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환생-103화 (103/171)

# 103

학사환생 103화

제자 검귀를 죽이라는 검신의 발언.

그의 말에 천신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검신의 본심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검귀를 꺾어야 천룡주를 내주겠다는 뜻이군.’

정말이지 상대가 누구든 죽기 살기로 싸운다고 알려진 검귀였다.

그런 검귀와 어설프게 맞섰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결국, 검신은 천신우에게 전력을 다해 검귀와 싸우라고 주문한 것이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였겠지.’

일전에 무신과 풍뢰권을 따라 무명 모임에 동석했다가 검귀와 격돌했던 천신우다.

당시 단 한 차례 격돌만으로 어깨에 부상을 입었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해졌다.’

벽을 넘었고 검성을 통해 벽 너머 첫 번째 계단을 오를 실마리마저 발견했다.

그렇게 달라진 눈으로 천신우는 검귀를 바라보았다.

검을 가슴팍에 안고 있는 검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천신우는 느낄 수 있었다.

검귀가 모든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태라는 것을.

다음 순간, 눈을 뜬 검귀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달라졌군. 그때와는.”

검귀 역시 천신우가 강해졌음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물론 검귀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뻐하는 표정.

아주 약간의 표정 변화일 뿐이었지만 천신우는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때마침 공터에 내려앉은 작은 새가 부리로 벌레를 쪼려는 순간.

철컥!

칼자루에서 뽑혀 나온 검귀의 검이 순식간에 천신우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

그 순간 검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자인 검귀 때문이 아니었다.

검귀의 검이야 수도 없이 봐온 검신이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오직 하나.

천신우의 검이 검귀의 검보다 한발 앞서 경로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스가가가각!

검귀의 검을 밀어낸 천신우의 검이 그대로 춤을 추듯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

검귀의 눈에 핏발이 섰다.

천신우와 검귀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쩌어엉!

검귀가 천신우의 검을 튕겨내며 훌쩍 몸을 솟구쳤다.

그제야 벌레를 낚아챈 작은 새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공터 옆의 나무 위에 내려선 검귀의 눈동자가 전율로 가득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천신우가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 만에 성취를 이뤄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천신우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파아아앗!

빛살처럼 쇄도한 천신우의 검이 가로로 그어졌다.

쏴아앙!

검귀가 서 있던 나무가 반으로 쪼개졌다.

물론 천신우의 검이 날아드는 순간 이미 그곳을 벗어난 검귀였다.

솨아악!

어느새 천신우의 뒤에서 나타난 검귀가 검을 내려쳤다.

천신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까앙!

경쾌한 금속성을 시작으로 천신우와 검귀는 정신없이 공방을 주고받았다.

경쾌하게 날아드는 검귀의 검을 천신우는 정확히 보았다.

빠르고 날카로웠다.

천신우가 자운검으로 검귀의 공격을 쳐내려는 찰나.

검귀가 손목을 비틀었다.

검귀의 검이 순식간에 변화하며 세 방향에서 날아들었다.

쉭쉭쉭!

천신우가 집중하며 날아오는 검귀의 검을 모조리 쳐냈다.

차차창!

손목이 끊어지는 충격을 참아내며 천신우가 검을 내질렀다.

“헙!”

가까스로 피해낸 검귀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켰다.

그만큼 천신우의 반격이 매서웠다.

심지어 자신의 삼조격을 막아내고 날린 일격이었다.

‘어지간한 상대들은 막아내지도 못한 초식이건만.’

“…….”

천신우와 검귀의 시선이 교차했다.

아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파앗!

천신우가 다시 몸을 날렸다.

검과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임이 매끄러웠다.

따다당!

천신우와 검귀의 검이 다시금 부딪혔다.

찰나의 순간에도 여러 차례의 공방이 오갔다.

한 수 한 수가 너무도 위협적이었다.

누구라도 아주 작은 실수라도 했다간 바로 목이 날아갈 터였다.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법한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천신우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즐겼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다고.

