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학사환생 136화
검성과 권왕이 격돌한 그때.
천신우는 석굴 앞에 멈춰 섰다.
거대한 석굴 안에선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곳이군요.”
진법을 가동시키기 위해선 술식이 그려진 제단과 더불어 제물이 필요하다.
보통 도사들은 짐승을 제물로 사용하지만 마교는 인간을 제물로 사용했다.
망향곡 전체에 걸쳐 진법을 펼쳤으니 적잖은 생명이 희생됐을 터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법의 핵심이 되는 제단을 무방비로 놔뒀을 리가 없었다.
분명 치명적인 기관과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몰라서 묻느냐?”
풍뢰권이 훌쩍 몸을 날려 석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슈슈슈슈슉!
양쪽 벽에서 암기가 연달아 날아들었다.
“가소로운 것들.”
풍뢰권이 양팔을 좌우로 내질렀다.
소매가 펄럭이며 일어난 돌풍이 날아들던 암기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심지어 풍뢰권이 튕겨낸 암기는 천신우에게도 날아들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따다다다당!
암기를 모조리 튕겨낸 천신우가 그대로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벽이 무너지며 암기를 발사하는 장치들도 함께 박살 났다.
하지만 침입자가 장치를 박살 낼 경우까지도 대비했는지 기관들이 철컥철컥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천장이 차례대로 열리며 쇳덩어리들이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바닥이 무너지며 날 선 창날들이 솟아났다.
“이제 보니 네놈도 운경 그놈과 다를 바가 없구나. 무식한 놈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외치는 풍뢰권은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웃으실 때가 아닙니다만.”
머리 위로 깔리면 즉사를 면치 못할 쇳덩어리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고수들이라도 피하기 급급할 정도로 위협적인 함정이었다.
하지만 풍뢰권의 대응은 확실히 남달랐다.
꽈앙!
떨어지는 쇳덩어리들을 주먹으로 쪼개놓으며 전진하는 그였다.
뒤따르는 천신우로선 감탄이 나올 수밖에.
‘기관설계자는 상상도 못 했겠지. 저런 식으로 기관을 돌파하는 괴물이 존재할 거라고는.’
물론 천신우도 기관설계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무너진 바닥에서 솟아나는 창날을 피해 전진하면서도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그게 끝이 아니다.
독이 발라진 암기를 쳐내는 움직임은 예술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
갈수록 더욱 위험한 기관과 장치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천신우와 풍뢰권 모두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없었다.
그렇게 천신우가 석굴 깊숙한 곳까지 다다랐을 때였다.
슁-!
천장과 바닥에서 기관의 움직임을 감지한 천신우다.
파아아앗!
몸을 날리기 무섭게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쾅!
폭발을 일으킨 불길이 살아 있는 뱀처럼 통로를 가득 메웠다.
일직선의 통로에 피할 곳은 없었다.
하지만 천신우는 이미 몸을 날림과 동시에 벽에 검을 날려 구멍을 뚫어놓은 상황.
곧바로 구멍 안으로 몸을 날리자 뜨거운 열기가 눈앞을 휩쓸고 지나갔다.
화아아악!
한바탕 화염이 휩쓸고 지나가자 천신우는 벽면에 뚫어놓은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때마침 반대편 굴에서 걸어 나온 풍뢰권이 천신우 얼굴을 보더니 껄껄 웃었다.
“아주 숯덩이가 됐구나.”
“어르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럴 리가!”
풍뢰권이 얼굴을 쓱쓱 문지르더니 손바닥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당연히 농담이지요. 설마 믿으셨습니까?”
“으허허! 많이 컸구나! 나한테 농담을 다 하고.”
농담을 주고받은 것도 잠시.
천신우와 풍뢰권은 눈앞의 석실을 향해 다가갔다.
석실 내부엔 잔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들.
그렇게 흘러나온 핏물은 바닥에 파인 길을 따라 제단으로 흘러들었다.
