이 도제의 등 뒤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기껏해야 맹주 진무극과 무신 정도.
하지만 지금 등 뒤에 서있는 남자는 그들 중 누구도 아니었다.
“내가 누구일 것 같습니까?”
되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돌아서는 도제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기운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상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과연 장원을 지키는 도천의 고수들에게 발각당하지 않고 잠입한 실력자다웠다.
도제는 흑의에 복면까지 착용한 남자를 노려보았다.
“설마 네놈.”
낯선 침입자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한 도제였다.
“마교에서 보낸 놈이더냐!”
정황상 남자는 마교의 고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무림맹 무인이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도제의 심기를 건드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도제의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의 눈에 떠오른 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이미 마교는 마관평과 적하기라는 고수를 도천에 잠입시킨 적이 있다.
도제 눈에 마교가 곱게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복면 위로 드러난 남자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도제 말고는 적수가 없는 고수였으니까.
“그렇습니다.”
상대가 순순히 마교 소속임을 인정했음에도 무슨 이유인지 도제는 당장 응징하진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마존들의 전언을 전하러 왔습니다.”
“전언이라. 재미있군. 어디 한번 지껄여보도록.”
도제는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
만일 상대의 전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장 목숨을 거둘 기세였다.
여전히 남자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무림맹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