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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34화 (134/171)

# 134

학사환생 134화

공중에 떠오른 짧은 시간 동안 혈마단주는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몸은 균형을 잃은 후였다.

복부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 상황.

물론 이대로 허무하게 당할 혈마단주가 아니었다.

그는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내려섰다.

상대가 착지하는 순간을 노릴 것을 대비해 소매에서 은침까지 쏘아 보냈다.

그러나 천신우는 지금까지의 상대들과는 달랐다.

자운검으로 은침을 튕겨낸 천신우였다.

혈마단주의 눈매가 좁아졌다.

‘이걸 쳐내?’

심지어 은침은 혈마단주가 날린 것보다 빠른 속도로 되돌아왔다.

“!”

쌍장을 내질러 은침을 쳐내는 혈마단주의 움직임이 다급했다.

이미 채은수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었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네놈은 분명…….”

혈마단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천망금쇄진을 빠져나와 기습했나 싶었더니 천신우였다.

물론 제갈휘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제갈휘가 그물을 빠져나온 미꾸라지라면.

천신우는 그물을 찢고 나온 이무기였다.

“하나 묻지. 네놈이 진사명을 죽였나?”

정말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다.

진사명에 대한 의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벌기 위함.

하지만 천신우는 혈마단주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저승에 가서 직접 물어보도록.”

“건방진!”

격분한 혈마단 고수들이 천신우를 에워쌌다.

“형님!”

한발 늦게 천신우를 발견한 천신혁이 반가움에 소리쳤다.

“나는 괜찮다. 그러니 눈앞의 싸움에 집중해라.”

“알겠습니다!”

천신혁뿐만 아니라 모용비와 제갈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신우가 무사해서 기뻤고 이렇게 구하러 와줘서 고마웠다.

물론 채은수가 느끼는 감정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두근두근.

정말이지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그녀였다.

사실 명백한 우연이다.

무심코 이름을 불렀고 때마침 천신우가 나타난 것뿐.

그럼에도 채은수에겐 마치 천신우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비독이 혀까지 굳게 만든 것이다.

채은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천신우의 등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바로 그때. 혈마단 고수들이 천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여라!”

천신우만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채은수의 뒤로 접근하던 혈마단 고수들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지금 뭣들 하는…….”

답답한 마음에 혈마단주의 심복이 역정을 내려는 찰나.

혈마단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보았던 것이다.

수하들의 가슴에 새겨진 검상을.

다음 순간.

촤아아악!

채은수를 노리던 혈마단 고수들의 몸이 문자 그대로 터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쏟아낸 피가 채은수를 뒤덮는 일은 없었다.

천신우가 채은수를 안으며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채은수는 천신우의 온기와 맥박을 동시에 느꼈다.

상황이 이렇게나 긴박하고 위험한데 천신우의 맥박은 규칙적으로 뛰었다.

품에 안긴 채은수마저 안심하게 만들 만큼.

“이놈!”

공중에 떠오른 천신우를 따라 혈마단 고수들이 도약했다.

채은수는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기우였다.

천신우는 채은수를 안은 상황에서도 한 손만으로 혈마단 고수들을 상대했다.

촤아아악!

천신우의 자운검이 적들의 몸을 쪼개놓았다.

찢어진 살점이 피와 함께 비처럼 쏟아졌다.

“이런 미친!”

동료들의 죽음에 혈마단 고수들이 침음했다.

채은수가 쌍검으로 하지 못한 일을 천신우는 자운검 하나로 해내고 있었다.

바닥에 내려선 천신우가 발을 굴렀다.

빠각!

바닥이 박살 나며 천신우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에 채은수의 눈이 커졌다.

물론 그녀보다 놀란 것은 혈마단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미처 감지하기도 전에 천신우의 자운검이 바람을 갈랐다.

쏴아아앙!

자운검에 잘려 나간 혈마단 고수들의 목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

혈마단주는 열기를 느꼈다.

