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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32화 (132/171)

# 132

학사환생 132화

인간병기들이 줄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바로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혈마단주 심복은 이를 바득 갈았다.

“한심한 놈들!”

사실 인간병기의 육체능력이면 절벽이 무너져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문제는 놈들이 그럴 만한 지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절벽 위로 올라서라!”

심지어 혈마단주 심복의 지시에도 인간병기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흥분한 혈마단주 심복과 달리 천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대로군. 숫자도 적지만 무엇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인간병기들이 망향곡에서 성공적으로 시험무대를 마치고 무림을 휩쓸었던 전생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

물론 절벽에서 추락한 것만으로 인간병기들이 완전히 무력화된 것은 아니었다.

크그그극!

괴상한 소리에 뒤를 돌아본 천신혁이 신음을 토했다.

“……맙소사.”

팔이 뒤틀리고 다리가 꺾이고도 움직이는 인간병기들은 그야말로 괴물과도 같았다.

그런데도 놈들을 향해 달려드는 천신우의 모습에서 망설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서걱! 서걱!

인간병기들의 목이 단칼에 잘려나갔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놈들도 머리가 잘리자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혈마단주 심복이 눈을 부릅떴다.

강철처럼 단단한 인간병기들을 마치 무처럼 썰어버리니 경악스러울 수밖에.

“대체 네놈은……!”

물론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

혈마단주 심복은 그대로 무너진 절벽 잔해를 뛰어넘으며 칼을 뽑았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천신우가 돌아서며 자운검을 휘둘렀다.

쏴아앙!

달려들던 속도보다 배는 빠르게 혈마단주 심복이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하마터면……!’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그는 검을 내질러야 했다.

따다당!

단 세 번의 격돌에 그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더 놀라운 건, 그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천신우가 인간병기의 숫자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혈마단주 심복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감히!”

앞으로 내디딘 한 걸음.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날아드는 검을 피해낸 천신우가 앞으로 파고들며 팔꿈치로 상대의 가슴을 가격했다.

빠악!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혈마단주 심복의 가슴을 천신우가 박차며 날아올랐다.

단숨에 상대의 뒤로 내려선 천신우가 정면의 인간병기들을 향해 쇄도했다.

뒤를 돌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촤아악!

잘려 나간 혈마단주 심복의 목에서 피가 솟았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인간병기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실험에 투입된 상대들은 그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렇게 반복된 실험에서 인간병기들은 무공을 상대하는 최적의 방법을 학습했다.

하지만 천신우의 공격은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한 것과는 격이 달랐다.

너무나 빨랐고 너무도 위력적이었다.

서걱! 서걱!

인간병기들의 목이 연거푸 잘려나갔다.

“…….”

어느새 천신우 주변에 쌓인 인간병기 시체들.

생존한 인간병기들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감정이 없다고 해서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겁먹은 그들을 향해 천신우가 달려들었다.

그들은 학습된 경험에 따라 검을 내질렀다.

솨악!

바람 소리가 겹쳐졌다.

그야말로 동시다발적으로 날아드는 검들을 천신우가 거침없이 쳐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

천신우가 인간병기들보다 훨씬 빨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새 천신우의 검이 허공을 찔러가고 있었다.

감각 범위를 넘어서는 속도에 인간병기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푸욱!

그대로 가슴에서 등까지 꿰뚫린 인간병기가 움직임을 멈췄다.

천신우가 주위를 돌아봤다.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인간병기들 중에 일부가 아군의 뒤를 노린 것이다.

한발 늦게 인간병기의 접근을 알아차린 천신혁이 다급히 외쳤다.

“뒤에도 있습니다!”

제갈휘가 돌아서며 판관필을 휘둘렀다.

제갈세가의 무공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찰나.

인간병기가 제갈휘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제갈세가 무공의 약점을 알지 않고선 불가능한 대응.

인간병기는 제갈세가의 무공마저 학습했던 것이다.

“……!”

경악하는 제갈휘.

하지만 정말 놀라운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인간병기가 갑자기 멈춰선 것이다.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거지?’

뒤늦게 제갈휘는 깨달았다.

후방을 급습하던 인간병기들이 모두 제압당했음을.

마지막으로 발악하던 인간병기의 머리통을 천신우가 짓밟았다.

콰직!

고맙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천신우를 도우려던 천신혁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형님이시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형님을 걱정할 때가 아니야.’

쩌어엉!

날아드는 마교 고수의 검을 쳐낸 천신혁이 손목이 끊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건만.

마교 고수들은 너무나도 강했다.

그나마 우위를 점하는 것은 신중현과 채은수를 비롯해 서넛 정도.

천신우가 고르고 고른 천씨세가의 고수들조차 마교 혈마단 고수와 맞서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했다.

그나마 천신우마저 없었다면 양쪽에서 포위당해 회생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신우가 가세하면서 전황은 급격히 천씨세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마교 혈마단 고수들이 열세에 몰린 그때.

저벅.

마침내 혈마단주가 전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상황을 보고받은 혈마단주다.

어찌된 일인지 외곽 초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이.

적들은 근거지 중심부까지 들이닥쳤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개개인이 혈마단 고수와 대적 가능할 만큼 정예들이었다.

심지어 공들여 준비한 인간병기들조차 대부분 천신우에게 압살당한 상황.

“아무리 아직 미완성단계라지만 저렇게 무기력할 줄은 몰랐군.”

그럼에도 혈마단주는 여유로웠다.

천망금쇄진을 가동할 준비를 마쳤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천망금쇄진을 준비한 보람이 있겠지. 마졸들은 오늘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좀 더 보강하기로 하고.”

