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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89화 (89/171)

# 89

학사환생 089화

마교 본산에는 수많은 군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중에서 마교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이다.

그 이유는 극한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마교의 구성원이 될 수 있기에.

백린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교의 악명 높은 멸혼관에서 생존해 자격을 인정받은 그다.

당시 백린의 잔혹한 손속을 본 교관들은 간만에 인재가 나왔다며 한마디씩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로는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백린이었다.

마교 최고의 후기지수로 평가받는 진사명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화사를 비롯한 다른 후기지수들에게도 밀렸던 것이다.

그러던 백린에게 기회가 왔다.

‘천신우.’

천신우를 노려보는 백린의 눈동자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근래 마교의 걸림돌로 부각되기 시작한 그를 잡는다면, 백린은 지금까지의 부진을 단번에 씻어낼 수 있었다.

백린이 경쾌한 동작으로 도를 뽑아 들었다.

촤아악!

도를 휘감고 있던 천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소리.

“그러는 네놈은 만금소의 끄나풀이겠군.”

천신우는 상대가 마교 고수임을 직감했지만, 굳이 사실을 밝히는 대신 도발하는 쪽을 택했다.

마교 고수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동시에 마교인으로서의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의 끄나풀이란 표현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과연 백린의 입가가 비틀렸다.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지껄이네?”

물론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긴 네놈은 아무것도 모르겠지.”

천신우가 얼마나 마교의 실체에 근접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백린 역시 천신우가 마교의 실체를 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충돌한 것이라 여겼다.

동시에 확신했다. 여태까지 마교와 충돌한 자들이 그러했듯 천신우 또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땅에 묻힐 거라고.

백린이 소리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발소리는 오히려 엉뚱한 방향에서 들려왔다.

숙소 부근을 순찰하던 천씨세가 무인들이 접근한 것이다.

“소가주님?”

천신우를 발견한 무인 하나가 입을 여는 순간.

그야말로 동시에 천신우와 백린의 손에서 비수가 날았다.

쉭쉭!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비수가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충돌하며 땅에 떨어졌다.

쩡!

“제법인데?”

백린이 입가를 비틀었다.

그때까지도 천씨세가 무인은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뒤늦게 소리치려는 그를 막은 것은 백린이 아니라 천신우였다.

“소란 피우지 말도록.”

“하지만 소가주님…….”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천신우는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백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백린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부하들을 아끼는군.”

칭찬이 아닌 비웃음이었다.

마교는 동료애를 강조하지 않았다.

전장에서 믿을 것은 오직 자신뿐이며 마교에만 충성을 바치라고 가르쳤다.

“너희들은 평생 이해 못 하겠지.”

쓴웃음과 함께 천신우가 천씨세가 무인들에게 지시했다.

“숙소로 복귀해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찌 소가주님을 혼자…….”

“그렇게 걱정되면 돌아가서 지원요청이라도 하도록.”

정말 천신우가 지원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수하들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천씨세가 빈객들 정도 되면 몰라도 일반 무인들은 여기 있어 봐야 개죽음만 당할 것이기에.

“누가 보내준대?”

백린의 소매가 펄럭였다.

쉭쉭쉭!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세 자루의 비수가 허공을 갈랐다.

속도는 달라졌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백린의 기습은 천신우에 의해 제지당했다.

천신우 역시 백린이 비수를 던지는 순간 비수를 날렸다.

까아앙!

허공에서 충돌한 비수들이 사이좋게 바닥에 처박혔다.

푹푹푹!

“건방진……!”

백린이 천신우에게로 고개를 트는 순간.

그의 눈매가 좁혀졌다.

천신우가 어느새 검을 찔러오고 있었다.

백린이 도를 휘두르며 천신우의 공격을 받아쳤다.

따다다다다당!

천신우는 백린이 숨을 돌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밀어붙였다.

까앙!

백린은 도를 크게 휘둘러 천신우의 자운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천씨세가의 무인들은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으득!

