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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08화 (108/171)

# 108

학사환생 108화

산군의 생일잔치가 끝나고 밤늦게 각자의 거처로 돌아갔던 대공자와 칠 공자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심사가 불편하긴 했을지언정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천신우가 산군과 독대한들 그게 삼 공녀 지지선언으로 이어질 거라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산군이 천신우가 내민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물론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는 대공자보다는.

삼 공녀에게 밀려 후계서열 3위로 내려앉을 위기에 처한 칠 공자가 받은 충격이 컸다.

* * *

칠 공자의 본거지.

잠에서 깨어나 다급히 집결한 고수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여전히 삼 공녀의 자체세력은 미약합니다만. 거기에 천씨세가와 산군의 세력이 더해졌으니 우리 진영을 넘어섰다고 봐야 합니다. 이젠 대공자가 문제가 아니라 삼 공녀부터 처리해야 할 판이에요.”

“산군도 너무하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부세력과 손을 잡다니!”

지극히 타당한 비난이었지만 칠 공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칠 공자 역시 도제의 세력을 끌어들인 상황이었기에.

물론 정작 칠 공자 본인은 그 사실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칠 공자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미치겠군. 설마 산군이 사저의 손을 들어줄 줄이야. 아니. 천신우 그놈과 손잡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겠지.’

사실 궁주 자리를 놓고 경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삼 공녀는 안중에도 없었던 칠 공자다.

더군다나 천신우라는 변수는 생각도 못 했다.

당연히 뾰족한 대응책이 없을 수밖에.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그것이 세력을 이끄는 수장의 역할이기에.

고심 끝에 칠 공자가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덜컹!

회의실 문이 열리며 연쇄 폭발처럼 충격적인 보고가 전해졌다.

“보고 드립니다! 나선각주가 잡혀갔다고 합니다!”

“서빙루주가 체포되고 모든 재산을 압류당했다는 소식입니다!”

날아드는 급보에 칠 공자 진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허어!”

“설마 산군과 손을 잡자마자 일을 저질렀다는 것인가?”

천신우와 산군의 연합은 당장 오늘 이뤄진 일이었다.

오늘 거사를 결행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천신우는 모두의 예상과 상식을 뛰어넘고 움직였고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천신우…… 네놈이 정말!’

분노가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삼키는 칠 공자였다.

회의에 참석 중인 측근들만 아니었다면 탁자를 엎어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고작 얼굴을 두어 번 마주친 사이건만, 칠 공자에게 있어 천신우는 이제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칠 공자를 필두로 진영 전체가 혼란에 빠진 그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칠 공자.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천의 고수 황대철.

앞서 천신우에게 당한 흑백쌍선보다 실력이 뛰어남에도, 오히려 이름값은 떨어지는 그였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가 구린 배후공작에만 투입됐기 때문.

심지어 황대철 스스로도 그런 역할을 선호했다.

“내게 계책이 있소이다.”

황대철의 길게 찢어진 눈이 음흉하게 빛났다.

비뚤어진 욕망을 지닌 그는 여자 무인들을 힘으로 제압해 겁탈을 일삼아왔다.

이번 북해빙궁 임무에 자원한 것도 삼 공녀가 목적이었다.

그런 황대철의 속셈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칠 공자는 모른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보시지요.”

“지금 삼 공녀를 경호하는 인원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오.”

타당한 분석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천신우와 산군은 북해빙궁의 실력자들을 잡아들이는 중이다.

당연히 삼 공녀의 경호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황 대협의 말씀은 지금 삼 공녀를 노려야 한다는 뜻입니까?”

칠 공자의 물음에 황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요. 우리가 삼 공녀를 확보한다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천씨세가 소가주도 꼼짝 못 할 거요. 명분이 없어지니까.”

사실 황대철은 순전히 삼 공녀가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제안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삼 공녀를 잡는다면 외부인인 천신우는 물론이고 산군조차 입장이 난처해지기에.

칠 공자 역시 동의했다.

