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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02화 (102/171)

# 102

학사환생 102화

“지금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군.”

흑백쌍선 중에 동생 백선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천의 고수들이 천씨세가의 호위들을 따돌린 틈을 타서 천신우를 제거하는 것이 당초 그들의 계획이었다.

사실 아주 계획이 틀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천신우는 홀로 흑백쌍선과 마주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천신우가 상황을 주도했다는 점이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백선뿐만 아니라 형인 흑선도 아까부터 주위를 살폈지만 다른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천신우는 혼자서 흑백쌍선을 이곳으로 유인한 것이다.

‘정황으로 보건대 이미 우리 측의 무인들은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면 놈은 어째서 혼자 나타난 거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더냐?”

백선이 복면을 벗어 던졌다.

사실 흑백쌍선 정도 되는 고수라면 복면의 착용 여부는 싸움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복면을 벗은 것은 승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형보다 성격이 급한 백선이었지만 싸움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진지했다.

스르릉.

길고 가느다란 칼날이 칼집에서 뽑혀 나왔다.

흑선 역시 검을 뽑았다.

눈이 마주친 흑백쌍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쌍둥이 형제답게 어려서부터 많이도 다퉜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등을 맞대고 싸울 때면 누구보다 서로가 든든했다.

“하긴 무림에서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나.”

“무슨 속셈으로 혼자서 우릴 유인했는지 모르겠지만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쌍둥이 형제라고 해서 싸우는 방식도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동생인 백선이 앞장서면 형인 흑선이 뒤를 받치는 식이었다.

백선의 파괴력과 흑선의 수비력을 극대화하는 전술이었다.

그런 식으로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도 쓰러뜨려 온 흑백쌍선이었다.

당연히 오늘도 다르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천신우는 지금껏 그들이 상대해 온 고수들과는 달랐다.

파앗!

평소라면 백선이 싸움의 포문을 열었을 테지만 먼저 달려든 것은 천신우였다.

솨아아아악!

천신우의 자운검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앞장서려던 백선은 깜짝 놀랐다.

“……!”

‘천신우의 무공수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사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일격만으로도 천신우의 무공은 그들이 입수한 정보를 아득히 뛰어넘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러서라!”

형인 흑선은 동생보다 침착하게 반응했다.

천신우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옆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내지른 것이다.

솨악!

경쾌한 바람 소리가 대나무숲을 갈랐다.

“됐어!”

흑선의 검이 천신우의 몸을 잘라내는 것을 목격한 백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면 흑선의 표정은 굳어졌다.

백선도 한발 늦게 알아차렸다.

천신우가 흑선의 공격을 너무도 깔끔하게 피해냈음을.

잘려 나간 것은 천신우가 아니라 대나무였다.

백선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할 만큼 천신우의 움직임이 절묘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흑선은 흔들리는 눈으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길게 잘려 나가 있었다.

“형님!”

동생과 눈이 마주친 흑선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달아나라고 충고하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흑선의 가슴을 잘라낸 검이 이번엔 동생 백선을 향하고 있었다.

절망에 빠진 흑선과 달리 백선은 눈을 부릅떴다.

“어림없다!”

백선이 검을 휘두르며 천신우를 향해 쇄도했다.

차차차창!

대나무숲에서 천신우와 백선이 서로 엉키며 검을 주고받았다.

높이 자란 대나무들이 잘려 나가며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물론 백선을 경악하게 만든 사실은 따로 있었다.

방심 따윈 하지 않았음에도 천신우의 검은 너무 빨랐다.

눈으로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런 미친!”

고함을 지르던 백선의 옆구리가 길게 베였다.

촤아아악!

순간적으로 검이 날아드는 부위에 내공을 끌어올렸지만 소용없었다.

천신우의 일격은 백선의 호신강기마저 베어버렸다.

“크윽!”

상처를 제대로 지혈할 새도 없이 흑선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가세했다.

차차차차창!

대나무숲을 무대로 천신우와 흑백쌍선의 대결이 펼쳐졌다.

천신우는 흑백쌍선을 한꺼번에 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백선의 파괴력을 상회하는 공격력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흑선의 수비력을 뛰어넘는 방어를 선보였다.

십여 차례의 공방이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백선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흑선은 신음을 토했다.

“크흠!”

천신우에게는 그들의 합공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미 월풍에 대한 생각 따윈 머릿속에서 지운 흑백쌍선이었다.

