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학사환생 120화
무신의 시야 안으로 도제의 일장이 날아들었다.
빠르고 정교했으며 위력적이었다.
다음 순간!
파공음을 일으키며 도제의 일장이 무신의 얼굴을 스쳐 갔다.
파아아앙!
순간 공간이 출렁일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무신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제의 동작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었다.
무신을 급습하려던 마교 첩자 적하기조차 도제의 움직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퍽!
느닷없이 가슴을 가격당한 적하기가 반으로 접히며 뒤로 날아갔다.
콰아아앙!
연회장 기둥을 뚫고 날아간 적하기는 반대편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멈춰 섰다.
벽에 처박힌 적하기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즉사한 것이다.
“……!”
적하기와 마찬가지로 마교 첩자인 마관평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계획은 연기로 장내를 어수선하게 만든 다음.
신임 감찰각주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적하기와 함께 무신을 급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하기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나니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독사 앞에 놓인 생쥐처럼 몸이 굳어버린 상황.
그런 마관평을 향해 도제가 움직였다.
저벅.
당당하게 뻗는 걸음걸이에서 강자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누가 시켰느냐.”
마관평은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제는 두 번 묻지 않았다.
공기마저 짓누르는 도제의 기세에 압도당한 마관평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뒤늦게 뒤쪽에 서 있는 거대한 벽을 인지한 마관평이 소리쳤다.
“……무신!”
진퇴양난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앞에는 도제! 뒤에는 무신이라니!
마관평은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다.
도망갈 생각 따윈 사라진 지 오래.
‘처음부터 자살행위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제압당할 줄이야…….’
그러나 정작 무신과 도제는 겁에 질린 마관평을 무시하고 서로 대화를 나눴다.
“정치질만 하고 다니는 줄로 알았다만. 아직 솜씨가 녹슬진 않았구나.”
무신의 솔직한 평가였다.
도제는 세력규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무공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입만 살았군. 아예 네놈 얼굴부터 날려 버릴 것을.”
“그러기 전에 네놈 머리부터 시궁창에 처박혔을 거라곤 생각 못하지?”
신경전을 벌이는 무신과 도제 사이에서 마관평은 침을 꼴깍 삼켰다.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생각한 그가 바닥을 박차려는 순간.
후우욱!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허업!”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숨이 막힌 마관평이 필사적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
그러나 무의미한 일이었다.
도제가 주먹을 쥐는 순간.
우두둑!
마관평의 목뼈가 부러졌다.
“그놈 예측대로군.”
이미 죽은 마관평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도제였다.
확실히 도제는 무신과는 달랐다.
마교의 첩자인 적하기와 마관평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도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아랫사람이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었기에.
“설마 나조차 몰랐던 첩자를 알고 있을 줄이야.”
천신우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에 적잖이 놀란 도제였다.
“……!”
아직까지도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느닷없이 도천의 고수들이 무신을 급습하고.
도제가 그들을 제압하기에 무슨 영문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적하기와 마관평이 암중세력의 첩자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천신우에게 내막을 전해들었던 무신만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놈의 영민함엔 항상 놀라곤 하지.”
“그런 놈이 정작 중요한 순간엔 자리를 비웠다면 뭔가 있겠군.”
마교 첩자의 존재를 밝혀낸 것으로도 모자라 암살시도까지 사전에 예상한 천신우다.
그런데 정작 현장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하다못해 적하기와 마관평을 제압하는 과정에 손만 거들어도 얻는 보상이 적지 않을 터. 대체 무슨 꿍꿍이지?’
당연히 도제로선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무신은 그런 도제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보다 중요한 일이 있는 거겠지.”
* * *
같은 시각.
천신우는 허름한 고서점 앞에 서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고서점이지만, 천신우는 이곳이 마교 근거지 가운데 하나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 마교의 연락책들을 집요하게 뒤쫓은 끝에 알아낸 사실이었다.
‘드디어 찾아냈군.’
마교 연락책들이 어찌나 치밀하게 보안을 유지하는지 추격하느라 애를 먹었던 천신우다.
때로는 같은 장소에서 한나절 이상 머물렀고.
