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학사환생 140화
수만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구름 위로 우뚝 솟아있는 천혜의 절경.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산을 깎아 만들어진 곳이 바로 마교 본산이었다.
드넓은 대지 위에 세워진 수백 개의 전각들.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수만 명의 사람들.
마교 본산은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마교 본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우연한 기회에 마교 본산에 흘러든 외부인들은 제법 많았다.
그들 중에는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존재했고.
하지만 마교의 영역에 발을 들인 이상 절정고수들이라도 절대 나가지 못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러다 보니 마교 본산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팔마존이라는 여덟 명의 절대자들.
지금까지 마교에 흘러든 어떤 고수도 팔마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금 그 팔마존들이 마교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인 만마전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한 자리에 모이는 법이 거의 없는 그들을 한데 모이게 만든 계기는 망향곡 사건.
그렇지 않아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분쟁을 벌이던 팔마존들이다.
그들은 망향곡 사건을 당대 무림정세의 전환점으로 판단했다.
그렇기에 오늘 회합에서 마교가 나아갈 길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물론 안건의 중요도와 별개로 만마전 내부는 떠들썩했다.
무림맹이 중요 안건을 다루는 회의장에 간단한 차와 다과만을 준비하는 것과는 달랐다.
연회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악공들이 능숙하게 악기를 연주했고 실오라기만 걸친 무희들이 관능적인 춤사위를 펼쳤다.
고급스러운 탁자 위엔 온갖 산해진미와 명주들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먼저 도착한 팔마존들 역시 스스럼없이 음식과 술을 맛보고 무희의 춤을 감상했다.
그러나 팔마존 모두가 모이는 순간.
거짓말처럼 연주가 멈췄다.
탁.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적막한 만마전에 울려 퍼졌다.
“다들 모이셨구려.”
팔마존 가운데 가장 두뇌가 비상하다고 알려진 염마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염마존이 팔마존 가운데 가장 실력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팔마존은 모두가 동등했다.
물론 개개인의 무공이나 세력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천마 발밑에선 누구나 평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지존께서 출관을 앞당기신다고 천명하셨소.”
“음!”
다들 나직한 탄성을 내뱉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기 위해 폐관수련에 들어간 천마다.
출관이 임박했다는 것은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는 뜻.
물론 그걸 받아들이는 입장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야겠군.”
“그게 무슨 뜻이오? 혈마존.”
“서둘러 무림정복을 마쳐야 한다는 뜻이외다. 지존께서 출관하시자마자 본교의 깃발 아래 하나로 통일된 무림을 보실 수 있도록.”
강경파에 속한 마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긍정을 표시했다.
필요 이상으로 웃음을 터뜨린 것은 광마존이었다.
“크하하하! 물론이오! 지존의 진노를 사지 않으려면 반드시 출관 이전에 무림을 정복해야 말고!”
온건파 마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그들이라고 호전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강경파에 비해 신중한 것뿐.
“지존께서 출관하시기 전에 무림정복을 위한 준비만 해두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요. 전면공세를 펼치는 것은 지존의 명이 떨어진 이후라도 늦지 않소이다.”
“과연 지존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지 의문이군. 적어도 무림맹은 무너뜨려 놓아야 무림정복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고 할 수 있지.”
준비라는 단어를 서로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상황.
원래라면 밤이 새도록 끝나지 않았을 회합이었다.
술을 마시고 여자를 품으면서 동틀 때까지 논쟁을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온건파에 속한 진마존이 평소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
“내게 시간을 주시오.”
“그러다 진사명인가 하는 제자 놈이 죽지 않았소.”
강경파 독마존이 진마존의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순간 장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천마가 폐관에 들어간 동안 마존들끼리 직접적으로 충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라도 충돌할 수 있는 것이 팔마존들의 관계였다.
천마라는 무소불위의 절대자가 없었다면 진작 서로 칼부림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 것은 진마존이었다.
쿠오오오-!