검귀와의 사투에서 오는 짜릿함이 그 보상이었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에 기대 천신우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검귀 역시 높이 솟구쳤다.

쉬익! 쉬이이익!

천신우와 검귀의 검이 허공을 수놓았다.

차차차차창!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수십 개의 불꽃이 생겨났다.

불꽃은 선이 되어 허공에 길게 이어졌다.

그 선들은 천신우와 검귀가 걸어온 검의 길과도 같았다.

이미 그들의 싸움은 검과 검의 충돌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살아온 삶의 충돌이었다.

누가 옳은지는 오직 검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

검신은 술 마시는 것조차 잊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쪽의 실력만 뛰어나선 절대 나올 수 없는 절경이었다.

한순간이라도 균형이 무너진다면 다시는 보지 못할 광경.

검신은 그 승부의 아슬아슬함이 너무도 좋았다.

술을 좋아했지만, 그 이상으로 검을 사랑하는 검신이었다.

이 순간에도 천신우와 검귀의 공방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따다다다다당!

마침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그들이 검으로 서로를 밀어내며 물러났다.

바닥에 사뿐히 내려선 천신우와 검귀는 숨을 고르며 대치했다.

물론 휴전협정을 맺은 건 아니었다.

한순간이라도 호흡이 거칠어진다면 그 즉시 서로를 향해 검을 날릴 터였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긴장감을 느끼며 검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신우.”

겨우 이름을 부른 것뿐이지만 그 안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천신우도 그 의미를 깨닫고 대꾸했다.

“검귀.”

검귀가 정정했다.

“소우현.”

검신이 눈을 빛냈다.

제자가 생판 남인 상대에게 본명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스승인 자신에게도 본명을 알려주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거늘.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단 말이지.’

물론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름만을 주고받은 천신우와 검귀 소우현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천신우의 발밑에서 시작된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검귀 소우현의 옷깃 역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펄럭였다.

지금까지의 격돌이 기술과 속도의 대결이었다면.

이제 힘으로 맞붙으려는 두 사람이었다.

다음 순간!

천신우와 검귀 소우현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천신우가 내지른 검이 검귀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검귀의 공격은 천신우의 어깨 옆을 스쳤다.

서로에게 타격을 주진 못했지만, 위력만큼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콰아아앙!

공터 옆의 나무들이 박살 나고 바닥에 구덩이가 생겼다.

사방으로 솟구치는 흙먼지 속으로 천신우가 뛰어들었다.

공간을 가르는 자운검의 움직임이 심상찮았다.

천무검법의 제8초식 연환무도였다.

마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듯 날아드는 천신우의 검에 맞서 검귀도 최고의 초식을 펼쳤다.

검신의 무공을 검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초식이었다.

콰콰콰콰쾅!

천신우의 검과 검귀의 검이 충돌하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흙먼지가 계속해서 터져나가며 사방을 뒤덮었다.

시야가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도 검신은 천신우와 검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천신우의 검은 부딪치는 모든 것을 박살 내며 검귀에게 날아들었다.

누구라도 믿지 못할 터였다.

지금 천신우가 펼치는 무공이 무림에서 오랜 세월 동안 멸시당해온 천무검법이란 사실을.

콰콰콰콰쾅!

가공할 파괴력에도 검귀는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순식간에 공간을 좁히며 달려드는 검귀였다.

천신우의 검이 뿜어내는 기파에 옷이 찢겨 나가고 근육이 찢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지금만을 기다린 것처럼 검귀가 검을 내질렀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었다.

촤아아악!

천신우의 가슴에서 길게 피가 튀었다.

결코 가벼운 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천신우 역시 쇄도를 멈추지 않았다.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천신우와 검귀의 검이 매섭게 부딪쳤다.

채채채채채챙!

십여 차례의 격돌 끝에 검귀의 검이 천신우의 어깨를 베었다.

동시에 천신우의 검도 검귀의 가슴을 갈랐다.

바로 그 순간!

천신우가 검귀에게 돌진했다.

