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학사환생 099화
천신우는 목격했다.
높이 도약했던 권왕이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내리꽂는 광경을.
권왕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파괴적인 일격이었다.
실제로 주먹이 내리꽂히는 순간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급기야 비무대에 균열이 생겨나며 큼직한 돌덩이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와아아! 권왕 최고다!”
이에 열광하는 관중들.
하지만 천신우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걸 예측했다고?’
검성은 권왕의 공격을 유유히 피해냈다.
물론 그거야 천신우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놀라운 건 이후 검성의 대응이었다.
검성은 철검을 허공에 내질렀는데 언뜻 봐서는 무의미한 행동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무수한 검의 잔영은 날아드는 돌덩이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사실상 돌덩이가 쪼개지기도 전에 어디로 날아들지 예측해서 대응한 것이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저토록 많은 돌덩이의 궤적을 전부 예상하다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공에 대한 이해도 자체는 검성이 권왕보다 압도적임을.
물론 권왕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무공의 이해도 따위는 관심이 없는 권왕이었다.
바닥을 내리찍었던 권왕이 그대로 지면을 내달렸다.
‘정말이지 괴물 같군.’
천신우는 혀를 내둘렀다.
전력을 다한 상태에서 이동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탓이다.
저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려고 유연하게 자세를 바꾸는 법인데.
‘하긴 그런 세심함을 권왕에게 바랄 수는 없겠지.’
게다가 권왕의 질주는 은밀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쿵쿵쿵!
지축을 뒤흔들며 달리는 권왕이었다.
관중들은 물론이고 철혈성의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마침내 직선으로 뻗어진 권왕의 주먹이 검성이 서 있던 곳을 강타했다.
콰콰콰쾅!
내공이 실린 일격은 검성이 서 있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벽까지 도달했다.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벽을 목격한 관중들이 경악했다.
내로라하는 고수들조차 눈을 가늘게 떴다.
벽을 돌아보는 검성의 눈빛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물론 감상에 빠져 있을 여유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권왕의 주먹이 날아들었으니까.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무지막지한 녀석이군.”
검성이 냉소를 머금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연타에도 검성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사이사이에 반격을 가했다.
솨아악!
권왕의 옷이 여기저기 찢겨 나가며 그의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헐렁헐렁한 무복 하나 걸치고 있던 권왕이다.
그런 무복이 찢겨 누더기가 됐으니 볼품없어야 마땅했지만, 그게 의외로 권왕의 탄탄한 육체와 조화를 이뤘다.
“어머…….”
여인들은 얼굴을 붉혔고 사내들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이지 엄청나군. 저런 몸을 만들려면 얼마나 노력했을지.”
남편들은 권왕의 복근과 자신의 튀어나온 배를 번갈아 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옆에서 보던 부인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괜한 짓을 했군.”
검성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만 끝내지.”
하지만 검을 내지르려던 검성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날아드는 권왕의 주먹 때문이었다.
궤적은 아까와 같았지만, 주먹에 실린 속도와 위력은 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파아아아아앙!
권왕의 주먹이 일으킨 강풍이 일대에 휘몰아쳤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검성의 몸이 흔들렸다.
그러나 거기서 검성의 감각이 빛났다.
바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이다.
절묘하게 권왕의 주먹을 피해낸 검성을 향해 감탄사가 쏟아졌다.
“와아아아!”
그러나 관중의 환호에 호응해 줄 여유가 없었다.
연거푸 날아드는 권왕의 주먹을 피하는 검성의 움직임이 위태로웠다.
지켜보던 천신우의 눈매도 덩달아 가늘어졌다.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권왕의 속도는 검성조차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파앗!
권왕의 주먹이 검성의 뺨을 스쳤다.
마지막 순간 몸을 틀며 충격을 최소화했기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검성의 자존심에는 금이 갔다.
“제법이구나.”
검성이 내공을 폭발시켰다.
“나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다니.”
내공을 끌어올리자 검성의 움직임 역시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주먹이 출발하는 순간 이미 검성은 움직이고 있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좌절할 법도 하건만 권왕은 오히려 씩 하고 웃으며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앙!
솨아아악!
검과 주먹이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검은 예리했고 주먹은 위력적이었다.
그야말로 기술과 힘의 대결!
이미 관중들의 함성은 잦아든 지 오래였다.
모두가 숨조차 참고 주먹을 불끈 쥐며 검성과 권왕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천신우 역시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물론 누가 우세인지는 명확했다.
권왕은 힘에선 앞섰지만, 경험과 기교에서 검성에게 밀렸다.
권왕의 다른 장기인 속도 역시 검성에 비하면 빛이 바랬다.
검성은 권왕의 실력을 인정하고 차근차근 공격을 진행했다.
권왕의 주먹을 족족 흘리면서도 섣불리 반격하지 않고 완벽한 순간만을 노렸다.
그러자 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것만 같던 권왕의 체력이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물론 어지간한 안목으론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권왕의 움직임은 여전히 빨랐고 주먹엔 위력이 실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신우는 직감했다.
‘거의 끝났군. 버텨봐야 앞으로 10번의 공격을 주고받는 정도가 고작. 그렇다면 승부수를 던지려면 지금뿐이다.’
그 순간, 검성 역시 천신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검성은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
“와라.”
권왕의 눈빛이 번뜩였다.
치밀한 분석으로 결론을 내린 천신우나 수많은 경험으로 판단하는 검성과는 달랐다.
오로지 본능에만 따르는 권왕이었다.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다음 순간!
권왕의 모든 힘을 쏟아낸 주먹이 검성에게 쏘아졌다.
