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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68화 (68/171)

# 68

학사환생 068화

“으음……!”

장윤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하니 권왕 혼자 상황을 정리해 버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심지어 폭군왕의 심복인 독중호마저 일격에 당할 줄이야.

하지만 충격도 잠시.

“이거 내가 나설 필요까지도 없겠는데. 하하하.”

기세등등해진 장윤호였다.

반면 채은수의 눈빛은 진지했다.

‘엄청난 괴력이야.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그게 반드시 단점이라고 보기는 힘들어.’

거기까지 생각하던 채은수는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운경 저 사람도 천씨세가 소속이잖아? 그리고 풍뢰권 어르신도 할아버님의 지인이니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거기에 조충헌 교관님까지…….’

현재 천씨세가에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고수는 천신우뿐.

하지만 지금 보니 천씨세가엔 천신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림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고수들을 두루두루 갖춘 천씨세가였다.

‘믿어지지 않아. 이 모든 게 불과 1년 사이에 천 공자 혼자서 일궈낸 업적이라니.’

채은수는 놀란 눈으로 천신우를 돌아보았다.

팔짱을 끼고 있는 천신우가 새삼스럽게 대단해 보였다.

물론 살아남은 폭군왕의 부하들로서는 눈앞의 권왕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어, 어떻게 하지?”

죽은 동료들의 복수 따윈 꿈도 꾸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어떻게 하긴! 튀어야지!”

어느새 생존자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중이었다.

쓰러진 독중호를 툭툭 발로 건드리던 장윤호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 어딜 도망가느냐!”

위풍당당하게 생존자들을 쫓으려던 장윤호를 붙잡아 세운 것은 풍뢰권이었다.

“가게 두어라.”

“하지만 어르신…… 저놈들 돌려보내면 반드시 보복하려 들 겁니다.”

“그러니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풍뢰권이 객점 종업원들을 돌아보았다.

“네놈들.”

독중호에게 천신우 일행을 제보했던 종업원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비록 협박을 당했다지만 무림인들이 그런 사정까지 신경 쓰던가.

하지만 풍뢰권은 그들을 응징할 생각이 없었다.

“혹시 누군가 우리의 행방을 묻거든 구문이라고 답해라.”

구문은 구왕도로 통하는 아홉 개의 관문.

경계가 무척 삼엄한 데다 구문을 지키는 수문장들 또한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런데도 풍뢰권은 당당히 구문을 이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도한 자신감의 표현.

그러나 풍뢰권이기에 납득이 됐다.

권왕도 객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만두 10인분. 포장.”

“무, 물론입지요.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종업원 하나가 바들바들 떨며 포장해온 만두를 등에 짊어지는 권왕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천신우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권왕이 무척 만족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모두 얼마지?”

천신우의 물음에 객점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계산은 됐습니다.”

무슨 배짱으로 돈을 받겠는가.

물론 천신우의 생각은 달랐다.

“그럴 수야 없지.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닐 텐데.”

기어이 음식값을 계산한 천신우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

독중호의 부하들만으로는 나중에 도착할 무림맹 조사대를 상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사실상 선발대라고 봐야 했다.

‘본진은 어디 있지?’

객점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나타나셨군.’

마차로 길을 막아놓은 일단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 중엔 아까 달아났던 독중호의 부하들도 있었다.

“저놈들입니다!”

천신우는 그들을 무시하며 뒤쪽의 적들을 바라보았다.

수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눈에 띄는 얼굴은 둘 정도.

‘저놈들이 마교의 추종자겠군.’

장윤호도 마교 추종자에 대한 정보는 없는지 가타부타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두 놈 모두 생각만큼 존재감이 대단하진 않아.’

천신우는 태청고개 습격 사건 보고서를 떠올렸다.

당시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알려진 마교 추종자.

‘살혼객. 네놈은 어디 있는 거냐?’

천신우가 감각을 끌어올리던 그때.

일행 가운데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사라락 흘러내린다.

면사를 벗고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낸 그녀는 바로 채은수였다.

“오오!”

