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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49화 (4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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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49화

미간을 타고 땀이 주르륵 흐르고, 눈동자 주변의 근육이 파르르 떨린다.

‘무슨 놈의 눈빛이…….’

천신우가 백동철을 베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수호단주다.

지금까지 백가장주에게 받아먹은 뇌물이 어디 한두 푼인가.

하지만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다.

결국 수호단주는 천신우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천신우가 옆을 지나칠 때까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수호단주 눈치를 보던 백가장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을! 지금까지 먹인 뇌물이 얼만데 막는 시늉만 한단 말인가.’

백가장주는 수호단주가 천신우에게 겁먹고 물러섰다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수호단주가 용천세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린다고 여겼을 뿐.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무력을 써서라도 막을 수밖에.’

참월도의 죽음을 지켜봤음에도 백가장주는 천신우에게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백가장 단주급 무인들까지 동석한 상태.

천신우는 사실상 백가장 전체를 혼자서 상대해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문제는 이놈이 아니지.’

지금 천신우를 막는다는 건, 이번 대결을 주관한 용천세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동철을 그냥 죽게 놔둘 수도 없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이렇게 죽어선 안 된다.’

이 자리에서 백동철이 죽는다면, 백가장주는 아들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못난 아비가 되고 만다.

스윽.

백가장주의 눈짓을 받은 백가장 무인들이 천신우에게 달려들었다.

최소 대주급에서 단주급에 이르는 백가장의 최정예 고수들.

“역시 저렇게 나오는군.”

혀를 차며 개입하려던 용천세가 멈칫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쿠콰콰콰!

천신우에게 달려들던 백가장 무인들이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처럼 튕겨져 나왔다.

천신우는 그저 걷고 있었지만 용천세의 눈엔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보였다.

“……!”

용천세뿐만이 아니다.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했다.

불끈 쥔 주먹에 땀이 묻어나고 벌려진 입은 다물어지질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천신우가 앞으로 할 행동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했다.

마침내 천신우는 백동철 앞에 섰다.

정확히는 그 사이에 백가장주가 서 있었지만, 천신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백동철이 신음을 흘렸다.

“아, 아버지…….”

아들의 부름에도 백가장주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천신우의 움직임을 놓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의 등이 너무도 작게 보이는 백동철이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백가장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호랑이를 마주한 사냥개의 모습이 저러할까.

‘도망가야…….’

백동철은 달아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젠장!’

아버지와 함께 천신우와 맞선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백동철의 머릿속에 없었다.

양손이 멀쩡할 때도 이기지 못한 상대다. 한 손만으로 천신우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백동철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제발 용서를…….”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천신우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

모두가 설마 하던 그 순간.

솨아악!

천신우의 자운검이 바람을 갈랐다.

동시에 백가장주의 검도 휘둘러졌다.

촤아앙!

“……!”

백가장주가 손목을 내려다봤다. 분명히 천신우의 검을 쳐냈다고 생각했건만 손에 전혀 느낌이 없었다.

대신 뜨거운 무언가가 등에 촤악! 뿌려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백가장주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분수를 뿜어내며 허공으로 솟구치는 백동철의 머리통이었다.

동시에 들려오는 천신우의 목소리.

“용서했다.”

그 순간, 백가장주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이노오오오오옴!”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분노.

그러나 천신우는 달려드는 백가장주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아십니까? 백동철이 산적을 시켜 죽인 이들도 누군가의 자식이었습니다.”

“닥쳐라! 이놈!”

용천세가 고개를 저으며 나서려는 찰나.

잿빛 옷자락이 용천세의 눈앞에서 펄럭였다.

“남악련의 일이니 내게 맡겨주시오.”

목소리가 공기 속으로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목소리의 주인공 남악련주는 이미 백가장주 앞에 서 있었다.

“그만하시게.”

인자한 목소리.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무시무시한 위압감이었다.

이성을 되찾은 백가장주가 이를 악물었다.

“끄아아아!”

급기야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지르는 그였다.