천신우가 걸음을 내딛는 순간.
양쪽 벽에서 암기가 튀어나왔다.
따다당! 따당!
가볍게 암기를 쳐낸 천신우가 계속해서 전진했다.
별다른 이상이 없자 천신우는 쓰러진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려 고개를 숙였다.
바로 그때.
시체가 들썩이며 순간적으로 수십 개의 장침이 쏘아졌다.
천신우는 벼락처럼 자운검을 휘둘렀다.
따다다다당!
정말이지 본능적인 대처였다.
조금이라도 판단이 늦었다면 온몸에 장침이 박혀 고슴도치가 되었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뒤쪽에서 소리 없이 암기가 날아들었다.
지금까지 암기들이 날아들 때마다 미세한 소리가 났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심리적 허점을 노린 함정이었다.
“……!”
풍뢰권이 일장을 뻗으려다가 손을 거뒀다.
어느새 천신우가 돌아서며 검을 내질렀던 것이다.
차앙!
튕겨 나간 암기가 바닥에 처박혔다.
풍뢰권이 천신우에게 다가왔다.
“제법이구나.”
풍뢰권은 진심으로 천신우를 칭찬했다.
지금까지 천신우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면서도 칭찬에 인색했던 풍뢰권이다.
하지만 오늘 천신우가 끝까지 방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명받은 것이다.
“고수가 되기도 어렵지만 진정 어려운 일은 고수가 되고 나서 자만하지 않는 것이다.”
“어르신도 그런 시절이 있으셨습니까?”
풍뢰권은 대꾸하는 대신 화제를 바꿨다.
“가자. 목적지가 코앞이다.”
석실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나는 구조였다.
물론 천신우나 풍뢰권이나 계단을 오르내릴 생각은 없었다.
곧장 몸을 날려 제단 꼭대기에 내려선 천신우가 눈을 부릅떴다.
“……!”
전생에 마교의 진법과 관련한 보고서를 읽긴 했지만 거기엔 제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천신우는 어째서 보고서에 아무런 언급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커다란 돌을 높게 쌓아 올린 그것은 제단이라기보다 가마에 가까웠다.
그리고 가마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장작이 아닌…… 사람이었다.
불길에 휩싸인 그들은 살아 있는 채로 그곳에 던져졌는지 저마다 고통스러운 몰골이었다.
그들의 절규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천신우가 충격에 빠진 그때였다.
드르륵.
제단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벽이 저절로 열렸다.
그곳엔 장신의 사내가 서 있었다.
양손에는 사람들 머리채를 둘씩 붙들고서.
“뭐야?”
한발 늦게 천신우와 풍뢰권을 발견한 사내가 흠칫했다.
“정말 여기까지 왔다고?”
사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던 사람들의 머리통을 뽑으려는 찰나.
솨악!
천신우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화들짝 놀란 사내가 머리채를 놓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미 사내의 팔뚝은 천신우의 검에 베인 후였다.
주르륵 흘러내린 피가 사내의 소매를 적셨다.
사내가 혀를 내밀어 팔뚝에 묻은 피를 핥았다.
“네놈들은 누구지? 어떻게 벌써 진법을 통과했나?”
사내의 물음에 천신우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상대는 무고한 사람들을 제물로 불태우는 광인.
심지어 놈은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런 자를 상대로 대화는 무의미한 것이다.
“혈마단주는? 분명 놈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을 텐데.”
단주급 고수를 하대하는 모습.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내가 혈마단주보다 고수로 보이진 않았다.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린 천신우다.
망향곡 관련 보고서에 빨간 글씨로 적혀있던 이름.
광인객.
마교 추종자 칠객의 일인인 그가 저지른 악행은 수도 없이 많았다.
망향곡에서뿐만이 아니다.
이미 희대의 살인마로 악명을 떨쳤던 광인객이다.
마교에 협력한 것도 오직 살인욕구를 채우기 위함.
천신우가 나직하게 광인객의 본명을 불렀다.
