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학사환생 122화
전생에서 마교가 꾸민 망향곡 대참사는 치밀한 준비 끝에 완성됐다.
가장 먼저 마교는 망향곡에서 거대한 유적이 발견됐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것은 놀랍게도 헛소문이 아니었다.
흑성검.
용신갑.
태극신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전설적인 무구와 비급들이 망향곡에서 발견된 것이다.
자연히 소문을 들은 무림 전역의 고수들이 만사를 제쳐 두고 망향곡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보물의 소유권을 놓고 경쟁했고 끝내는 서로를 죽이기에 이르렀지.’
그들의 죽음에 마교에서 준비한 함정과 기습이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연이은 인명사고에 무림맹은 망향곡을 출입금지지역으로 선포했지만 광기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보물을 얻기 위해 살육을 일삼았다.
부모형제가 무공비급의 소유권을 놓고 서로를 죽였으며 오랜 친구끼리 칼부림을 서슴지 않았다.
무림의 도리와 의리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망향곡은 문자 그대로 망자들의 무덤으로 변하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이야기. 하지만 사실 거기엔 숨겨진 내막이 존재하지.’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망향곡 참사는 절명곡에서부터 시작된 계획의 일부였다.
‘마교가 절명곡에서 수많은 사람을 납치한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무림 전체를 경악하게 만들 정도로 파급력을 지닌.’
그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오늘 진사명의 기록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천신우였다.
‘이건 전생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군. 망향곡에서 발견된 보물들이 실은 진사명이 던진 미끼였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 엄청난 보물들을 미끼로 사용하는 사람이 존재할 거라고.
‘마교의 정보력을 이용해 무림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얻은 보물을 본인이 취하지 않고 미끼로 사용한다? 과연 그런 인간이 진사명 말고 있을까?’
천신우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사명의 그릇은 보통 사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컸던 것이다.
‘흑성검만 해도 전설적인 명검이다. 나야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운검을 선택했지만 흑성검도 거기에 결코 밀리지 않지. 오히려 인지도 면에선 흑성검이 훨씬 유명하고.’
물론 진사명이 직접 사용하던 검도 분명 괜찮은 무기였다.
하지만 만일 진사명이 흑성검을 갖고 있었다면 싸움 양상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흑성검엔 그만한 성능이 있으니까.
‘절대 그렇게 쉽게 부러지진 않았겠지.’
심지어 흑성검이 끝이 아니다.
‘용신갑은 또 어떻고.’
용신갑은 용의 비늘로 만들었다고 알려지는 전설적인 무구.
소문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림 삼대비수 정도의 암기가 아니면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 그런 방어구는 결코 흔치 않아.’
오래전 실전된 무공인 태극신무 역시 마찬가지.
‘태극신무는 거대세력들의 상승무공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무공이다. 관점에 따라선 그 이상이라 볼 수도 있지.’
당연히 전생에서도 많은 고수가 눈독을 들였다.
‘흑성검과 용신갑도 마찬가지지만 태극신무 비급은 특히나 경쟁이 치열했지.’
무림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많은 은원관계로 얽혀 있다.
자연히 많은 고수들이 경쟁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태극신무 비급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종합해 보면 결국 마교의 망향곡 계획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미끼다.’
대어를 낚으려면 미끼를 잘 골라야 한다.
진사명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몸소 실천했다.
그렇기에 무림맹이라는 대어를 낚을 수 있었던 것.
‘다시 말해, 미끼만 치워버리면 마교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얘기지.’
물론 지금부터 천신우가 하려는 일은 단지 미끼를 치우는 수준이 아니다.
미끼만 꿀꺽 삼키고 낚싯바늘을 끊어버리는 악랄한 행위.
마교 입장에선 끔찍하겠지만, 반대로 천신우 입장에선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려면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겠군.’
원래 계획은 망향곡에 포진한 마교 고수들을 제거하고.
무림맹 인맥을 활용해 보물 쟁탈전을 조기에 진화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은 마교가 망향곡 사건의 미끼로 사용할 보물들부터 선점해야겠지.’
진사명의 책자엔 보물들을 보관한 장소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심지어 보물을 망향곡으로 운송하는 시점까지도.
‘여기 적힌 대로라면 조만간 운반을 시작할 계획이었군.’
