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학사환생 116화
천신우는 상대의 표식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저건 분명…….’
상대는 마교의 대주급 고수였다.
일전에 용천세를 암살하려 했던 마교 고수나 오늘 하인으로 위장했던 놈들과는 격이 다른 거물.
게다가 지붕 위에 올라선 화사와 한태성의 기세도 심상찮았다.
‘심지어 저 여자는 구왕도 임무에 투입됐었지.’
알고 보니 마교 소속이었던 것.
‘역시 내가 알고 있는 놈들이 전부가 아니었어. 또 다른 마교 놈들이 무림맹에 잠입해 있었군.’
물론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멸악단주 심인기가 분명 거물이고 실력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전력을 투입할 필요는 없을 터.
‘설마…….’
천신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나까지 염두에 둔 건가?’
마교는 2차 암살사건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무림맹에서 미리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교는 지금 그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막든 말든 모조리 쓸어버리겠노라고.
지금까지 신중하게 움직이던 방식과는 달랐다.
마교의 전략이 바뀐 거라 봐야 했다.
‘마교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군.’
그 순간, 천신우와 마주 선 중년인의 기도가 바뀌었다.
“재미있군. 무림맹에도 저만한 신진고수가 있었던가?”
동행한 사내 역시 천신우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저놈이 그놈 같습니다. 천씨세가의 소가주라고 요즘 소문이 자자하잖습니까.”
그들은 마교 마룡대의 대주와 부대주였다.
사실 대주급이라고 하면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마교에서만큼은 아니었다.
마교에서 대주급 인사는 어지간한 중견 문파 수장 이상의 실력자를 의미했다.
특히 마룡대는 마교에서 수라혈검대와 더불어 악명이 드높은 조직.
마룡대주가 피워올리는 기세는 멸악전단주 심인기와 호각을 이룰 정도였다.
심지어 마룡대주를 뒤따라 결혼식장 안으로 난입한 이들도 모두 고수였다.
담장에 기대거나 바닥에 쪼그려 앉은 모습은 질서정연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멸악전단 일반 무인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심인기도 그것을 느꼈다.
“대체 어디서 저런 놈들이……!”
마룡대주가 심인기를 돌아봤다.
“오늘 표적이 저놈인가? 멸악전단주라고?”
“그렇습니다.”
“단주급이면 적어도 시시하진 않겠군.”
마룡대주의 태도는 느긋했다.
지금까지 마교가 무림에서 수행해 온 작전과는 규모부터 달랐다.
지금까진 마교 추종자들 내지는 기껏해야 흑풍대 일부 인원만 동원됐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하인들로 위장해 먼저 투입된 인원들만 해도 마교의 일반 무인들이었다.
추종자들 따위와는 수준이 다른 것이다.
물론 가장 커다란 차이는 마룡대였다.
마룡대의 전력이면 무림맹의 어지간한 단급 무력조직은 쓸어버리고도 남았다.
하물며 완전치 못한 전력의 멸악전단 정도야.
마룡부대주도 흡족한 반응이었다.
“무림맹 측에선 별다른 지원 움직임이 없다는 보고입니다. 확실히 사전준비가 헛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마교 온건파의 승인 아래 진사명이 주도한 사전계획.
그로 인해 마교는 이미 무림 곳곳에 스며든 상태였다.
때문에 무림맹의 비상대응체계는 제때 작동하지 못했다.
“흐흐. 늦게라도 오긴 하겠지. 그땐 이미 신랑 앞에서 신부가 험한 꼴을 당한 후겠지만.”
마룡대주가 사악하게 웃었다.
“자아. 재미 보기 전에 일단 표적부터 해치우자고.”
마룡대주의 명에 마룡부대주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콰아앙!
나가떨어진 마교 고수 하나가 마룡대주 발밑에 나뒹굴었다.
이어 또 다른 마교 고수의 목을 베어낸 천신우가 마룡대주를 향해 쇄도했다.
마룡부대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감히.”
물론 그들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
지붕 위에 서 있던 한태성과 화사가 동시에 몸을 날렸던 것이다.
“저놈은 내가 처리한다.”
“웃기셔.”
쇄도하던 천신우의 머리 위로 한태성의 여래천살봉이 내리쳐졌다.
콰앙!
마치 건물 기둥을 뽑아 휘두르듯 무지막지한 위력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반면 화사의 움직임은 빠르면서도 은밀했다.
무림맹의 일원으로 활동할 때는 검을 썼지만 원래 화사의 주 무기는 기다란 실이었다.
신비한 영물에게서 뽑아낸 실로 상대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내는 것이 그녀의 전투방식.
