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환생-60화 (60/171)

# 60

학사환생 060화

천신우 역시 상대인 무영의 실력을 알아봤다.

‘후기지수 수준이 아니야. 대체 누구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실전경험이 상당해 보이는데.’

변칙적인 공격을 모조리 무위로 돌려 버리는 것만 보더라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풍부한 실전경험 없이 저토록 기민하게 대처하기란 불가능했다.

‘철사자나 척화진이 지금 시점에서 저만큼 실전경험을 쌓았을 리는 없는데.’

처음으로 복면이 갑갑해진 천신우였다.

‘……누군지 확인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자 천신우의 검에 힘이 실렸다.

아예 상대의 복면을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다음 순간!

천신우와 무영의 검이 허공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스가가각!

검과 검이 부딪치는 지점을 중심으로 풀썩 먼지구름이 피어오른다.

퍼져 나가는 충격파에 시험장을 둘러싼 외벽이 흔들릴 정도였다.

“으음!”

“오오!”

“제법이군.”

몇몇 감독관들과 무림맹 인사들은 아예 상체를 관중석 난간 아래로 기울이기까지 했다.

사실 시험장에 날아다니는 먼지 한 톨까지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진 그들이다.

그럼에도 천신우와 무영의 결과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비하면 다소 허무했다.

무영이 양팔을 들며 패배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어째서!”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까워하던 감독관 하나가 실수를 깨닫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험험.”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무영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패배를 선언했음을.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재밌는 놈이군. 내 얼굴을 확인해 보려고 했단 말이지?’

무영은 복면 속에서 미소 지었다.

솔직히 호승심이 들끓은 것도 사실이다.

천신우와 제대로 승부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임무가 우선이기에.

‘적들이 심은 끄나풀이라면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하진 않을 터.’

놈들의 목적은 시험통과가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니 주목 끌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후기지수 중에 하나란 소린데. 이 정도 실력이면 은수 아가씨의 좋은 맞수가 되겠는걸.’

무신의 손녀로 사룡의 일인까지 오른 채은수.

무영은 조만간 천신우가 사룡을 위협할 수준까지 성장할 거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무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자신이 천신우를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대기실로 돌아오는 통로.

스르륵.

무영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

떨어지는 복면을 낚아챈 무영은 깜짝 놀랐다.

복면은 반쯤 잘라나간 상태였다.

‘대체 어느 틈에?’

잠시 생각하던 무영이 헛바람을 삼켰다.

‘설마 아까 그때?’

파고들던 천신우의 검을 쳐냈던 순간을 떠올린 무영이었다.

아무리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곤 해도 대응이 한발 늦었던 셈이다.

무영이 고개를 홱 돌렸다.

아무도 없는 통로를 한참이나 노려보는 무영이었다.

마치 그곳에 천신우가 서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 * *

일찌감치 결승행을 확정한 천신우는 대기실에서 마지막 시합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방금 전에 꺾은 4강 상대는 8강에서 맞붙었던 무영보다 오히려 수월했다.

‘심지어 8강 상대는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었지.’

물론 천신우도 모든 힘을 발휘하진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

자운검. 승천단.

어느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결국 서로의 진짜 실력은 진검승부를 해봐야 알 수 있을 터였다.

‘단체전에서 다시 부딪힐 일이 있었으면 좋겠군.’

천신우가 미소 짓던 그때.

시험장에선 천신우와 무영의 8강 시합만큼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 * *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독관 하나가 혀를 찼다.

지켜보던 무림맹 인사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8강에서 무영의 패배선언은 팽팽한 상황에서 나오기라도 했다.

어차피 8강도 충분히 높은 성적이기에 단체전을 위해 힘을 비축한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만했다.

하지만 방금 끝난 4강 2시합은 경우가 전혀 달랐다.

총감독관도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본인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패배를 선언한다?”

그랬다.

응시생 하나가 상대를 완전히 압도해놓고 갑자기 패배를 시인한 것이다.

총감독관이 턱을 쓸었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군.”

개인전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 여러 가지로 보상이 따른다.

그런데 그걸 내팽개쳤으니 시험합격 말고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당장 누군지 파악해두게.”

이미 조별예선이 끝난 상황.

각조 우승자들 외에 다른 응시생들은 복면을 벗고 개인성적을 기록한 상태였다.

“앞서 끝난 4강 1시합 탈락자까지 신원을 확인하고 성적을 통보했으니…… 남은 3명 중에 하나군요. 천신우. 척화진. 그리고 광소.”

그때 감독관 하나가 달려왔다.

“방금 패배를 시인한 응시생은 광소였습니다.”