하루 종일 마차를 뒤쫓은 적도 있었다.
이제 고생한 결과물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천신우가 옷깃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복면을 착용하는 편이 확실했지만 그랬다간 쓸데없이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시작해 볼까.’
천신우가 고서점 안으로 소리 없이 들어섰다.
고서점 안엔 계산대를 지키는 주인과 책장을 정리하는 점원이 전부였다.
겉모습은 평범했지만 그들 모두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역력했다.
손님도 없는 서점에서 일하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고수들이었다.
물론 천신우 실력이라면 그들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천신우는 일단 참았다.
‘아직은 아니야.’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시간싸움이다.
고서점 안에 숨겨져 있을 비밀통로를 찾기 전에 소란을 일으키면 천신우만 손해였다.
그만큼 적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게 되니까.
‘이곳이군.’
사전에 알아낸 정보를 통해 천신우는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통로를 찾아냈다.
큼직한 책상을 밀어내면 통로가 드러나는 구조였다.
최대한 조심했지만 하나뿐인 손님을 예의주시하던 점원의 눈에 띄고 말았다.
“……!”
천신우와 점원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하지만 점원이 입을 여는 것보다 천신우가 날린 비수가 빨랐다.
푹!
미간에 비수가 박힌 점원이 쓰러지는 찰나.
바람처럼 쇄도한 천신우가 점원을 받아 바닥에 눕혔다.
계산대에선 보이지 않는 위치였지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천신우는 신속하게 비밀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비밀통로 입구를 지키던 고수가 눈매를 좁히는 순간.
천신우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목을 조이고 머리를 돌려 버렸다.
우두둑!
숨이 끊긴 놈을 바닥에 눕혀놓은 천신우가 비밀통로를 응시했다.
미로처럼 얽힌 비밀통로 저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둘이군.’
천신우가 비밀통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고서점이나 입구에서 전혀 이상 조짐이 없었기 때문인지 놈들은 벽에 기대고 잡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슬슬 교대시간인데.”
“마침 오는군.”
하필 교대시간인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놈들이 교대를 마치길 기다려야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시간을 지체했다간 알아차릴 테니까.
무심코 놈들 중 하나가 뒤를 돌아봤지만 천신우는 이미 몸을 숨긴 후였다.
“뭐라도 있어?”
“아니. 기분 탓인가.”
“피곤해서 그런 거지. 들어가서 눈이라도 붙여두라고.”
동료의 어깨를 두드리던 마교 고수의 눈이 커졌다.
도약해 오는 천신우를 발견한 것이다.
“……!”
그의 눈빛에서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마교 고수가 벼락처럼 돌아섰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다시 고개를 돌리며 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동료는 머리가 깔끔하게 잘려 나간 후였다.
절단된 목에서 피가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잠깐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공중으로 도약한 천신우가 목을 베어버리고 착지한 것이다.
순간 마교 고수의 뇌가 정지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료가 당했는데 어째서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것인지.
이유는 명확했다.
그와 함께 경계를 서던 동료는 목을 움켜쥐며 쓰러지는 중이었다.
교대하러 왔던 다른 동료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구멍 뚫린 배를 바라보고 있었고.
‘대체 어느 틈에?’
의문을 해소할 새도 없이 사내의 눈에 저만치 질주하는 천신우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뭐지?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뒤늦게 가슴에 스며드는 한기를 느꼈다.
고개를 내리자 꿰뚫린 흔적이 보였다.
‘이런 미친!’
미처 인식할 새도 없이 가슴을 찔린 것이다.
한눈에 봐도 살아남기 힘든 치명상이었다.
털썩 무릎 꿇으며 그는 보았다.
질주하던 천신우 앞에 나타난 사내를.
사내는 흑풍대 부대주.
통로를 지키던 무인들과는 격이 다른 고수였다.
어째서 지금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확신했다.
부대주가 나타난 이상 천신우도 쉽지 않을 거라고.
과연 부대주는 수준이 달랐다.
천신우를 보자마자 검을 뽑아드는 부대주의 동작은 방금 쓰러진 무인들보다 훨씬 빨랐다.
