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학사환생 091화
검성.
전생에서 자운검의 주인이었던 절대 고수.
하지만 천신우가 자운검을 선점한 이상 검성의 운명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아는 검성이 맞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검성이란 별호를 얻은 건가? 어느 쪽이든 신창과 비등비등할 정도면 보통 고수는 아니란 건데.’
천신우가 관심을 보이자 천신혁도 신이 나서 떠들었다.
“두 사람은 철혈성에서 열리는 비무대회에서 승부를 내기로 약조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5년마다 연말쯤에 철혈성에서 비무대회가 열리지.’
철혈성은 제5 영역을 지배하는 거대세력이었다.
‘초대 철혈성주의 유훈 때문에 중앙 진출을 삼가는 편이지만.’
영향력만큼은 무신궁과 도천에 비해 절대 뒤처지지 않는 곳이 바로 철혈성이었다.
그러다 보니 철혈성에서 주최하는 비무대회는 오대세가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솔직히 오대세가 무림대회는 철혈성에 비하면 친목대회 수준.’
철혈성 비무대회는 규모와 상금 부문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덕분에 명성을 날리려는 후기지수들은 물론. 강함을 시험하려는 고수들과 소속 문파를 찾으려는 무인들까지 몰려들었다.
그런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거대 문파의 고위인사들까지 찾아오면서 이맘때쯤 철혈성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사실 철혈성이 비무대회에 참석한 무인들을 우선적으로 영입하겠다고 주장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들은 남겨진 철혈성주의 유훈 때문에라도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긴 그렇게 자중해 왔기에 철혈성이 부침 없이 세력을 유지한 것일지도…….’
덕분에 철혈성 비무대회는 인재등용문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으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무림맹의 모집시험 역시 후기지수들의 등용문이긴 하지만 철혈성 비무대회는 대상이 달라.’
철혈성 비무대회의 경우 나이 지긋한 은거 기인들까지 참가했다.
당연히 무림맹 모집시험보다도 참가자들의 수준이 훨씬 높았다.
‘당연히 지켜볼 가치가 있다.’
천신혁도 그런 점을 지적했다.
“형님께서도 일전에 철혈성 비무대회 참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금와전장과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낸 천신우다.
하지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숨이나 돌릴 생각은 없었다.
철혈성 비무대회 참석도 천신우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일정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참가를 확정하기에 앞서 우선순위 검토는 필수였다.
언제나 섣부른 결정은 실수로 이어지는 법이기에.
‘현재 가장 중요한 건 만상서고의 네 번째 단서를 확보하는 일.’
만상서고의 네 번째 단서는 북해빙궁 내부에 있다.
하지만 북해빙궁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현재 시점에서 천신우의 역량만으로 북해빙궁에 침입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다음이 무림맹 연쇄 살인 사건이지만 아직 시기적으로 여유가 있다. 그밖에도 몇몇 사건들이 있으나 철혈성 비무대회에 비하면 중요도 면에서 떨어지지.’
비로소 철혈성 무림대회 참석을 최종확정한 천신우였다.
단지 검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무대회에 참석한 고수들을 대거 영입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만금소도 철혈성 비무대회를 통해 고수들을 모아왔었지.’
만금소만이 아니다.
많은 세력이 이번 비무대회에서 고수들을 영입할 예정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점이 이럴 때도 도움이 되는군.’
먼저 비무대회 결과.
그리고 비무대회 참석자 중에 누가 어느 세력에 어떤 조건으로 영입됐는지까지 알고 있는 천신우였다.
‘당시에는 보고서를 읽으면서 정말 쓸데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사용할 날이 오다니.’
전생의 정보들을 이용하면 비무대회에서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고수들 영입이 가능했다.
‘동시에 만금소를 비롯해 마교에 협조하는 세력들의 전력보강을 막는 효과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전생의 정보를 너무 맹신해선 곤란해.’
만금소는 전생과 달리 거듭된 실패로 잔뜩 독이 오른 상태다.
자금력이야 전생보다 부족하다지만 어떤 무리수를 둘지 모르는 것이다.
‘어쨌거나 재미있겠군.’
당연히 걱정보다는 기대가 컸다.