당장 자신들 목숨을 걱정해야 했다.

차차차창!

다시 검과 검이 충돌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충격에 흑선과 백선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동시에 형제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검이 사이좋게 바닥에 처박혔다.

황급히 예비용 검을 뽑았지만 이미 손아귀는 깊게 찢어진 후였다.

응급처치할 틈도 주지 않고 천신우가 백선에게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백선이 흑선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백선은 천신우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뛰어들었다.

천신우의 자운검이 백선의 가슴을 꿰뚫었다.

백선이 내지른 검은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혹시나 하는 공격이 빗나갔지만, 백선의 표정은 밝았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쏴아앙!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흑선이 천신우를 향해 일격을 날린 것이다.

동생 백선이 목숨을 담보로 만들어준 기회,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 기회가 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둘이서 당해내지 못한 천신우를 흑선 혼자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기에 흑선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담았다.

백선이 울컥 피를 토해내는 순간 흑선의 검이 천신우에게 날아들었다.

천신우의 검은 여전히 백선의 가슴에 박혀 있기에 반격은 불가능한 상황. 피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거짓말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검을 놓아버린 천신우가 자연스럽게 백선을 방패 삼으며 돌아선 것이다.

흑선이 다급히 검의 경로를 수정했지만 이미 천신우에게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오히려 백선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비겁한!”

흑선의 외침에 반응하는 대신 천신우는 백선의 가슴에서 자운검을 뽑아냈다.

검을 뽑아내고 다시 휘두르는 일련의 동작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천신우의 자운검이 바람을 찢었다.

쐐애애액!

흑선이 창피함을 느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나는 일격이었다.

다음 순간.

날아드는 천신우의 검을 멍하게 쳐다보던 흑선이 튕겨 나갔다.

콰콰쾅!

흑선 뒤쪽의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흑선은 그곳을 보고 있지 않았다.

흑선의 시선은 동생 백선이 서 있는 곳을 향했다.

백선은 제자리에 서 있었다.

흑선과 눈이 마주친 백선이 희미하게 웃었다.

주르륵.

입가에서 피가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형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대가였다.

이미 중상을 입은 후였기에 가망이 없었다.

“형님…….”

다음 순간.

서걱!

백선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백선을 베어 넘긴 천신우가 흑선에게로 접근했다.

동생을 눈앞에서 죽인 상대임에도 흑선은 복수심보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정말이지 괴물 같은 놈이구나.”

이빨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흑선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백선이 죽은 순간 흑선 역시 살아남을 가능성은 사라진 상황.

그렇다면 최소한 죽은 동생에게 부끄럽지는 말아야지 않겠는가.

‘적어도 팔 하나는 데려가주마.’

물론 흑선의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흑선의 최후의 일격을 가볍게 피해낸 천신우가 안으로 파고들며 검을 찔러 넣은 것이다.

푸우욱!

검을 뽑자 피가 왈칵 쏟아졌다.

백선에 이어 흑선의 숨통까지 끊어낸 천신우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흑백쌍선은 도제의 측근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고수들이었다.

그들의 합공에 쓰러진 고수 중에 천신우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여럿이었다.

그런 고수들을 천신우 혼자 쓰러뜨린 것이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

그러나 천신우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젠 딱히 놀랄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만큼 강해졌기에.

‘흑백쌍선은 처리했고. 도천의 고수들도 이쯤이면 정리됐겠군.’

흑백쌍선의 움직임을 한발 앞서 포착한 천신우였다.

도천의 고수들은 천씨세가 고수들에게 맡기고 직접 흑백쌍선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흑백쌍선이 동원한 고수들이 도천의 주력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써 월풍은 끝났군.’

이번 일로 월풍은 도제의 신임을 완전히 잃을 것이다.

도제라는 강력한 배경이 사라진 월풍은 허수아비 신세.

‘굳이 제거할 필요도 없겠지.’

문제는 도제가 어떻게 나오느냐.

당연히 잘못은 사적인 원한을 구실로 천신우를 급습한 도제 측에 있다.

하지만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도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천신우를 공격할 가능성이 컸다.

‘어떤 식으로든 도제와는 끝장을 보게 되겠군.’

당장 무대도 마련되어 있다.

‘북해빙궁. 거기서 확실하게 기선제압을 해야겠지.’