세상 물정 모르는 몇몇 적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침을 꼴깍 삼켰다.

채은수는 그들이 지금껏 봐온 어떤 여인들보다도 아름다웠기에.

하지만 마교 추종자 봉혼객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설마 네년은 무신궁의?”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봉혼객이었다.

“그랬군.”

당초 입수한 정보보다 무림맹 조사대가 빠르게 도착한 이유.

그리고 규모 또한 훨씬 작았던 내막까지도.

“무신이 독자적으로 조사대를 보낸 거군.”

무신궁이란 이름 앞에서도 봉혼객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곳에 무신이 직접 와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사지를 찢어 네년 할아비에게 보내주지!”

봉혼객은 객점에서 권왕에게 당한 독중호와 달리 처음부터 직접 나섰다.

상대가 무신의 손녀라면 떨거지들을 내보내 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촤라락!

봉혼객의 굵은 손가락마다 쇠사슬이 감겼다.

그는 특이하게 검이나 도가 아닌 쇠사슬을 애용했다.

봉혼객 앞에 마주 선 채은수 역시 검을 뽑아 들고 호흡을 골랐다.

얼굴과 몸매를 흘깃거리는 짐승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숱하게 경험한 상황.

지금까지 그랬듯 채은수는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녀가 여자이기 전에 무림인임을. 무신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수련해 왔음을.

스르륵.

채은수의 신형이 늘어나듯 봉혼객 앞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최대한 거리를 좁혀 봉혼객의 주무기 쇠사슬을 봉쇄하려는 목적.

그러나 봉혼객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촤르륵! 손에 감긴 쇠사슬이 마치 권갑처럼 주먹을 감쌌다.

꽈앙!

한 차례 강렬한 격돌 후에 이어진 것은 눈으로도 쫓아가기 힘든 공방전이었다.

지켜보던 장윤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 사룡! 아니, 잠깐만. 저놈은 뭔데 사룡과 비등비등한 거야?”

사실 무공 자체는 채은수가 조금 앞섰다.

하지만 봉혼객의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거기에 이따금 발휘되는 변칙까지.

그리고 마침내 쇠사슬로 채은수의 검을 휘감는 데 성공한 봉혼객이다.

촤라락!

승기를 잡은 봉혼객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겨우 이 정도란 말이냐? 무신의 이름값이 아깝구나!”

채은수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사람 중엔 도발을 당해 길길이 날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채은수처럼 극도로 차분해지는 유형도 존재했다.

다음 순간, 거짓말처럼 채은수의 검이 교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쇠사슬 사이를 빠져나왔다.

“굉장하군!”

장윤호가 감탄을 토해냈다.

물론 채은수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상대에만 집중할 뿐.

“이러면 나도 나서야겠는걸.”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귀혼객이 순간 땅을 박찼다.

봉혼객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번 임무에 동원된 마교의 추종자였다.

순식간에 천신우 일행 앞에 도달한 귀혼객이 벼락처럼 검을 내질렀다.

표적으로 삼은 상대는 장윤호.

“으아악! 왜 나야!”

가장 약한 상대부터 처리하는 것이 귀혼객의 방식이었다.

물론 장윤호도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아이고! 나 죽네!”

그는 펄쩍펄쩍 뛰며 귀혼객의 공격을 피해냈다.

사실 무림맹 시험에서도 마교의 추종자 광소와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장윤호다.

비록 광소가 증폭단을 복용하는 바람에 패배하고 말았지만, 어쨌거나 기본적인 실력은 갖춘 것이다.

다만 일행 가운데서 가장 약하기에 귀혼객의 표적이 된 것뿐.

“다, 다들 구경만 할 겁니까아아!”

장윤호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나 풍뢰권은 콧방귀만 꼈다.

“못난 놈. 피하지만 말고 싸울 생각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말이야 쉽죠! 그럴 수 있었으면 진작…… 으헉!”

장윤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 위로 귀혼객의 도가 지나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장윤호가 이런 상황에서도 만두만 먹고 있는 권왕을 원망스럽게 생각하던 그때, 천신우는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역시 누군가 있다. 아마 놈이 살혼객이겠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대는 눈앞의 적들과는 수준이 다른 고수였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바로 몸이 조각날 것만 같은 느낌.