백린이 이를 갈았다.

지금 와서 쫓기도 힘들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눈앞의 천신우를 뚫고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난감했다.

여차하면 이곳에 있는 천씨세가 무인들 전부를 상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섰는데.

막상 천신우 하나에 쩔쩔매고 있었다.

“알지? 시간이 많지 않아.”

천신우는 백린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마교는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어떤 작전을 수행하든 절대 과도한 전력을 쏟아붓는 일이 없었다.

지금까진 그게 먹혔겠지만, 자신만큼은 예외였다.

자신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강해져 왔기에.

당연히 백린 역시 천신우가 이렇게 강할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물론 그렇다고 물러날 백린이 아니었다.

“그래서?”

백린이 비릿하게 웃었다.

“지원병력이 합류할 때까지 시간이라도 끌겠다는 건가?”

“아니. 충고하는 거야. 전력을 다하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씨세가의 고수들이 도착할 것이다.

그리되면 불리해지는 쪽은 백린이었다.

천신우는 그러기 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백린을 도발한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백린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천신우와 백린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오늘따라 밤바람이 차가웠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 백린의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밤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니 자꾸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반면 천신우는 백린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백린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천신우 정도 되는 고수라면 자신이 절대 쉽지 않은 상대임을 알 텐데.

“어째서 네놈은 그렇게 여유가 있는 거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그만큼 백린은 긴장한 상태였다.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까.”

천신우는 새삼 깨달았다.

전생에서 자신을 죽였던 팔마존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에 비하면 눈앞의 백린이 가소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천신우도 그만큼 강해졌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벽을 넘은 자와 넘지 못한 자의 차이를.”

“…….”

백린의 눈동자가 전에 없이 흔들렸다.

천신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백린도 알았다.

하지만 믿기지 않았다. 믿고 싶지도 않았고.

“믿지 못하겠다면 깨닫게 해주지.”

천신우가 자운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린의 심장이 뛰었다.

아까는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천신우의 자세 어디에도 빈틈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팔마존의 일인이자 백린의 스승이었던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벽을 넘은 자에게도 빈틈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걸 볼 수 있는 건 똑같이 벽을 넘은 존재뿐이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백린은 스승을 비롯한 팔마존 누구에게서도 허점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설마 눈앞의 천신우에게서 빈틈을 찾아낼 수 없을 줄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꾸만 드는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오늘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벽을 넘을 수 있으리라.

‘그리되면 화사는 물론이고 진사명의 위치까지도 넘볼 수 있겠지.’

백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기분 좋은 두근거림에 기대 백린이 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바로 그 순간, 천신우가 먼저 몸을 날렸다.

쐐애액!

순식간에 날아드는 검을 피해 백린이 몸을 비틀었다.

눈썹을 덮고 있던 백린의 머리카락이 천신우가 일으킨 바람에 휘날렸다.

온몸이 짜릿했다. 중독될 것만 같은 쾌감!

멸혼관에서 또래들을 찢어 죽이고 혼자 살아남았을 때 느낀 바로 그 감정이었다.

몸을 비튼 상태에서 백린이 도를 날렸다.

쏴아앙!

천신우는 상체만을 움직여 백린의 공격을 피해냈다.

백린의 도가 더욱 매서워졌다.

빠르면서도 집요하게 천신우를 쫓았다.

사룡의 일인 월풍의 도와 같은 무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른 공격이 쏟아졌다.

물론 백린은 지금의 공세로 천신우를 끝장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천신우를 뒤로 물러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백린의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천신우가 앞으로 쇄도했다.

폭발적인 속도에 백린이 눈을 부릅떴다.

천신우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쉬이잉!

천신우의 검이 백린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런 미친!’

아무리 검이 도보다 빠르다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아까 백린의 공격이 느리게 느껴질 만큼 천신우의 반격은 빠르고 매서웠다.

아까 자신의 공격을 천신우가 마음속으로 비웃었을 거라 생각하니, 백린은 자존심이 상했다.

