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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09화 (109/171)

# 109

학사환생 109화

불과 하룻밤이다.

하지만 그동안 북해빙궁 전역에 퍼져나간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삼 공녀를 급습하려던 칠 공자의 세력이 천신우에게 역으로 격퇴당하고, 삼 공녀가 그 기세를 몰아 원로회의를 소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연이어 원로회의에서 북천령이 선포됐다는 사실까지 알려졌을 때는 여전히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빌어먹을!”

칠 공자는 분노를 퍼붓는 중이었다.

화풀이 대상은 칠 공자를 도제와 연결해 준 창휘라는 고수였다.

사실 창휘는 마교에서 무림정벌의 사전작업을 위해 파견한 흑풍대 소속이었다.

물론 칠 공자는 창휘의 정체를 알지 못했기에 그를 함부로 대했다.

“이게 대체 뭐요! 당신이 알려준 대로만 하면 내가 북해의 주인이 된다고 했잖소!”

평소라면 감언이설로 칠 공자를 달랬을 창휘지만 오늘은 달랐다.

창휘는 뒷목을 문지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전에 없던 반응에 칠 공자가 멈칫하는 찰나.

창휘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뭐하는 짓이오!”

뒤에서 칠 공자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창휘는 깨끗이 무시했다.

그대로 칠 공자의 거처를 나선 그가 가슴의 북해빙궁 표식을 떼어냈다.

“이딴 곳에 오래도 머물렀군.”

마교는 처음부터 북해빙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의 투자만으로 북해빙궁의 세력을 약화시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이만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다만 삼 공녀가 대권을 잡는 그림은 마교 입장에서도 뜻밖이었다.

‘천신우. 결국 놈이 이번에도 본교의 일을 망쳤군.’

그러나 창휘는 그다지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어차피 본격적인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 중이니. 북해빙궁에서의 손해는 아무것도 아니지.’

북해빙궁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마교에선 여러 계획을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무림맹 요인암살과 더불어 망향곡 계획까지.

마교는 물이 흐르듯 무림정벌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생각에 잠긴 채로 걷는 창휘를 잡아 세운 것은 칠 공자의 심복이었다.

“창휘. 주군께서 찾으신다.”

나이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창휘보다 위로 알려진 상대였다.

하지만 그런 상대를 바라보는 창휘의 눈빛은 따분했다.

마치 눈앞을 알짱대는 벌레를 보듯.

“뭐냐. 그 눈빛은.”

칠 공자의 심복이 탐탁잖은 시선으로 창휘를 노려보는 찰나였다.

푸욱!

칠 공자 심복의 한쪽 팔에 창휘가 던진 비수가 박혔다.

“커헉!”

비수는 손바닥을 뚫고 들어가 칠 공자 심복의 한쪽 팔을 벽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가 반대편 팔을 뻗어 비수를 뽑아내려는 순간.

푹!

반대편 팔에도 똑같이 비수가 꽂혔다.

영락없이 양팔을 봉쇄당한 그가 눈을 부릅떴다.

창휘는 그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정말이지 창휘가 이렇게 빠르고 강하게 비수를 던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그였다.

쉭쉭!

이어 다른 비수들이 날아들었고 정확히 심복의 발등을 꿰뚫었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상대를 보며 창휘는 새로운 비수를 공중에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했다.

그때 비명을 들었는지 누군가 그곳으로 접근했다.

창휘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내기 하나 할까? 가장 처음에 나타나는 놈이 남자라면 살려주마.”

칠 공자 심복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다.

제발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사람이 남자이기를.

하지만 기대는 속절없이 빗나갔다.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칠 공자의 시비였다.

창휘가 사악하게 웃었다.

“아쉽게 됐군.”

서걱!

심복의 목을 잘라낸 창휘가 이어 시비의 목까지 날려 버렸다.

“이만하면 이딴 곳에 머물러준 수고비는 되겠지.”

피를 털어내지도 않고 그곳을 떠나려던 창휘가 멈칫했다.