부하들 몸에서 쏟아져 나온 핏물과 천신우가 뿜어내는 살기가 장내의 공기를 달구고 있었다.

솨아아악! 스가가각!

혈마단 고수들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사인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목이 잘려 나갔고 누군가는 배가 찢겨져 내장을 토해냈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혈마단 고수들은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도를 내질렀다.

사실 그들도 알았다.

천신우를 죽일 수가 없다는 것을.

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검을 휘둘렀다.

물론 무의미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솨악! 솨아아악!

천신우의 자운검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시체들만 늘어갔다.

언젠가부터 바람 소리는 저승사자의 외침이 되었다.

“으아아아!”

나방이 불에 몸을 내던지듯 살아남은 혈마단 고수들이 몸을 날렸다.

순간 천신우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쏴아아앙!

천신우에게 다가서던 적들의 몸이 썰려 나갔다.

혈마단주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모용비와 제갈휘의 눈동자엔 불신이 어렸다.

그만큼 천신우의 무위는 압도적이었다.

싸움이라기보단 학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천신우에게 안긴 채은수 역시 경악했다.

‘단지 빠르기만 한 게 아니야.’

천신우는 그야말로 최적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움직여야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그래서일까.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잔혹한 광경조차 채은수의 눈엔 아름답게 보였다.

천신우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작품을 보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무인으로서 채은수는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어느새 혈마단 고수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천신우가 자운검을 뻗었다.

늘어뜨린 칼끝이 혈마단주를 향했다.

“이제 네놈 차례다.”

혈마단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그는 구경만 하고 있진 않았다.

천신우가 허점을 내보이기만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천신우는 어떠한 허점도 보여주지 않았다.

천신우의 움직임은 마치 혈마단주의 그런 의도까지 꿰뚫고 있는 듯했다.

하다못해 호흡이라도 흐트러지길 바랐지만.

천신우의 표정은 너무도 평온했다.

“오냐.”

혈마단주의 눈이 번쩍였다.

전신의 내공을 모조리 개방한 그에게서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쩌저저적!

발밑의 땅이 갈라지며 돌조각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

천신혁이나 모용비는 물론.

그들과 맞서던 혈마단 고수들조차 혈마단주의 위압감에 짓눌릴 정도였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하지만 오히려 가장 가까운 채은수는 멀쩡했다.

천신우가 혈마단주의 기운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한 덕분.

이윽고 천신우에게 뿜어져 나온 기운이 혈마단주의 기세와 충돌했다.

둘의 옷깃이 부풀듯이 펄럭였다.

다음 순간.

쉬이이익!

혈마단주의 소매에서 쏟아져 나온 은침이 하늘을 눈부시게 수놓았다.

수백 명을 몰살시키고도 남을 살상 병기!

그러나 천신우에겐 개전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했다.

따다다다다당!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은침을 모조리 쳐낸 천신우가 쇄도했다.

때마침 혈마단주도 천신우에게 쇄도했다.

은침을 무기로 애용하지만 사실 혈마단주의 주력은 도였다.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자운검의 움직임을 똑똑히 지켜보며 혈마단주가 도를 내질렀다.

바로 그 순간 천신우의 검이 갑자기 빨라졌다.

쉭!

순간적으로 목을 찔러오는 검을 피해 혈마단주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쳐낼 여유조차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한 일격이었다.

기선을 제압한 천신우가 채은수를 안은 채로 몸을 날렸다.

사실 채은수를 내려놓고 싸우는 편이 아무래도 편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 혈마단주가 작정하고 채은수를 노리면 오히려 발이 묶일 수 있었다.

차라리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채은수를 확실히 지키는 쪽을 선택한 것.

그만큼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상서고의 다섯 번째 단서까지 확보한 천신우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차차차차차창!

천신우의 자운검과 혈마단주의 도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혈마단주가 이를 악물었다.