이미 빈객들을 다수 영입하는 과정에서 세력을 키워가는 재미를 맛본 천신우였다.
‘자금도 충분하고.’
심지어 추가로 자산을 늘릴 방법도 있다.
‘철혈성 비무대회 승부예측 도박엔 무림 전역에서 엄청난 돈이 몰리지.’
철혈성이 비무대회에 엄청난 상금을 걸고도 오히려 흑자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철혈성은 승부예측 도박을 주관하는 대가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챙긴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물론 천신우가 수수료를 건드릴 방법은 없다.
‘대신 승부예측을 맞춰 배당금을 벌어들일 수는 있지.’
천신우는 머릿속으로 전생에서의 철혈성 비무대회 결과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 * *
1억 냥.
천신우가 철혈성 비무대회를 위해 준비한 자금이었다.
‘비밀경매에 100만 냥을 들고 참가한 게 불과 1년 전이었는데.’
천신우는 지난 1년의 성과를 돌아보았다.
대홍수 당시 곡물 거래로 벌어들인 막대한 차익. 거기에 문파대전으로 황보세가에서 얻어낸 이권. 구왕들의 은닉재산에다 이번 금와전장과의 거래로 얻어낸 수익까지.
불과 1년 사이 자금동원력이 100배가 늘어났다.
‘이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겠군.’
천신우는 수북하게 쌓인 전표를 바라보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지간한 문파의 몇 년 치 예산을 가뿐히 뛰어넘는 액수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영약이나 병장기를 싹쓸이할 수도 있는 돈이었다.
‘심지어 철혈성 비무대회 기간엔 각종 귀중품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자들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가문 비전의 영약을 내다 파는가 하면 땅이나 병장기를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했다.
오죽하면 그들을 대상으로 대부업이 횡행할 정도였다.
‘만금소의 주력사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다.
고수들을 영입해 천씨세가의 세력을 키우고 만금소와 마교 추종세력들을 견제하는 한편.
승부예측 도박을 통해 자금을 불리고 영약과 병장기를 사들여 힘을 키우는 것.
이 두 가지가 천신우가 이번 철혈성 비무대회에서 달성하려는 목표였다.
‘물론 검성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도 빼먹을 수 없지.’
천신우는 자운검을 내려다보며 검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번 마주치면 절대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
‘과연 신창과 맞붙었다는 신진고수가 정말 검성일까? 만일 그렇다면 자운검이 없는 그는 어떤 모습일까? 반대로 전혀 다른 인물이라면? 그는 누구이며 전생의 검성은 어떻게 됐을까?’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천신우는 이내 고민을 털어버렸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이럴 때일수록 단순하게 접근하는 거다.
* * *
비무대회에서 사용할 자금을 준비한 천신우는 그길로 무림맹 멸악전단에 복귀했다.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경계하는 마음이 컸다.
월풍이 살수를 보냈을 때처럼 혹시 모를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지만 철혈성 비무대회가 가까워짐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잠잠하군.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마교와 만금소 모두 아직 실력행사에 나서지 않았다.
‘만금소가 도제와 꾸준히 접촉 중이라던데. 협상 결과를 기다리는 건가? 마교는 어쩌고?’
분명 전생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생에선 일찌감치 마교 쪽으로 노선을 정한 만금소였기에.
‘그러고 보니 월풍도 흑백쌍선과 만난 이후로 잠잠하군. 도제 눈치를 보는 거겠지.’
결국,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당분간 도제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봐야 했다.
‘도제는 결코 만만한 인간이 아니야. 만금소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많은 것을 요구하겠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까지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을 거고.’
대업을 위해선 손자 월풍의 복수 따위는 뒷전으로 미루고도 남을 도제였다.
‘만금소 역시 협상의 귀재. 선뜻 도제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협상이 길어질 공산이 크다는 의미였다.
‘당분간은 지켜보는 수밖에.’
천신우는 숙소의 침상에 몸을 눕혔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여전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림맹에 복귀하고 나서 있었던 무신과의 만남도 그중 하나였다.
‘감찰각주 뒷조사는 마무리 단계라고 했었지.’
감찰각주의 비리와 관련한 단서들을 확보한 무신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감찰각주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뿐이다.
‘각본은 준비됐다. 전생에서 감찰각주가 실각한 사건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면 그만. 시기는…….’
