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학사환생 083화
한동안 멸악전단을 떠나 개인 수련에 몰두했던 천신우다.
하지만 그의 늦은 복귀를 비난하는 멸악전단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복귀를 축하한다.”
“어서 오라고!”
오히려 동료들 모두 지금까지 수많은 임무를 수행한 천신우에게 경의를 표했다.
멸악전단은 무림맹의 다른 조직에 비해 임무가 고되고 각광은 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전우애가 각별했고 무엇보다 실력 있는 동료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임무는 얼마 전 오가장의 식솔들을 살해하고 달아난 범인 마인강을 체포하는 일이다. 성산의 한 장원에서 놈이 목격됐다는 결정적인 제보가 있었다. ……놈의 무공과 인상착의를 숙지하도록. 이상!”
조장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던 천신우가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어째서 깨닫지 못했지?’
장서각의 세 번째 단서에 정신이 팔려 놓친 사실이 있었다.
이후로도 폐관 수련에 들어가 잡념 자체를 지웠기에 이제야 떠올린 것이다.
‘진사명이 뛰어난 인재인 건 맞아. 하지만 어떻게 벌써 장서각에 출입할 수 있었을까?’
천신우조차 몸을 혹사하며 임무를 수행한 끝에 얻어낸 장서각 출입증이다.
‘이거 냄새가 나는데. 진사명이 무림맹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의 행적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누구에게 부탁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장윤호.’
무림맹 정보조직 화향루의 일원이자 구왕도 임무를 함께했던 장윤호라면 믿고 맡길 만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단은 이번 임무부터 처리해야겠지.’
천신우가 이번 오가장 살인사건을 복귀 임무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많은 인원이 투입됐음에도 범인인 마인강을 놓치고 말았으니까.’
물론 마인강은 천신우가 나서지 않더라도 나중에 잡힌다.
문제는 멸악전단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 놈이 추가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다시 그따위 일을 벌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천신우의 눈빛이 한층 진지해졌다.
* * *
반나절 후, 천신우는 멸악전단 무인들과 함께 목적지인 장원 근처에 도착했다.
“표적의 저항이 거셀 경우 죽여도 무방하다.”
조장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멸악전단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천신우는 그곳에 남았다.
장원에 잠입해 범인 마인강을 직접 제거하는 임무를 마다한 것이다.
만일 범인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경우, 추격하는 것이 천신우가 맡은 소임이었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역할을 굳이 자처한 이유가 있었다.
‘임무명령서에는 이곳이 마인강의 임시은신처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지.’
마인강의 범행은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오가장의 재물을 노리고 오가장주에게 접근했다.
장기간에 걸쳐 신뢰를 얻어냈고 오가장주가 재산을 어디에 숨겨놨는지도 파악했다.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후에 머무를 은신처까지도 미리 준비해뒀다.
‘마인강이 이곳에 오랫동안 머문 것은 결코 방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야. 놈은 추격자들이 들이닥치더라도 무사히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 있었어.’
천신우는 후방에 남아 마인강이 도주할 경로를 원천봉쇄할 계획이었다.
‘이곳이군.’
작전지역인 장원에서 제법 떨어진 지점.
허름한 모옥을 발견한 천신우다.
‘보고서에 따르면 장원의 비밀통로는 이곳과 연결되어 있었지.’
주변의 나무와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는 그곳에서 천신우는 범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끼이익 소리와 함께 모옥의 낡은 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사는 얼굴의 그는 이번 사건의 범인 마인강.
천신우가 보고서에서 확인한 그대로였다.
오가장주는 살해당하기 직전에야 마인강이 겉과 속이 다른 인간임을 깨달았겠지만.
이미 마인강의 실체를 아는 천신우였다.
“마인강.”
싸늘한 목소리에 마인강이 흠칫했다.
설마 이곳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는 네놈은…….”
긴장한 마인강이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무림맹 잡놈들이 들판에도 개를 풀어놨을 줄은 몰랐구나.”
차아앙!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천신우는 검을 뽑아 들었다.
파앗!