그것까진 그렇다 쳐도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미 확보한 보물을 굳이 여러 곳에 분산시켜 보관하고, 운반조차 마교 고수들이 아니라 하부조직에 맡겨놨군. 대체 이유가 뭐지?’
잠시 생각하던 천신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보안 때문이군.’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긴 내가 사사건건 마교의 계획을 방해했으니, 진사명 입장에선 정보가 새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보물의 존재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견물생심이라고.
보물의 존재를 알고 나면 없던 욕심도 생길 것이기에.
모두가 진사명처럼 보물 앞에 초연할 수는 없다.
‘이럼 일이 훨씬 쉬워지겠는데.’
운반을 맡은 하부조직은 자신들이 옮기는 물건이 뭔지도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진사명이 알려줬을 리가 없으니까.
‘망향곡으로 운반되기 전에 가로채면 되겠어.’
목표물은 모두 다섯.
‘최대한 신속하면서도 은밀하게 해치운다.’
목표를 세운 천신우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 * *
망향곡 계획 지휘를 위해 마교 무림맹 지부를 떠나 망향곡 인근 지부에 도착한 혈마단주다.
차근차근 세부계획들을 준비해 나가던 그에게 나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적하기와 마관평이 무신 암살에 실패했습니다.”
충분히 예상한 바였기에 혈마단주는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적하기와 마관평은 무신을 암살할 만한 실력자가 아니었다.
다만 이어진 보고는 혈마단주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도제가 직접 그들을 처단했다고 합니다.”
“그건 예상 밖의 결과군.”
적하기와 마관평은 도천 소속이기 전에 마교의 첩자.
그들의 목표는 암살 성공 여부를 떠나 도제에게 혐의를 전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제는 직접 그들을 응징함으로써 여지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당분간 도제와 무신의 동맹이 흔들릴 가능성은 사라진 셈인가.”
나쁜 소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사명과 흑풍대주로부터 보고가 끊겼습니다.”
지금까지 진사명과 흑풍대주로부터 보고가 누락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이야기.
자연히 혈마단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무슨 일이 생겼군. 알아보도록.”
“이미 마지막으로 보고해 온 장소로 조사인원을 파견했습니다.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기대하지.”
부하를 내보낸 혈마단주의 눈길이 탁자 위에 올려둔 보고서를 향했다.
진사명이 작성한 망향곡 계획 초안이었다.
‘혹시라도 진사명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면 계획이 유출됐을 수도 있겠군.’
물론 혈마단주는 망향곡 계획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계획 자체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이 너무 많았다.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기엔 손해가 막심하다.’
그렇다고 유출됐을지도 모르는 계획을 곧이곧대로 실행할 생각도 없었다.
‘조금 손봐야겠군. 설령 무림맹 놈들이 훼방을 놓더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일순 혈마단주가 눈을 빛냈다.
‘그래. 여차하면 그걸 사용하면 되겠지.’
혈마단주가 떠올린 것은 마교의 천망금쇄진.
망향곡에 모여든 무인들을 일거에 소탕하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혈마단주가 손가락으로 보고서 끄트머리를 툭툭 쳤다.
‘지금쯤이면 출발했겠어.’
진사명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망향곡 계획의 미끼로 사용될 보물들은 닷새 내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실 혈마단주는 아직도 어떤 보물이 미끼로 쓰이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어디서 누구에 의해 운반되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보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진사명이 마교 내부에서 정보가 새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을 철저히 숨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기대되는군. 얼마나 대단한 보물이기에 그리 유난을 떨었는지.’
사냥은 언제나 사내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법.
하물며 이번 사냥감은 무림 전역의 내로라하는 고수들.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 * *
얼굴을 가린 천신우가 오래된 하역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멀리서 하역장 내부구조를 파악한 상황.
담장을 뛰어넘은 천신우는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움직였다.
담장 주변을 지키는 무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천신우는 사각지대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일개 하역장을 지키는 무인들치고는 수준이 높군.’
이곳을 통해 운반되는 물건이 평범하지 않다는 의미.
‘과연 흑성검이 이곳에 있을까.’
기대 반, 의문 반이었다.
천신우는 빠르게 목적지인 창고로 이동했다.
하역장 안엔 여러 곳의 창고가 존재했고 오가는 인부들의 수도 많았다.
