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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37화 (137/171)

# 137

학사환생 137화

망향곡 전체에 펼쳐졌던 진법이 파괴되고 마교 잔당들까지 정리되자.

비로소 무림맹 공식조사대는 망향곡 사건이 종결됐음을 발표했다.

더불어 피해규모와 유적을 탐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상부로 올라갔다.

천신우 역시 이번 사건을 해결한 주역으로서 보고서 내용을 확인했다.

‘전생에 비하면 피해규모가 거의 5분의 1로 줄었군.’

분명 성과를 거뒀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희생은 언제나 뼈아픈 법이기에.

물론 피해만 입은 것은 아니었다.

소득도 있었다.

마교의 근거지를 함락하면서 얻은 보물들이 바로 그것.

“소문이 사실인가?”

망향곡 사건을 수습하고 오랜만에 객잔을 찾은 천신우 일행.

호들갑을 떨며 물어온 것은 당연하게도 장윤호였다.

망향곡에서 진법이 발동됐을 당시 홀로 떨어졌음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그였다.

“무슨 소문요?”

“전리품들을 자선경매에 내놓자고 건의했다며!”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자들이 많이 나왔잖습니까.”

당장 무림맹 조사대에서도 사상자가 제법 나왔다.

그만큼 마교의 저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상처뿐인 승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천신우는 전리품의 자선경매를 통해 희생자들의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자는 의견을 냈다.

전리품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는 일을 방지함과 동시에.

무림맹의 명성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셈이다.

물론 장윤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랬구먼.”

“아쉬워요?”

“예끼! 아쉽기는!”

버럭 고함을 질렀던 장윤호가 입맛을 다셨다.

“그렇긴 해도 고생한 보람이 없으니 힘이 빠지긴 하네.”

그런 장윤호 앞에 천신우가 작은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이게 뭔가?”

“그럴 거라 생각해서 준비한 특별수당입니다.”

“특별수당? 내당 구두쇠들이 벌써 결재를 해줬을 리가 없는데?”

무림맹의 일 처리. 특히 자금집행은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허투루 자금을 집행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상황에 집행이 늦어지는 단점도 있다.

“일단 개인자금으로 처리하고 나중에 내당에 정식으로 비용 청구할 생각입니다.”

“그러다 기각되면?”

천신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언젠가부터 돈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펑펑 써도 재산은 오히려 계속 늘어나기만 했으니까.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깨달은 천신우였다.

“거참. 사람 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정 미안하면 돌려주셔도 됩니다.”

“어허! 섭섭한 소리! 세상에서 두 번째로 나쁜 인간이 줬다 뺏는 놈이야!”

“가장 나쁜 건 어떤 사람인가요?”

자리에 앉으며 물어온 사람은 바로 채은수였다.

모처럼 깨끗이 씻고 옷도 갈아입은 그녀는 보고만 있어도 피로가 풀렸다.

“그거야 당연히 눈치 없는 인간이지.”

채은수가 눈웃음을 지었다.

“과연.”

천신우를 힐긋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어색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풍뢰권이 등장했기 때문.

“운경은 어떻게 됐습니까?”

권왕의 상태를 물으려던 천신우가 입을 다물었다.

권왕이 잠이 덜 깬 얼굴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권왕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눈이 감긴 상태에서도 손만 움직여 탁자 위의 음식을 싹쓸이하는 모습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괜한 우려였군요. 검성과 함께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그러고 보니 만금소의 시체도 같은 곳에서 발견됐다고 하지 않았었나?”

장윤호의 질문에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발 늦게 알게 된 금와전장 장주 만금소의 죽음.

줄곧 치열한 암투를 벌여온 상대였기에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감상에 빠져 계획을 어그러뜨릴 천신우가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금와전장과 교통정리를 끝낼 생각입니다.”

말이 교통정리지.

이번 기회에 금와전장을 완전히 집어삼킬 생각이다.

비단 금와전장만이 아니다.

‘망향곡에서 추악한 실체를 드러낸 세력들에게도 확실한 제재를 가해야겠지. 어설프게 대처했다가 마교에 가담이라도 하면 골치 아파질 테니.’

