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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81화 (81/171)

# 81

학사환생 081화

금와전장 장주 만금소의 천씨세가 방문은 당연히 우연이 아니었다.

앞서 구왕의 은닉재산을 확보하려다가 헛걸음만 했던 만금소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만금소는 사람들을 동원해 내막을 조사했다.

아직도 자금의 행방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한 가지 단서를 입수할 수 있었다.

당시 해당 지역 근처에서 천신우가 목격된 사실이었다.

‘만약 놈이 구왕도에서 구왕들의 은닉재산과 관련된 단서를 얻었다면? 그 정보를 이용해 한발 앞서 재산을 빼돌렸다면?’

그런 생각이 만금소를 천씨세가로 이끌었다.

마침 오대세가 무림대회가 열렸기에 따로 구실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물론 천씨세가에 온다고 천신우의 혐의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설령 입증해 내더라도 천신우가 빼돌린 재산이 만금소의 돈이 되진 않는다. 무림맹에서 환수할 테니 만금소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야말로 당연한 상식.

하지만 만금소가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부자는 절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남의 돈도 자신의 돈처럼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만일 네놈이 구왕의 재산을 빼돌렸다면 모조리 빼앗아주마. 혹여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만금소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남들과는 달랐다.

천씨세가에 세워진 건물들. 드넓은 대지. 하다못해 음식을 나르는 시비들까지도. 만금소의 눈엔 그 모든 게 돈으로 보였다.

‘그에 상응하는 재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야.’

지독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생각이었다.

물론 만금소는 겉으론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간 잘 지냈는가?”

서로 안부를 물을 관계는 아니지만 천신우 역시 담담하게 반응했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건 정치의 기본이기에.

“걱정해 주신 덕에. 장주님은 더 정정해지셨군요.”

만금소는 굵은 금반지를 끼고 있는 손가락으로 수염을 매만졌다.

“자네는 요즘 명성이 자자하더군. 내게 딸이 있었다면 사위 삼고 싶을 정도야.”

그러다 채은수를 보고는 너스레를 떤다.

“이런. 이미 임자 있는 몸인지는 미처 몰랐네.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고 말았구먼. 눈치 없는 늙은이는 이만 물러가지. 나중에 봄세.”

만금소가 단지 고작 천신우에게 안부를 묻자고 직접 찾아왔을 리가 없다.

이후의 만남에서 속셈을 드러낼 터.

“그럼 최대한 빨리 자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만금소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라지자 무신이 천신우에게 다가왔다.

“네가 금와전장의 장주와 구면인 줄은 몰랐구나.”

“곡물 파동 당시에 한 번 봤을 뿐입니다.”

“한 번 봤는데 직접 찾아와 만나자고 제안해?”

무신은 만금소의 행동에 목적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짚이는 구석이 있긴 합니다.”

천신우는 잠시 망설였다.

무신이나 풍뢰권이야 모든 사실을 털어놔도 상관없다.

하지만 채은수는?

아직은 그녀와 진실을 공유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 천신우의 고민을 깔끔히 해결해 준 것은 무신이었다.

“데려오느라 고생했다.”

채은수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부담 없이 말해보아라.”

무신의 배려에 천신우는 마음 편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구왕의 은닉재산을 빼돌리지 않았습니까.”

무신도 천신우가 구왕의 재산을 선점한 사실을 들어서 알았다.

“그래.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었지.”

무신은 꽉 막힌 원칙주의자가 결코 아니었다.

구왕의 재산이 무림맹 실력자들의 뒷주머니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천신우처럼 피해자들을 위해 절반 이상을 내놓는 편이 낫다는 것이 무신의 견해였다.

“아무래도 만금소도 구왕의 재산을 노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추측이다.

하지만 근거가 없진 않았다.

전생에 구왕의 재산을 선점한 것이 바로 만금소였으니까.

“사실 물증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만금소에겐 구왕의 재산을 환수할 권리가 없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포기할 작자가 아니지.”

“맞습니다.”

구왕의 은닉재산이 아니더라도 이미 천씨세가는 대홍수 이후 엄청난 부를 축적한 상황이다.

게다가 한수 지역에 개척한 교역로가 활성화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욕심 많은 만금소로서는 눈독을 들일 수밖에.

“아마도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천씨세가를 집어삼킬 계획을 세워놨을 겁니다.”

만금소는 뼛속부터 상인이다.

그렇기에 남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 역시 거래로 시작한다.

‘원래라면 돈을 빌려주고 채무를 명목으로 목줄을 틀어쥐겠지만.’