무공을 제대로 익히기 전의 천신우라면 인부로 위장하는 방법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기척을 숨기고 그림자처럼 이동하는 것쯤이야 천신우에겐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으니까.
마침내 목적지인 창고에 도착한 천신우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입구 앞에 서 있는 사내의 눈빛이 살벌했다.
다른 창고를 지키는 무인들보다 확실히 수준이 높았다.
‘여기가 확실하군.’
천신우가 사내를 향해 작은 돌을 던졌다.
툭.
순간 사내가 고개를 틀며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천신우가 이미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전혀 기척을 내지 않았기에 사내는 누가 침입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창고 안으로 들어선 천신우는 산더미처럼 쌓인 상자 뒤에 몸을 숨기며 이동했다.
마침내 찾으려던 형태와 정확히 일치하는 상자더미를 발견한 천신우다.
‘저기군.’
진사명의 계획은 흑성검을 다른 검들과 함께 운반하는 것이었다.
‘저 상자들 중 하나에 흑성검이 들어있겠지.’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무인들은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내일 출발이군.”
“긴장되나?”
“그럴 리가. 기껏해야 무기 운반하는 일인데. 그래도 우리를 동원한 걸 보니 제법 값어치가 나가는 모양이야.”
대화를 나누면서도 무인들은 상자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살다 보면 모르는 것이 약일 때가 있다.
그들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
괜히 운반하는 물건에 호기심을 가졌다간 봉변당하기 십상.
그들로선 얌전히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무인들이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천신우는 상자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사실 다른 사람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면 금방 발각됐을 것이다.
하지만 천신우는 그들 모두를 눈 깜짝할 사이에 베어버릴 수 있는 실력자.
발각당할 염려는 없었다.
마침내.
‘찾았다.’
천신우는 흑성검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아주 정교한 잠금장치가 달려있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진사명의 기록과 함께 얻은 열쇠 덕분.
잠금장치를 해제한 천신우는 흑성검을 챙기고 대신 준비해 온 철검을 상자에 보관했다.
굳이 수고를 마다치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나머지 보물들을 얻기 전에 도난 사실이 발각당하면 곤란하기 때문.
다시 잠금장치를 원상 복구해놓은 천신우가 잠시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누구도 천신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
‘저들은 마교 소속은 아니지만 마교의 사주를 받아 온갖 악행을 저지른 자들. 하지만 굳이 내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보물이 바꿔치기 당한 사실이 발각되면 마교 놈들에게 죽을 테니.’
이윽고 유유히 창고를 빠져나온 천신우였다.
‘앞으로 네 곳.’
* * *
마교 망향곡 지부.
혈마단주에게 보고하는 부하의 표정이 심각했다.
“은신처가 완전히 불타버렸다고 합니다.”
“진사명과 흑풍대주는?”
“현장에서 불타버린 시체들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검시결과가 나와야 확실해지겠지만 현재로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끝을 흐리는 부하를 보며 혈마단주는 눈을 반쯤 감았다.
“범인이 누군지 반드시 찾아내도록.”
아무리 반대파벌에 속했다지만 진사명은 마교의 유능한 인재.
그의 죽음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큰일을 앞두고 감상에 빠질 수도 없는 노릇.
평정심을 되찾은 혈마단주가 다른 부하에게 물었다.
“물건은?”
“방금 도착했습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각지에서 망향곡으로 운반된 상자들은 단단히 밀봉된 상태였다.
혈마단주는 직접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똑같은 형태의 상자마다 철검과 서책들이 가득했다.
“제법 공을 들였군.”
혈마단주는 새삼 진사명의 꼼꼼함에 감탄했다.
어지간한 눈썰미로는 보물이 들어있는 상자를 찾아내기 힘들 터였다.
물론 이미 진사명에게 언질을 받았던 혈마단주는 어렵지 않게 다섯 개의 상자를 추려냈다.
진사명에게 받은 여분의 열쇠를 만지작거리던 혈마단주가 피식 웃었다.
“이게 뭐라고 나까지 두근거리는군.”
무림 전역의 고수들을 망향곡으로 불러 모을 미끼라면 보통 보물은 아닐 것이다.
조심스럽게 잠금장치를 해제한 혈마단주가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다음 순간.
기대감으로 가득하던 혈마단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