정말이지 손목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도를 내려놓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천신우도 통증을 느끼긴 마찬가지.

하지만 충분히 견딜 만했다.

애초에 검보다 훨씬 위력적인 도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것부터가 천신우의 성취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검과 도를 부딪치며 계속해서 자리를 바꾸던 천신우와 혈마단주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도약하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공격을 주고받는 그들이었다.

뱀과 뱀이 엉키듯 검과 도가 엉켰다.

검과 도의 잔상이 만들어내는 선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차차차창!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천신우와 혈마단주는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마침내.

쩌엉!

경쾌한 울림과 함께 천신우와 혈마단주가 서로를 밀어냈다.

먼저 바닥에 내려선 것은 혈마단주였다.

그의 안색이 창백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반면 한발 늦게 내려선 천신우의 표정은 한결 나았다.

하지만 호흡은 아까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확실히 단주급이라 다르긴 다르군.’

혈마단주 가슴의 표식을 통해 상대의 위치를 가늠한 천신우였다.

혈마단주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이제 혈마단주의 태도에서 여유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천신우는 혈마단주가 전력을 다해도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

그나마 천신우가 채은수를 보호하느라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해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혈마단주는 지금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혈마단주가 천신우 품에 안긴 채은수를 바라보았다.

문득 천신우가 저토록 채은수를 지키려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군. 무신이 네놈을 키운 모양이군.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이런 안배를 해놓았구나.”

평생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고 알려진 무신이다.

하지만 혈마단주는 무신이 천신우를 제자로 키웠다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에.

“무신에게 전해주마. 제자와 손녀 모두 이 몸이 해치웠노라고.”

자신감보다는 오기에 가까웠지만 천신우는 비웃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간 혈마단주의 말이 현실이 될 수 있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서로를 향해 쇄도하는 천신우와 혈마단주였다.

이미 타격을 입은 혈마단주는 단시간에 승부를 보기로 작정했는지 전력을 다해 천신우를 밀어붙였다.

꽈아아앙!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천신우와 혈마단주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채은수조차 충격을 느낄 만큼 위력이 실린 공격이었다.

하지만 함께 물러났다고 해서 둘이 입은 피해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울컥!

혈마단주가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반면 천신우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스윽 닦아냈을 뿐이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천신우와 혈마단주가 서로를 향해 날아올랐다.

파아아앗!

천신우는 눈에 보이는 선을 따라 검을 내질렀다.

그저 막연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천신우는 이 순간에도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선은 그가 지금까지 익혀왔던 무공과 비슷하면서도 미세하게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는 천신우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

차아아앙!

천신우의 자운검과 혈마단주의 도가 만들어내는 백광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대기가 흔들리고 공간이 부서져 나갔다.

혈마단주가 이를 악물었다.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힘을 밑바닥까지 쥐어 짜냈다.

쾅! 쾅! 쾅!

검과 도가 부딪치는 것인지 공간이 폭발하는 것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천신우와 혈마단주는 신들린 것처럼 치명적인 일격을 주고받았다.

무대가 비무대회였다면 두고두고 전설로 회자됐을 광경이었다.

물론 누구도 관객의 수가 적음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엔 너무나도 치열한 승부였다.

마침내 혈마단주의 도가 천신우의 가슴을 베었다.

촤아아악!

뼈까지 잘라내진 못했지만 피가 쏟아질 만큼 치명상이었다.

하지만 혈마단주는 웃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배를 내려다보았다.

자운검은 이미 배를 가르고 지나간 후였다.

그럼에도 혈마단주는 피를 지혈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고개를 들어 천신우를 노려보았다.

“기뻐하지 말거라. 결국은 본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니.”

다음 순간.

몸이 반으로 쪼개진 혈마단주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신우는 피를 지혈하고 상처에 구급약을 발랐다.

하지만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천신우는 상대의 기척을 확인했다.

그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심지어 혈마단주보다도 고수였다.

자운검을 움켜쥔 천신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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