천씨세가의 자금 사정은 현재 최고조.

굳이 자금을 융통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대부업을 시작해도 충분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쓰겠지.’

만금소는 천씨세가와의 거래를 제안할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천씨세가에 이득이 되는 거래를.

그러나 천신우는 안다.

만금소와의 거래가 결국은 천씨세가에 독으로 작용할 것임을.

만금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만들 테니까.

“어쩔 셈이냐?”

“받아야지요.”

그걸 알면서도 천신우는 만금소와의 거래를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물론 만금소 뜻대로 당해주진 않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만금소를 잡는다.’

만금소는 일전에 제거한 단심회 회주 석무해와 마찬가지로 타도대상.

지금까지야 힘이 부족해 뒤로 미뤄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만금소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자가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모은 재산으로 든든한 연줄을 만들어뒀다는 것도.”

무림맹 감찰각주. 도제의 추종세력.

그들 모두 만금소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결국, 만금소와의 일전은 감찰각주를 쳐내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첫 단추를 잘 끼워야겠지요.”

일단은 만금소를 만나 거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 * *

연회가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무렵. 천신우는 따로 준비된 공간에서 만금소를 만났다.

“설마 오늘 당장 자리를 만들 줄은 몰랐네.”

“멀리서 오신 귀한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하하. 아직 젊은데도 손님 대접할 줄을 아는구먼.”

만금소는 여전히 사람 좋게 웃었다.

물론 천신우는 그의 실체를 알기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 만금소가 귀신처럼 틈을 파고들 것을 알기에.

“내가 소가주를 찾은 이유를 알겠나?”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네. 장사치 생각이야 단순하지. 나는 천씨세가와 거래를 하고 싶다네.”

“천씨세가도 금와전장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만금소가 제안한 거래는 한수 교역로를 통해 물품을 운송하는 일이었다.

사실 제안 자체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 정세는 전에 없이 급변한 상황.

만금소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자네가 잘 알다시피 얼마 전 구왕도가 무너졌네.”

만금소가 구왕도와 관련해 떠볼 거라 예상했기에 천신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만금소 역시 실망한 내색 하나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로 인해 두 가지 변화가 생겼지.”

한 가지는 구왕이 다스리던 제18영역을 경유해도 통행세를 납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왕도의 잔존 세력들로 인해 상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

“간단하게 요약하면 위험부담이 늘어난 만큼 기대수익도 커진 셈이네. 자아. 눈을 감고 상상해 보게.”

이어진 만금소의 제안은 분명 달콤한 것이었다.

“우리 금와전장에서 산하 상단을 통해 확보한 광물을 천씨세가의 교역로로 운송한다면?”

금와전장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변방의 초대형광산 채굴권을 확보했다.

기존에 유통되던 물량보다 질적으로 뛰어나면서도 가격경쟁력을 갖춘 광물.

거기에 새로 활성화된 천씨세가의 한수 교역로.

“이보다 그림이 좋을 수는 없겠군요.”

“바로 그걸세.”

“하지만 단지 교역로를 이용할 생각이시라면 천씨세가에선 그리 대단한 거래도 아닙니다만.”

물론 거래 규모가 크면 한 다리 걸치더라도 수익이 만만찮다.

이번 거래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급성장한 천씨세가 입장에선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굳이 위험부담을 떠안아 가며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

하지만 금와전장과의 거래를 통해 만금소를 끝장내려는 천신우로선 충분히 받을 만한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불만을 내비친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또한, 판을 키우는 효과도 있다.

“나도 천씨세가에서 고작 수수료나 챙기는 거래를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네. 그러니 이렇게 하면 어떤가.”

만금소가 금반지를 끼고 있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광산에서부터 판매지역에 이르기까지 운송 자체를 아예 천씨세가에 일임하지. 기간은 일단 3년. 이후에 합의를 통해 연장하는 것으로.”

“또한, 천씨세가에서 필요한 물량은 원가로 제공해 주지. 더불어 원한다면 제16영역의 거래권도 넘기겠네.”

탁자를 두드리던 만금소의 손가락이 멈췄다.

천신우의 대답을 재촉하는 것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물론 천신우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 거래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금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 거래를 무산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리고 천씨세가에 책임을 떠넘겨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겠지.’

그렇다면 거래조건이야 얼마든지 높일 수가 있다.

그리고 천신우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운송대금은 어떻게 됩니까?”

“천씨세가에서 통상적으로 거래한 비율대로 맞춰주지.”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천신우는 무인을 시켜 단심회 산하 상단과의 거래계약서를 가져오게 했다.