하지만 백가장주를 바라보는 남악련주의 얼굴에서 동정심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백가장도 끝났군. 그나저나…….’

남악련주가 목덜미를 스윽 문질렀다.

순간 오싹해진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이거 내가 누굴 살려준 건지 모르겠군.’

몸을 돌린 남악련주와 천신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 짧은 순간, 서로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떠올린 두 사람이다.

천신우가 먼저 묵례하고 몸을 돌렸다.

자운검에 묻은 피를 촤아악 털어내는 천신우.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던 남악련주도 등을 돌렸다.

‘천신우라…….’

천신우의 이름 세 글자가 남악련주의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내 남악련주는 반쯤 펼쳤던 주먹을 다시 움켜쥐었다.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요동치던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오직 두 사람.

용천세.

그리고 천신우였다.

‘남악련주. 역시 굉장하군.’

무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다른 대상과의 비교로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다.

남악련주니 다른 남악련의 2인자나 3인자들보다 조금 강하겠지.

이따위 생각을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남악련주는 백가장주 따위완 비교하기 힘든 실력자다.’

전생에서 세운 전공들만 봐도 남악련주는 어지간한 실력자들과는 격이 달랐다.

‘또한 겉보기와는 달리 지독하게 계산적인 인물이기도 하지.’

남악련주는 전생에서 마교와 맞서 싸웠다.

하지만 목적은 여느 실력자들과 달랐다.

‘그는 무림맹이 아니라 남악련을 위해 싸웠다. 마교에 맞서는 명목으로 무림맹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냈지.’

천신우의 개입으로 많은 것이 달라진 지금.

남악련주의 결정도 전생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어떻게든 무림맹에 힘을 보태도록 이끌어야겠지. 남악련의 전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은 되니까.’

천신우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과제였다.

‘그나저나.’

천신우는 아직까지도 용솟음치는 막대한 내공을 느꼈다.

실전으로 경험한 승천단의 효과는 예상 이상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기연에 목숨을 거는 건가.’

전생에서 광마의 보물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진 것도 이제는 납득이 된다.

‘어쨌든 이걸로 됐어.’

참월도와 백동철을 모두 죽였다.

이제 그들이 일으킬 예정이던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백가장을 완전히 적으로 돌렸고. 참월도의 아버지와도 어떤 악연으로 얽히게 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 정도는 감당해야겠지.’

고독하게 장내를 벗어나는 천신우.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비무대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갈라진다.

등 뒤로 용천세의 단호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천신우와 백동철의 은원은 이것으로 종결되었소. 앞으로 누구라도 오늘 일을 문제 삼는다면 무림맹 차원에서 제재할 것이외다!”

천신우가 세가연합을 넘어 다른 지역에까지 명성을 떨치는 순간이었다.

* * *

소문은 발보다 빠르다.

천신우가 천씨세가로 복귀했을 때는 이미 백가장에서의 일이 알려진 후였다.

“형님! 들었습니다! 백가장의 미친개를 응징하셨다고요!”

천신우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달려온 천신혁이 강아지처럼 신나서 떠들어댔다.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났구나.”

“물론이지요! 아마 무림맹에도 형님의 명성이 전해졌을 겁니다.”

그럴 리가 없음을 알기에 피식 웃는 천신우였다.

24개의 영역에서 특별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무림맹이다.

한 지역에서 조금 유명해졌다고 무림맹에까지 소문이 퍼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룡 정도 되는 고수라도 꺾어주지 않고서야.

“그보다 열심히 수련했구나.”

천신혁은 지난 문파대전 때보다 확실히 성장한 모습이었다.

“그럼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한번만 대련해 줄 수 있으십니까?”

“나중에.”

아쉬워하는 천신혁을 뒤로 하고 천신우는 연무장을 찾았다.

“과연.”

천씨세가 무인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뜨거웠다.

드넓은 연무장이 비좁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 중심에 무림맹 교관 출신의 조충헌이 있었다.

천신우는 조충헌과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3년.

