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학사환생 059화
총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응시생들은 시험장 옆에 딸린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로 가면 대기실이 나오지. 그곳에서 조를 추첨하고 나면 조별 대기실로 이동할 거야.”
천신우와 모용비에게 접근해 온 것은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응시생이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천신우의 물음에 날렵한 체격의 응시생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나는 이번이 두 번째 시험이거든.”
두 번째 시험.
재수생이라는 뜻이다.
탈락자가 속출하는 무림맹 모집시험.
당연히 탈락자들 중에서 재도전하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무림맹에선 3회까지 기회를 부여했다.
“나는 장윤호. 너희들은?”
천신우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는 법이기에.
“어차피 개인전은 복면 쓰고 진행하니 누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굳이 통성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후후후. 역시 신입들이란.”
장윤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개인전이라면 물론 그렇지. 하지만 단체전은 다르다고.”
단체전의 세부규정은 차수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결국 핵심은 동일하다.
개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협동심과 협상력 같은 요소도 평가항목에 포함된다.
“단체전에서 조력자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알아?”
모용비가 맞장구쳤다.
“확실히 그렇다고 듣긴 했지요.”
“흐흐. 이쪽 친구는 말이 통하는군.”
“모용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호! 이제 보니 모용세가의 떠오르는 신성이었군. 나야말로 잘 부탁해.”
장윤호가 주위를 돌아보며 떠벌였다.
“이것도 인연인데 내가 아는 정보를 공유해 주지. 먼저 저쪽에 키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은 철사자.”
“……철사자라면.”
철사자는 천신우도 알고 있을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후기지수였다.
“알다시피 실력이 괜찮은 놈인데 단체전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저번 시험에선 탈락했더라고.”
재수생이나 삼수생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었다.
장윤호는 신입들에 대한 정보까지 두루두루 공유했다.
“저기 보이는 친구가 이번 기수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척화진. 벌써부터 차기 사룡 후보로 꼽히는 고수지.”
감탄하는 모용비였다.
“선배님은 정말 아시는 것이 많군요.”
“정보수집과 분석이 주특기거든. 만일 모집시험에 합격한다면 정보조직에 지원할 생각이야.”
장윤호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어느새 대기실에 도착한 천신우와 응시생들이었다.
총감독관이 외쳤다.
“모두 나눠준 무복으로 갈아입고 복면을 착용해라!”
개인전은 응시생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 상태에서 진행된다.
승부조작을 방지하는 목적에 더해.
친분이나 문파끼리의 관계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천신우 역시 무복으로 갈아입고 복면을 착용했다.
“감독관 안내에 따라 제비를 뽑아라! 시험이 끝날 때까지 너희는 거기 적힌 조와 식별번호로 불릴 것이다!”
천신우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상자에 들어 있는 제비를 뽑았다.
‘3조 17번이군.’
어차피 번호에 크게 의미는 없었다.
대진은 추첨으로 결정되니까.
또한 모용비가 어떤 조에 속했는지 파악할 방법도 없었다.
장윤호가 어떤 조인지는 바로 파악 가능했지만.
“이런…… 4조라니. 재수도 없군.”
투덜거리는 장윤호의 목소리를 들은 감독관이 바로 제재했다.
“방금 입 연 너! 감점이다! 더 지껄이면 아예 탈락시킬 테니 입조심 하도록!”
총감독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머지도 잘 들어라! 미리 경고한 대로 입을 열거나 자리를 벗어나는 등의 돌발행동은 감점대상이다!”
대기실 안에 배치된 감독관들이 눈을 부릅뜨고 응시생들을 감시했다. 그들 모두 길 안내를 해주던 무인들과는 수준이 다른 고수들이었다.
“지금부터 조별로 줄을 선다!”
16명의 감독관들이 숫자가 적힌 팻말을 들고 늘어섰다.
그들 앞에 응시생들이 조에 맞춰 줄을 섰다.
천신우도 3조 대열에 합류했다.
“1조는 나를 따라오도록.”