바닥이 흔들리고 탁자가 밀려났다.
음식을 나르던 하인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팔마존들이 모두 모인 자리임에도 진마존은 기세를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만큼 진사명을 아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목을 물었으니 최소한 으르렁거리기라도 해야 했다.
가만히 있다간 뼈도 남지 않고 집어삼켜질 것이기에.
그것이 마교라는 복마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물론 천마라면 모를까.
진마존의 기세에 주눅들 마존들이 아니었다.
특히 거침없는 성정으로 유명한 광마존은 더더욱 신경 쓰지 않는 모습.
“흐흐. 아주 맛있어 보이는군.”
다른 마존들보다 체격이 훨씬 크고 온몸이 털로 뒤덮인 광마존은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어 먹었다.
마치 짐승을 연상시키는 폭식!
순식간에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뼈까지 발라먹은 광마존이 손에 묻은 기름기를 쪽쪽 빨았다.
분위기가 다소 풀어진 틈을 타서 염마존이 대화를 재개했다.
“시간을 달라고 하셨는데 이유를 알고 싶소만.”
비로소 다른 마존들의 시선이 진마존에게 모였다.
“제자의 복수가 끝나는 즉시 내가 선봉에 서겠소.”
“……!”
강경파 마존들도.
온건파 마존들도.
모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진마존이 제자의 복수를 대가로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진마존과 뜻을 함께하던 온건파 마존들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은 상황.
그들을 누그러뜨리려면 진마존은 많은 것을 내줘야 했다.
그만한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제자의 복수를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
다른 마존들의 의중을 헤아린 염마존이 대표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많이 내줄 수는 없소.”
“많이도 필요 없소이다.”
이미 진마존의 심복 철면수라가 진사명의 복수를 위해 움직인 상태.
물론 철면수라가 실패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진마존은 마침내 직접 나서기로 마음을 굳혔으니까.
“한 달 안에 시작하지.”
그 말을 끝으로 진마존은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났다.
콰앙-!
염마존이 회합이 종료됐음을 선언했다.
“오늘 회합은 이것으로 끝이오. 다들 전력을 다해 무림정벌을 준비해 주시기 바라오.”
마교의 무림침공이 드디어 본격화되는 순간이었다.
* * *
마교 진마존의 수하 철면수라는 높은 절벽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저곳인가.”
철면수라의 부하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습니다.”
모든 정보망을 동원하여 독야행이 은거한 마을을 찾아낸 그들이었다.
동행한 십인회 고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과연 마교의 정보력은 놀랍기 그지없군.”
십인회도 지금까지 독야행의 행방을 수소문해 왔지만, 매번 허탕만 쳤기에.
그때 눈빛만으로 소란을 잠재운 일회주가 물었다.
“마교의 사자여. 정녕 대가는 천씨세가 소가주의 목뿐인가?”
철면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철면수라도 이번 일을 위해 마교 고수들을 대거 동원했다.
하지만 독야행과 부딪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천신우의 시체만 확보해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일회주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방식은?”
“십인회가 독야행을 상대하는 동안 천신우를 죽일 것이다.”
“받아들이지.”
일회주 역시 천신우의 명성을 익히 들었다.
당장 망향곡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알려진 천신우다.
물론 천신우 혼자라면 상대하기 어렵지 않겠으나.
독야행과 천신우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철면수라와 일회주가 의견 조율을 끝낸 바로 그때였다.
“……!”
갑자기 어디선가 느껴진 시선에 모두가 전율했다.
일회주와 철면수라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만큼 멀리 떨어진 거리.
심지어 그들이 서 있는 지점에서 상대가 있는 곳까지는 짙은 안개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가 누군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독야행!”
철면수라는 침음을 삼켰으며.
일회주는 분노를 표출했다.
금지된 비술로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
그때부터 복수만을 고대해 왔던 일회주였다.
그가 독사처럼 찢어진 눈으로 독야행을 노려보며 지시했다.