천신우는 침상에 누운 채로 몸만 돌려 날짜를 확인했다.
‘철혈성 비무대회가 끝나면 바로 연말. 아무래도 감찰각주 건은 해를 넘기겠군.’
‘그러고 나선 북해빙궁에 출입할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하고. 무림맹 연쇄살인사건도 대비해야겠지. 내년은 올해 이상으로 바쁘겠어.’
내년 계획까지 정리한 천신우의 표정이 밝았다.
사람 중엔 그저 휴식만을 바라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쉬지 않고 목표를 위해 달리는데도 오히려 활력이 넘치는 부류도 존재했다.
천신우는 명백히 후자였다.
* * *
마침내 철혈성 비무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발 앞서 철혈성을 찾은 천신우였다.
비무대회가 열리는 철혈성은 이미 인파로 북적거렸다.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무인들과 구경꾼들은 물론이거니와. 무림 전역에서 모여든 이야기꾼들. 심지어 비무대회를 감상하고 영감을 얻으려는 소설가들도 보였다.
얼굴이 알려진 이야기꾼이나 소설가들에겐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미소 짓던 천신우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수염을 기르고 비쩍 마른 체격의 사내를 발견한 탓이다.
사내 역시 다른 소설가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저작한 책을 팔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천신우만이 다가가 돈을 내고 책을 구매했다.
“감사합니다!”
사내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천신우는 미소만 지었다.
책을 펴볼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기에.
사내는 알까? 5년 후엔 자신이 무림 최고의 작가라 불리게 된다는 사실을…….
그렇게 책을 갖고 숙소로 돌아온 천신우를 반갑게 맞은 것은 동생 천신혁이었다.
“여깁니다! 형님!”
그밖에도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그건 무슨 책인가?”
손을 흔들며 물어오는 모용비.
제갈휘 역시 관심을 보였다.
“풍운강호라…… 처음 보는 책이군. 소설책인가?”
“나중에 시간 나면 읽어보시지요.”
천신우는 오랜만에 모용비와 제갈휘와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천씨세가와 금와전장의 거래와 관련해 소문이 자자해. 이젠 정말이지 천씨세가를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군.”
만금소의 거래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비무대회로 넘어갔다.
“그건 그렇고 아우도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할 생각이겠지?”
“아니요.”
천신우의 대답에 모용비와 제갈휘 모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자네가 나간다면 우승도 가능할 텐데.”
천신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엔 쉬려고 합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오히려 반대다.
워낙 바쁘기에 비무대회에 직접 참가할 시간이 없는 천신우였다.
‘승부예측에 영입제안까지 해야 하니까. 영약과 병장기들도 사들여야 하고.’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마교와 만금소의 표적이 된 이상, 무리해서 이목을 끌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명성은 이미 충분히 얻었고. 우승상금도 내겐 큰 의미가 없으니까.’
그때 비무대회 대진표를 확인하던 천신혁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님들! 여기 보십시오!”
벽에 붙여진 대진표를 확인한 모용비와 제갈휘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운경…… 아니지. 이제 권왕이라고 불러야겠군. 어쨌든 하필 상대가 천비자라니. 운도 없지.”
천신우도 비무대회 대진표를 확인했다.
전생과 비교해 변화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검성과 신창의 참가. 그리고 권왕까지. 쟁쟁한 우승 후보만 셋이 추가됐군.’
물론 다른 사람들은 권왕을 우승 후보로 꼽지 않을 것이다.
구왕도 임무에서 활약했다고는 하나 목격자가 많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구왕도 이후로 별다른 활약도 없고 해서 잊히는 분위기지.’
반짝 유명세를 얻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무인들이 얼마나 많던가.
반면 상대인 천비자는 엄청난 명성을 날리는 고수였다.
물론 무신이나 도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애초에 그들은 비무대회에 참가할 급이 아니다.
그걸 감안하면 많은 사람이 천비자를 이번 비무대회의 우승 후보로 점찍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솔직히 나라도 천비자에 걸었을 거야. 전생에서 권왕과 천비자의 대결을 알지 못했다면.’
전생에서 권왕은 구왕도 참사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명성을 날린 계기는 천비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서부터였다.