‘황대철 이놈 말이 맞다. 산군은 원로. 후계자 가운데 누군가를 지지한다면 모를까. 독자적으로 궁주 자리를 노릴 수는 없는 처지. 사저를 납치할 수만 있다면…….’

황대철이 칠 공자의 결단을 촉구했다.

“칠 공자. 결단을 내려주시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수도 있소이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삼 공녀를 납치하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칠 공자는 결단을 내렸다.

“산군과 천씨세가 소가주가 사저를 내세워 북해빙궁을 장악하려는 꼴을 지켜볼 수만은 없소. 지금이라도 사저를 악인들에게서 구출하는 것이 사제인 내 도리라 생각하오만.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당장 삼 공녀를 이곳으로 모셔오겠습니다!”

황대철을 필두로 도천의 고수들이 몸을 일으켰다.

거기에 칠 공자가 붙여준 심복들이 더해지자 그럴듯한 전력이 구성됐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승부수를 던졌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은 칠 공자였다.

* * *

도천의 고수 황대철은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다.

‘이런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무림 최고의 미녀라 불리는 채은수와 삼 공녀에게 욕정을 품어온 그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황대철이 그녀들을 취하기란 불가능했다.

채은수는 무신의 손녀였고, 삼 공녀 역시 폐쇄적인 북해빙궁 궁주의 제자였으니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겼다.

북해빙궁의 칠 공자가 황대철이 몸담은 도천에 조력을 요청해 온 것이다.

황대철은 소식을 접하는 즉시 북해빙궁 임무에 자원했다.

그리고 숨죽이고 기다린 끝에 마침내 오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연회에서 훑어본 삼 공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는 황대철이었다.

‘흐흐흐. 아주 도도해 보이던데 내가 오늘 밤 네년의 콧대를 꺾어주마.’

그러는 사이 어느덧 삼 공녀의 거처가 가까워졌다.

“바로 저곳입니다.”

길 안내를 맡은 칠 공자 진영의 고수가 멀리 보이는 저택을 가리켰다.

황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끝내지.”

그는 천신우가 흑백쌍선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간을 지체하다가 천신우가 합류하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터였다.

물론 무턱대고 정면으로 급습할 생각은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안에서 문을 열어줄 겁니다.”

칠 공자는 오래전부터 삼 공녀 진영에 첩자를 심어놓은 상황.

소란을 피울 것도 없었다.

첩자가 열어주는 문으로 들이닥쳐 순식간에 삼 공녀를 제압할 계획이었다.

그런 칠 공자 측의 계획은 문이 열리는 것까지는 맞아떨어졌다.

끼이익-

정문이 열리며 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첩자의 얼굴을 알아본 칠 공자의 심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네.”

하지만 동행한 황대철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었다.

첩자의 안색만 봐도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기란 어렵지 않았다.

뒤늦게 칠 공자의 심복도 첩자의 안색이 창백함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네. 이번 일만 끝나면…….”

말을 맺기도 전에 첩자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가 잘려 나간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촤아악!

“이런 미친!”

칠 공자의 심복이 기겁하며 검을 뽑았다.

첩자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쓰러진 첩자 뒤에서 나타난 것은 천신우였다.

“소가주?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천신우를 알아본 칠 공자 진영 고수들이 경악했다.

천신우가 산군과 함께 북해빙궁 실력자들을 잡아들이는 공백을 노린 그들이었다.

설마 천신우가 삼 공녀의 거처에서 모습을 드러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설마…… 우리가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하고 함정을 팠단 말인가?”

천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궁지에 몰린 칠 공자가 개수작 부릴 거라 예상은 했지. 그렇다고 함정까지 파가며 기다리진 않았고.”

“그럼……?”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모든 일을 마쳤으니 복귀하지 않았겠어요?”

뒤쪽에서 걸어온 것은 삼 공녀였다.

그제야 칠 공자 진영의 고수들은 보았다.

삼 공녀 저택 앞뜰에 무릎 꿇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은 당장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북해빙궁을 주름잡던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굴비 두릅처럼 줄줄이 묶인 신세였다.

그들 중엔 천신우의 암살을 도모했던 대모 설상영도 있었다.