총감독관이 물었다.

“광소? 본명인가?”

“그렇습니다. 신원 역시 확실합니다.”

“그렇겠지.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자가 무림맹 시험에 응시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광소라는 이름을 지금 처음 들어.”

무림맹엔 세상의 모든 정보가 모여든다.

철사자나 척화진처럼 명성이 자자한 후기지수들에 대한 정보는 물론.

천신우처럼 이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경우에도 정보가 수집된다.

하지만 광소라는 응시생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출신배경 정도가 고작.

“확실히 수상한데…….”

총감독관은 최악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무림맹 시험에선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했었다.

단체전을 틈타 청부살인이 일어난다든가. 심지어 여자 응시생이 겁탈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사실 수상한 응시생은 아예 시험에서 배제시켜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심증만으로 제재를 가하면 논란이 생긴다.

다행히 이런 경우를 대비한 대책을 이미 마련해둔 무림맹이었다.

“만일을 대비해 감시자를 붙여두게. 혹시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려 한다면 바로 제압 가능하도록.”

“알겠습니다!”

단체전을 앞두고 더욱 각오를 다지는 감독관들이었다.

* * *

개인전이 종료되고 시험장에서 간단한 시상식이 열렸다.

최종순위는 개인전과 단체전 성적을 종합해 정해지지만.

개인전 순위에 따른 혜택도 존재했다.

“개인전 우승자는 단상 위로 올라오게.”

저벅저벅.

단상을 오른 것은 다름 아닌 천신우였다.

그가 총감독관 앞에 마주 서자 단상 아래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개인전을 통과한 응시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였다.

“천신우? 처음 들어보는데.”

“천씨세가? 예전에나 강했던 문파 아닌가?”

“당연히 우승은 척화진이나 철사자 차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보다 어린 걸로 아는데 대단하군.”

시기와 질투. 경외와 찬사.

무수한 감정의 도가니 속에서 무영은 천신우의 등을 응시했다.

‘저놈이었군. 공교롭기도 하지.’

무영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상대는 바로 무신의 손녀 채은영을 혼쭐내준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미리 알았으면 무신궁의 진면모를 살짝이라도 보여줬을 것을.’

의미심장하게 웃는 무영 옆에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철사자와 척화진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철사자가 너무 분한 나머지,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것에 반해.

척화진은 박수까지 치며 천신우에게 찬사를 보냈다.

결승에서 직접 맞붙은 천신우의 실력은 분명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 * *

그렇게 시상식이 끝나고.

단체전 전까지 막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다만 천신우 일행의 처지는 남들과 사뭇 달랐다.

“정말이지 굉장하군!”

모용비가 들뜬 얼굴로 숙소 내부를 돌아다녔다.

개인전 우승특전으로 천신우에게 제공된 숙소는 기존에 머물렀던 임시숙소와는 격이 달랐다.

일단 엄청나게 넓은 데다 정원까지 딸려 있었다.

물론 천신우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것은 개인서재였다.

책을 읽다가 이따금 창가 너머로 정원을 내다보는 기분이란.

“단체전까지 종합우승하면 여길 평생 이용할 수 있단 말이지?”

무림맹은 실력에 따라 대우가 천차만별이었다.

일반무인도 처우가 좋은 편이지만 고수들에겐 상상도 못할 혜택이 주어지곤 했다.

“알았으면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게. 언제까지 4인실에서 코 고는 소리 들으며 자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책을 읽던 제갈휘의 면박에 모용비가 한탄했다.

“하필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 전투전형 1위와 지원전형 2위라니. 실력 없는 나는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물론 배부른 투정이었다.

모용비도 1인실을 배정받을 정도의 실력은 충분히 갖췄기에.

* * *

휴식일 다음 날 아침.

응시생들은 모두 무림맹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라탔다.

제갈휘는 응시한 전형 자체가 다르기에 따로 움직이는 상황.

천신우는 모용비와 함께 마차에 탑승했다.

4인승 마차엔 공교롭게도 재수생이라던 장윤호가 함께였다.

“무림맹에서 마차를 타고 한나절 가까이 달리면 크고 작은 산들이 널려 있지. 단체전은 그곳들 가운데 한 곳에서 열린다네.”

개인전 당시 떠들다 감점을 당했음에도 장윤호의 입담은 여전했다.

함께 탑승한 광소라는 응시생이 혀를 뽑는 시늉을 했다.

장난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분위기가 섬뜩했는데 정작 장윤호는 넉살을 떨었다.

“하하하. 같은 조가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라고.”

개인전을 통과한 응시생 숫자는 240명.

순위에 따라 각 조에 6명씩 배정될 예정이었다.