“3조! 이쪽으로!”
1조부터 16조까지.
응시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각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개인전은 일단 조별로 진행한 후에 각조 1위끼리 다시 맞붙어 순위를 결정하는 식이다.
3조 대기실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천신우였다.
‘이래서 개인전이 까다롭다는 거군.’
개인전은 실력만큼이나 대진운도 중요했다.
만일 강자가 많이 포진된 조에 배치되거나. 순위전 초반부터 까다로운 상대를 만날 경우엔 높은 순위를 기록하기 힘들다.
‘그걸 감안해 시합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평가항목이라고 했지.’
시합에서 패배하더라도 감독관들의 눈에 들면 합격이 가능하다는 의미.
물론 천신우는 그런 상황은 바라지 않았다.
‘기왕이면 계속 이겨서 강한 상대들과 맞붙고 싶은데.’
시험성적에 따라 배치되는 조직과 임무가 달라지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다.
무림맹 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한 상대들과 겨루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천신우는 3조 대기실에 앉아 있는 응시생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합을 준비하는 모습.
초조한지 자꾸만 주먹을 쥐었다 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저들 중에 누가 상대가 될지.’
지금으로선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별다른 정보 없이 움직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군.’
천신우가 시험과 관련해 아는 정보는 남들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미래를 안다는 장점 없이 스스로의 능력만 갖고 부딪쳐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학사 시험이라면 빠삭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제갈휘에게 시험과 관련해 조언을 넌지시 건넨 천신우다.
‘사실 제갈휘 형님은 충분히 합격하고도 남을 실력이긴 하지.’
지금은 다른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을 제갈휘보다 눈앞의 시험에 집중할 때였다.
천신우는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1번과 6번! 제1결투장으로! 3번과 19번은 제2결투장이다!”
이윽고 3조 담당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응시생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17번과 21번! 제3결투장으로!”
천신우가 감았던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시작이군.’
* * *
“후우.”
복면 속에서 깊은숨을 토해내는 응시생의 정체는 팽우경.
하북팽가를 대표해 이번 무림맹 시험에 응시한 그였다.
절명곡에서 천신우에게 당한 부상은 기나긴 재활기간을 거쳐 회복한 상황.
솔직히 실전감각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방금 시합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런 식이라면 합격은 일도 아니겠어.’
물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그나저나 모용비와 천신우 그놈도 이번 시험에 응시했다고 들었는데.’
아마 천신우와 모용비도 시험장 어디선가 시합을 치르는 중일 것이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우락부락한 팽우경조차 이곳에선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수백 명의 응시생들 사이에서 평범한 체격의 천신우와 모용비를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긴 그놈들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지.’
팽우경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땀을 식히며 시험규정을 떠올렸다.
각 조마다 승자는 승자끼리. 패자는 패자끼리. 계속해서 시합을 거쳐 조별순위를 결정한다.
‘현실적으로 순위결정전에서 우승하긴 힘들다.’
아무리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팽우경이라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전체 1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적어도 지금 속한 조에서만큼은 1위를 해야 체면이 선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4번의 승리가 필요했다.
“17번! 30번! 4결투장으로!”
때마침 감독관이 호명하자 팽우경은 수건을 내던지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3조 30번.
상대는 같은 3조의 17번이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누군지 파악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통로를 따라 결투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기분이 찝찝했다.
팽우경이 불안감의 실체를 깨달은 것은 주먹을 얻어맞고 나서였다.
상대는 시작하자마자 검으로 도를 날려 버리며 파고들더니 주먹을 날렸다.
퍼어억!
복부를 강타당한 팽우경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눈을 까뒤집었다.
익숙한 느낌.
‘이건……!’
틀림없었다.
일찍이 절명곡에서 경험한 천신우의 주먹이었다.
그러나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밖에는.
‘하필이면 천신우 이 개자식을 만나다니…….’
팽우경의 두 번째 시합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쯧.”
천신우는 바닥에 쓰러진 팽우경을 내려다보았다.