백린이 이를 악물었다.

천신우의 검에 맞서 필사적으로 도를 휘둘렀다.

스가가가가각!

검과 도가 부딪히며 천신우와 백린에게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물론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백린이었다.

뒤로 주르륵 밀려난 백린이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땅바닥에 자신이 밀려난 자국이 선명히 생겨났음을.

수치심을 느낄 새도 없이 쏟아지는 천신우의 공격을 피해 백린이 몸을 비틀었다.

파파파파팟!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공격을 백린은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피해냈다.

요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계속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백린은 반격할 기회를 노렸다.

몸을 반쯤 비틀며 천신우의 검을 피해낸 백린이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도를 내질렀다.

쏴아아아앙!

전력을 다해 내질러진 백린의 도가 천신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허공마저 찢어버릴 만큼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천신우는 훌쩍 뒤로 물러나며 가볍게 피해냈다.

목을 매만지는 천신우의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이걸 피해?”

백린은 믿기지 않았다.

천신우의 공세가 최절정에 달했을 때를 노린 회심의 일격이었다.

분명 전혀 예상 못 한 반격이었을 텐데…….

“이제야 전력을 다하는군.”

천신우의 말에 백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물론 천신우가 백린을 가지고 논 건 아니었다.

백린처럼 강한 상대는 흔치 않기에 몇 가지를 실험해 본 것뿐이었다.

덕분에 소기의 성과를 얻은 천신우였다.

‘확실히 이 정도 상대와 제대로 붙으니 부족한 점이 보이는군.’

백린은 보지 못했던 자신의 빈틈들. 그걸 스스로 깨달은 천신우였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그만 끝내지.”

성과에 만족한 천신우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백린의 기운도 한층 강렬해졌다.

두 사람의 발밑에서 시작된 바람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증폭환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백린은 증폭환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증폭환이 필요할 정도로 강한 상대를 만난 적도 없거니와, 부작용으로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대신 백린이 택한 건, 가진 힘을 밑바닥까지 쥐어짜 내는 것이었다.

없는 힘을 만들어내는 증폭환보다는 못하지만,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부작용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작용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천신우는 강렬해진 백린의 기운을 피부로 느꼈다.

‘저 정도라면 승천단의 힘을 끌어올릴 필요까진 없겠군.’

사실 최근 들어 승천단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 온 천신우였다.

벽을 뛰어넘어 승천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부작용 때문이었다.

마교에서 자신을 노리기 시작한 지금, 의식을 잃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죽인다!”

백린이 폭발적으로 쇄도했다.

그야말로 밑바닥까지 힘을 쥐어짜 낸 백린의 속도는 눈부실 정도였다.

이젠 정말 천신우도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파아아앗!

땅을 박차며 날아오른 천신우가 백린을 향해 자운검을 휘둘렀다.

허공에서 검과 도가 맹렬하게 부딪혔다.

스가가각! 카카카캉!

어두운 밤하늘에 섬광이 번쩍이고 금속성이 적막을 갈랐다.

관객이 없는 것이 아쉬울 만큼 필사의 일전이었다.

백린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상대가 천신우가 아니라면 몇 번이고 목숨을 앗아갈 공격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기는 천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차차창!

백린의 도를 모조리 쳐낸 천신우가 자운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푸아아아아악!

백린의 어깨가 찢겨 나갔다.

피를 쏟아내며 백린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앞에 천신우가 사뿐히 내려섰다.

피를 머금은 자운검을 지나 백린의 눈이 천신우를 향했다.

천신우 역시 백린을 내려다보았다.

백린은 상처를 지혈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천신우의 눈빛은 단호했고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천신우가 말없이 자운검을 들어 올리던 그때였다.

천신우와 백린의 고개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쐐애애액!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온 복면인이 천신우와 백린 옆에 내려섰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안도의 감정이 섞인 말과 함께 그가 천천히 복면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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