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학사환생 113화
“……!”
마교 암살자는 깜짝 놀랐다.
경계를 뚫고 용천세의 숙소에 잠입했을 때까지만 해도 실패는 생각지도 않았건만.
설마 누군가에게 뒤를 잡힐 줄이야.
물론 생각은 거기까지.
벼락처럼 돌아서며 검을 휘두르는 마교 암살자였다.
하지만 날카롭게 뻗어진 마교 암살자의 검은 천신우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검을 내지른 자세로 멈춰선 암살자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처음 칼날이 닿아있던 목뿐만 아니라 암살자의 어깨에서 옆구리를 지나 허벅지까지.
길게 선이 그어져 있었다.
뒤를 잡힌 순간 예상은 했지만 천신우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네놈은?”
“이제야 대화할 마음이 드는 모양이군. 그런데 어쩌지. 이미 늦었다만.”
천신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암살자의 몸에 그어진 선을 따라 핏줄기가 솟구쳤다.
촤아아악!
온몸의 피를 쏟아낸 암살자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물론 천신우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느끼지 않으며 용천세를 돌아보았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용천세는 검을 향해 뻗었던 손을 회수했다.
“괜찮다네. 설마 자네가 나를 지켜주고 있을 줄은 몰랐군. 고마우이.”
아직도 맥박이 가쁘게 뛰는 그였다.
천신우가 아니었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행정 쪽에 장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공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암살자의 실력은 정말이지 예상 이상이었다.
자연히 암살자의 배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의 전복을 원하는 자들이라 했던가. 솔직히 긴가민가했는데 오늘 직접 맞닥뜨리니 알겠군. 놈들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용천세가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용천세의 눈빛에선 두려움이나 좌절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네가 무신 선배와 가까운 것을 두고 혼담이 오간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이제 보니 암중세력에 대항하기 위함이었군.”
“그렇습니다.”
천신우는 부인하지 않았다.
용천세 정도 되면 충분히 믿을 만하기에.
마교에서 암살자를 보낸 것이 근거였다.
“내가 도움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힘을 보태고 싶군.”
천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부지부장님께 받아낼 빚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하하하! 그랬군!”
용천세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빚이라면 평생에 걸쳐 갚아도 괜찮네. 그래. 이제 어쩔 생각인가?”
“일단 증거부터 찾아야겠지요.”
천신우는 암살자의 시신을 뒤졌다.
사실 마교 고수들의 시신에서 유효한 증거가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래라면 그렇지.’
하지만 이번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
무림맹을 분열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증거조작이 필수.
당연히 도제의 소행으로 몰기 위한 증거품을 소지하고 있을 터였다.
‘찾았다.’
마침내 도제와 연관된 증거를 찾아낸 천신우였다.
그것은 1차 사건 때보다 훨씬 노골적인 증거였다.
도천의 고수들에게 지급되는 손목보호대로 도천의 표식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설마?”
용천세 역시 손목보호대를 알아보았다.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신 그대롭니다. 도천의 보급품이지요.”
“설마 암중세력과 도천이 연관 있다는 뜻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도제는 주도면밀한 분입니다. 그분이 이런 일을 벌이셨다면 결코 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겠지요.”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도제 선배의 소행으로 몰고 가려는 건가.”
용천세가 무릎을 탁하고 쳤다.
“이제 알겠군! 암중세력은 무림맹을 분열시킬 생각이야!”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내심 용천세의 통찰력에 감탄한 천신우였다.
용천세가 제안했다.
“그렇다면 증거는 신중히 공개해야겠군. 자칫하다간 암중세력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갈 수도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천신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 * *
천신우가 마교 암살자를 제압한 시각.
무림맹 천검단 자검대주의 자택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곳에 잠입해 자검대주를 살해하려던 마교 암살자의 목이 잘려나간 것이다.
암살자를 해치운 사람은 바로 무신의 심복이었다.
그는 암살자의 죽음을 확인한 다음 자검대주에게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놀라지 마시오. 본인은 무신 어르신께서 보낸 사람이오.”
자검대주는 바닥에 쓰러진 암살자와 무신의 심복을 번갈아 보았다.
“대체 누가…….”
“배후가 누군지는 아직 알려드릴 수가 없소. 다만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일은 아니외다.”
무신의 심복이 쐐기를 박았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앞으로의 수사과정 역시 기밀이오. 무림맹의 존망이 달린 일이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소. 물론 적어도 남들을 통해 전해 듣는 일은 없을 거요.”
가장 먼저 수사과정을 공유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무신의 심복은 암살자 시신에서 증거물을 수거했다.
‘이건 도천의 표식이군. 어르신 말씀대로다.’
그가 잠시 자검대주를 바라보았다.
자검대주는 이번 사건의 당사자지만 무작정 모든 사실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암중세력의 계획을 무산시키려면 보안유지는 필수였기에.
“당분간 무신궁의 고수들이 신변을 지켜드릴 것이외다. 너무 심려치 마시오.”
무신의 심복을 바라보는 자검대주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대체 무림맹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 * *
하룻밤에 걸쳐 마교에서 시도한 암살시도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여유 따윈 없었다.
무신은 곧장 모든 증거를 한데 모았다.