1위부터 40위까지에서 1명씩 차출하고. 마찬가지로 41위부터 80위까지에서 1명씩 차출하는 식으로.

“같은 조가 된다면…….”

광소가 이름에 어울리게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목부터 잘라주지.”

“으히힉!”

장윤호가 광소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바람에 마차가 가뜩이나 비좁게 느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조용히 생각에 잠긴 천신우였다.

‘분명 이번 차수의 무림맹 시험은 사상자가 많았었지.’

무림맹 시험은 항상 사상자가 발생한다.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무인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차수의 사상자 수는 이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단체전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었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생에 확인한 무림맹 보고서에는 통상적으로 발생한 사고라고만 적혀 있었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답답하군.’

아예 미래를 모른다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사상자가 평소보다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만 알고, 정작 원인은 전혀 모르니 대비할 방법이 없었다.

‘스스로를 믿는 수밖에.’

그러는 동안에도 마차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마침내.

마차가 멈추자 총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내려라!”

침까지 흘리며 곯아떨어진 장윤호를 모용비가 흔들어서 깨웠다.

“이런! 깜빡 잠들고 말았군!”

말하는 것과 달리 전혀 당황한 표정이 아니었다.

생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여유를 부리는 걸까.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산을 뒤로하고 총감독관이 외쳤다.

“지금부터 조를 배정하겠다!”

천신우가 배정된 조는 7조.

“잘 부탁해요.”

“잘해보자.”

천신우가 개인전 1위임을 알기에 같은 조에 속한 후기지수들의 반응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반면 광소와 같은 조에 배정된 장윤호는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뭐랬나. 기왕 같은 조가 됐으니 잘해보자고.”

모용비. 그리고 철사자와 척화진.

거기에 더해 무신궁의 무영과 채은영까지 각기 다른 조에 배정받은 가운데.

총감독관이 규칙을 설명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증표를 똑똑히 기억해둬라!”

240쌍의 눈동자가 총감독관의 손에 들린 야광주를 향했다.

어둠에서도 빛을 발하는 야광주엔 무림맹의 표식이 선명했다.

“뒤에 보이는 산엔 이것과 동일한 증표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시험의 규칙은 간단하다. 각 조마다 6개의 증표를 찾아내어 이곳으로 돌아오면 된다!”

“단! 조원 여섯 명이 이곳에 모두 도착해야 시험에 통과한 것으로 친다. 동료를 버려두고 혼자 시험을 통과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른 조가 모은 증표를 협상이나 무력을 통해 획득하는 것도 허용된다. 다만 당연히 살인은 금지된다. 그밖에도 규율에 어긋나는 행위를 저지를 경우, 그 즉시 각 조를 전담하는 감독관이 제재를 가할 것이다.”

총감독관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제한시간은 내일 정오까지! 그럼 건투를 빈다!”

40개의 조에 속한 240명의 응시생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산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산속 곳곳마다 배치된 감독관들에 더해 각 조마다 전담감독관들이 따라붙었다.

장윤호가 천신우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따 보자고!”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천신우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장윤호 때문이 아니었다.

노골적인 살기를 감추지 않는 광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광소와 장윤호가 속한 조가 다른 조들과 멀어지는 순간.

촤아앙!

갑자기 광소가 검을 뽑아 들며 벼락처럼 감독관을 노렸다.

“!”

응시생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감독관이었지만 반응이 늦었다.

차앙!

그를 대신해 광소의 검을 튕겨낸 것은 놀랍게도 장윤호였다.

“이봐. 감독관을 공격하면 규정위반이라고?”

광소는 대답 대신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것만 봐도 그가 이번 시험에 어떤 목적으로 응했는지는 분명해졌다.

명백한 살기를 느낀 장윤호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항상 푼수처럼 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일 줄이야. 상부에 추가수당 요청해야겠어.”

같은 조에 속한 응시생들은 정신이 없었다.

광소가 갑자기 감독관을 공격한 것도 놀라웠지만.

최약체로 생각하고 있던 장윤호가 광소를 막아선 것은 훨씬 충격이었다.

물론 당사자인 장윤호와 광소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무림맹 소속으로 만일에 대비해 응시생들 사이에 잠입해 있던 장윤호야 말할 것도 없었고.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잠입한 광소는 입을 찢으며 웃기까지 했다.

“분명히 말했다. 같은 조가 된다면 네놈 목부터 잘라준다고.”

자신감 넘치는 발언.

근거는 충분했다.

광소의 별호는 망혼객.

그는 일전에 절명곡 사건을 주도한 추혼객과 마찬가지로 마교의 추종자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