하지만 천신우의 검은 그보다도 빨랐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뽑혀 나온 부대주의 검이 미처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기 전에 이미 천신우의 검은 목을 찔러갔다.
‘안 돼!’
마음속 외침이 무색하게 부대주가 울컥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죽기 직전 허공에서 마주친 마교 무인과 부대주의 표정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똑같았다.
하나같이 경악한 얼굴들이었다.
털썩!
머리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의 숨이 끊어졌다.
천신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눈앞에 막다른 벽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보였다.
사다리는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기척이 느껴졌다.
숫자는 둘이었는데 모두 방금 쓰러뜨린 부대주보다도 고수였다.
그들 정도라면 아래서 일어난 소동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반응이 없었다.
‘내가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기습할 속셈이겠지.’
물론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기습은 모르고 당할 때나 위협적이다.
미리 알고 있으면 대처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천신우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더더욱.
콰앙!
천신우는 대놓고 천장을 박살 내며 내부로 진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쏴아앙!
기다렸다는 듯이 천신우 머리 위로 검이 내리쳐졌다.
천신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천신우의 얼굴을 스쳐가는 칼날에 뒤에서 급습해 오는 남자의 모습이 비쳐졌다.
천신우는 그대로 몸을 뒤집으며 날아드는 검을 받아쳤다.
따다다당!
힘에서 밀린 남자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
천신우는 벼락처럼 돌아서며 처음 기습했던 상대를 베어갔다.
상대도 무기력하게 당하진 않았다.
검을 세우며 천신우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 순간, 천신우의 검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
상대의 놀란 눈동자를 향해 천신우의 검이 날아들었다.
푸욱!
눈을 정확히 찌른 천신우의 검이 그대로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촤아악!
얼굴부터 가슴까지 반으로 쪼개진 사내였다.
필사적으로 내질렀던 검은 천신우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췄다.
“확실히 같은 대주라도 수준이 다르군.”
가슴의 표식을 통해 상대가 마교에서 대주급 무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천신우였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상대는 마교 흑풍대주.
같은 대주급이라도 얼마 전에 멸악전단주 암살을 시도했던 마룡대주보다 수준이 확연히 떨어졌다.
냉정히 평가하면 마룡부대주와 비슷하거나 살짝 미치지 못하는 실력.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흑풍대주의 배를 차서 사다리 아래로 떨어뜨린 천신우가 뒤돌아섰다.
“진사명.”
진사명도 천신우를 알아보았다.
이미 장서각에서 천신우와 마주쳤던 진사명이었다.
“……천신우.”
그는 은신처에서 무신 관련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기다리던 소식 대신 천신우가 찾아온 것이다.
천신우가 며칠 전부터 행방이 묘연하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설마 뒤를 쫓고 있었을 줄이야.
“여긴 어떻게 찾았지? 아니. 그보다 내가 누군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인가?”
기습이 실패하고 흑풍대주까지 목숨을 잃은 상황.
그럼에도 진사명은 침착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절명곡부터 이번 연쇄 살인 사건까지 전부 네놈 작품이란 사실도 이미 오래전에 알아냈지.”
천신우가 새빨간 거짓말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진사명을 떠보기 위함.
“어디 보자. 지금쯤이면 망향곡 계획도 준비가 끝났겠군?”
“……!”
진사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진사명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본교에 첩자가 있었구나.”
“글쎄다. 누굴까. 팔마존? 아니면 단주들?”
계속해서 자극했지만 진사명도 더는 당하지 않았다.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군. 그러니 나를 떠보는 거겠지.”
“과연 무림맹 시험 차석답게 눈치가 빠르군.”
“차석이라고?”
“그런 게 있어.”
전생에선 천신우에게 밀려 무림맹 지원전형 차석에 그쳤던 진사명이다.
‘당시 내가 놈의 정체를 알아차렸더라면 무림맹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할 질문이었다.
물론 실망하긴 일렀다.
전생의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으니까.
“진사명. 너는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그리고 마교의 침공 역시 실패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다음 순간.
천신우의 신형이 진사명을 향해 빛처럼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