하지만 천신우의 그런 고민은 무의미해졌다.

식사를 마친 풍뢰권이 다짜고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지금부터 네놈이 갈 곳이 있다.”

* * *

무림맹주 진무극은 언제나처럼 난에 물을 주고 있었다.

“맹주님.”

가장 믿음직스러운 심복 파천도의 방문에 비로소 몸을 일으킨 진무극이다.

“가지.”

보고도 듣지 않고 진무극이 파천도를 데려간 곳은 개인연무장이었다.

무림맹주의 연무장이라 생각하면 화려하면서도 은밀한 장소를 떠올리기 쉽지만.

진무극의 연무장은 여느 민가의 마당과 다를 바가 없는 공터였다.

“오랜만에 가볍게 비무 어떤가.”

파천도가 진무극에게 보고하려는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파천도는 흔쾌히 도를 뽑아 들었다.

“좋지요.”

파천도는 엄청난 고수였다.

도제나 무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무림맹 내에서 적수가 거의 없는 그였다.

그럼에도 진무극과 마주할 때면 파천도는 온몸이 떨렸다.

도를 맞대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상대.

그게 바로 무림맹주 진무극이었다.

그런 진무극이 파천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하네. 그새 성취가 있었군.”

사실 거창할 것도 없었다.

파천도는 아주 작은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그 미세한 차이를 한눈에 알아본 진무극의 눈썰미는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었다.

파앗!

진무극이 가볍게 바닥을 박찼다.

“내가 먼저 가지.”

체면에 얽매이지 않는 진무극다웠다.

명색이 무림맹주라면 체통 때문이라도 선수를 양보할 법도 한데.

다가오는 진무극을 향해 파천도가 도를 내질렀다.

쏴아아앙!

파천도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정말이지 진무극의 목을 날려버린다는 생각으로 날린 공격이었다.

무신과 도제라 하더라도 쉽게 받아내기 힘들 위력!

하지만 파천도의 도는 허공을 갈랐다.

파천도가 눈을 부릅떴다.

빗나간 것은 둘째 치고 진무극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친 것이 훨씬 문제였다.

“뒤네.”

진무극의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파천도가 돌아서며 도를 휘둘렀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진무극의 목을 노리는 듯했지만 갑자기 경로를 바꾸며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파천도의 도는 이번에도 허공을 갈랐다.

터무니없는 곳을 찌른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워낙 진무극의 움직임이 신출귀몰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위치를 바꾸는 진무극이었다.

너무 빨라서 오히려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

파천도는 감탄하면서도 내심 호승심이 일었다.

쿠오오오!

기세를 끌어올린 파천도가 몸을 뒤집으며 도를 크게 휘둘렀다.

아예 공격범위를 최대한 확장시켜 진무극이 피할 곳이 없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진무극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하지만 파천도가 주먹을 불끈 쥐기도 전에.

진무극은 다시 파천도에게로 파고들었다.

파천도의 공격을 가볍게 흘린 후에 바로 반격을 가한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절묘해서 파천도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파아앙!

진무극의 손바닥이 파천도의 가슴을 가볍게 때렸다.

파천도는 몸이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파천도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대신 파천도의 몸을 통과한 기운이 연무장 뒤편의 벽을 강타했다.

콰앙!

요란한 충격음이 무색하게 담장은 멀쩡했다.

“맹주님께서도 기물파손은 두려우신 겁니까?”

파천도의 농담을 진무극이 짓궂게 받아쳤다.

“벌써 노안이 왔나보군. 약이라도 지어먹게.”

뒤를 돌아본 파천도가 눈을 부릅떴다.

“……!”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담장에 사람 모양의 구멍이 생겨난 탓이다.

그것은 파천도의 체형과 정확히 일치했다.

파천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무극의 일격이 그를 향했다면 지금쯤 돌가루 대신 뼛가루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파천도는 이내 미소 짓는 얼굴로 진무극의 농담을 받았다.

“요즘 약값 비쌉니다. 수당을 올려주셔야 약을 지어 먹던지 하지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특별수당을 내릴 생각이네.”

어느새 진무극의 표정이 엄숙하게 바뀌었다.