“예상대로 도제를 곤경에 빠뜨릴 생각이었군.”
암중세력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심복들 가운데 최정예를 내보내 미리 대비했음에도 가까스로 암살시도를 막아냈다.
만일 천신우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을 터였다.
“이제 어쩌시렵니까?”
심복의 물음에 무신이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사실 증거들을 이용하면 도제의 세력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신의 목적은 무림맹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권력을 잡을 욕심 따윈 없는 무신이었다.
깊은 한숨의 끝자락에 무신이 덧붙였다.
“도제와 자리를 만들도록.”
사실 따로 자리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당장 도제의 칠순잔치가 열리기에.
* * *
도제는 무신과 달리 무림맹 인근에 커다란 장원을 매입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자연히 장원은 도제의 추종자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이 되었다.
도제의 칠순잔치 역시 이곳에서 열릴 예정.
이미 많은 이가 크고 작은 선물을 준비해 장원을 방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잔치의 주인공인 도제는 무림맹에 출근해 공무를 수행했다.
오후 늦게야 귀가한 도제를 맞은 것은 얼마 전에 죽은 무림맹 고수들의 유가족이었다.
자연사로 잠정결론이 내려졌음에도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병도 개인적인 원한도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무림맹에 진정서를 여러 차례 접수했음에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도제를 찾아온 것이다.
수행원들 사이에서 도제를 발견한 유가족들이 바닥에 엎드려 하소연했다.
“도제 어르신!”
“부디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수행원들이 도제에게 귀띔했다.
“얼마 전에 죽은 무인들의 유가족들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의문의 죽음에 대해 보고받은 도제였다.
정황상 증거가 없기에 일단 넘어갔지만 도제는 내심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무신과 마찬가지로 암중세력의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기에.
물론 유가족들을 상대로 그런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
“그만 일어나시구려. 반드시 진실을 밝혀드리겠소.”
도제는 일일이 유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희망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누구보다 정치적인 도제였다.
이런 상황조차 명망을 높일 기회로 이용한 것이다.
유가족들을 돌려보내고 장원 안으로 들어선 도제가 수행원을 돌아봤다.
“무신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사이가 틀어진 이후 서로의 생일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무신과 도제다.
선물 정도나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도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보지.”
* * *
장원의 심처.
도제와 무신이 마주앉았다.
“칠순 축하하네. 우리도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군.”
무신이 준비한 선물을 꺼내놓았다.
물론 도제는 선물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무신도 애초에 생일축하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얼마 전에 무림맹 고수들이 죽은 사건 기억하나?”
“오늘 무슨 날인가. 하나같이 그 얘길 하는군. 남의 잔칫상에 재 뿌리려는 건 아닐 테고.”
“설마. 단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뿐일세.”
무신은 탁자 위에 암살자들로부터 빼앗은 증거물들을 올려놓았다.
증거물을 훑어본 도제가 입가를 비틀었다.
“재미있군.”
무신이 꺼내놓은 것은 도천의 지급품들.
평소라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무신이 직접 가져왔다면 필시 이유가 존재할 터였다.
“이걸 어디서 났지?”
같은 물건이라도 발견된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도제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젯밤에 추가로 암살시도가 있었네. 대상은 일전과 마찬가지로 무림맹의 고수들.”
대략적인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는 도제였다.
“……그렇다는 것은 얼마 전에 죽은 이들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겠군.”
“역시 자네도 짐작하고 있었나. 그렇다면 이해가 빠르겠군. 여기 내놓은 물건들은 암살자들의 소지품일세.”
“그렇군.”
도제는 담담하게 반응했다.
흥분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네놈이 뻔히 눈에 보이는 수작을 부렸을 리는 없을 테고. 역시 그들의 소행인가?”
“편의상 암중세력이라 부르지.”
아직 마교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는 무신이나 도제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암중세력은 무림맹을 분열시킬 속셈 같네. 이번엔 자네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지만,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와 손이라도 잡자는 겐가?”
“그럴 리가 있겠나.”
무신과 도제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경쟁한 그들이었다.
이제 와서 웃으며 손잡기엔 그간 쌓아온 악연의 탑이 너무도 높았다.
“일시적인 휴전 정도로 생각하자고.”
도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무신과의 소모전으로 세력을 소모하는 것은 그로서도 원하지 않는 바였다.
“그렇게 하지.”
무신과 도제가 암중세력에 대항하여 연합전선을 펴는 순간이었다.
* * *
무신과 도제가 밀약을 맺은 사실을 전해 들은 천신우다.
‘역시 도제도 마교의 존재를 짐작하고 있었군.’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전생에 분열했던 무신과 도제가 힘을 합쳤다는 사실.
‘전생보다 훨씬 상황이 좋다. 하지만 마교가 이대로 무너질 리는 없겠지.’
이제 마교의 승부수를 막아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그러려면 먼저 할 일이 있지.’
지금까지 마교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천신우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누구에게도 마교의 실체를 밝히지 않았다.
무신이나 풍뢰권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림맹 3차 연쇄 살인 사건에서 마교와 관련된 단서가 발견됐었지.’
당시엔 감찰각주의 농단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드디어 진실을 밝힐 때가 됐군.’
천신우가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