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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69화 (6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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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69화

천신우의 움직임을 전혀 보지 못한 적들에게 살혼객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헙!”

천신우와 눈이 마주친 적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는 이를 쉬지 않고 부딪쳤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바지가 누렇게 젖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살혼객은 무림맹 조사대를 상대할 핵심전력.

그런 살혼객이 이처럼 허무하게 죽어버렸으니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대체…….”

죽은 살혼객과 귀혼객을 대신해 봉혼객이 던진 질문.

“내가 묻고 싶군. 어째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지?”

천신우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채은수였다.

“배후를 알아내려고 일단 살려뒀어요.”

천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무림맹 소속이란 사실을 알고도 습격했습니다. 그런 놈들에게 협박이나 회유가 먹혀들 리가 없지요. 그런데도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채은수는 완전히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사실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그녀는 눈앞의 상대가 마교 추종자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천신우와 채은수의 대화를 들은 봉혼객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배후를 밝히면 살려주는 거냐?”

채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직접 죽이진 않겠어요. 무림맹에서 정식재판을 받도록 조치하지요.”

“그렇다면 말해주지. 무림맹 조사대를 습격하라고 지시한 배후는 바로…….”

봉혼객이 채은수를 삿대질하며 킬킬거렸다.

“네년의 할아비다. 무신이 나를 불러 무림맹 조사대를 급습하고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크헉!”

갑자기 봉혼객이 목을 붙잡고 비틀거렸다.

“……!”

부릅뜬 두 눈 안으로 파르르 떨리는 비수 손잡이가 들어왔다. 비수 칼날은 이미 목에 박힌 후였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던 봉혼객이 마침내 바닥에 쓰러졌다.

“……!”

채은수가 놀란 눈으로 천신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천신우는 아랑곳없이 봉혼객의 시체로 다가가 비수를 뽑아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누구를 상대하는지.”

비단 마교만이 아니다.

구왕들의 세력조차 지금까지 상대해온 악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다음번엔 우리 등에 비수가 꽂힐지도 모릅니다.”

천신우가 피를 털어낸 비수를 그대로 날렸다.

쐐애액!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비수가 달아나던 사내의 뒤통수에 꽂혔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 사내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즉사한 것이다.

천신우가 채은수를 돌아보았다.

“채 소저가 원하는 답은 구왕에게서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가서 직접 묻도록 하지요. 그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채은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나온 후기지수들과 천신우는 완전히 다름을.

잠시 쓰러진 적들의 시체를 바라보던 채은수가 이내 천신우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헉! 나만 놔두고 가면 어떡하나!”

장윤호가 헐레벌떡 그들을 뒤쫓았고, 뒤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풍뢰권이 권왕에게 물었다.

“분하더냐?”

대답 대신 이를 악무는 권왕이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풍뢰권은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이미 권왕의 마음속엔 천신우를 향한 경쟁의식이 생겨난 상태.

그걸 키워내 결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권왕의 몫이었다.

* * *

천신우 일행이 마교 추종자들을 쓸어버리고 적잖은 시간이 흐른 시점.

태청고개를 넘은 무림맹 조사대가 객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피비린내를 맡은 책임자의 표정이 심각했다.

물론 조사대에 포함된 화사라는 여인만큼은 아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화사는 마교 최고의 후기지수인 진사명의 동료.

진사명과 마찬가지로, 이번 차수 모집시험을 통해 무림맹에 잠입했으며 여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현재 조사대에 합류해 구왕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물론 화사에게 중요한 것은 조사대 임무가 아니었다.

그녀의 진짜 임무는 마교 추종자들에게 조사대의 이동경로를 전달하는 것.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살혼객이 조사대를 습격하기로 예정된 태청고개가 가까워졌음에도 아무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살혼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믿기지 않았다.

살혼객은 마교 추종자 중에서 칠객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강자였기에.

‘답답해 미치겠네. 이래서 잠입 임무가 싫다니까.’

하지만 사실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번 일을 주도한 이는 칠객의 일인인 명부객.

설령 살혼객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가 나서서 해결할 것이다.

‘이제 나는 모르겠으니까 명부객 당신이 해결해.’

화사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조사대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구왕도에서 가장 은밀한 심처.

지금 이곳에선 구왕들의 회합이 열리는 중이었다.