‘찾았다!’

마침내 상대의 위치를 간파한 천신우가 눈을 빛냈다.

상대의 위치가 확실해진 이상 장윤호를 돕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때마침 바닥에 주저앉은 장윤호 머리 위로 귀혼객의 도가 내려쳐졌다.

“히이익!”

죽음을 직감한 장윤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죽음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장윤호가 눈을 힐끔 떴다.

놀랍게도 귀혼객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귀혼객이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귀혼객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은 선혈이었다.

“뭐, 뭐야?”

장윤호조차 어리둥절해 하는 그 순간, 길가의 숲에 은신하고 상황을 지켜보던 살혼객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마교 추종자들 가운데 칠객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그였다.

당연히 처음부터 장윤호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 장윤호는 물건 하나를 사면 따라오는 덤 같은 존재.

살혼객은 권왕과 채은수 역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천신우와 풍뢰권이었다.

적어도 하나는 단칼에 죽여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살혼객은 줄곧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기회를 포착했다.

천신우가 장윤호를 구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살혼객은 알지 못했다.

이미 천신우가 그의 위치를 간파했음을.

그리고 그를 끌어내고자 일부러 허점을 드러냈음을.

그걸 모르기에 천신우를 향해 그림자처럼 접근한 살혼객이었다.

귀혼객을 제압한 천신우는 안도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살혼객이 보기에는 그랬다.

‘귀혼객을 단숨에 제압한 그 실력만큼은 인정해 주마. 그러니 이만 죽어라!’

살혼객의 검이 천신우의 목덜미를 찔러가는 순간이었다.

살혼객의 마음속 외침을 들은 것처럼 천신우가 반응했다.

전광석화처럼 돌아서며 자운검을 내지른 것.

솨아악!

아주 조금이라도 대처가 늦었다면 살혼객의 심장은 그대로 갈라졌을 것이다.

황급히 뒤로 물러난 살혼객이 신음을 토해냈다.

“어떻게!”

살혼객의 두 눈이 의문으로 가득했다.

한발 앞서 봉혼객을 쓰러뜨린 채은수 역시,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살혼객이 기척을 감추고 은신해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천신우가 그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경악스러웠다.

오직 풍뢰권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네놈도 알고 있었구나.”

괜히 권왕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풍뢰권이었다.

“에이잉! 둔한 놈 같으니라고! 내 그리도 감각을 강조했건만!”

하지만 이번만큼은 권왕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만두를 먹던 손도 멈추고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천신우와 살혼객의 싸움을.

파아아앗!

천신우가 살혼객을 향해 쇄도했다.

바로 응수하려던 살혼객이 멈칫했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큭!’

천신우의 방금 공격을 완벽히 피해내지 못했던 것.

그로 인해 대처가 늦어진 결과는 참혹했다.

서걱!

천신우의 자운검이 살혼객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이런 미친!”

마지막 순간 몸을 틀었음에도 천신우의 자운검은 모든 것을 베어냈다.

무복도. 안에 착용한 보호대도. 극한까지 단련시킨 근육까지도!

한층 성장한 천신우와 자운검의 합작품이었다.

“대단하구나.”

살혼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인정하마.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천신우를 먼저 제압하고 풍뢰권에 이어 일행들을 모두 상대하려던 살혼객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제부터 다른 놈들은 신경 쓰지 않겠다. 오직 네놈만 확실히 데려가 주지.”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인정하지. 너를 너무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그게 무슨 개소리냐!”

살혼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천신우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바람 가르는 소리만 났다.

살혼객이 베어낸 것은 천신우의 잔상이었던 것이다.

“……!”

경악하는 살혼객의 등 뒤에서 천신우는 피로 물든 자운검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니지. 나 스스로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편이 맞으려나.”

천신우가 피를 털어낸 자운검을 칼집에 집어넣는 순간.

촤아아악!

피 분수를 뿜어내며 살혼객의 몸이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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