한쪽 팔이 잘린 그녀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럴 수가…….”

칠 공자 진영의 고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간밤에 북해빙궁 유수의 실력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증거를 들이대고 혐의를 입증한다고 해서 순순히 포박당할 이들이 아니거늘.

“상황파악이 됐거든 이제 그만 포기하시게.”

뒷짐을 지며 나타난 것은 산군이었다.

칠 공자의 심복들은 정말이지 눈앞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천신우에 이어 산군까지.

이제 삼 공녀를 납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그들의 안전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자연히 그들의 시선이 황대철에게로 몰렸다.

도천의 고수인 황대철이 나서준다면 상황을 무마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실제로 황대철은 그다지 긴장한 얼굴이 아니었다.

“소가주. 이렇게 다시 보는군.”

오히려 황대철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다른 곳도 아니고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다.

아무리 천신우라도 도제의 심복인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천신우는 대꾸하는 대신 황대철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천신우의 기세에 눌린 칠 공자 진영의 고수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도천의 고수들도 황대철의 눈치만 봤다.

흑백쌍선이 당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황대철 앞에 마주 선 천신우가 턱짓했다.

“모조리 포박하도록.”

천신우의 명을 받은 천씨세가 고수들이 다가오자 황대철이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가?”

“물론.”

천신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허락 없이 야밤에 침입한 자들을 체포한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천신우가 정곡을 찌르자 황대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건방진!”

황대철이 참지 못하고 도를 뽑으려는 순간.

빠각!

천신우의 발차기가 종아리를 강타했다.

다리가 풀려 휘청거리는 황대철의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황대철의 면상을 걷어차 기절시킨 천신우가 손을 털며 고갯짓했다.

“전부 묶어서 가두도록.”

“명을 받듭니다.”

천씨세가 고수들이 도천의 고수들과 칠 공자 심복들을 포위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대부분은 순순히 투항했다.

황대철을 단숨에 제압한 천신우의 무위에 압도당한 것이다.

상황이 종료되자 삼 공녀가 천신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칠 공자와 이들의 몸값을 협상하실 생각인가요?”

아주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칠 공자 입장에선 그렇게 해서라도 전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

물론 천신우의 생각은 삼 공녀의 추측과는 달랐다.

“아니요. 칠 공자는 몸값협상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천신우가 잡아넣은 북해빙궁의 실력자 중에는 칠 공자를 지원하던 이들도 많았다.

거기에 도천의 고수들과 칠 공자의 심복들까지 줄줄이 잡아들인 상황.

칠 공자가 그들 모두의 몸값을 지불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겠지요. 아마 대공자를 찾아가 손을 잡자고 제의할 겁니다. 대공자 또한 그러길 기다리고 있을 테고요.”

칠 공자보다는 상황이 낫다지만 대공자 역시 지지자 여럿을 잃었다.

이대로라면 삼 공녀가 판세를 뒤엎고 궁주 자리를 차지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들이 손잡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 무대가 준비됐으니까요.”

삼 공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산군이 대답을 대신했다.

“삼 공녀. 혹시 북천령에 대해 들어보았소?”

“북천령이라면 분명…….”

북천령은 원로회의 정족수 7할이 찬성할 경우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제도.

북천령을 선포한 사람은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북천령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한 경우는 북해빙궁 역사를 통틀어도 거의 없었다.

원로회의 정족수 7할을 채우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하지만 북천령은 궁주님께서 거부하시면 아무런 효력이 없는 거로 아는데요.”

천신우는 삼 공녀가 제기한 의문을 반박했다.

“북해빙궁 궁주들은 제자들의 후계경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전생에서 칠 공자가 후계경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바로 북천령이었다.

“그럼…….”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원로회의를 소집하고 북천령을 선포하십시오. 그런 다음 대공자와 칠 공자를 소환해 그들의 죄를 물으시면 됩니다.”

“과연 사형과 사제가 순순히 응할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신우는 주위를 돌아보며 선언했다.

“저와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천신우의 선언은 그곳에 있던 모두의 가슴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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