왠지 익숙한 체형에 걸음걸이를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도를 부딪치는 순간 확신했다.
상대가 팽우경이라는 것을.
그래서 시원하게 두들겨 패줬다.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상대를 죽이지 않는 선에서의 적당한 폭력은 용인되기에.
감독관도 사무적으로 천신우의 승리를 선언할 뿐이었다.
“17번 승리. 대기실로.”
천신우가 대기실로 돌아가고 한참이 흘러.
팽우경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군.”
감독관의 얼굴을 확인한 팽우경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격렬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크윽!”
“진정하지.”
팽우경이 배를 움켜쥐며 물었다.
“시험은……?”
“3년 후에 다시 오면 된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감독관에 대한 무례한 태도는 감점대상.
하지만 감독관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네놈이 기절해 있는 동안 3조의 시합은 모두 종료됐다. 당연히 나머지 시합은 기권처리 됐고. 따라서 최종성적은 3조 29위. 전체 491위. 알다시피 단체전 참가기준에 미달하는 성적이다.”
팽우경은 충격에 빠진 나머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잠시 기절했을 뿐인데 기권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네놈은 도대체 무림맹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설마 환자 치료해 주는 의방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잘 들어라! 무림맹은 너 같은 약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3년 동안 혹독하게 단련하고 다시 찾아오도록. 물론 그 입버릇도 고쳐야 할 거다.”
매몰차게 쫓겨난 팽우경은 멍하니 시험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끝이라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 *
각 조 1위끼리 맞붙는 순위전은 기존과 달리 결투장이 아닌 시험장에서 열렸다.
그리고 시험장엔 응시생들의 시합을 한눈에 관전할 수 있는 관객석이 존재했다.
오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평가를 담당하는 감독관들뿐만이 아니었다.
무림맹 여러 조직의 부단주급 인사들도 대거 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인재가 있는지 살펴보려는 목적.
“벌써 8강이군.”
“이번 차수엔 확실히 인재들이 많은데.”
철사자와 척화진 정도는 이미 널리 알려진 후기지수들.
하지만 의외의 선전을 보여주는 응시생들도 여럿 존재했다.
“확실히 눈에 들어오는 녀석들만 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어가는군.”
“어허. 눈독 들이지 말게. 전부 우리 조직에서 데려갈 테니까.”
“욕심 하고는. 알겠네. 3조 우승자만 양보하게. 내가 한번 키워보고 싶군.”
천신우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무림맹 신비각 부각주였다.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신비각은 무림맹에서도 최정예 고수들로 구성된 조직.
그런 신비각의 부각주가 천신우를 주목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11조 우승자도 예사롭지 않던데.”
“확실히 그놈은 뭔가…….”
무림맹 인사들이 석연찮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총감독관이 외쳤다.
“3조와 8조 우승자! 시험장으로!”
천신우가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석도 조용해졌다.
이제 와서 복면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천신우는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만으로도 감독관들과 무림맹 인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후였으니까.
그런 천신우를 시험장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상대.
그는 무신의 지시를 받고 이번 시험에 잠입한 무신궁의 고수였다.
별호는 무영.
그의 실력은 무신궁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었지만 얼굴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복면까지 착용하고 있었기에 그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는 없었다.
‘어느덧 8강이군. 슬슬 탈락해야겠어.’
무영 입장에선 굳이 높은 성적을 거둘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사건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무대는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
개인전은 적당히 통과만 하면 그만이었다.
‘적당히 상대해 주다 자연스럽게 져주면 되겠지.’
총감독관이 시합개시를 선언할 때까지도 무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천신우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오며 검을 날리는 순간.
‘이런 미친!’
무영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차차차차창!
순식간에 펼쳐진 그림 같은 공방전!
“!”
지켜보던 무림맹 관계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가장 놀란 것은 천신우와 직접 검을 맞부딪친 무영이었다.
천신우의 실력은 누가 봐도 후기지수 수준이 아니었다.
‘뭐냐? 네놈은?’
복면 사이로 드러난 무영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