이미 예상했음에도 검성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다.
권왕의 주먹이 예상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검성의 선택은 정면대결이었다.
검성의 움직임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순해졌다.
권왕의 거친 느낌과는 달랐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모조리 걷어낸 완벽히 절제된 움직임.
솨아아악!
내질러진 검성의 검이 권왕의 주먹과 충돌했다.
꽈아아앙!
힘과 힘의 충돌에 사방으로 충격이 전해졌다.
온몸으로 진동을 느낀 관중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감독관과 철혈성 고수들이 나서서 힘을 분산시키지 않았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모두의 시선이 검성과 권왕에게 향했다.
지축이 흔들리고 분진을 일으킬 정도의 충돌이었다.
검성과 권왕 모두 무사할 수는 없었다.
한쪽이 다쳤거나 양쪽 모두 타격을 입었어야 정상이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걷히며 검성과 권왕의 모습이 드러났다.
쓰러진 사람은 없었다.
검성과 권왕 모두 서로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뭐야? 대체 누가 이긴 거야?”
어지간한 고수들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극소수의 고수들만이 승부가 났음을 깨달았다.
천신우도 그중 하나였다.
‘검성이 이겼군.’
권왕은 검성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의 주먹은 더는 뻗어 나가지 않았다.
선 채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놀라운 정신력이었다.
권왕의 상태를 확인한 감독관이 외쳤다.
“이번 시합은 검성의 승리요!”
그제야 관중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검성! 검성! 검성!”
물론 패자인 권왕을 향한 함성도 엄청났다.
“권왕! 누가 뭐래도 네가 최고다!”
함성에 파묻힌 비무대 위에서 검성은 권왕을 바라보았다.
일순 검성의 시야가 낮아졌다.
몸이 휘청거리며 무릎이 굽혀진 것이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검성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너란 놈은…….”
권왕은 정신을 잃는 순간에도 검성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무릎이 꺾일 정도의 위력을 담아.
문득 검성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 비무대를 응시하던 천신우와 검성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순간 천신우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자신감이었다.
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신우 너라면 이걸로 놀라진 않겠지.’
검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천신우와 마찬가지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보여줄 것이 있노라고.
그렇게 천신우와 검성이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은 가운데.
철혈성 비무대회 4강전이 성황리에 종료됐다.
* * *
비무대회 4강전이 열린, 그날 저녁.
권왕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검성이기도 했고 천신우이기도 했다.
권왕이 넘지 못한 상대가 둘로 늘어난 것이다.
“분하더냐?”
뒤에서 들려온 풍뢰권의 목소리에도 권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명백한 패배.
질책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풍뢰권은 권왕을 꾸짖지 않았다.
“그렇다고 질질 짜진 말거라.”
“내가 언제 울었다고…….”
반박하려던 권왕이 흠칫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 것은.
너무 분했다.
천신우 앞에서 보란 듯이 검성을 날려 버리고 싶었는데.
“사내에게 적수는 하나로 족하다. 물론 나야 그마저도 없지만.”
“…….”
권왕이 빤히 쳐다보자 풍뢰권이 헛기침했다.
“흠흠. 어쨌든.”
풍뢰권이 본론을 꺼냈다.
“따라와라. 놈들을 이길 방법을 알려주마.”
곧바로 눈을 빛내는 권왕을 보며 풍뢰권이 껄껄 웃었다.
늘그막에 거둔 제자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단순해서 좋았다.
‘사실 천신우나 검성이나 이미 벽을 넘어서 다음 경지로 나아가는 놈들이다. 그놈들을 앞지르려면 죽도록 구르는 수밖에.’
권왕을 괴롭힐 생각에 즐거워지는 풍뢰권이었다.
* * *
철혈성 비무대회 결승.
금와전장 장주 만금소를 제외한 모든 귀빈이 총출동했다.
결승전이 주는 의미도 컸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이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보여준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검성과 권왕의 대결은 절대 고수들의 마음에까지 불을 지필 정도였다.
“축하하네. 이번 비무대회는 마지막까지 아주 성공적이군.”
무신의 덕담에 도제도 동의를 표했다.
본래 칭찬이 인색한 도제였지만 검성과 신창은 예외였다.
그만큼 그들이 보여준 실력이 워낙 발군이었기에.
하지만 철혈성주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신과 도제와 동시대를 풍미한 그였다.
당연히 검성과 신창이라는 신진고수들의 등장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도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됐군.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야 없으니.”
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일세. 다음 시대는 저들이 이끌어나가겠지.”
“자네 손녀도 있잖나.”
철혈성주의 물음에 무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네.”
도제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손자인 월풍은 검성과 신창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물론 연배 차이가 나긴 한다.
하지만 나이는 변명거리가 되지 않았다.
후기지수 중에도 월풍을 훨씬 앞질러가는 고수들이 있기에.
‘그중에도 특히…….’
도제와 마음이 통했을까.
무신이 입을 열어 이름을 거론했다.
“차라리 천신우라는 아이가 저들과 함께 다음 시대를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어울리지. 만일 그 아이가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했다면, 오늘 저 자리에 서 있는 얼굴 하나는 달라졌을 거네.”
“천씨세가 소가주라. 소문은 들었네만. 그 정도란 말인가?”
아직 천신우의 진면모를 직접 확인한 적은 없는 철혈성주였다.
“으허허. 그렇다네. 마침 저기 보이는군.”
마치 천신우가 손자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스러워하는 무신이었다.
철혈성주가 천신우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디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철혈성주는 아주 은밀하게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고수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미세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천신우가 철혈성주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것이다.
“……!”
철혈성주의 눈동자가 이채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