바닥을 박차며 순식간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마인강도 잽싸게 검을 뽑아 들고 대항했지만 천신우의 검이 몇 박자 이상 빨랐다.
솨악!
마인강의 어깨가 베어져 나갔다.
“크윽!”
비명과 함께 마인강이 검을 내질렀다.
서걱!
다시 마인강의 어깨가 베어졌고 거의 동시에 사타구니와 허벅지에서 핏물이 길게 튀었다.
물론 전부 마인강의 몸에 생긴 상처였다.
마인강의 검은 천신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마인강이 눈을 부릅떴다.
“네놈은 도대체……!”
이번에도 천신우는 대꾸하는 대신 묵묵히 상대에게 다가갔다.
“잠, 잠깐!”
다급히 외치는 마인강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살려줘! 무림맹에서 죗값을 치를 테니 제발 목숨만은!”
“틀렸어.”
반면 천신우의 목소리는 모래처럼 건조했다.
“네가 지금 내뱉어야 하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다. 구질구질한 목숨 구걸 따위가 아니라.”
“사과하면…… 살려줄 거냐?”
“아니.”
천신우는 망설임 없이 검을 내질렀다.
푸욱!
마인강의 심장이 단칼에 갈라졌다.
“이런 개자식…….”
마인강은 원망 어린 눈으로 천신우를 노려보며 숨을 거뒀다.
그러나 천신우는 이미 놈에게서 관심을 거둔 후였다.
검에 묻은 피를 촤아악 털어내며 천신우가 고개를 돌렸다.
“나와.”
반응이 없자 천신우는 비수를 꺼내 날렸다.
평범한 동작이었지만 비수가 날아가는 속도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비수는 모옥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에 정확히 박혔다.
팍팍팍!
그제야 나무 뒤에서 세 명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젊은 놈이 감이 좋군.”
복면을 착용한 그들은 도제의 세력에 속한 고수들이었다.
도제의 손자이자 사룡의 일인인 월풍의 부탁을 받고 천신우 뒤를 쫓은 것이다.
그들이 무림맹을 벗어난 천신우를 곧바로 습격하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는 간단했다.
무림맹 소속인 천신우를 살해한 사실이 알려졌다간 뒷감당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천신우를 살해하고 임무 수행 도중 사고로 위장할 생각이었다.
방금 천신우가 죽인 마인강과 동귀어진한 것으로 위장하면 그만이었다.
“도저히 그 나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야.”
순수한 감탄이었다.
앞서 마인강은 그들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천신우는 그들의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한 것이다.
“용건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천신우의 태도에 그들이 피식 웃었다.
“후후후. 듣던 대로 아주 건방진 놈이구나.”
“폐관 수련에서 성과가 있었나 보지?”
천신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아까부터 나를 따라오더니 우연이 아니었군.”
그 말에 무인들이 깜짝 놀랐다.
설마 처음부터 미행을 들켰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자연히 그들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사실 오늘 거처를 나설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감히 겁도 없이 도제의 손자를 건드린 애송이 손봐주는 것쯤이야.
물론 월풍은 후기지수 중에 분명 뛰어난 편이다. 그런 월풍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박살 낸 천신우도 보통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구왕도에서 전공을 세웠다는 소식까지 알려진 상황.
그런데도 그들은 그 일들의 의미를 축소했다.
천신우도 결국은 아직 경험 부족한 후기지수일 뿐이며. 구왕들을 쓰러뜨린 거야 소문이 와전된 것이라고.
하지만 천신우와 직접 마주한 지금 그들은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긴. 그렇게 티를 내면서 따라오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천신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들의 실력이 정말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다.
개개인의 실력만 따지고 봐도 월풍보다 뛰어났다.
게다가 숫자도 셋이다.
‘예전이라면 긴장했어야 마땅하건만.’
지금 천신우는 긴장보다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하늘도 무심하군.”
“하늘을 원망하기 전에 네놈 스스로를 탓해라. 네놈이 겸손하게 살았다면 남에게 원한 살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럼 무슨 뜻이지?”
천신우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수련의 성과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 강한 상대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 그런데 고작 너희 같은 상대를 만나게 해주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
“건방진 애송이가 감히!”