물론 그들이 호형호제하는 사이는 아닌 만큼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이래서 처음부터 믿지 못할 놈들과는 손을 잡지 말자 하지 않았소!”

구왕들 중에 서열 7위인 비열왕의 발언에 다른 구왕들은 비웃음만 머금었다.

누구보다 상종 못 할 인간이 바로 비열왕이었기에.

과거 문주가 되기 위해 부모를 죽이고 형제에게 누명을 씌운 그였다.

무림맹 수사가 시작되자 이곳으로 도망친 이후로도 저열한 행각은 계속됐다.

지금 자리까지 도달하기까지 비열왕에게 뒤통수 맞은 사람들만 모아도 문파를 이룰 터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지금에서 뭘 어쩌겠는가.”

누군가의 반박에 구왕의 막내 폭군왕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내 부하들이 죽었소! 절대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소이다!”

“독중호 그놈 말인가? 그놈은 받는 돈에 비하면 하는 일도 없던데 이참에 털어냈다고 생각하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폭군왕은 당장에라도 판을 뒤엎을 기세였지만 누구도 긴장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 폭군왕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실력자였기에.

사실 폭군왕은 다른 구왕들보다 결코 젊지 않았다. 나이로 서열을 정했다면 그는 적어도 중간은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왕도의 서열관계는 철저히 무력중심이었고 폭군왕은 막내를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당장 놈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소! 무림맹 조사대를 처리하겠다고 호언장담해놓고 지키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책임을 묻자고? 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언젠가부터 대화를 주도하는 평범한 인상의 중년인.

구왕 중에 서열 2위로 불살왕이라 불리는 그였다.

물론 불살왕이란 호칭은 스스로 지어낸 것에 불과했다.

그는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죽인 잔악무도한 살인마였으니까.

그런 불살왕조차 이번 일을 주도한 명부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명부객 이전에 방문했던 존재를.

“물론 명부객 정도는 어찌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자는 어떻게 상대할 생각인가?”

불살왕뿐만 아니라 구왕들 모두는 얼마 전에 구왕도를 방문한 존재를 떠올렸다.

그는 제안했다.

무림맹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제18영역을 넘어 다른 영역에서 날개를 펼치게 해주겠다고.

코웃음을 치는 구왕들 앞에서 그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경악하는 구왕들에게 앞으로는 명부객을 통해 지시를 내리겠다며 사라졌다.

그날 이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여전히 구왕들의 뇌리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그자 하나쯤은 상대하고도 남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끝이 아니야. 그자 역시 누군가의 하수인. 우리가 그자의 뜻을 거스른다면 그들이 직접 나서겠지. 그땐 누가 그들을 막겠는가?”

불살왕의 시선이 폭군왕과 비열왕에게 머물렀다.

당연히 그들 모두 약속한 것처럼 침묵했다.

“자자.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는 말자고. 따지고 보면 이건 기회야.”

어차피 구왕들 입장에선 무림맹이나 명부객의 배후나 두렵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명부객의 배후는 그들을 통제하고 제약하는 무림맹과는 달랐다.

“그들에게 협조하면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되네.”

“하지만 이제 무림맹 조사대가 도착할 거요. 그럼 이곳에서 실종된 무림맹 첩자들의 행방을 파헤칠 텐데…….”

“조사대라면 걱정 마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구왕들도 익히 아는 존재였다.

“명부객! 어디 있다가 이제 오는 것이오!”

명부객은 이번 태청고개 습격 사건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앞서 무림맹 첩자들을 색출해 낸 인물이었다.

물론 명부객이 마교 추종자란 사실은 이곳에 있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폭군왕의 부하들을 제거한 놈들이 누군지 조사하느라 늦었소.”

“누군지는 알아내셨소?”

예의범절과는 담쌓고 사는 구왕들이지만 명부객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물론. 무림맹에서 별도로 선발대를 보낸 모양이오. 워낙 소수 인원이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소.”

사실 아직도 명부객은 천신우 일행에 대해 정확히 파악이 끝난 상태가 아니었다.

단지 무림맹 조사대 외에 이번 일에 관여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어찌 됐든 본인이 책임지고 처리하겠소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바로 그때였다.

구왕도 무인 하나가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 왔다.

명부객도 아닌 구왕도 소속 무인이 구왕들 앞에서 이런 무례를 범했다면 필시 이유가 있을 터.

