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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43화 (143/171)

# 143

학사환생 143화

마차가 멈춰선 곳은 새로운 관문이었다.

무림맹에서 살다시피 했던 천신우지만 듣도 보도 못한 곳이었다.

“따라오시지요.”

마차에서 내린 제4관문장이 독야행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관문장이 저리 나올 정도면 누구의 명을 받았는지는 자명했다.

천신우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드디어 맹주님을 뵙는구나.’

무림맹주는 자타공인 당대 최고의 고수였다.

하지만 막상 무림맹주를 만나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식 석상에조차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

천신우 역시 무림맹주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맹주가 얼마나 강할지 궁금했고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했다.

맹주를 만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지키는 무인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고수들이었다.

굳이 마교와 비교하자면 대주급 이상.

‘이런 전력을 무너뜨린 마교의 전력은 도대체…….’

팔에 소름이 돋은 천신우였다.

그러고 보니 마교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무림맹은 마교의 진정한 힘을 확인하기도 전에 무너졌던 것은 아닐까.’

끔찍한 상상으로부터 천신우를 깨운 것은 관문을 지키던 무인의 목소리였다.

“세 명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제4관문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침 저기 오는군.”

마차 대신 도보로 도착한 권왕이 원망 어린 눈으로 관문장을 노려보았다.

관문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맹주님의 뜻이라네.”

독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이 흘러도 장난기는 여전하군.”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천신우는 기가 막혔다.

‘장난 삼아 권왕을 걸어오게 하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관문을 통과하자 나타난 것은 아담한 정원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난에 물을 주는 노인이 보였다.

천신우는 직감했다.

그가 무림맹주 진무극임을.

시선을 느낀 진무극이 허리를 폈다.

첫인상은 평범한 노인이었는데 눈빛만큼은 남달랐다.

깊고 맑은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네가 바로 천신우구나.”

무림맹주 진무극은 한동안 천신우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과연 파천도 그 친구가 감탄할 만하군.”

이어 진무극의 장난기 어린 시선이 권왕을 향했다.

“걸어오느라 고생 많았다.”

바로 그 순간.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 발생했다.

권왕이 성난 황소처럼 맹주 진무극에게 달려든 것이다.

꽈아아앙!

공간을 진동하는 권왕의 주먹에 천신우가 눈을 빛냈다.

정말이지 무서운 성장세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맹주 진무극의 대응이었다.

그는 한 손을 뒷짐 진 채, 다른 손을 가볍게 휘젓는 것만으로 권왕의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권왕의 일격을 빨아들였다가 다시 튕겨낸 것.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엄청난 상승무학이 담긴 한 수였다.

그 사실을 알아본 것만으로도 천신우가 지금까지 해온 수련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권왕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공중에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까지도.

물론 어느새 몸을 뒤집으며 자세를 바로잡은 권왕이었다.

그러나 진무극은 이미 권왕 앞에 도달한 후였다.

“……!”

천신우가 미처 움직임을 눈에 담기도 전에.

파아아앙!

통쾌한 일장이 권왕의 복부를 강타했다.

권왕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대로 날아가던 권왕을 공중에서 낚아챈 것은 천신우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파천도.

일전에 천신우를 도와 마교 고수들을 상대했던 바로 그였다.

“오랜만의 방문객을 이리 대접하시면 소문이 어떻게 나겠습니까.”

맹주 진무극이 손을 탁탁 털었다.

“풍뢰권의 제자라기에 그릇을 확인해 본 것뿐이네. 안목 하난 인정할 만하군.”

파천도의 도움을 받아 바닥에 내려선 권왕은 굴하지 않고 다시 달려들려 했지만.

“……!”

몸이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고 말았다.

“끌끌. 성격도 늙은이를 빼닮았군. 잠시 몸을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식히도록 해라.”

뒤늦게 몸속을 흐르는 낯선 기운을 알아차린 권왕이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너를 도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독야행이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호 자네가 풍뢰권의 제자에게 호의를 베풀다니. 솔직히 의외로군.”

무명 모임 내에서 무신이 철옹으로 불리듯 진무극은 강호로 불렸다.

“풍뢰권의 제자니까.”

“그게 무슨 뜻인가?”

“풍뢰권 성격이면 쉬운 방법은 없다면서 밑바닥부터 혹독하게 가르쳤을 것 아닌가. 그런데 내가 찬물을 확 끼얹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늙은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기대되지 않나?”

그제야 독야행은 풍뢰권을 골려주려는 진무극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강호 자네는 여전하군그래.”

“칭찬으로 듣지.”

독야행이 혀를 차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다른 인간들은?”

풍뢰권은 처음부터 불참을 선언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검신과 무신 역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무림맹주 권위가 이렇다네. 도통 들어먹질 않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진무극이 천신우를 돌아봤다.

“그나저나 너는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구나.”

사실이었다.

지금도 천신우의 머릿속엔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맹주님이 무명에 속해계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나름의 고민 끝에 던진 질문.

“하하하! 도제도 아직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이름만 달아놨거든. 그런데 이제 와서 참석하는 이유가 뭐냐고? 당연히 마교 때문이지. 이만하면 의문이 해결되었느냐?”

묻지도 않은 사실까지 털어놓은 진무극이 손짓했다.

“그나저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맹주전을 방문하는 손님은 맹주와 합을 겨뤄보는 전통이 있다는 것을.”

진무극의 오랜 심복 파천도가 무표정한 얼굴로 반박했다.

“금시초문입니다만.”

“그럼 오늘부터 그렇게 하자고.”

“…….”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손으로 이마를 짚는 파천도.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극은 다음 순간 불쑥 천신우 앞에 나타났다.