“망향곡에서 다들 수고가 많았다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특히 멸악전단 소속 천신우가 가장 공이 큽니다. 굵직한 것만 따져도 마교 단주급 인사를 살해하고 진법을 파괴했으니.”

파천도가 잠시 말을 멈췄다.

진무극이 무림맹주가 되기 전부터 수십 년이 넘는 세월을 지척에서 보좌한 그였다.

당연히 무인들에 대한 종합평가도 수도 없이 해왔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단기간에 평가가 급상승한 인물은 천신우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천신우에 대한 평가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대단하군. 이대로라면 자네 말대로 무신과 도제를 뛰어넘을 수도 있겠어.”

“그런 말씀은 드린 적이 없습니다만.”

“아님 말고. 허허.”

진무극이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던가?”

방금의 비무에 대해 언급해 보라는 뜻이다.

파천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따금 진무극과 비무해 왔던 그이지만 오늘은 느낌이 분명 달랐다.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이네.”

파천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진무극의 말이 진심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맹주님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상대가 대체 누굽니까?”

진무극 정도 되면 굳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어떤 고수든 상대 가능하다.

도제나 무신이라 하더라도 진무극 앞에선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권력욕이 누구보다 강한 도제가 섣불리 맹주 자리를 노리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진무극이 날을 세워야 하는 상대가 과연 무림에 존재하기는 할까?

파천도의 그런 의문을 진무극이 해소해 줬다.

“무림맹에 내가 있다면 마교엔 그자가 있지.”

파천도는 극비리에 입수한 사실을 떠올렸다.

“천마!”

마교의 구심점이자 신적인 존재.

지금 무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모두 천마로 인해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무극이 머나먼 산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자신이 없네.”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아무리 마교의 교주라 하더라도 맹주님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닐 겁니다.”

“아닐세. 나는 아직도 마지막 계단을 오르지 못했네.”

그제야 파천도는 깨달았다.

진무극의 불안이 완벽함을 추구함에서 오는 것임을.

그리고 동시에 안심이 됐다.

“맹주님조차 오르지 못하신 길입니다. 심지어 역대 맹주님들을 통틀어도 마지막 계단에 오른 분은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사실일세.”

역대 무림맹주들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진무극이었다.

“그러니 천마가 아무리 뛰어난 무재를 지녔더라도 마지막 계단은 오르지 못할 겁니다.”

“만에 하나 천마가 마지막 계단마저 뛰어넘었다면? 그럼 나를 버리고 마교에 붙을 텐가?”

“일단 목숨은 건지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이내 웃음을 거둔 진무극이 말했다.

“무림맹주에게만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언젠가 크나큰 재앙이 무림을 휩쓸 거라 했지. 이제야 알겠네. 그것이 마교를 뜻하는 것이었음을.”

“그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다행이군요. 다른 시대에 마교가 나타났다면 막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가.”

진무극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긴 어떤 재앙이든 내 대에서 막아낸다면 내 삶도 아주 의미가 없진 않겠지. 물론 그러려면 자네들이 고생해 줘야 하네.”

“물론입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당장 내일이라도 마교의 침공이 예상되는 지역마다 병력을 배치해두겠습니다.”

진무극도. 파천도도.

마교의 본격적인 침공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망향곡 사건을 전후로 마교의 노골적인 움직임이 무림 전역에서 포착됐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무림에 전운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 *

다짜고짜 풍뢰권에게 이끌려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한 천신우다.

이미 완연한 봄임에도 칼바람이 매서웠다.

뿐만 아니라 짙은 안개로 인해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안개의 바다에 떠 있는 구름다리가 보였다.

“……!”

천신우는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랐다.

낭떠러지 아래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스산한 한기에 한 번 놀랐고.

이토록 험준한 지형에 다리가 놓여있다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따라오지 않고 뭐하느냐.”

천신우는 풍뢰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구름다리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높이만 놓고 치면 망향곡보다도 깊었다.

그럼에도 구름다리 위를 걷는 천신우의 움직임은 평지를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구름다리가 미친 듯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천신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다리 난간을 붙잡고 다리를 후들거리는 권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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