확실히 만금소는 천신우의 고모부와는 달랐다.

예전에 천신우 고모부는 단심회와의 계약조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만금소는 느긋한 태도로 계약서를 천신우에게 돌려주었다.

“좋네. 이대로 하지. 자세한 일정은 차차 조율하기로.”

“알겠습니다. 가주님께도 이런 조건이라면 허락해 주실 겁니다.”

이미 세가의 중대한 의사결정은 천신우 선에서 정리되는 상황.

가주 천무흔의 결재는 형식에 불과했다.

만금소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솔직히 정말 많이 양보해 준 걸세. 그만큼 천씨세가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지. 그러나 알다시피 무림에 반드시란 말은 없다네.”

“물론입니다. 광물을 강탈당하고 배마저 잃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요.”

천신우의 의미심장한 발언.

그 발언에도 만금소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니 각별히 신경 써주게. 물론 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확보해놔야겠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만금소였다.

거액의 위약금과 배상금을 계약서에 명시한 것이다.

‘역시 실력을 행사해 광물을 강탈할 생각이군.’

습격에 성공한다면 만금소는 엄청난 이득을 거두게 된다.

먼저 불리한 계약조건을 이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강탈한 광물은 다른 산지의 광물로 탈바꿈시켜 거래하면 그만.

거기에 거액의 배상금은 덤이다.

‘배상금을 구실로 자금줄을 조이겠지. 그러더라도 우리 입장에선 계약을 파기하지 못한다. 거액의 위약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신용도가 추락할 테니까.’

이렇듯 만금소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았음에도, 천신우는 순순히 모든 조건을 받아들였다.

서명을 마친 다음 계약서를 나눠 갖기까지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물론 만금소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오냐. 계약조건이야 네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마. 어차피 네놈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광물을 실은 배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만금소는 천신우가 무신과 가깝게 지내는 사실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물론 네놈은 무신궁을 믿고 일을 벌였겠지만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내가 연줄을 동원해 무신궁의 주력을 묶어둘 테니 말이다. 으흐흐.’

그러나 만금소의 그런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는 천신우였다.

‘내가 무신을 믿고 이번 거래를 받아들였을 거로 생각하고 있겠지.’

천신우는 만금소의 영향력을 알았다.

금와전장이 무신궁과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지만, 연줄을 동원해 발을 묶어두는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천신우는 처음부터 무신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번 일은 천씨세가의 전력만으로 해결한다.’

물론 명색이 금와전장의 장주다.

당연히 만금소는 천씨세가에 대해 정보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산에 풍뢰권이 들어 있을까? 나와 권왕의 성장은?’

가능성이 없진 않다.

하지만 설령 만금소가 변수를 염두에 두고 대비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대비한다고 모든 사고를 막을 순 없는 법이지.’

풍뢰권과 권왕. 그리고 천신우 자신. 이 셋은 사고 정도가 아니다.

자연재해 수준.

만금소가 대비하더라도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천신우의 눈빛이 자신감으로 가득한 이유였다.

* * *

오대세가 무림대회는 성황리에 종료됐다.

공연과 연회로 시작해 거액의 상금이 내걸린 비무대회까지.

참석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고서.

그렇게 무림대회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천신우는 무림맹으로 복귀했다.

당연하게도 천신우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장서각이었다.

3급 출입증을 제시하자 일사천리로 출입절차가 마무리됐다.

장서각 안으로 들어선 천신우는 눈이 닿는 곳마다 가득한 책장들을 보며 감회에 사로잡혔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전생에서 좌천된 이후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장서각이다.

이렇게 과거로 돌아와 방문하니 느낌이 남달랐다.

나무 냄새와 종이 냄새가 한데 섞이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저기 앉아서 책을 읽었었지.’

지금은 그 자리에 천신우의 사수가 앉아 있었다.

전생의 기억보다 젊은 모습의 그는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해댔다.

‘하하하. 이때도 잠자기 바빴군.’

묵향을 따라 추억이 거슬러 올라온다.

서서 책을 고르고 있는 채은수.

그런 그녀를 힐긋 훔쳐보는 자신의 모습이 연달아 떠올랐다.

하지만 목적한 장소에 다다르는 순간 천신우는 모든 잡념을 털어버렸다.

‘두루마리의 단서에 따르면 이곳이 확실하다. 정확히는 이 책.’

천신우의 눈길이 책표지에 머물렀다.

그렇게 심호흡과 함께 책을 뽑는 순간.

천신우의 눈이 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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