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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35화 (135/171)

# 135

학사환생 135화

극도로 긴장한 천신우 앞에 툴툴거리면서 나타난 것은 바로 풍뢰권이었다.

권왕은 어디 두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눈깔에 힘 빼라. 이놈아. 아주 다 잡아먹겠다.”

풍뢰권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천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사라지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덕분에 망향곡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마음 편히 바닥에 주저앉은 천신우였다.

채은수도 마비독이 풀린 모양.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인 끝에 그녀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마워요.”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했기에 천신우는 미소로 화답했다.

멋지게 제몫을 해낸 천신혁과 모용비도 지친 몸을 이끌고 천신우에게 다가왔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수고 많았어. 잠시 숨이라도 돌리고 다시 움직이자고.”

그때 풍뢰권보다 한발 늦게 나타난 애꾸눈 독야행이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무사히 빠져나온 걸 보니 진법에도 조예가 있는 모양이로군.”

천신우에 이어 쓰러진 혈마단주의 상태를 확인한 독야행이 이채를 발했다.

“설마 벌써부터 길이 보이는 게냐?”

평소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독야행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쯧쯧. 또 저 소리.”

핀잔을 주면서도 풍뢰권은 왠지 모르게 뿌듯한 얼굴이었다.

독야행이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길을 따라가는 게 고작이구나. 그러니 내부의 기운이 네 의지와 상관없이 요동치는 것이다.”

“……!”

천신우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눈에 보이는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을 따라가는 방식에도 요령이 필요했던 것.

사실상 벽을 넘어 두 번째 계단에 도달한 천신우건만.

그곳에서 보이는 건 또 다른 계단이었다.

물론 좌절할 천신우가 아니었다.

느낌이 왔으니까.

‘한 계단만 더 오른다면.’

풍뢰권을 따라잡는 것도 꿈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천신우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독야행이 천신우 등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접어두고 자연스레 기운을 받아들여라. 지금 네 능력으론 요동치는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니 내가 도와주마.”

그러면서 풍뢰권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독야행이었다.

“저 늙은이야 신경도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

확실히 풍뢰권이라면 알아서 극복하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을 것이다.

이윽고 천신우의 몸속으로 정순한 기운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던 몸에 활기가 돎과 동시에.

요동치던 기운도 차츰 진정됐다.

그때까지 딴청만 피우던 풍뢰권이 대뜸 천신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언제까지 농땡이 피울 생각이냐.”

피식 웃으며 일어난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일 생각이었습니다.”

혈마단주를 쓰러뜨렸다고 끝이 아니다.

천망금쇄진을 완전히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다.

진법 안으로 들어가 일일이 사람들을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그러려면 진법에 힘을 공급하는 제단을 찾아 파괴해야 했다.

“형님! 저도 데려가주십시오!”

독야행이 천신혁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여기 남거라.”

채은수가 간절한 눈빛으로 독야행을 쳐다봤다.

“부디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조부인 무신 덕에 독야행과도 안면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부탁.

하지만 독야행은 매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곤란하다. 나도 여기 남을 것이니 괜한 생각 말거라.”

결국 천신우와 풍뢰권만이 제단 파괴 임무를 맡기로 결론이 났다.

“형님! 다치지 마십시오!”

지친 기색이 역력함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천신혁.

채은수 역시 진심을 담아 천신우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손을 흔드는 모용비와 제갈휘도 뒤로 하고.

혈마단주를 쓰러뜨린 그곳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동안 천신우가 물었다.

“그런데 운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권왕이 보이지 않기에 꺼낸 질문.

풍뢰권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놈이야 멍청하니 아마 지금쯤이면…….”

* * *

권왕은 안개로 뒤덮인 벽이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았다.

풍뢰권과 함께 망향곡을 휘젓고 다니던 것도 잠시.

마교의 천망금쇄진에 갇혀버린 권왕이었다.

풍뢰권마저 진법의 중심부로 먼저 가버린 지금.

권왕은 혼자 진법을 뚫고 나아가야만 했다.

물론 앉아서 풍뢰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권왕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흐아아압!”

권왕이 돌연 괴성을 지르며 벽에 주먹을 내질렀다.

당연하게도 천망금쇄진은 권왕의 주먹에 실린 위력을 흡수해 버렸다.

하지만 권왕은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파파파파팡!

묵직한 주먹이 진법을 계속해서 때리자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권왕의 몸에선 하얀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보통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하건만.

권왕은 불만불평 한 번 없이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것도 똑같은 지점을 향해.

그렇게 무려 수천 번의 주먹을 내질렀을 때였다.

꽈아아앙!

거짓말처럼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천망금쇄진 설치를 명했던 혈마단주가 봤다면 기절초풍할 광경이었다.

천망금쇄진은 이런 식으로 파훼될 진법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권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멍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원래 있던 곳보다 제법 넓었다.

게다가 선객도 있었다.

금와전장 장주 만금소와 십인회 간부. 거기에 정의련 부련주도 함께였다.

망향곡의 보물을 노리고 의기투합했을 때만 해도 그들의 세력은 강대했다.

하지만 검성에 이어 독야행과 충돌하면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상황.

이제 그들의 숫자는 기껏해야 열댓에 지나지 않았다.