‘천신우 그놈은 지금쯤 삼 공녀의 본거지에 머물고 있겠군.’

천신우의 존재는 이미 마교 고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 동안 천신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던 창휘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기회가 오겠지.’

그길로 북해빙궁을 떠난 창휘였다.

그것은 북해빙궁에서 마교의 철수를 의미함과 동시에.

무림에 불어올 피바람의 전조이기도 했다.

* * *

삼 공녀의 본거지.

천신우는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칠 공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소. 대공자를 만나 손잡을 것이 확실하오.”

천신우가 고개를 돌리자 산군이 보였다.

북해빙궁 원로들의 수장답게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원로회의를 소집하고 북천령을 선포한 것도 모두 산군의 공이었다.

선물한 천룡주가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

“시간이 늦었습니다. 눈이라도 붙이시지 않고요.”

“걱정 마시구려. 지금 같아선 젊은 시절로 돌아온 기분이라오.”

빈말이 아니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웠음에도 산군의 눈엔 정기가 가득했다.

도저히 어젯밤 일흔일곱 생일을 맞은 사람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대공자와 칠 공자가 손잡게 내버려 둘 생각이시오?”

“그래야 한꺼번에 소탕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천신우의 자신감에 산군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선공을 가해 세력을 약화시켰다고는 하나 아직 대공자는 건재하오. 거기에 칠 공자의 잔여세력이 가세한다면 결코 쉽지 않을 거요.”

“걱정 말고 일전을 준비해 주십시오.”

천신우로선 서둘러 북해빙궁의 일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동안 마교에서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므로.

“알겠소.”

산군은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만큼 천신우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

물론 아직도 실감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칠 공자가 데려온 고수를 그토록 쉽게 제압할 줄이야.’

산군은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 북해빙궁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바깥세상에선 소가주 같은 신진고수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거늘.’

삼 공녀가 집권하면 가장 먼저 후기지수 육성체계부터 개혁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산군에게.

천신우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북해천단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북해천단은 궁주 직속 호위대를 제외하면 북해빙궁에서 최고로 꼽히는 무력집단.

최후의 일전에 앞서 천신우는 산군에게 북해천단 수장과 접촉할 것을 주문했다.

그게 불과 지난밤의 일.

최소한의 시간만이 주어졌음에도 산군은 천신우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북해천단은 이번 후계경쟁에 끼어들지 않을 거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흡족한 표정의 천신우와 달리 산군은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솔직히 북해천단이 삼 공녀를 돕는다면 훨씬 일이 쉬워질 거요. 굳이 그들의 개입을 꺼리는 이유가 있소?”

산군이 공을 들인다면 북해천단의 지지선언을 받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물론 천신우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북해빙궁의 자체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섭니다. 반쪽짜리 북해빙궁과 손잡고 싶진 않으니까요.”

비로소 천신우의 의도를 납득한 산군은 크게 감명받았다.

“부끄럽구려. 외부인인 소가주조차 그렇게 생각하는데…….”

산군은 오직 권력에 혈안이 되어있는 후계자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쉽구나. 그들이 소가주 그릇의 절반만 됐어도, 내 망설이지 않고 힘을 빌려주었을 텐데.’

다시금 아쉬움을 삭이는 산군이었다.

* * *

같은 시각.

대공자는 본인의 집무실에서 칠 공자와 독대하는 중이었다.

“왔구나. 여기 앉아라.”

대공자가 자리를 권했지만 마음 급한 칠 공자는 고개를 저었다.

“자리에 앉아 한가하게 잡담 나눌 시간 따윈 없습니다.”

반면 대공자는 한결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 그라고 지금 상황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공자 또한 삼 공녀의 반격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상황.

다만 그의 그릇이 칠 공자보다 컸기에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 시간이 없다니 나도 장단을 맞춰주마. 10 대 0으로 하자.”

“10 대 0? 설마 내가 사형을 궁주로 만들어줘도 아무것도 챙겨주지 않겠다는 겁니까? 내가 미쳤어요? 그걸 받게?”

칠 공자의 세력이 아무리 축소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대공자의 3할 수준은 됐다.

