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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48화 (48/171)

# 48

학사환생 048화

천신우.

용천세와 수호단주.

그리고 그들의 수행원들까지.

모두의 이목이 백가장주에게 집중됐다.

일이 이렇게 되자 백가장주로선 물러날 곳이 없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놓고 이제 와서 물러나면 정말 끝장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일세. 천 공자 말대로 하지.”

대답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천신우를 씹어버릴 듯이 노려보는 백가장주였다.

물론 천신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자 용천세가 수호단주에게 물었다.

“준비까지 얼마나 걸리겠나?”

“비무대를 설치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다 보면 금방 어둑어둑해질 겁니다.”

“그럼 아예 해가 지고 나서 대결을 펼치는 것으로 하지. 어떤가?”

“불을 환하게 밝히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용천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수고해 주게. 백가장에서도 일시에 맞춰 준비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백가장주는 부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참월도를 불러오라 지시했다.

그동안 일사천리로 무림맹 제13지부 내에 비무대가 만들어졌다.

“일단 사람들을 보냈지만 솔직히 초대에 얼마나 많이 응할지는 의문이네. 무엇보다 멀리 떨어진 곳엔 오늘 안에 초대장을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하니.”

용천세의 의견에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충분합니다.”

어차피 오늘 참석할 사람들만으로도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갈 것이다.

천신우와 천씨세가의 명성 역시 소문이 퍼져나가는 속도와 비례해 드높아질 것이다.

거기까지 계산하고 백가장주와 담판을 지은 천신우였다.

‘힘뿐만 아니라 이름값을 높이는 것 또한 중요하니까.’

천신우는 무림맹에서 학사로 재직하는 동안 명성의 필요성을 확실히 깨달았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전생에선 내 말에 귀 기울여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힘을 키우고 명성을 드높인다면, 그 누구도 내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겠지.’

생각에 잠긴 천신우를 바라보는 용천세의 눈이 빛났다.

친구 공덕에게 천신우에 대해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무림맹 내에 천신우 정도의 후기지수야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직접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문무를 겸비한 걸로도 모자라 과감함과 순발력까지 갖췄다. 현재 무림맹 최고의 후기지수로 평가받는 사룡들과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어.’

사실 따지고 보면 천신우는 사룡과 배경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룡들이 천신우가 겪은 위기들을 경험할 일이 있긴 할까?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문파의 후광을 지우고 보면 천 공자와 사룡들 가운데 누가 나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용천세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무 많이 나갔군. 아직 참월도와의 비무조차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평가는 천신우의 실력을 직접 보고 내려도 늦지 않으리라.

용천세의 눈동자가 오랜만에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 * *

무림맹 제13지부.

과연 무림맹의 명성에 걸맞게 정문을 지키는 무인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여긴 언제 와도 한결같군.”

잿빛 겉옷을 걸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웃었다.

먼저 출입절차를 거치던 무인들이 노인을 보고 황급히 길을 텄다.

노인공경이 아니다. 단지 노인의 정체가 제13영역을 지배하는 남악련의 수장이기 때문.

그러나 무림맹 무인들은 남악련주에게도 남들과 동일하게 신원확인절차를 거쳤다.

“남악련주님. 신원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당당함을 잃지 않는 태도.

과연 무림맹 소속 무인들다웠다.

“고맙네. 수고하게.”

남악련주가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실력자들이 인사해 왔다.

“오셨습니까. 련주님.”

“저번에 뵀을 때보다 정정해 보이십니다.”

인사를 받아주는 남악련주에게 용천세가 다가왔다.

남악련주 정도 되면 부지부장인 용천세가 맞이해야 격이 맞는 법이다.

“오셨소이까.”

“오랜만이외다.”

마침 근처에 머물던 중이라 용천세의 초대에 응한 남악련주였다.

준비된 귀빈석에 용천세와 함께 앉으며 남악련주가 물었다.

“백가장주가 몸이 달았나보오. 이렇게 판을 키운 것을 보면. 하긴 천씨세가 전체도 아니고 대공자 하나에 그리 망신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게.”

용천세가 헛웃음을 지었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판을 키운 것은 백가장주가 아니라 천 공자라오.”

남악련주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 정도 되는 거물이면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한 법.

하지만 목소리에 놀라움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천씨세가 대공자가 먼저 나서서 판을 짰다고 하셨소?”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무엇이겠소이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남악련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남악련엔 참월도와 비슷하거나 뛰어난 고수가 제법 있소.”

남악련의 저력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이후에 이어진 말이 너무도 자조적이었으니까.

“무림맹은 말할 것도 없겠지.”

용천세는 대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참월도 정도의 고수라면 무림맹엔 얼마든지 존재했기에.

“손아귀에 그런 패를 쥐고 있다면 판을 짜는 거야 어렵지 않지. 하지만 한낱 천씨세가 대공자가 이런 판을 만들었다?”

남악련주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비무대 위를 바라봤다.

“둘 중 하나요. 지나치게 무모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치밀한 계산과 그걸 뒷받침할 실력을 지녔거나. 과연 어느 쪽일지 궁금하군.”

남악련주가 이렇게나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천신우의 의도는 적중한 셈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비무결과뿐.

용천세는 비무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 * *

“먼저 급작스러운 초대에도 흔쾌히 이 자리를 찾아주신 무림영웅들께 감사드리오.”

용천세는 귀빈석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이미 참가명단을 보고받긴 했지만 직접 보니 확실히 면면이 화려하다.

그만큼 이번 비무에 쏟아지는 관심은 엄청났다.

