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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56화 (56/171)

# 56

학사환생 056화

얼어붙은 것은 양주철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채은영과 일행들까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헉!”

“도대체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물론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양주철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검을 뽑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그런데 목에 칼날이 겨눠져 있는 것이다.

칼끝을 곁눈질하는 양주철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두 다리 역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겁을 먹었다고? 내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엄격히 교육받은 양주철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격차 앞에서 그때의 마음가짐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 고작 이따위 놈에게……!’

상대가 사룡이라면 몰라도, 듣도 보도 못한 천씨세가의 후기지수에게 꺾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감히……!”

양주철이 이를 악물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를 지탱하는 것은 자존심이었다.

채은영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양주철은 천신우의 검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먼저 검을 거둔 것은 천신우였다.

철컥.

심지어 검을 도로 칼집에 꽂기까지 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이놈이 나를 벨 수 있을 리 없지. 고작 군소방파 출신 따위가.’

양주철이 자신감을 되찾은 찰나.

천신우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빠악!

가슴을 걷어차인 양주철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충격으로 탁자가 밀려나며 술병이 떨어졌다.

와장창!

그러나 누구도 떨어진 술병에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양주철을 향해 천신우가 쇄도했다.

“……!”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천신우의 주먹이 양주철의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컥!”

양주철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일격에 코뼈가 내려앉고 광대뼈가 무너졌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멈추지 않았다.

빡!

정강이를 파고드는 발차기에 양주철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 자식이!”

양주철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쉭쉭쉭!

그러나 검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천신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

지켜보던 채은영은 깜짝 놀랐다.

사룡인 언니만큼은 아니어도 재능을 타고난 그녀다. 무공을 보는 안목도 뛰어난 편이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천신우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양주철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다는 것을.

그 증거로 양주철의 검이 빗나가는 순간이면 여지없이 천신우의 응징이 이어졌다.

빡! 빠아악! 퍼퍼퍼퍽!

얼굴에서 시작해 복부와 무릎을 따라 발목까지 이어지는 권각술의 향연!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웠다.

“이 공자님!”

“젠장! 막아!”

끼어들 틈만 보던 양씨세가 호위무인들이 결국 난입하려는 순간이었다.

철컥.

천신우의 자운검이 고작 손가락 한 마디만큼 뽑혀져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양씨세가 무인들을 움찔하게 만들기에는.

“나는 허락한 기억이 없는데. 끼어들어도 된다고.”

나직한 경고성을 내뱉은 천신우가 양주철에게 다가갔다.

후욱!

천신우의 주먹이 날아들려는 순간 양주철이 다급히 외쳤다.

“졌다! 졌어! 내가 졌다고!”

하지만 천신우는 주먹을 거두지 않았다.

빠악!

턱이 돌아간 양주철은 그대로 채은영 일행이 있는 곳까지 나가떨어졌다.

“주철 형님!”

뒤늦게 일행들이 양주철의 상태를 살피는 가운데.

천신우는 채은영을 돌아보았다.

“!”

채은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천신우의 기세에 완전히 눌린 것이다.

“그쪽도 연습이 필요한가?”

천신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는 어렵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채은영 일행이 자신을 두고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었다.

“나, 나는…….”

당황해 말까지 더듬는 채은영.

천신우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싸늘한 조소.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채은영을 내버려 두고 천신우는 몸을 돌렸다.

“자, 잠깐!”

물론 천신우는 멈추지 않았다.

전생에도 모든 것을 가진 채은영에게 대항했던 그다.

힘을 가진 지금 그녀의 지시에 따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천신우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채은영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저건……?”

천신우가 등에 메고 있는 검을 발견한 것이다.

평범한 형태의 자운검과 달리 특이한 손잡이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채은영은 저런 손잡이 장식을 본 기억이 있었다.

“너 거기 서!”

기고만장하던 양주철이 천신우에게 얻어맞고 기절한 상황.

상식적으로 기가 죽을 법도 하지만 채은영은 확실히 남달랐다.

천신우의 기세에 위축됐던 것도 잠시.

그녀가 천신우의 검을 삿대질했다.

“그 검! 어디서 났어!”

“내가 설명해 줄 이유라도?”

“웃겨! 그 검, 원래 네 물건 아니잖아!”

확실히 풍뢰권이 전해주라고 맡긴 물건이긴 하다.

“그거 우리 할아버지 검이라고! 왜 네가 갖고 있는 건데!”

그냥 칭얼대는 소리가 아니다.

채은영의 조부라면 무신.

그야말로 무신궁 그 자체였다.

정말 천신우가 소지한 검이 무신의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급격히 무거워진 분위기.

침묵을 깨뜨린 것은 모용비였다.

“너무하는군.”

“뭐라고요?”

모용비는 세상을 항상 둥글게 살아왔다.

시비가 붙을 일도 웃어넘겼고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참았다.

방금도 모욕을 당하는 천신우를 보고도 최대한 좋게 넘어가려 했다.

후기지수들끼리의 치기 어린 힘싸움일 뿐이라고.

다 저러면서 성숙해지는 거라고.

하지만 천신우가 양주철을 응징하는 순간, 모용비는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채은영이 조부인 무신을 들먹이며 천신우를 압박하자,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군. 그저 남들보다 솔직하지 못했을 뿐.’

그렇게 생각하자 모용비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이건 아니지. 비무를 유도해놓고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어?”

물론 모용비가 옳은 말을 한다고 선뜻 납득할 채은영이 아니었다.

“말 다했어?”

