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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11화 (111/171)

# 111

학사환생 111화

서신은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다뤘다.

무림맹 고수 3명이 며칠 사이 연달아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

그들이 사망한 장소는 모두 침실.

검시 결과, 모두가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렇다 할 단서가 남지 않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

그나마 발견된 흔적도 사건의 실마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무신은 의구심을 품고 사람을 보내 천신우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그리고 무신의 의도대로 천신우는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그 즉시, 확신했다.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이 틀림없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시신의 상태.

희생자가 무림맹 고수라는 사실.

그리고 사건 현장에 남은 의미 모를 흔적.

거의 모든 부분이 전생의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과 일치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이지?’

천신우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은 지금보다 훨씬 이후에 일어났다.

심지어 처음 희생당한 사람 역시 무신이 보내온 서신과는 달랐다.

‘분명 무림맹 제13지부 부지부장 출신인 용천세가 첫 희생자였다. 그런데 벌써 3명이나 죽었는데 용천세는 명단에 없어.’

결론은 명확했다.

천신우는 침음을 삼켰다.

‘내가 아는 미래와 달라졌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예전에도 전생과는 다른 여러 사건을 겪었던 천신우다.

‘검성과 신창이 철혈성 비무대회에 참가한 것도 전생과 달라진 점이었지.’

하지만 변화가 생기더라도 커다란 줄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이번 일도 마찬가지군. 결국 전생과 마찬가지로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니까. 다만 시기와 희생자들의 순서가 달라진 것뿐.’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인은.

‘아마도 내가 마교의 계획을 연거푸 방해했기 때문이겠지.’

위기감을 느낀 마교가 당초 예정된 계획을 앞당긴 것은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천신우는 희생자 명단을 다시금 면밀히 살폈다.

‘확실히 용천세가 빠지긴 했지만 나머지 명단은 전생과 일치한다.’

이번에 희생당한 무림맹 고수들은 전생의 2번째와 3번째. 그리고 5번째 희생자였다.

‘용천세는 아직 제13지부에 머물러서 명단에서 빠진 건가? 그럼 전생의 4번 희생자는 어째서 이번에 살아남았지?’

천신우는 전생에서 4번째로 희생당한 고수가 누군지 기억해 냈다.

‘그래. 이맘때쯤이면 분명 파견임무를 수행 중이었지. 그렇다면 현재 무림맹에 머무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았군.’

대략적인 윤곽이 나왔다.

하지만 고작 서류만으로 상황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천신우다.

‘돌아가서 직접 확인해야겠지.’

천신우는 서신을 반듯하게 접어 보관했다.

“답신은 어떻게 하겠나?”

무영의 물음에 천신우가 대답했다.

“돌아가서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네. 언제 떠날 생각이지?”

“내일 궁주 계승식이 끝나면 바로 떠나려고 합니다.”

원래는 하루 이틀 정도는 머물면서 북해빙궁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이 발발한 지금 북해빙궁에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전생의 후회를 되풀이할 수야 없지.’

각오를 다지는 천신우의 눈동자가 빛났다.

* * *

다음 날.

북해빙궁 궁주 계승식이 예정대로 열렸다.

대공자와 칠 공자 추종세력은 철저히 배제된 가운데, 당대 궁주가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계자들의 경쟁구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에 따라 두문불출해 온 그였다.

궁주에게서 차기 궁주 자리를 계승받을 오늘의 주인공 삼 공녀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 나타났다.

단아한 차림의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선대의 율법에 따라…….”

그런 삼 공녀를 바라보며 천신우는 생각했다.

삼 공녀는 분명 대공자나 칠 공자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산군과 협력해 나간다면 무리 없이 북해빙궁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부디 잘해주기를.’

천신우의 작은 바람이었다.

* * *

마침내 궁주 계승식이 끝나고, 천신우는 삼 공녀와 독대했다.

“정말 이런 순간이 오리라곤 생각 못 했네요.”

삼 공녀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후계구도에서 대공자와 칠 공자에 확연히 밀렸던 그녀다.

궁주가 된 지금의 현실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이 모든 게 소가주 덕분이에요.”

삼 공녀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정말이지 천신우가 아니었다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저는 그저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천신우의 말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린 삼 공녀가 살포시 웃었다.

“물론 약속은 지킬 생각이에요.”

천신우는 삼 공녀를 차기 궁주 자리에 올려준다.

삼 공녀는 천신우에게 한음빙정을 출입할 기회를 제공하고 궁주의 신물을 건넨다.