조충헌이 천씨세가 무인들을 한 지역의 패자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조한 시간이었다.

‘3년이 아니라 2년 안에도 가능하겠어.’

막연히 기대만 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실행 중이었다.

무림맹 출신 요리사를 영입해 새롭게 단장한 식당도 그중 하나.

맛있는 식사와 충분한 휴식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식당을 둘러보는데 풍뢰권과 권왕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산더미처럼 음식을 쌓아두고 먹어치우는 권왕.

‘식탐이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반면 풍뢰권은 젓가락질할 때마다 투덜거리는 중이다.

재료가 신선하지 않다느니. 그릇에 담은 모양이 성의가 없다느니.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왔냐?”

풍뢰권은 천신우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네놈이 백가장 똥갠지 뭔지 때려눕혔다고 떠들썩하던데.”

“운이 좋았습니다.”

풍뢰권이 파리 쫓듯이 젓가락을 휘휘 저었다.

“개소리는 됐고. 언제 다시 밖으로 나가느냐?”

“아버님을 뵙고 내일 나가볼 생각입니다.”

풍뢰권이 반색했다.

“내일?”

“먼저 한수 지역을 찾아 배를 띄울 예정입니다.”

천씨세가의 숙원사업인 한수 진출은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제 배를 띄우고 교역을 시작할 일만 남았다.

“그게 끝이냐?”

왠지 실망한 눈치.

천신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유가장을 방문해 협약을 체결하고 제갈세가도 찾아갈 생각입니다만.”

의무대 창설과 관련해 유가장을 방문하는 거야 이미 예정된 사실.

하지만 제갈세가 방문은 천신우가 이번에 급히 잡은 일정이었다.

제갈휘를 만나 친분을 다지려는 목적이 없진 않지만.

사실 진정한 목적은 만상서고의 두 번째 단서였다.

천신우는 승천단과 함께 발견된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떠올렸다.

‘하늘과 땅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이라면 제갈세가의 천림 말곤 없지.’

제갈세가의 명소인 천림은 수많은 나무가 자라나는 숲이었다.

제갈세가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도 길을 찾기 난감해한다는 그곳.

다행히 두루마리엔 장소를 특정 지을 단서가 있었다.

‘두 번째 단서를 찾아 보상을 얻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근거리는군. 그나저나.’

천신우의 눈길이 풍뢰권을 향했다.

태연한 척하지만 아무리 봐도 원하는 것이 있는 눈치다.

‘뭔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결국 먼저 입을 여는 풍뢰권이었다.

“유가장과 제갈세가 말고 다른 곳은 들를 생각 없느냐? 구왕도라든지.”

“구왕도라면…….”

과거 무림맹은 흑도방파를 완전히 몰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흑도방파란 마치 바퀴벌레와 같아서 한 지역에서 박멸하면, 다른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했던 것이다.

결국 무림맹은 가장 변방의 제18영역에서만큼은 흑도방파가 기를 펴도록 방관했다.

그렇게 제18영역에 무림맹의 규율이 적용되지 않는 무법지대가 만들어졌다.

육지 위의 섬이나 마찬가지기에 그곳은 구왕도라 불렸다.

“이번엔 구왕도를 방문할 예정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마교의 계획을 막기 위해 찾아야 하는 곳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끄응.”

“운경이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십니까?”

정곡을 찔린 풍뢰권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무슨! 아직 멀었다!”

확실히 권왕의 실력은 풍뢰권의 눈높이까지 올라오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천신우의 소식을 듣고 근질근질해진 풍뢰권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얘기를 꺼냈다간 권왕이 우쭐할 수도 있기에 천신우를 떠본 것.

“일없다. 혹시 나중에 구왕도에 들를 일이 있거든 그때나 불러라.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풍뢰권이 벌떡 일어나자 권왕이 뒤따랐다.

어느새 그 많던 접시가 전부 비워져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천신우였다.

‘풍뢰권과 권왕. 그리고 구왕도라…….’

머릿속에서 제법 괜찮은 그림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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