“……권왕?”

그들 중에서 권왕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만금소였다.

철혈성 비무대회에서 직접 검성과 권왕의 대결을 지켜봤었기 때문.

“권왕이라면?”

“검성과 철혈성 비무대회 결승에서 맞붙었던 고수요.”

“그럼 망설일 이유가 없겠군.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면 조력자의 존재는 필수니까.”

“그게…….”

만금소가 말끝을 흐렸다.

“권왕은 천씨세가 소속이요.”

청해 사인방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그들도 만금소와 마찬가지로 천씨세가와 악연이 있었던 것이다.

화전민 마을을 습격하다가 천신우에게 응징당한 관가량이 바로 청해 출신이었다.

그렇게 만금소 일행이 권왕을 두고 의견이 갈린 상황.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반대편 벽이 갈라지며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만금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검성……!”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괴물들이 둘이나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둘은 만금소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너는.”

검성이 입가를 비틀었다.

권왕과의 대결을 기억하는 그였다.

당시 이기긴 했지만 무식할 정도로 저돌적인 권왕의 모습은 기억에 생생했다.

권왕 역시 검성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온몸의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하는 것이 증거였다.

몸이 그날 검성과의 싸움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졸지에 곁다리 신세가 되어버린 만금소와 정의련 부련주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일단 사태를 관망하자는 합의를 마친 그들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검성과 권왕이 뚫고 나온 구멍마저 다시 안개에 뒤덮여 원래대로 복구된 상황.

그들은 숨죽이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검성과 권왕은 마주치는 순간부터 힘을 합쳐 진법을 빠져나간다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마교도 뒷전인 그들이었다.

관심사라곤 오직 강자와 맞붙는 것뿐.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럼 시작하자고.”

검성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성난 황소처럼 달려드는 권왕이었다.

쿵쿵쿵!

지축을 뒤흔드는 돌진에 만금소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하지만 검성은 오히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보다 더 강해졌구나!”

기꺼이 나뭇가지를 휘둘러 정면으로 맞서는 검성이었다.

다음 순간.

권왕과 검성의 몸이 교차했다.

솨아아악!

꽈아아앙!

나뭇가지와 주먹은 서로를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갔지만.

후폭풍은 온전히 만금소 일행이 감당할 문제였다.

풍압에 밀려난 만금소가 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콰앙!

정의련 부련주는 반대편 벽에 처박힌 상황.

물론 만금소와 정의련 부련주가 서로 마주 보며 실소할 시간 따윈 없었다.

곧장 권왕의 주먹과 검성의 일격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쾅! 쾅! 쾅!

권왕의 주먹이 천둥처럼 공간을 폭발시켰다.

검성의 나뭇가지는 거울을 깨뜨리듯 공간을 산산이 조각냈다.

만금소 일행은 최대한 멀리 떨어져 풍파를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스가각!

“끄아악!”

검성의 나뭇가지가 일으킨 바람에 가슴이 베인 정의련 부련주가 비명을 질렀다.

물론 권왕과 검성은 그들의 사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전력을 퍼부었다.

쾅쾅쾅!

계속해서 퍼부어지는 권왕의 주먹을 나뭇가지 하나로 받아치는 검성이었다.

권왕의 괴력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졌다간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될 터.

그럼에도 검성은 즐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이거지. 이게 싸움이지.”

검성의 나뭇가지가 기묘하게 흔들렸다.

솨아악!

종이를 자르듯 공간을 베어가는 공격에 만금소가 입을 벌렸다.

“……!”

물론 더욱 충격적인 것은 권왕의 대응이었다.

권왕은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검성의 영역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리를 축으로 삼아 몸통을 부딪쳐갔다.

콰콰콰콰콰!

휘몰아치는 검성의 검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돌진하는 권왕!

이번만큼은 검성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검성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하는 순간.

권왕의 육중한 몸이 검성이 서 있던 지점을 통과했다.

멧돼지처럼 그대로 정면을 들이박은 권왕이었다.

하필 그곳에 있던 만금소는 피하지도 못하고 권왕의 육탄공세를 그대로 받아냈다.

꽈아아앙!

“……!”

엄청난 충격이 만금소의 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만금소도 한때 꽤 명성을 날렸던 고수.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내공을 바닥까지 쥐어짜내며 호신공을 펼쳤다.

덕분에 비록 벽까지 날아가 부딪치긴 했어도 목숨을 건지는 데 성공했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금와전장의 주인 만금소다! 감히 나를…….”

너덜너덜해진 몰골로 악을 쓰던 만금소가 눈을 부릅떴다.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황급히 내빼려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만금소의 머리 위로 돌무더기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돌무더기에 파묻힌 만금소가 필사적으로 팔을 위로 뻗었다.

하지만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바위덩어리가 만금소의 팔뚝 위로 떨어진 것이다.

우직!

완전히 바스러진 팔은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막대한 부를 쌓았던 만금소치곤 너무도 허무한 최후였다.

하지만 검성은 만금소의 죽음엔 관심이 없었다.

“방금은 나쁘지 않았다.”

“흥!”

콧방귀를 뀌며 권왕이 바닥을 박찼다.

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의 도약!

검성도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솟구쳤다.

다음 순간, 권왕과 검성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꽈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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