“……!”

검귀가 내질렀지만 천신우의 예상범위 안이었다.

얼굴을 젖히며 피한 천신우가 그대로 검귀에게 몸을 부딪쳤다.

콰앙!

엄청난 충격에 검귀의 몸이 흔들렸다.

시야마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은 검귀였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천신우의 검이 날아들었다.

검귀도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런 상황에서 내보일 수 있는 최고의 반격이었다.

만일 다른 상대였다면 분명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상대는 천신우였다.

정말이지 한 끗 차로 피해낸 천신우가 검귀의 목을 잘라내려는 순간.

천신우가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따앙!

천신우의 검이 튕겨낸 것은 술병마개였다.

나무껍질로 만든 것이었지만 어떤 검보다 묵직하게 느껴졌다.

천신우가 술병마개를 튕겨낸 것에 반해 검귀의 반응은 한발 늦었다.

술병마개가 검귀의 검을 쳐낸 모양새였다.

천신우와 검귀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엔 검신이 서 있었다.

검신이 천신우를 향해 술병을 집어 던졌다.

“가져가라.”

손을 뻗어 술병을 받아든 천신우는 깜짝 놀랐다.

용과 구름이 조각된 술병은 누가 봐도 명품이었다.

그 자체로 엄청난 값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천신우를 충격에 빠뜨린 건 그 내용물이었다.

술병 속에서 찰랑거리는 느낌이 여느 술들과는 달랐다.

마치 구름 위를 거니는 느낌.

“그것이 네가 원하던 천룡주다.”

굳이 검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검신이 작은 약병 하나를 더 던졌다.

“상처에 바르면 하루 만에 아물 것이다.”

약병의 내용물 역시 명문 의가인 유가장의 비전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약속을 지킨 검신에 대한 예의였다.

검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다른 용건은?”

명백한 축객령.

“없습니다.”

천신우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천룡주를 챙겨 그곳을 떠났다.

천신우가 사라지고도 검귀는 한참이나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정말 종잇장 한 장 차이였지만 어쨌든 자신의 패배였다.

만일 스승 검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검귀는 지금쯤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문득 검신이 물었다.

“내가 너를 거둘 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검귀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그 날의 기억.

분명 그날 스승은 자신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었다.

“모든 인간에겐 세 개의 목숨이 있다. 그리고 저는 그중 하나를 오늘 잃었다고 하셨지요.”

“그래. 분명 그렇게 말했다.”

검신이 검귀를 거둔 건 알량한 동정심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검귀에게서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었다.

만일 검귀에게 재능이 없었다면 검신은 그가 죽든 말든 상관치 않고 그곳을 떠났을 터였다.

“지금 너는 또 하나의 목숨을 잃었다. 이제 너에겐 단 하나의 목숨만이 남았다.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

다시는 검귀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을 거라고 에둘러 말하는 검신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철컥.

검을 집어넣은 검귀가 천신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뼈저린 패배였지만 소득도 있었다.

벽 너머 첫 번째 계단을 오를 실마리를 찾은 것.

“다음에 만난다면 오늘과는 다를 거다.”

검귀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 * *

검신에게서 천룡주를 얻어낸 천신우는 그날로 천씨세가 고수들과 함께 북해빙궁으로 떠났다.

북해빙궁의 출입절차는 아주 까다롭기로 유명했지만, 걸림돌은 없었다.

천신우를 초대한 삼 공녀 측에서 필요한 조치를 해놨기 때문이었다.

천신우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아직 최소한의 영향력은 남아 있는 모양이군. 하긴 이 정도 힘조차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그렇게 북해빙궁 내에 있는 숙소로 안내받은 천신우다.

그곳에서 삼 공녀와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초 예정과 달리 천신우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삼 공녀가 아니었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북해빙궁의 무인이 다가와 보고하는 순간.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천신우가 고개를 돌리자 당당하게 걸어오는 잿빛 털옷의 청년이 보였다.

천신우가 눈매를 좁혔다.

‘누구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