하지만 천신우는 둘과의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화사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한태성의 여래천살봉을 밀어내는 움직임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멸악전단 무인들을 향해 질주하는 마룡대 고수들까지 제지한 천신우였다.
휙휙휙!
천신우가 날린 비수에 마룡대 고수들이 흠칫했다.
하지만 곧장 천신우에게 달려들진 못했다.
“구경꾼으로 만족할 생각은 아니겠지?”
주위의 마교 고수들을 모조리 베어버린 멸악전단주 심인기가 나선 탓이었다.
“우리는 멸악전단이다!”
심인기의 외침이 위축됐던 멸악전단 무인들을 일깨웠다.
앞선 습격으로 인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그들이건만 고통도 잊고 돌진했다.
마룡대주가 호기롭게 웃었다.
“날파리들이 설치는군.”
멸악전단 무인들의 저항 정도는 이미 계산범위 안이었다.
“일단 날파리들부터 쓸어버리도록.”
마룡부대주가 물었다.
“저놈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그의 시선이 향한 것은 천신우였다.
원래 천신우를 막는 것은 화사와 한태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발을 묶어두기도 힘겨워보였다.
“멸악전단주는 내가 맡을 테니 자네가 가세하게.”
“알겠습니다.”
마룡부대주가 바닥을 박찼다.
한태성과 맞서던 천신우 역시 마룡부대주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어느새 지척까지 접근한 마룡부대주가 손을 뻗어오고 있었다.
천신우는 한태성의 여래천살봉을 밀어낸 반동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켰다.
천신우의 자운검도 덩달아 격렬하게 회전하며 마룡부대주에게 쏘아졌다.
콰콰콰콰!
예상보다 훨씬 빠른 반격에 마룡부대주는 깜짝 놀랐다.
원래 단번에 천신우의 뼈를 으스러뜨리려 했지만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수세로 전환한 마룡부대주의 전신에 기파가 휘몰아쳤다.
츠츠츠츳!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옷이 찢겨져 나가며 충격이 전해졌다.
“크윽!”
마룡부대주가 신음을 토해내는 사이.
한태성은 가까스로 숨을 돌렸다.
일전에 검성과 맞붙어 처참하게 패퇴한 한태성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수중에 여래천살봉이 있는데 상대를 박살 내지 못한다니!
한태성으로선 용납할 수 없었다.
허공으로 솟구친 한태성이 여래천살봉을 그보다 높이 치켜들었다.
내공이 덧씌워진 여래천살봉은 원래 크기 이상으로 거대해졌다.
‘박살 내주지.’
자신 있게 하강하던 한태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천신우 주위에 갑자기 거대한 벽이 생겨났기 때문.
눈을 부릅뜨자 벽은 사라졌다.
실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태성은 깨달았다.
천신우와 자신 사이엔 방금 벽처럼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일 방금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면 천신우를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한태성이 이를 악물었다.
‘오냐! 넘어주마!’
다음 순간.
한태성의 여래천살봉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콰콰콰쾅!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며 땅거죽이 뒤집어졌다.
동시에 먼지구름 속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먹을 불끈 쥐려던 한태성이 멈칫했다.
들려온 것은 천신우의 목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설마…….’
그 순간, 먼지구름을 가르며 날아온 것은 천신우였다.
천신우 너머로 피를 철철 흘리며 무릎 꿇은 화사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안색이 창백했다.
겁에 질린 모습.
도대체 시야가 가려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을 알아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우웃!”
파고드는 천신우의 검을 피해 한태성이 고개를 젖혔다.
빠르고 매서웠다.
여래천살봉을 휘두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옆에서 마룡부대주가 치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어질 천신우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차차차창!
천신우와 검을 부딪치는 마룡부대주의 표정이 심각했다.
부상당한 화사를 도울 여유도 없이 마룡부대주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이대로는……!’
어느 때보다 마룡대주의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마룡대주는 멸악전단주 심인기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심인기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마룡대주를 상대로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장 전체를 돌아보면 마교가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마룡대 고수들은 멸악전단 무인들을 매섭게 밀어붙였다.
천신우의 마음이 급해졌다.
전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천신우로서도 셋을 단숨에 해치우고 합류하기란 쉽지 않았다.
‘승천단의 힘을 사용하는 수밖에.’
사실 승천단의 사용만큼은 가급적 자제해온 천신우였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컸기 때문이다.
탈진한 상황에서 마교의 추가병력이라도 들이닥친다면?
아무리 천신우라도 감당하기 힘들 터였다.
하지만 더 이상 동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미 백산도에서 천씨세가 무인들의 희생을 지켜보며 결심하지 않았던가.
다시는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차아앙!