혈마단주가 손을 들어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쿠구구구!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지반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둠이 몰려온다!”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천씨세가 고수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단지 밤이 깊어서가 아니었다.

달빛뿐만 아니라 주위를 밝히던 화롯불마저 자취를 감췄다.

그야말로 완전한 암흑이 망향곡을 뒤덮었다.

망향곡 전역에 걸쳐 천망금쇄진이 발동된 것이다.

물론 천망금쇄진에 갇힌 것은 천씨세가 고수들뿐이었다.

어느새 마교 혈마단 고수들은 신호에 맞춰 썰물처럼 진을 빠져나간 후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천신혁이 목소리 높여 천신우를 불렀다.

“형님! 어디 계십니까!”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멀리 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아우님?”

천신혁의 목소리를 들은 모용비가 다가왔다.

“다들 여기 있었군.”

화섭자로 불을 지핀 것은 제갈휘였다.

주위가 조금이나마 밝아지면서 하얗게 질린 채은수의 얼굴이 드러났다.

“저기…… 천 공자는요?”

모용비와 천신혁의 표정도 어두웠다.

천신우만이 아니었다.

미로처럼 얽힌 통로 안엔 그들 말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요?”

천신혁의 물음에 채은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천 공자부터 찾아야 해요.”

모두가 공감했지만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같은 곳이군.”

어둠 속에서 제갈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마교에서 진법을 펼친 모양이네.”

빠져나갈 수 없는 어두운 미로.

게다가 불길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까지.

“그럼 이것도 평범한 안개가 아니겠지.”

임시로 옷을 찢어 입을 가렸지만 안개에 중독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개에 중독된 일행은 내공이 조금씩 줄어듦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황은 이미 최악이었다.

하지만 제갈휘는 포기한 눈빛이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알다시피 나는 진법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네. 어쩌면 파훼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나머지 인원은 진법에 문외한.

제갈휘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천신혁과 채은수는 필사적인 눈빛으로 제갈휘를 바라보았다.

제발 이곳을 빠져나가 천신우를 찾아낼 수 있기를.

모두의 간곡한 바람이었다.

* * *

마교 혈마단주가 천망금쇄진을 발동한 시점으로부터 불과 얼마 전.

무림맹 공식조사대 정찰3조는 다수의 고수들에게 포위당했다.

상대는 제12영역의 거대세력 청해.

거기에 금와전장 장주 만금소와 제10영역의 정의련.

물론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제11영역을 지배하는 십인회였다.

십인회는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는 법이 없었지만 그들의 강함은 익히 유명했다.

“조장님.”

조원의 목소리에 긴장이 묻어났다.

사실 다른 곳이었다면 숫자가 아무리 열세여도 위축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망향곡 중심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럼에도 조장은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진 않을 텐데.”

“알고말고.”

만금소가 홀쭉해진 얼굴로 나섰다.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대들이 청향검을 얻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

청향검은 천리향이라고도 불리는 명검이었다.

사람을 베면 피비린내가 천 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정찰조는 우연한 기회에 그 청향검을 발견해 본대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알고 거대세력의 고수들이 찾아온 것이다.

사실 정찰조가 청향검을 발견한 것부터 그 정보가 새어나간 것까지 모두 마교의 계획.

물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정찰조 조장으로선 그저 암담했다.

‘틀림없다. 우리를 죽이고 청향검을 차지할 생각이야.’

그렇지 않아도 눈앞의 세력들은 무림맹과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

만금소마저도 최근 도제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눈치가 빠르군.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벌써 알아차린 것을 보니.”

십인회 간부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정찰조 조장이 이를 악물었다.

상대는 십인회의 주축인 십인 다음으로 강하다고 알려진 고수였다.

혼자라도 버거운 상대인데 다른 고수들의 면면 역시 화려했다.

정의련의 부련주.

금와전장의 장주 만금소.

청해의 사인방 가운데 죽은 관가량을 제외한 2인.

거기에 그들이 거느린 고수들까지.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청향검을 내놓게.”

만금소가 사악하게 웃었다.

“불가!”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어차피 청향검을 건네더라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무림맹 소속이라는 자부심이라도 지킬 생각이었다.

“끌끌. 죽음을 자초하는군.”

만금소가 돌아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청향검부터 얻고 보자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정찰조야 죽여 버리고 절벽에 던져 마교의 소행으로 위장하면 그만인 것이다.

밀려드는 압박감에 떠는 조원의 어깨에 조장이 손을 얹었다.

“우리가 누군지 기억해라.”

차아앙!

모두가 검을 뽑고 결전에 임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저벅저벅.

포위망을 향해 누군가 접근했다.

“뭐하는 놈이냐!”

서슬 퍼런 외침!

그러나 상대는 들은 척도 않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십인회 간부가 턱짓했다.

“죽여.”

무림맹 무인들을 압박해 보물을 강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이었다.

차아앙!

검성은 십여 명의 고수들이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손에 쥔 나뭇가지를 가볍게 휘둘렀을 뿐이다.

그러나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솨아아아아악!

달려들던 고수들이 마치 검성에게 빨려 들어가듯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튕겨져 나온 그들의 몸은 수십 조각으로 잘게 찢겨 있었다.

단숨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

심상찮은 분위기를 직감한 정의련 부련주가 다급히 협상을 제안했다.

“방금 일은 없던 일로 합시다. 청향검에 대한 권리도 나눠주겠소.”

검성은 대답 대신 메마른 나뭇가지 끝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오래 걸렸다.

손에 쥔 무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다음 순간.

검성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폭풍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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