백가장이야 제13영역에서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돌풍을 일으킨 천씨세가의 저력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귀빈석에서 오가는 대화만 듣더라도.

“천씨세가 대공자라. 과연 소문만큼 대단할지 궁금하군.”

“나는 솔직히 회의적일세. 사실 지금까지 상대한 이들이야 참월도의 명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잖나.”

“모두 그렇진 않아. 황보세가의 황보세민은 남악련에서도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걸. 그런 황보세민을 쓰러뜨린 대공자니 그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걸세.”

무인들은 소속 문파. 나아가 소속된 지역에 자부심이 크다.

따라서 오늘 비무는 천신우와 참월도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천씨세가와 백가장, 나아가 제16영역과 제13영역의 자존심을 내건 싸움이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헉!”

“저건?”

“팔이 잘렸다더니 정말이었군.”

“전에 봤을 때보다 확실히 눈빛이 죽어 있는데?”

수군거림의 대상은 바로 백동철이었다.

용천세가 지부장에게 의결을 받아 백동철을 일시 석방시킨 것이다.

용천세는 비무결과만큼이나 이어질 상황이 궁금했다.

천신우는 참월도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면 정말 백동철을 벨까?

그런 상황에서 백가장주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모든 것을 결정할 비무가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천씨세가의 대공자 천신우와 백가장 소가주 백동철은 은원을 이유로 생사결에 합의하였소. 하지만 보다시피 백동철이 부상을 입은 상황이라 의형인 참월도가 그를 대신할 것이오.”

용천세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신우는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랐다.

문파대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비무와 생사결의 차이인 것이다.

생사결은 누군가 죽기 전엔 끝나지 않기에.

천신우는 맞은편의 참월도와 가볍게 눈인사하며 숨을 골랐다.

참월도는 알려진 바대로 과묵했다.

싸울 때 격장지계로 상대를 뒤흔드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 없이 싸움에만 집중하는 부류가 있다.

참월도는 명백히 후자였다.

“시작.”

용천세가 선언하자 객석에선 숨소리조차 사라졌다.

침묵이 내려앉은 비무대 위. 일렁이는 횃불들만이 사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불빛에 의지해 참월도는 천신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격에 상대를 베어버리기로 유명했지만, 오히려 싸움방식은 신중했다.

그런 참월도의 의도가 무색하게 천신우는 거침없이 일격을 내질렀다.

촤아앙!

“오오!”

“흐음. 소문보단 별론데.”

엇갈리는 반응 속에 참월도가 도를 내질러 천신우의 자운검을 쳐냈다.

쩌엉!

도와 검이 교차하는 그 순간, 참월도의 입가에 떠오른 건 미소였다.

나름대로 계산을 끝낸 것이다.

‘과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실력이 굉장하구나. 만일 1년만 더 늦게 만났더라도 승부를 예상할 수 없었겠어.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참월도가 비호처럼 천신우에게 날아들었다.

펄럭!

옷깃이 바람에 휘날리는 순간, 이미 참월도의 도는 천신우의 목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참월도는 지금까지 상대한 적들처럼 천신우의 목도 단칼에 날려 버리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천신우는 시간이 느려짐을 느끼고 있었다.

날아드는 참월도의 도가 너무도 느리게 보인다. 사람들의 반응 역시 한 박자 늦게 전달된다.

물론 정말 시간이 느려진 건 아니었다.

천신우의 내공이 증폭되며 감각이 극대화되고 움직임이 빨라진 것뿐.

바로 승천단의 증폭효과 덕분이었다.

천신우가 살짝 구부렸던 무릎을 펴며 바닥을 박찼다.

팟!

온몸에 흘러넘치는 내공이 엄청난 탄성을 그에게 선사했다.

다음 순간! 천신우의 모습은 참월도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참월도가 눈을 부릅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방금 보여준 천신우의 움직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였다.

애초에 실력을 전부 드러내지 않았던 천신우다.

거기에 승천단의 내공증폭효과가 더해지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촤아악!

참월도의 목이 사선으로 베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참월도의 머리는 백가장주 발밑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

백가장주 옆에 앉아 있던 수호단주가 벌떡 일어났다. 거뭇거뭇한 입술은 어느새 새파랗게 질린 후였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던 용천세가 뒤늦게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오늘 손님들 중에 가장 거물인 남악련주조차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으니까.

뒤늦게 용천세와 눈이 마주친 남악련주가 눈으로 재촉했다.

그제야 용천세가 선언했다.

“오늘 대결은 천씨세가 대공자 천신우의 승리요.”

용천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천신우는 비무대를 내려오고 있었다.

대결을 지켜본 사람들의 표정은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반응이 엇갈릴 필요가 없었다.

경악.

그 하나로 모두의 심정이 설명이 됐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신우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를, 요동치는 심장박동 소리를 느꼈다.

승천단의 효과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지금 상대할 놈은 승천단이 필요 없었다.

“백동철.”

천신우와 눈이 마주친 백동철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으으으…….”

그런 백동철에게 말없이 자운검을 겨누는 천신우.

“멈춰라!”

뒤늦게 백가장주와 백가장의 무인들이 천신우 앞을 막아섰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백동철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천신우의 발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뚜벅.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백가장주의 서늘한 목소리에도 천신우는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수호단주까지 일어났다.

“천 공자. 이곳이 무림맹 제13지부란 사실을 잊지 말게.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내디뎠다간…….”

뚜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딛어진 발걸음.

“감히! 지금 내가 말장난하는…….”

천신우와 눈이 마주친 수호단주는 내뱉던 말을 주워 삼켰다.

차갑게 가라앉은 천신우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막아선다면 누구라도 베어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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