구왕들은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가?”

“제9관문이 뚫렸습니다!”

폭군왕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구왕도의 제9관문을 관리하는 것은 바로 그였기에.

심복 독중호의 죽음에 이어 다시 한번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물론 폭군왕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뒤이어 뛰어든 구왕도 무인이 보고했다.

“제8관문이 뚫렸다는 소식입니다!”

폭군왕을 비웃으려던 비열왕이 멈칫했다.

이제는 그가 관리하는 제7관문이 뚫렸다는 보고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빌어먹을 무림맹 놈들! 정말 전쟁이라도 벌이자는 것인가!”

흥분한 폭군왕과 달리 불살왕은 차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림맹에서 조사대만 보낸 것이 아닌 모양이군.”

구왕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물론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은 걱정이나 근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왕도를 함께 다스리는 그들이지만, 운명공동체는 아니었다.

언제든 등을 돌리고 서로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였다.

지금도 그들은 이번 일로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본 폭군왕의 세력을 어떻게 집어삼킬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폭군왕이라고 그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그는 이 분위기를 잠재울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직접 나서서 놈들을 막겠소이다!”

비열왕도 돕겠다며 나섰다.

“내가 힘을 보태주지.”

“나도 마찬가지요.”

제8관문을 관리하는 구왕 서열 8위 소검왕까지 나섰다.

물론 그들이 폭군왕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의리 때문이 아니었다.

비열왕은 제7관문을 지키는 부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제8관문이 뚫리는 피해를 입은 소검왕은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함이었다.

명부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관문 방비는 여러분에게 맡기겠소.”

불청객들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부객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림맹 조사대를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역할분담이 정해지자 불살왕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놈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그게…….”

믿기지 않는 대답이 구왕도 무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섯 명이라고 합니다. 그나마도 둘은 뒤에서 구경만 했다고.”

구왕들뿐만 아니라 명부객의 눈빛 역시 예리해졌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 * *

구왕도로 통하는 제7관문은 험준한 협곡을 사이에 두고 자리했다.

천신우 일행은 거대한 높이의 성벽과 그에 어울리는 웅장한 철문 앞에 마주 섰다.

“제7관문이군. 이곳을 다스리는 비열왕으로 말하자면 부모 형제마저 저버린 아주 쓰레기 같은 놈으로서…….”

신나게 떠벌리던 장윤호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성벽 위로 야비한 인상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구왕 가운데 서열 7위인 비열왕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두고 그렇게 지껄이는 놈들이 정말 많았지. 그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나?”

비열왕에 이어 폭군왕과 소검왕도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지금껏 관문을 지키던 수문장들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장윤호가 마른 침을 삼켰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아. 설마 내가 구왕들과 직접 맞서게 되다니…….”

사실 채은수도 지금 상황이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그녀가 맡은 임무들은 다수가 소수를 상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불과 다섯 명만으로 구왕도의 관문을 차례차례 깬다?

그야말로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걱정보다 기대가 앞서는 것은.’

채은수의 커다란 눈동자가 천신우를 향했다.

‘역시 천 공자 때문이겠지.’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천신우는 채은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살혼객을 상대하던 천신우의 모습을 기억했다.

제9관문과 제8관문을 거침없이 통과하던 모습 역시도.

그리고 이제 천신우는 제7관문 앞에 서 있었다.

구왕도를 다스리는 구왕들을 마주하고서.

‘역시 대화로 시작하겠지? 이만하면 무력시위는 충분히 했으니.’

채은수는 지금까지 보여준 천신우의 행동을 일종의 무력시위로 해석했다.

실종된 무림맹 무인들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먼저 힘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격하지만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

엉덩이 무거운 구왕들이 이곳까지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천신우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폭군왕과 소검왕. 그리고 비열왕. 전부 잔챙이들뿐이군.’

대화할 가치조차 없었다.

구왕도의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구왕들은 따로 있기에.

천신우는 고개를 들어 성벽 위를 바라보았다.

“내려와.”

“지금 뭐라고 했느냐?”

“정신 나간 놈이군.”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설마 수문장들을 쓰러뜨렸다고 우리까지 우습게 보는 것이냐?”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들.

“내려오기 싫다면.”

천신우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내려오게 만들어주지.”

다음 순간! 내공이 실린 일격이 성벽을 뒤흔들었다.

꽈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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