마룡부대주의 검을 쳐낸 천신우가 승천단의 기운을 끌어올리려는 바로 그때였다.
“마지막 한 수는 아껴두게.”
잔잔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대체 어느 틈에?’
천신우는 물론이고, 마룡부대주와 한태성조차 깜짝 놀랐다.
어느새 전장 한복판에 낯선 중년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여기부턴 내가 맡지.”
전장을 스윽 돌아보는 중년인의 눈가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
“맹주님께선 일단 지켜보라 하셨지만. 맹의 무인들이 다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천신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눈앞의 중년인은 무림맹주의 심복이었다.
정확히는 맹주 직속 감찰조직 소천의 일원.
무림맹이 함락 당하기 직전까지 마교에 맞서 싸우던 그는 본명보다 파천도라는 별호로 유명했다.
‘맹주님도 마교의 존재를 알고 계셨군. 최후의 결전을 위해 최대한 전력 노출을 피한 것뿐.’
전생에서도 천신우가 알지 못하는 물밑에서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파천도는 마룡대 고수들을 향해 다가섰다.
물론 지금 시점에선 거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파천도였다.
그렇기에 마룡대 고수들은 파천도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뭐지? 저놈은?”
“무림맹의 고수인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마룡대주가 경고성을 내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너희는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콰콰콰콰콰!
파천도가 뽑아든 도가 전장을 휩쓸었다.
그 광경은…… 마치 해일이 밀려드는 듯했다.
하지만 마룡대주는 놀라움에 빠져있을 여유가 없었다.
멸악전단주 심인기가 매섭게 파고들었기 때문.
“큭!”
마룡대주가 다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차차차차창!
마룡대주와 심인기의 불꽃 튀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파천도는 그 싸움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미 시체로 변한 마룡대 고수들도 그의 관심 밖이었다.
파천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천신우였다.
‘과연 소문 이상이군.’
파천도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파천도의 합류로 마음이 홀가분해진 천신우는 마룡부대주와 한태성을 사지로 몰아넣는 중이었다.
이미 화사가 치명상을 입고 전장에서 이탈하면서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
부대주와 한태성은 천신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쩌저저저적!
한태성의 여래천살봉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균열이 생기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동강난 여래천살봉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
한태성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여래천살봉은 한태성이 팔마존의 일인인 스승으로부터 하사받은 무기.
지금껏 어떤 무기와 격돌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평범한 무기들은 여래천살봉과 부딪치는 순간 박살 나곤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여래천살봉이 박살 나버린 것이다.
자연히 한태성의 시선이 천신우 손에 쥐어진 자운검을 향했다.
“도대체 그 검은?”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자운검이 한태성의 가슴을 꿰뚫었다.
단숨에 심장을 관통한 자운검을 뽑아내자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한태성은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그 틈을 타, 천신우의 등을 찌르려던 마룡부대주의 눈이 커졌다.
천신우가 벼락처럼 돌아서며 공격을 흘려보냈던 것이다.
한태성의 심장에서 검을 빼내고 마룡부대주의 공격을 피하는 과정이 하나의 동작처럼 이어졌다.
어느새 천신우의 검이 부대주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푸욱!
눈을 부릅뜬 채로 마룡부대주의 숨이 끊어졌다.
천신우는 거침이 없었다.
곧장 화사에게로 돌아선 그였다.
천신우와 화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화사의 눈빛엔 분함이 가득했다.
진사명의 지시를 무시하고 진작 천신우를 쳤다면.
그랬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물론 때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천신우가 입을 열었다.
“너였군.”
화사는 전생에서 구왕도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
그렇기에 화사를 바라보는 천신우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촤아악!
천신우는 거침없이 화사의 목을 잘라냈다.
주위를 돌아보자 무림맹주의 심복 파천도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이내 고개를 돌리자 경악한 표정의 멸악전단 무인들과 함께.
멸악전단주 심인기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룡대주와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치던 그였다.
하지만 파천도의 등장으로 마룡대주가 한눈파는 사이 승기를 잡았고.
끝내 마룡대주의 숨통을 끊어낸 것이다.
물론 심인기의 상태도 멀쩡하진 않았다.
만일 천신우와 파천도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쯤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은 심인기였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천신우를 바라보는 심인기의 눈빛은 무한한 신뢰로 가득했다.
“정말 고생 많았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진심이 담긴 한마디.
그러나 감동의 여운에 젖을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무엇보다 생애 한 번뿐인 결혼식을 망쳐버린 신랑과 신부 앞이었으니까.
그렇게 멸악전단 무인들과 함께 피해를 수습하고 무림맹으로 복귀한 천신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