그게 바로 천신우가 삼 공녀와 맺은 계약이었다.

그리고 천신우는 이미 약속을 이행했다.

이제 삼 공녀 차례.

삼 공녀는 준비해 온 상자를 천신우에게 건넸다.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받았습니다.”

궁주의 신물 가운데 하나인 청안석을 챙긴 천신우다.

청안석은 푸른 바다처럼 빛나는 아주 값진 보석.

북해빙궁을 세운 초대 궁주가 지녔던 것으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물론 천신우가 보석으로서의 값어치 때문에 궁주의 신물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궁주의 신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삼 공녀는 권위를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청안석을 확보한 이상, 삼 공녀는 천신우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의미.

이번 거래로 다가올 마교와의 전쟁에서 북해빙궁의 참전을 사실상 확정 지은 천신우였다.

‘이걸로 북해빙궁에서의 일정은 끝났군.’

천신우는 삼 공녀에게 일정과 관련해 양해를 구했다.

무림맹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 사실까지 밝혀가며.

“그렇군요.”

삼 공녀는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 천신우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녀 곁을 지키던 심복 소월이 청했다.

“궁주님. 이만 들어가시지요. 바람이 찹니다.”

그러나 삼 공녀는 천신우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천신우가 사라지고도 한참이나.

* * *

무림맹.

마교 최고 후기지수 진사명의 숙소.

진사명의 동기인 화사는 포도를 껍질째로 집어삼키며 중얼거렸다.

“너무 조용한데.”

거듭되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진사명은 승부수를 던진 상황이었다.

당초 계획보다 무림맹 요인암살을 앞당긴 것이다.

그러나 아직 무림맹은 조용했다.

“마치 시끄러워지길 바라는 눈치군.”

진사명의 지적에 화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고작 무림맹 모집시험에서 후기지수들 죽어 나갔다고 그리 야단법석을 떨더니.”

진사명도 동의하는 바였다.

사실상 단서를 남기지 않은 완전범죄이긴 했다.

그래도 3명이 연거푸 죽어 나갔으니 조사를 시작할 법도 하건만.

여전히 무림맹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심지어 전부터 마교의 뒷조사를 해오던 무신조차도 잠잠하다.

‘너무 순조롭군.’

이번 요인암살계획의 목적은 향후 침공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들을 미리 제거하는 것.

거기에 더해 무림맹의 주의를 분산하기 위함도 있었다.

망향곡에서 서하로 이어질 마교의 움직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런 계산들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너무 수월해서 오히려 불안하군.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이는 일마다 곤란을 겪었던 진사명이다.

‘그러고 보니…….’

그 순간, 진사명의 뇌리에 떠오른 건 단 한 사람이었다.

‘천신우. 놈이 없었군.’

천신우가 북해빙궁에 갔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한 진사명이다.

삼 공녀와 손잡았고 도천의 고수들을 격퇴했으며, 북해빙궁의 원로 산군을 포섭하고 칠 공자에 이어 대공자까지 제거했다는 소식까지도.

모두 진사명의 손바닥 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진사명은 천신우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군. 이유가 뭐지? 어째서 북해빙궁의 일에 개입한 거지? 당장 도제와 만금소의 연합전선에 맞설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텐데.’

진사명을 빤히 바라보던 화사가 툭하고 내뱉었다.

“괜히 질투심 나게 만드네.”

화사는 진사명이 지금 누구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천신우를 생각할 때면 항상 저런 표정을 짓던 진사명이었으니까.

“허튼짓할 생각하지 말도록.”

진사명의 경고에 화사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어련하시겠어?”

화사의 비웃음에도 진사명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천신우 그놈은 네가 나서지 않아도 죽는다.”

진사명은 천신우를 직접 처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도제와 만금소가 연합해 천신우를 죽일 계책을 준비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지금은 천신우보다 요인암살에 집중할 때다.”

화사의 눈빛이 바뀌었다.

“솜씨가 괜찮던데. 칼잡이가 누구야?”

화사조차 지난 요인암살에 동원된 살수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알려줘도 모를 거다. 괜한 궁금증 갖지 말고 역할에나 충실하도록.”

화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항상 이런 식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화사는 맡은 임무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번 요인암살계획은 단지 무림맹 고수들을 죽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마교에 걸림돌이 되는 거물을 사건의 배후로 몰아, 무림맹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 또한 목적이었다.