“당장 놈을 끌고 와라.”
“존명!”
일회주의 최정예 수하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회주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오늘로 끝이다. 독야행 네놈의 목숨도. 네놈의 소꿉놀음도.”
일회주의 눈동자에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우리도 가지.”
수하들을 먼저 보낸 일회주는 다른 회주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들 가운데 절반이 독야행 사건 이후 새롭게 십인회에 합류한 인물들이었다.
독야행을 향한 복수심은 기대할 수 없을 터.
그럼에도 일회주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충성심만큼은 믿을 만했기에.
이윽고 일회주마저 안개 속으로 사라지자 철면수라가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우리도 간다. 목표는 오직 천신우! 놈의 목만 확보하고 빠르게 이곳을 벗어난다!”
“존명!”
* * *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마을로 진입할 때와는 보이는 풍경이 달랐다.
부하들과 함께 안개를 헤쳐 나가며 철면수라는 생각했다.
‘평범한 안개가 아니다.’
회색의 안개는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짙은 안개뿐.
마을도. 독야행도. 하다못해 앞서 출발한 십인회 고수들도 보이지 않았다.
둥둥둥!
게다가 사방에서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북소리까지.
자신만만하던 철면수라의 얼굴에도 불안감이 떠올랐다.
‘진법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다만…….’
방금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수준의 진법이라면 충분히 뚫고 지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마을 주변에 펼쳐진 진법은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본교의 천망금쇄진처럼 내공을 갉아먹진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계속 헤매다가는 문제가 생기고 만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고민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철면수라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어림없다!’
날선 감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포착한 철면수라가 벼락처럼 돌아섰다.
그러나 돌아선 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럴 수가!’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결코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뒤따르던 부하가 사라진 것이다.
철면수라가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였다.
“모두 무사한가?”
철면수라의 부하들은 이름이 없었다.
오직 숫자로만 서로를 구분했다.
1부터 50까지.
1번이 가장 강하고 50번이 가장 약했는데 순번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내전 결과에 따라 바뀌었다.
내부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강함을 추구해 온 철면수라의 부하들이었다.
개개인의 실력만 놓고 보면 단급 조직 이상이라고 자부할 만했다.
하지만 철면수라가 그토록 공들여 키운 부하들의 신상에 이상이 생겼다.
“17번! 대답하라!”
17번이 철면수라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은 것이다.
단지 대답만 없는 것이 아니라 기척 역시 완전히 사라졌다.
안개 속에서 철면수라가 외쳤다.
“다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라!”
철면수라가 거느린 부하들은 항상 다섯 명씩 짝을 지어 움직였다.
아무리 서열이 변동되더라도 그들이 속한 조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자연히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온 이들끼리는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이 생겼다.
어지간한 의사표현 정도는 눈빛만으로도 가능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모든 조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적게는 한둘에서. 많게는 서넛이 사라진 조도 있었다.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는 바람에 홀로 남겨진 43번이 신음을 삼켰다.
“도와주십시오!”
철면수라는 전광석화처럼 43번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서 철면수라는 볼 수 있었다.
43번이 안개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광경을.
철면수라는 다급히 팔을 뻗었지만 안개는 이미 43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공포에 질린 43번의 마지막 표정만이 철면수라의 뇌리에 생생히 박혔다.
“누구냐!”
대답 대신 불길한 바람소리만 들려왔다.
스으으!
그러는 와중에도 부하들의 기척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불안을 이기지 못한 철면수라는 안개를 향해 미친 듯이 방패를 날렸다.
방패가 철면수라를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닿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진맥진한 철면수라가 방패를 움켜쥐었다.
이미 주위의 모든 기척이 사라진 후였다.
철면수라가 공들여 키운 부하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나와! 숨어 있지만 말고!”
스스스!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철면수라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쓰러진 부하들과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철면수라는 그 남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철면수라가 경악을 담아 소리쳤다.
“천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