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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96화 (96/171)

# 96

학사환생 096화

검성의 차가운 눈빛에, 뒤에 서 있던 남자는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남자는 맡은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다.

“검성 대협 되시지요? 제가 모시는 어르신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는 바로 금와전장 장주 만금소의 부하였다.

만금소의 지시를 받고 검성에게 접촉한 것이다.

하지만 검성은 상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만금소의 부하에겐 관심조차 없던 그였다.

순간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린 검성이 섬전처럼 쏘아졌다.

어느새 뽑혀 나온 검성의 철검이 벽을 강타했다.

콰앙!

충격음과 함께 일어난 바람에 만금소 부하의 옷깃이 펄럭였다.

‘가공할 기운……! 과연 명불허전이군!’

전례 없는 파격적인 대우를 보장하면서까지 검성을 영입하려는 만금소의 생각이 이해가 됐다.

물론 검성의 반응을 봐선 영입하기가 쉽지 않을 듯했지만.

‘그나저나 저기 뭐가 있기에?’

무너진 담장 너머로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

그걸 지켜보던 검성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지붕들 사이로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이윽고 검성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만금소의 부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줄이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반쯤 허물어진 담장 위에 새로운 그림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만금소 부하도 아는 얼굴이었다.

철혈성 비무대회 참가자가 아님에도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른 인물.

바로 천신우였다.

새롭게 천씨세가에 합류한 고수들과 술자리를 갖던 천신우가 소란을 감지한 것이다.

‘저놈은 분명 만금소의 부하로군.’

한발 늦게 천신우를 따라 나온 천씨세가 고수들이 만금소의 부하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그대는 분명히 금와전장의……!”

“여긴 무슨 용건이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그들을 천신우가 제지했다.

“별일 아니니 들어가시지요. 바람이 찹니다.”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

거기에 만금소의 부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대한 기운.

천신우는 방금의 상황이 만금소와 무관함을 직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이건…… 검성이군.’

담벼락에 새겨진 것은 분명 검성이 남긴 흔적이었다.

사실 대부분 무인은 흔적을 남기길 꺼린다.

남들이 남겨진 흔적을 보고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이 나쁘면 무공이 간파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성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보란 듯이 흔적을 남겼다.

‘과시욕과는 달라.’

검성은 그저 거침없이 행동할 뿐이다.

‘만금소의 부하야 검성을 영입하기 위해 찾아왔을 테고. 그럼 여기 있던 놈은 누구지?’

도제의 부하들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도제의 성격상 이런 곳에서 일을 벌이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는 경우의 수는 하나.

‘마교겠지.’

마교에서 보낸 감시자와 검성이 충돌했을 가능성이 컸다.

‘내게 나쁜 상황은 절대 아니군.’

그렇지 않아도 마교는 준동 전까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거기에 검성까지 등장했으니 마교로서는 머리가 아파질 상황.

‘검성이라면 쉽게 당하지도 않을 테고.’

검성은 전생에 마교 정예인 수라혈검대를 전멸시킨 장본인이었기에.

‘물론 그때는 자운검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이제 천신우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검성은 자운검 때문에 강해진 것이 아니라 원래 강한 거라고.

그렇기에 천신우는 머릿속에서 검성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이제 비무대회도 막바지. 슬슬 다음 계획을 준비해야겠군.’

천신우는 비무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여유가 있었다.

물론 비무대회 불참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검성과 신창 모두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 상대들. 그리고 지금의 권왕과도 다시 붙어보고 싶은데.’

최근 권왕의 성장세는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였다.

온갖 기연을 얻어가며 강해지는 천신우를 턱밑까지 바짝 쫓아온 권왕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이다. 아무리 풍뢰권의 집중지도가 있었다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천신우가 아니었다.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고.

‘비무대회가 아쉽긴 해도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생각을 정리하고 술자리로 돌아온 천신우에게 이번에 영입한 고수가 말을 걸어왔다.

“소가주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신우가 눈매를 좁혔다.

‘나를?’

* * *

허름한 창고 안으로 남자 하나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섰다.

그는 마교 추종자로 천신우의 감시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 감시했기에 발각될 염려가 없다고 생각했건만,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검성이 그를 발견하고 습격해 온 것이다.

가까스로 도망치긴 했지만, 부상을 입은 그였다.

“늦었군.”

창고 안엔 나무상자들이 놓여 있었는데 목소리는 그곳에서 들려왔다.

마교 추종자의 시선이 나무상자 위에 걸터앉은 사내의 발끝을 향했다.

감히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상대는 마교 후기지수 한태성.

마교 후기지수 중에 가장 흉악하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게…… 예상외의 변수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래서.”

한태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꼬리에 저런 걸 달고 왔냐?”

황급히 고개를 돌렸던 마교 추종자가 깜짝 놀랐다.

“……!”

입구로 걸어 들어오는 것은 바로 검성이었다.

“어…… 어떻게?”

믿기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모든 흔적을 지웠던 마교 추종자다.

‘피도 완벽히 지혈해서 핏자국을 남기지 않았건만!’

검성은 정확히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물론 마교 추종자가 의문을 해소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터억!

그의 머리 위로 두꺼운 손이 올라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콰드드득!

그대로 마교 추종자의 머리를 으스러뜨린 한태성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일어난 그의 신장은 무림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컸다.

키만 커다란 것이 아니라 근골 자체가 거대했다.