표적으로 삼은 거물이 누군지 생각한다면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화사가 떠나고 진사명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듯 하늘은 어둡기만 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인가.”

나직한 중얼거림이 겨울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 * *

북해빙궁을 떠나 마침내 무림맹에 복귀한 천신우다.

이미 정보원들을 통해 그동안 추가희생자가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상황.

‘전생에서도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사건이 일어났었지.’

물론 마교가 단지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생에서처럼 엄한 사람에게 덮어씌울 준비를 하고 있겠지. 그러려고 흔적을 남겨둔 거니까.’

그러니만큼 천신우가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 * *

무림맹 수미관.

익숙한 등이 보였다.

국밥을 맛있게 말아먹고 있는 그는 바로 무신이었다.

천신우가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천씨세가와 무명 모임에서 얼굴을 보긴 했지만.

정작 수미관에서 마주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평소와 달리 무신은 곧장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단 의미.

“서신은 읽어보았느냐?”

“물론입니다. 현장도 둘러보았습니다.”

무림맹으로 복귀하자마자 멸악전단 단주에게 부탁해 사고현장을 둘러본 천신우였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시일이 제법 흐른 만큼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천신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범행은 전생과 마찬가지로 평소 피해자들이 머물던 침실에서 일어났다. 시간대 역시 정확히 일치하고. 틀림없이 마교의 소행이다.’

생각에 잠긴 천신우를 바라보는 무신의 눈에 기대감이 담겼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타살일 가능성이 큽니다.”

“근거는?”

“자연사라고 하기엔 너무나 공교로운 부분이 많으니까요.”

이번에 죽은 무림맹 고수들은 연로하지도 않았고 지병을 앓고 있지도 않았다.

한두 명도 아니고 3명 모두 자연사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밖에.

“게다가 이미 조사해 보셨겠지만 사망자들 모두 청렴하고 능력을 갖춘 인물들입니다.”

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죽어 마땅한 인간이 죽었다면 이렇게 신경 쓰지도 않았을 터였다.

“확실히 벌써 죽기엔 너무도 아까운 인재들이다.”

“심지어 인간관계 역시 깔끔하지요.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무림맹 수사대가 전혀 수사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표적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그 말은.”

무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들의 소행이란 뜻이냐?”

어렴풋하게나마 마교의 존재를 감지한 무신이었다.

아직 그들의 실체가 마교란 사실까진 알아내지 못했지만.

“확실히 그들이라면 이런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지. 계획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일단 제거하고 보는 놈들이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배후라면 이번이 끝이 아닐 겁니다. 잠잠해지면 다시 범행을 저지르겠지요. 무림맹의 세력약화가 목적일 테니 말입니다.”

무신은 천신우의 말에서 핵심을 짚어냈다.

“대비할 방법이 있겠느냐?”

“그들이 표적으로 삼을 만한 대상을 비밀리에 경호하면서 기다려야겠지요. 놈들이 움직일 때까지.”

“다음 표적이 누구일지 짚이는 구석이 있는 것이냐?”

“어느 정도는요.”

사실 전생에서 천신우는 1차 연쇄희생자들이 발생한 시점에 이미 2차 희생자들을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이미 장서각으로 좌천당한 천신우가 의견을 반영시킬 방법은 없었다.

결국 천신우가 예측한 희생자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됐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그러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지금의 천신우는 전생처럼 무기력한 학사가 아니다.

천신우에겐 얼마든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또한 놈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뭐일지도 대충은 예상이 갑니다.”

무신이 눈을 빛냈다.

설마 천신우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그게 무엇이지?”

천신우가 화제를 돌렸다.

“혹시 현장에서 발견된 흔적을 확인해 보셨습니까?”

“물론이다.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전혀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더구나. 설마.”

무신이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너는 현장에 남겨진 흔적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고 있는 것이냐?”

천신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 남은 흔적은 각기 다릅니다. 하나씩만 봐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기 힘듭니다만. 세 가지를 이런 식으로 모아보면 어떨까요?”

현장에 남겨져 있었던 흔적을 토대로 천신우가 새로운 표식을 그려 보였다.

“눈에 익지 않으십니까?”

“글쎄다.”

“그렇다면 그들이 추가로 범행을 저지르고, 그 현장에 추가로 이런 흔적들을 남긴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무신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 모습이다.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지금부터 이 모든 흔적을 합쳐보지요.”

천신우가 완성시킨 표식을 보는 순간, 무신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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