그럼 적어도 3할의 기여도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칠 공자의 생각이었다.

물론 대공자의 셈법은 달랐다.

“글쎄다. 죽는 것보단 미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네가 나를 궁주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 나는 여전히 궁주가 되기에 충분한 힘을 가졌으니.”

“무슨 근거로 그따위 허언을…….”

코웃음을 치던 칠 공자가 멈칫했다.

“설마 북해천단의 지지를 받아낸 겁니까?”

북해천단은 자타공인 북해빙궁 최강의 전력.

그들을 끌어들인다면 단숨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터였다.

“거의 마무리됐다.”

때마침 대공자의 심복이 문을 두드렸다.

“대공자님.”

“무슨 일이냐.”

“북해천단과 관련한 소식입니다.”

대공자는 잠시 생각한 끝에 지시했다.

“보고하라.”

성과를 칠 공자에게 과시하기 위함.

“북해천단은 삼 공녀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대공자가 칠 공자를 보며 자신 있게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보고는 대공자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더불어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을 거란 입장도 덧붙였습니다.”

대공자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지?”

보고하는 심복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산군이 직접 단주를 만나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잠깐.”

대공자는 물론. 칠 공자도 의문스러웠다.

“산군이 북해천단 단주를 만났는데 사매를 지지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건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일단 정황상으론 그러합니다.”

대공자는 입가를 비틀었다.

“북해천단 없이도 나를 이길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 늙은이가 정신이 나간 게지.”

대공자가 벌떡 일어났다.

“당장 모든 병력을 대기시켜라! 일전에 임할 것이다!”

삼 공녀가 북천령까지 선포했으니 이제 소환명령이 내려올 것은 정해진 수준.

당연히 대공자는 소환에 응할 생각이 없으니 남은 것은 전면전뿐이었다.

“너는 어쩔 거냐?”

대공자의 물음에 칠 공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지금이라도 노선을 바꿔 사저에게 협력한다면 어쩔 겁니까?”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손아귀에 들어온 물건은 절대 놔주지 않는다는 것을.”

대공자가 신호를 보내자 휘하 고수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놀라는 척하진 말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만한 각오는 했을 거 아니냐.”

대공자는 칠 공자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어차피 뒤를 봐주던 외부세력마저 패퇴했으니 이제 너는 이용가치가 없다. 너를 따르던 세력들이야 외부세력으로부터 북해빙궁을 지켜내자는 명분으로 흡수하면 그만이고.”

“젠장! 정말 이렇게 나올 거요!”

칠 공자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지만 무의미했다.

“끌어내도록.”

무인들에게 끌려가는 칠 공자를 보며 대공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골방에서 머리 식히면서 기다려. 나중에 전해주지. 내가 어떻게 승리했는지.”

대공자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대공자님! 급보입니다!”

무인 하나가 집무실 안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지?”

“지금 삼 공녀 진영의 무인들이 정문 앞에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천씨세가 소가주가 그들을 대표해 대공자님을 뵙기를 원한다고…….”

대공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설마 천신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더군다나 이곳까지 오는 동안 보고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대공자가 뿌려둔 정보원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전면전을 준비해라.”

대공자는 그대로 정문으로 향했다.

과연 그곳엔 삼 공녀 진영의 고수들이 집결해 있었다.

물론 대공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 한 사람.

천신우뿐이었다.

“오셨군요.”

천신우가 대공자를 바라보며 명령서를 꺼냈다.

그것은 북천령에 근거한 소환명령서였다.

삼 공녀 진영과 대공자 진영의 고수들이 정문을 두고 대치한 가운데.

소환명령서를 낭독한 천신우가 대공자를 응시했다.

“들으신 대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개인적인 바람 같아선 불필요한 희생은 피했으면 합니다만.”

“웃기는 소리! 그따위 조작된 명령서에 따를 생각 없다!”

고함으로 응수하는 대공자를 보며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거절하시는군요.”

천신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부디 후회하지 마시길.”

다음 순간.

천신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전장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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