하얀 이를 드러낸 한태성이 검성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마교 후기지수들은 추종자들에 비해 많은 정보를 받았다.

한태성 역시 검성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은 후였다.

단지 읽지 않았을 뿐.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지 않더냐? 그게 네놈…….”

한태성이 눈을 부릅떴다.

검성의 모습이 시야에서 한순간에 사라진 탓이다.

물론 여전히 이유를 잃지 않은 한태성이었다.

오히려 그는 어깨를 당당하게 폈다.

“그래. 어디 쥐새끼처럼 숨어보아라. 눈에 띄는 순간 으깨버릴 테니.”

다음 순간 한태성이 뒤로 돌며 우악스럽게 팔을 휘둘렀다.

“여기구나!”

하지만 솥뚜껑처럼 거대한 손은 허공을 헤집었을 뿐이다.

동시에 검성의 철검이 한태성의 어깨를 내리그었다.

촤악!

근육이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그러나 한태성은 신음조차 토하지 않았다.

“쥐새끼 주제에 감히!”

한태성이 반대편 팔로 일장을 날렸다.

동시에 검성도 몸을 틀며 검을 날렸다.

검성의 얼굴 옆을 스쳐 간 일장이 뒤쪽의 나무상자를 강타했다.

콰콰쾅!

나무상자가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물론 한태성은 그걸 지켜볼 겨를이 없었다.

날아드는 검을 피해 몸을 뒤로 젖힌 한태성의 눈에 터져나가는 창고 벽이 보였다.

“제법…….”

허리에 반동을 주며 몸을 일으킨 한태성이 검성에게 쇄도했다.

그대로 순식간에 벽까지 충돌해 버린 한태성이었다.

콰아앙!

벽은 완전히 박살 났지만 정작 검성은 이미 한태성의 공격 범위를 벗어난 후였다.

휘몰아치는 검성의 검을 피해 한태성이 몸을 날렸다.

스가가가각!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대지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이런 빌어먹을!”

한태성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피한다고 피했건만 검성에게 또다시 일격을 허용한 그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후회스러웠다.

‘괜히 여래천살봉을 놓고 왔군.’

한태성이 마교로부터 받은 지시는 철혈성 비무대회를 감시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무기를 갖고 오지 않은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래천살봉이 없어도 이깟 놈들 모조리 때려눕힐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한태성은 이를 으득 갈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검성은 여래천살봉 없인 절대 상대할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지.’

결단을 내린 한태성이 진각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앙!

한태성의 발밑에서 시작된 균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사이, 허공으로 솟구친 그는 창고 천장을 뚫고 지붕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늘 빚은 반드시 갚아주마!”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한태성.

그러나 검성은 이미 한태성을 보고 있지 않았다.

폐허로 변해 버린 창고에서 검성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기대 이하군.”

검성이 마교 추종자를 쫓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놈을 쫓아오면 실력 있는 고수와 맞닥뜨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태성은 검성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달아나는 한태성을 굳이 추격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검성이었다.

그렇지만 검성의 표정은 전처럼 공허하지 않았다.

천신우란 적수를 찾았으니까.

지금은 그걸로 족했다.

이윽고 그곳을 벗어나 걸음을 옮기는 검성이었다.

* * *

다음 날.

천신우는 새롭게 천씨세가에 합류한 고수 방하기를 따라 길을 나섰다.

함정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기에 호위무인들을 대동하고서.

“이곳입니다.”

방하기가 작은 장원을 가리켰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할 것은 없었다.

다만 장원을 지키는 무인들의 기도가 매서웠다.

마치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

‘설마…… 이들은?’

천신우는 무인들의 안내를 받아 장원 안쪽의 별채로 들어섰다.

탁자 앞에 앉아 있던 여인이 일어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소가주를 뵙습니다. 저는 북해빙궁의 삼 공녀를 모시는 소월이라 하옵니다.”

천신우의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북해빙궁에서 저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는지?”

“방하기 대협에게 들었습니다. 소가주께서 젊은 나이에 많은 업적을 이룩하셨다고.”

“그랬군요.”

방하기가 북해빙궁과 연이 닿아 있다는 것은 천신우조차 몰랐던 사실이었다.

‘방하기는 마교와 끝까지 싸웠던 고수라 영입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군.’

천신우로선 운이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만상서고의 네 번째 단서를 찾기 위해 북해빙궁을 방문할 방법을 고민하던 참이었기에.

‘그나저나 북해빙궁의 삼 공녀라면…….’

천신우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북해빙궁은 다른 세력들과 달리 후계자를 점찍지 않았다.

궁주는 언제나 아홉 명의 제자를 거두었고 그들끼리의 경쟁을 유도했다.

당대 궁주 역시 마찬가지.

현재 시점에서 차기 궁주를 노리는 후계자들은 셋이었다.

대공자.

삼 공녀.

칠 공자.

나머지 후계자들은 그들에 의해 제거되거나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황.

가장 유리한 것은 대공자였고 다음이 칠 공자.

삼 공녀는 후계구도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였다.

‘그러고 보니 삼 공녀는 판도를 바꾸기 위해 승부수를 뒀었지.’

천신우의 기억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소월이 입을 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삼 공녀께서는 평생의 배필을 찾고 계십니다.”

소월은 정중히 제안해 왔다.

“마침 소가주께서도 미혼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번 만나보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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