“!”

천신우의 대응은 권왕과는 달랐다.

진무극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곧바로 몸을 날린 천신우였다.

그러나 진무극은 천신우가 향하려던 지점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반응은 마찬가지로 나쁘지 않아. 다만 풍뢰권 제자와 달리 너는 짧은 순간에도 생각하고 움직이는구나.”

“!”

천신우는 깜짝 놀랐다.

그런 미세한 차이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과연 무림맹주다운 안목이었다.

“게다가 너는 풍뢰권의 제자와 달리 이미 내공은 충분히 쌓은 듯하구나.”

“!”

이번엔 파천도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진무극이 인정할 정도의 내공을 지닌 고수는 많지 않았다.

하물며 천신우처럼 젊은 고수라면 더더욱.

“놀라기는.”

껄껄 웃으며 진무극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반짝이는 그것은 동전이었다.

잔뜩 긴장했던 천신우가 눈을 껌뻑이는 찰나.

진무극이 동전을 하늘 높이 던졌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아보아라. 맹주로서 내리는 명령이다. 어기면 처벌이 따를 것이야. 으허허.”

얼핏 듣기엔 너무나도 쉬운 일.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곧바로 진무극의 진각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

진각을 피해 고개를 숙이자 이번엔 쌍장이 날아왔다.

꽈아아아앙-!

반응조차 못 하고 쌍장이 얼굴을 스쳐 가는 광경을 지켜본 천신우다.

정원의 돌담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지만 진무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다시 주워들었을 뿐이다.

“다시 해보아라.”

아까보다 훨씬 빠르고 높게 솟구치는 동전을 따라 천신우가 몸을 날렸다.

진무극은 이번엔 천신우를 방해하는 대신 함께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파파파파팟!

허공을 박차며 계속해서 솟구치는 천신우와 진무극.

마침내 무림맹 상공 높은 곳까지 다다른 그들이었다.

무림맹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곳에서 진무극이 물어왔다.

“어떠냐?”

“끝내주는군요.”

높은 곳에서 무림맹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확실히 색달랐다.

“내가 계속 방해했다면 너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영원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잔잔한 바람 위로 진무극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림맹의 역사도 이와 같았느니라. 훼방을 놓는 존재들로 인해 보다 높은 곳으로 도약할 기회를 번번이 놓쳤지.”

“이번 대엔 다를 겁니다. 맹주님이 계시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진무극이 허공에 떠오른 상태로 천신우를 돌아보았다.

“마교는 단지 무림맹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는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무림맹을 무너뜨리고 무림을 손에 넣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냉철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천신우가 기억하는 전생에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도 했다.

“혹시 통천록이라고 들어보았느냐?”

“처음 듣습니다.”

모든 서적에 통달한 천신우로서도 금시초문이었다.

“그럴 테지. 무림맹주에게만 전해지는 기록이니까.”

진무극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통천록에 따르면 크나큰 재앙이 무림을 덮칠 거라더구나.”

“크나큰 재앙이라 하심은?”

“내가 짐작하기엔 마교일 가능성이 크다.”

천신우가 잠시 고민한 끝에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통천록에 재앙을 막는 방법도 나와 있습니까?”

진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天)이라고만 적혀있었다.”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는 것이군요.”

“나도 지금까진 그렇게 생각했지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무극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통천록의 예언이 하늘이 아닌 가문의 성을 뜻하는 것이라면?”

“가문이라 하심은?”

“무림에 천씨를 쓰는 가문이 천씨세가 말고도 존재하던가?”

“……!”

충격에 빠진 것도 잠시.

천신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천씨세가는 무림의 재앙을 막아낼 만큼 대단한 가문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 천씨세가엔 네가 있잖느냐.”

“높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여전히 많이 부족합니다. 만일 누군가 마교의 침공을 막아낸다면, 그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일 겁니다.”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나조차 당장 열흘 후에 네가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만큼 너는 지금까지 믿기 힘든 성장을 해왔으니까.”

천신우에 대해 뒷조사를 마친 진무극이었다.

천신우의 성장 속도는 분명 정상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많았다.

진무극이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진 않겠다. 하지만 네가 엄청난 기연들을 얻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과연 그게 전부 우연일까?”

천신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천운이 따른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확인은 해보고 싶구나. 내가 떠올린 추측이 맞는지.”

진무극이 소매를 펄럭여 무언가를 천신우에게 날려 보냈다.

“통천록에 언급된 장소를 표시한 지도다. 참고로 나는 이미 그곳을 찾아갔었지만 아주 작은 깨달음을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너는 내가 찾지 못한 것들을 찾아낼지도 모르지.”

“…….”

천신우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무림맹주에게만 전해지는 통천록의 존재.

통천록에 언급된 재앙과 해결책.

그리고 진무극이 건넨 지도까지.

천신우로선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무림맹주다.

풍뢰권과 무신과 같은 무명의 일원이기도 하다.

의심은 필요치 않았다.

그렇기에 천신우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솔직히 저는 맹주님을 오늘 처음 뵈었을 뿐입니다. 저를 어찌 믿고 이런 사실들을 말씀해 주십니까.”

진무극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독야행을 믿고.”

“철옹을 믿으며.”

“풍뢰권조차 믿는다.”

진무극이 천신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느새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면 가까이 내려온 후였다.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느냐?”

“충분합니다.”

진무극은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독야행을 돌아보았다.

“이만 가지. 철옹과 주정뱅이 모두 도착했다는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강자들의 만남.

하지만 천신우는 곧장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맹주 진무극이 내어준 지도를 확인한 천신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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