채은영이 사마귀처럼 눈을 뜨자 그때까지 상황을 관망하던 무신궁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확실히 그들은 무신궁이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위압감부터가 달랐다.

자신감을 되찾은 채은영이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모용비를 압박했다.

“왜? 더 지껄여보시지?”

평소였다면 일을 키우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고개 숙이고 물러났을 모용비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옆에 있던 제갈휘가 놀랄 정도로.

“할 줄 아는 건 결국 무신의 이름을 들먹이고, 무신궁의 무인들을 앞세우는 것뿐이군. 그런다고 뒤에서 비겁하게 사주한 사실마저 없던 일이 되진 않아.”

“비겁? 사주? 너 정말!”

채은영의 고함에 모용세가 무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이 존경하며 따르는 모용비다.

설령 오늘 이 자리에서 무신궁 고수들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모용비를 지킬 생각이었다.

제갈휘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세가의 무인들도 가세했다.

무신궁과 양씨세가 연합.

거기에 모용세가와 제갈세가. 천씨세가까지.

객잔 안에서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를 기세였다.

지켜보던 채은영의 다른 일행마저 검에 손을 가져가던 그때.

“이게 너희 할아버지 검이라고?”

천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가 무색하게 착 가라앉은 음성.

“그래!”

“증거는?”

“그 손잡이 장식!”

“이거?”

천신우가 풍뢰권에게서 받은 검을 칼집째로 끌러냈다.

“이런 손잡이 장식, 살아오면서 몇 번은 본 것 같은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확실히 특이한 장식이긴 해도 그것만 갖고 무신의 검이라 주장할 수는 없는 법.

그러나 채은영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뽑아봐. 그게 우리 할아버지 검이라면 분명 칼날에 문양이 새겨져 있을 테니까!”

천신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나같이 검 뽑으라는 소리만 지껄여대는군.”

천신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 불필요한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설명 정도는 해두지. 이 검은 내가 아는 분에게서 부탁받은 물건이다. 그분의 지인에게 전달해달라고.”

“그 사람이 누군데!”

“풍뢰권.”

“흥!”

채은영이 코웃음을 쳤다.

혹시나 할아버지의 지인 이름이라도 나오면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었는데.

풍뢰권은 분명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풍뢰권인지 뭔지 하는 그 인간, 직업이 도둑인가 보지? 남의 할아버지 검을 갖고 있던 걸 보면.”

그 말에 천신우는 풍뢰권이 맡긴 검을 탁자 위에 칼집째로 올려놓았다.

“진작 그럴 것이지. 도둑이란 소릴 들으니 제 발이 저리나 봐?”

채은영은 비웃으며 탁자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

쫘아악!

“……!”

지켜보던 이들은 물론, 당사자인 채은영조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장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늦게 채은영이 화끈거리는 뺨을 매만졌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깨달았다.

천신우가 채은영의 뺨을 후려쳤다는 사실을.

“너, 너…….”

분노와 수치심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채은영.

물론 무신궁의 무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촤아아앙!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며 천신우를 에워싸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천신우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점잖게 대화로 풀려 했군. 사과하지. 너희 같은 놈들에겐 어울리는 방식이 따로 있는 법인데.”

천신우가 턱짓으로 탁자 위의 검을 가리켰다.

“이 검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지? 해봐.”

모두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천신우였다.

“할 수 있으면.”

“건방진!”

무신궁 무인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파아앗!

천신우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천장을 가릴 정도로 완벽히 사방을 봉쇄한 적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의 그림자가 천신우를 뒤덮는 순간!

촤아앙!

칼집에서 뽑혀져 나온 천신우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해가 뜨듯, 천신우를 뒤덮은 무신궁 무인들 옷깃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순식간에 튕겨져 나온 그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벽에 처박혔다.

콰콰콰콰쾅!

그 경로에 있던 모든 것이 박살 났다.

탁자가 가루가 되고 그릇에 담긴 음식은 부스러기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진다.

“헉!”

“이런 미친……!”

모두가 경악했다.

양주철을 개 잡듯 패는 걸 보고 천신우가 강하다고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상상을 뛰어넘었다.

“허, 허풍이 아닐 줄이야…….”

그들은 몰랐다.

천신우는 허풍을 떨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능력이 받쳐주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지 자신감의 표현일 뿐이다.

저벅.

무신궁 무인들을 날려 버린 천신우가 다가오자 채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상상도 못했다.

고작 변방 세가의 후기지수 따위에게 무신궁의 이름값과 무력이 통하지 않을 줄은.

투두둑.

뒷걸음질 치는 채은영의 머리에서 음식물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국물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방금 무신궁 무인들이 날아가면서 허공에 뿌려진 음식 부스러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것이다.

그러나 채은영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겁에 질린 상태였다.

새파랗게 질린 그녀의 입술에서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만.”

“뭔가 착각하고 있군.”

천신우는 손을 치켜들었다.

“시작도 내가 했으니 끝내는 것도 내가 정한다.”

그리고 천신우는 아직 끝낼 생각이 없었다.

쫙! 쫘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채은영의 뺨이 인정사정없이 돌아갔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채은영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나 아프고 서러운지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보, 복수할 거야.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리면 너 따위쯤은!”

“맘대로. 그런데 네 언니도 아니고 네 말에 누가 귀 기울여주긴 할까?”

채은영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녀에게 언니의 존재는 건드려선 안 되는 역린이나 마찬가지였다.

“감히 그따위 소리를!”

표독스러운 채은영의 목소리에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확실하군. 아직 끝낼 때가 안 됐다는 거.”

채은영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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