‘시기는 그때보다 훨씬 이르다. 하지만 권왕의 실력은 이미 그때 수준에 도달했다.’
천신우는 얼마 전에 봤던 권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확인했다.
권왕이 벽을 뛰어넘었음을.
‘하긴 벽을 뛰어넘었다는 표현은 권왕에게 어울리지 않지.’
벽을 부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그렇기에 권왕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천신우였다.
“다들 돈은 누구에게 거실 겁니까?”
철혈성 비무대회 승부예측은 무인들에게 하나의 여흥 거리였다.
비단 도박에 목숨 거는 자들이 아니라도 소액 정도는 재미 삼아 걸곤 했다.
“그래도 의리가 있지! 권왕에게 천 냥!”
“기왕 하는 거 좀 더 쓰시지요.”
천신우의 권유에 모용비가 멋쩍게 웃었다.
“솔직히 천 냥 이상은 힘들어.”
천신우가 제갈휘를 돌아보았다.
“형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승부예측은 감정보다는 냉정한 분석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하거든. 나는 천비자에게 3천 냥을 걸도록 하지.”
모용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3천 냥이나?”
“확실한 승부는 배당도 낮아. 그러니 많은 액수를 걸어서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법이지.”
“……후회하실 텐데요.”
제갈휘가 천신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우 통찰력이 비상한 것은 나도 인정하네. 하지만 이번엔 아우가 틀릴지도 몰라.”
천신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3천 냥 정도는 큰돈도 아니니 제갈휘 뜻대로 하게 놔둬도 상관없을 터였다.
“하하. 과연 결과가 어떨지 확인하러 가볼까요.”
* * *
비무대 객석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관중 가운데 천신우에게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손가락의 굵은 금반지가 인상적인 노인은 바로 금와전장 장주 만금소였다.
천비자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 정도로 천비자가 유명한 고수이기도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만금소의 상황이 급했다.
천씨세가와의 일전으로 잃은 고수들을 보충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길 터였다.
물론 그런 속내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 만금소였다.
“정말 고생 많았네.”
“저야말로 기회를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대화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물론 내막을 아는 이들이 본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천신우와 만금소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기에.
“그나저나 권왕이라고 했던가? 천씨세가 소속으로 아는데. 아쉽군. 하필 상대가 천비자라니.”
만금소 역시 천비자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나만 묻지. 만일 자네가 돈을 걸 수 있었다면 누구한테 걸었겠나?”
승부조작을 막기 위해 같은 문파 무인의 시합엔 돈을 걸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천신우도 권왕이 참가하는 시합엔 돈을 걸지 않았다.
“저라면 당연히.”
순간 주위의 이목이 천신우에게 집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권왕에게 걸 겁니다.”
“허허허. 역시 같은 식구라는 건가. 하긴 자네 입장이라면 나라도 그렇게 말할 걸세.”
어차피 돈을 걸지 않으니 아무렇게나 대답해도 상관없다는 의미.
“빈말이 아닙니다. 규정만 아니었다면 권왕에게 얼마든지 걸었을 겁니다.”
“재미있군. 그렇게 자신 있다면 나와 개인적으로 내기라도 하겠나? 물론 나는 천비자가 이기는 쪽에 걸겠네.”
그거야말로 천신우가 바라던 바였다.
“좋지요.”
“그럼 서로 부담 없이 100만 냥 정도만 거는 게 어떤가?”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100만 냥은 부담 없이 걸 수 있는 액수가 절대 아니었다.
만금소 같은 거물이 아니고선 감히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거금!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일렀다.
“100만 냥 갖고 여흥이 되겠습니까?”
천신우의 도발에 만금소가 미간을 좁혔다.
농담 삼아 꺼냈던 이야기였는데 천신우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허허. 천 공자 배포가 이렇게 큰지는 내 미처 몰랐군. 그래, 얼마 정도면 만족하겠나?”
천신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천만 냥. 부담되시면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
주변 사람들은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막대한 부를 쌓은 그들에게도 천만 냥은 언감생심이었다.
하물며 재미 삼아 하는 내기로 천만 냥이라니?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만금소에게 쏠렸다.
만금소의 입술이 천천히 달싹였다.
“천만 냥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