세 무인 가운데 가장 성격이 급한 노인이 몸을 날렸다.
폭노군이라 불리는 그는 신법의 고수였다.
갈대밭을 단숨에 가로지르는 그의 신법은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폭노군이 갈대밭의 중간지점에 이른 순간.
천신우가 바닥을 박찼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며 날아오른 천신우는 단숨에 폭노군 앞에 내려섰다.
“……!”
당황한 폭노군이 다급히 봉을 내질렀다.
천신우는 날아드는 봉을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속도는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눈에 담기 힘들 만큼 빠른 공격이겠지만 천신우에겐 폭노군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느려.”
모든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해낸 천신우가 폭노군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쉬이익!
“이런 미친!”
폭노군은 정말이지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천신우가 보여준 검의 움직임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기에 더욱 놀라웠다.
“네놈이 어떻게……!”
충격적이게도 천신우의 검법은 도제가 전에 보여주었던 한 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도제의 한 수에 비하면 분명 부족함이 있었지만, 폭노군으로선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경지였다.
촤아악!
갈라진 폭노군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눈을 부릅뜬 채로 절명한 그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
그러나 동행한 무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다.
스윽.
서로 눈짓을 교환한 그들이 동시에 천신우에게 달려들었다.
혼자선 절대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천신우를 향해 도를 내지르며 천산도객은 생각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
셋이 오긴 했지만 정말 합공이 필요할 줄이야.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내질러진 도가 천신우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천산도객은 승리를 확신했다.
폭노군이 신법의 고수라면 천산도객은 괴력의 소유자였다.
괴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천산도법이 그의 성명절기.
게다가 동시에 동행한 고수의 검도 천신우의 옆구리를 베어가고 있었다.
워낙 검의 움직임이 신출귀몰하다 하여 귀검이라 불리는 그였다.
‘절대 못 피해!’
그러나 마음속 외침을 정면으로 반박하듯 천신우가 엄청난 속도로 반응했다.
쩌엉!
머리 위로 떨어지는 천산도객의 도를 천신우가 쳐내는 소리였다.
‘이걸 쳐냈다고? 심지어 전혀 밀리는 기색 없이?’
천산도객의 얼굴이 굳어지는 순간, 이미 천신우는 뒤로 돌며 귀검의 검법을 받아치고 있었다.
차차차차창!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다섯 차례의 변화를 보인다고 알려진 귀검의 검법이다.
하지만 천신우는 귀검의 변화무쌍한 검법에 전혀 휘둘리지 않았다.
쉬이익!
다섯 차례의 공격을 전부 쳐낸 천신우의 검이 어느새 귀검의 팔을 타고 올라가 목을 찔렀다.
푸욱!
그 모든 것이 반 호흡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숨을 내쉴 틈도 없이 천산도객이 도를 내려쳤다.
정말이지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쏴아아앙!
하지만 천신우는 순식간에 뒤돌아서며 반응했다.
목에 뚫린 구멍을 통해 피를 꿀렁꿀렁 토해내던 귀검은 보았다.
천신우가 천천히 천산도객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베어가는 것을.
그 광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뭐하고 있나! 어서 피하게!’
귀검의 간절한 외침이 무색하게 천산도객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왜!’
물론 귀검은 알지 못했다.
죽음의 순간, 모든 게 느리게 보였다는 것을.
천신우에 비하면 천산도객의 속도는 아예 움직이지 않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렇게 귀검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천신우의 검은 이미 천산도객의 옆구리를 베고 복부를 관통하고 있었다.
“크허헉!”
입에서 핏물을 토해내며 천산도객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뱉으며 천산도객의 복면을 벗긴 천신우가 깜짝 놀랐다.
“천산도객!? 그럼 다른 놈들은?”
황급히 다른 고수들의 복면을 얼굴을 확인한 천신우였다.
“맙소사…….”
천신우는 휘청거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들이 도제의 파벌에 속한 고수들이라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월풍이 개수작을 부릴 것쯤은 예상했으니까.
천신우가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귀검과 폭노군이 이렇게 약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