“심소후.”
광인객. 아니, 심소후가 입술을 핥았다.
“나를 어떻게 알지?”
눈을 반쯤 뒤집은 그가 섬뜩하게 웃었다.
“설마 나한테 가족이나 친구를 희생당한 놈인가?”
심소후의 눈에 광기가 담겼다.
“말해. 네놈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천신우는 대답 대신 심소후에게 달려들며 기습적으로 검을 날렸다.
심소후 역시 천신우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지금까지의 상대들과는 달랐다.
바닥을 미끄러지며 천신우를 지나친 심소후는 곧장 제물로 바치려던 사람들을 노렸다.
“저놈들이 죽는 광경이 네놈 눈앞에 아른거리게 만들어주마!”
천신우와 풍뢰권이 자신의 힘으로 감당 못 할 고수임을 직감하자 약자들을 노린 것이다.
심지어 인질로 이용하려는 목적도 아니었다.
단지 천신우에게 잊지 못할 악몽을 심어주려는 의도.
그러나 심소후가 뻗은 팔은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풍뢰권이 그의 팔을 붙잡았던 것이다.
“제대로 미친놈이로구나.”
심소후가 키득거렸다.
“칭찬 고마워.”
물론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두둑!
팔이 반대로 꺾인 심소후가 애써 웃으려 했지만 풍뢰권은 반대편 팔마저 꺾어버렸다.
이어 양다리까지 부러뜨리자 심소후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키키킥.”
풍뢰권은 기괴하게 웃는 심소후의 입에 손을 넣어 혀를 뽑아버렸다.
이어 이빨을 하나씩 뽑았다.
어찌나 세게 뽑았는지 잇몸이 함께 딸려 나올 정도였다.
이젠 심소후도 더는 웃지 못했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바람 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풍뢰권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는 심소후의 눈동자마저 뽑아버렸다.
마지막으로 척추를 우지끈 짓밟자.
버둥거리던 심소후가 축하고 늘어졌다.
천신우는 놀란 눈으로 풍뢰권을 바라보았다.
풍뢰권의 이런 모습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내가 하지 않았다면.”
정작 풍뢰권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네놈이 이렇게 했겠지.”
“…….”
천신우는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만큼 광인객 심소후를 향한 증오는 컸다.
직접적인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고서에서 봤기 때문이다.
놈이 저지른 악행을.
놈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숫자와 글자만으로도 사람이 그렇게나 분노할 수 있다는 사실을.
힘만 있다면 직접 놈을 찢어 죽이고 싶었는데.
그런 천신우의 눈빛을 받아내며 풍뢰권이 덧붙였다.
“네놈은 선을 넘지 마라. 나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그러고 보면 풍뢰권은 사람을 죽이고도 항상 아무런 감정변화가 없었다.
투철한 정의감도 없었으며 격렬한 분노도 없었다.
마치 살인에 무감각한 사람처럼 그저 죽이고 죽였을 뿐이다.
천신우는 문득 풍뢰권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그러나 천신우는 그렇게 묻는 대신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아직도 불타고 있는 제단을 향해 천신우의 자운검이 내리쳐졌다.
콰아아앙!
제단이 쩍쩍 갈라지며 진법을 유지하던 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제단에서 쏟아져 나온 찬란한 빛이 어둠을 집어삼켰다.
* * *
망향곡을 뒤덮었던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망향곡의 보물을 탐하다 진법에 갇혔던 고수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하늘을 보게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모두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진 않았다.
쑥대밭으로 변한 망향곡 어딘가.
검성과 권왕은 서로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격렬했던 지난밤의 싸움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정적.
계속되는 대치상태를 깨뜨린 것은 권왕이었다.
힘겹게 발걸음을 내디딘 권왕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느리고 위력마저 줄어든 주먹은 검성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힘을 소진한 권왕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럼에도 검성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이미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그렇게 의식을 잃은 두 사람 머리 위로 망향곡의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