이후엔 감찰각주 건을 놓고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모든 일이 순조롭다. 변수는 마교가 북해빙궁 암투에 얼마나 개입하느냐.’

전생에서처럼 소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일은 생각 이상으로 쉽게 풀릴 터였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대비해야겠지.’

천신우는 북해빙궁에 데려갈 고수들의 명단을 머릿속으로 추리기 시작했다.

* * *

무림맹으로 복귀하자마자 북해빙궁에 동행할 고수들 명단을 추린 천신우다.

그러나 당장 북해빙궁을 방문하진 않았다.

‘무작정 북해빙궁에 간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야.’

현재 북해빙궁 후계구도에서 가장 유리한 것은 대공자.

다음이 칠 공자고 삼 공녀는 마지막이다.

그러나 삼 공녀가 대세를 뒤집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북해빙궁 내엔 아직 누구에게도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중도세력이 남아 있으니까.

‘원로들. 그들을 삼 공녀 진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전생에서 북해빙궁 원로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은 바로 칠 공자였다.

그는 중도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대공자와 삼 공녀를 제거하고 북해빙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천신우는 칠 공자가 어떤 조건으로 원로들의 지지를 얻어냈는지 기억했다.

그리고 지금의 천신우는 칠 공자의 조건을 뛰어넘는 조건을 제시할 능력이 있었다.

‘물론 원로들을 협상 자리로 끌어내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특히 원로들의 수장 격인 산군을 만나야 한다.’

북해빙궁 원로 중에서 거두로 꼽히는 산군은 만나기 어려운 인물로 유명했다.

외부인들은 물론. 북해빙궁 내부에서도 산군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대공자와 칠 공자 역시 공을 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산군과의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이 산군과의 자리를 만들 방법 자체를 모르진 않았다.

‘산군은 애주가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 문제는 그를 만족시킬 술을 준비하기가 어려울 뿐.’

다행히 천신우는 산군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술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술을 누가 갖고 있는지도.

‘검신.’

풍뢰권과 무신이 속한 모임 무명.

바로 그 무명의 일원인 검신은 무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애주가였다.

천신우는 검신을 만나 술을 얻을 생각이었다.

* * *

“검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천신우의 부탁에 무신은 껄껄 웃었다.

“흑백쌍선 형제를 해치우고 나서 얼마나 지났다고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냐.”

물론 천신우의 부탁을 거절하진 않는 무신이었다.

“검신은 정처 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우 규칙적으로 움직이지. 지금쯤이면 이곳에 있을 게다. 이맘때쯤 이곳에서 빚는 과일주가 일품이니까.”

무신이 일러준 장소를 확인한 천신우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어째서 검신을 만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무신이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조심해라. 그는 우리와는 다르다.”

“명심하겠습니다.”

천신우도 기억했다.

검신. 그리고 그의 제자 검귀.

그들은 분명 다른 무명의 일원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 * *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천신우는 무신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검신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곳이군.’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 기대 술병을 기울이는 중년 문사가 보였다.

반쯤 풀린 눈빛의 그가 바로 검신이었다.

주변엔 비어 있는 술병이 아무렇게나 어지럽혀져 있었다.

“네놈은…….”

검신은 단번에 천신우를 알아보았다.

“내가 여기 있는지는 철옹이 알려준 것이냐?”

“그렇습니다.”

“용건은?”

귀찮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만일 천신우가 풍뢰권과 무신과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몰랐다.

그만큼 검신은 예측이 불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천신우는 알았다.

“천룡주를 얻고자 합니다.”

전설적인 명주인 천룡주를 입에 담는 순간 검신이 어떻게 반응할지.

과연 그 즉시 검신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주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구나. 다른 놈이었다면 목을 날려 버렸겠지만 철옹 얼굴을 봐서 그것만은 참아주마. 따라오너라.”

단숨에 술병을 비워낸 검신이 천신우를 지나쳤다.

검신을 따라가자 건물 옆에 딸린 공터가 나왔다.

그곳엔 검을 신줏단지처럼 품에 안고 있는 장신의 청년이 보였다.

바로 검신의 제자 검귀였다.

그야말로 검에 미친 인간.

“서로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겠지.”

검신이 새로운 술병의 마개를 열었다.

병에서 빠져나온 진한 향이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천신우가 주향을 음미할 새도 없이 검신은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놈을 죽인다면 천룡주를 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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