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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46화 (46/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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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46화

용천세는 흥미로운 얼굴로 천신우를 쳐다보았다.

무림맹에 들어와 제13지부 부지부장까지 거치는 동안 이런 물건은 처음이었다.

“아주 재미있는 친구군. 이제 화는 풀렸는가?”

천신우는 용천세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대꾸했다.

“조금은요.”

심정 같아선 백동철을 아예 갈아버리고 싶지만, 용천세가 보는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용천세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하는 것이다.

“응급처치를 마친 후에 전부 감옥에 투옥하라.”

후속지시를 마친 용천세가 청산파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오?”

“저희는 청산파에서 왔습니다.”

“청산파 무인들이셨구려. 그런데 혹시 백가장 소가주가 여러분에게 무례를 저질렀소이까?”

청산파 무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장 문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만일 백가장에서 천씨세가에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저희가 겪은 일을 낱낱이 증언하겠습니다.”

용천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청산파는 분명 백가장과 비교해 힘없는 문파다.

그러니 백동철에게 수모를 당하고도 참은 것이다.

그런 그들이 천신우를 위해 증인을 자처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았다.

‘오늘 일로 천씨세가는 청산파라는 아군을 얻은 셈이군.’

반면 백가장은 어떤가.

수모를 당한 걸로 모자라 천씨세가와 청산파를 적으로 돌렸다.

두 문파의 차이는 단 하나.

‘후계자의 자질이 이렇게까지 차이 난다면 천씨세가와 백가장의 미래는 완전히 엇갈리겠군.’

용천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청산파의 피해사실 또한 참고하겠소이다. 그리고 백가장의 보복은 염려 마시오. 이미 백가장에 사건을 통보하고 소가주를 체포하고자 달려온 것이니.”

청산파 무인들은 내심 안도하는 눈치였다.

사건이 공식화된 이상 백가장이 손을 쓰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 백가장이 꺼내 들 패라곤 소가주가 최대한 약한 처벌을 받도록 탄원하는 것뿐.

상황이 일단락되자 청산파 무인들이 천신우에게 인사해 왔다.

“천 공자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오늘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오.”

천신우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들이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부지부장님. 그럼 조만간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청산파 무인들은 용천세에게 깍듯이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도저히 술을 계속 마실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럼 저도 이만.”

청산파 무인들에 이어 천신우도 자리를 뜨려는 찰나.

용천세가 그를 잡아 세웠다.

“천 공자와는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용천세는 어수선한 내부를 돌아보더니 턱짓했다.

“일단 장소부터 옮기지.”

* * *

용천세가 천신우를 데려간 곳은 무림맹 제13지부였다.

어지간한 문파들보다 웅장한 광경이 천신우 앞에 펼쳐졌다.

여러 채의 장원과 높게 솟은 전각들.

물론 압도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무림맹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냈던 천신우이기에.

“일단 앉지.”

웅장한 건물에 비해 용천세의 집무실은 단출했다.

큼직한 탁자와 여러 개의 의자. 벽에 걸린 검이 전부였다.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을 쓱쓱 문지르며 용천세가 입을 열었다.

“공덕 그 친구에게 얘기는 들었네.”

“그럼 공 대협이 말씀하신 지인이란 분이 바로?”

“그래, 바로 나일세. 그런데 기왕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으면 나를 찾아오지 않고.”

“그게 말입니다.”

공덕이 언급한 승진인사를 말하자 용천세가 실소를 흘렸다.

“그 친구, 괜한 걱정을 하는군.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확실히 용천세라면 승진인사 따위에 신경 쓰지 않을 만하다.

워낙 직언으로 유명한 그니까.

‘무림맹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양이 된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었지.’

물론 당장 그 사실을 말해줄 순 없는 천신우였다.

“그나저나 괜히 미안해지는군. 내 부탁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가 그런 일을 겪었으니.”

“아닙니다. 덕분에 다시금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으니까요.”

세상은 넓고 쓰레기는 많다.

마교의 침공이 성공한 것도 수많은 쓰레기들 공이 컸다.

쓰레기들이 마교에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무림맹이 그리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다행이고. 그래. 언제부터 조사를 시작할 생각인가?”

“바로 떠날 겁니다.”

백가장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천신우의 태도.

용천세는 대화를 계속할수록 천신우가 마음에 들었다.

“호수 일대는 넓네. 혼자 조사하긴 힘들 거야. 전에 조사 나갔던 부하들을 붙여주지. 그밖에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게.”

“괜찮습니다. 백동철 그자만 확실히 처벌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보겠네만 엄벌을 받는다고 장담은 못 하네.”

용천세의 역할은 조사하고 잡아넣는 것까지.

백가장 소가주 정도 되면 용천세보다 윗선에서 처벌을 결정한다.

아무래도 그런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마련.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무죄로 방면되는 일만 없게 해주십시오.”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소가주의 혐의는 반드시 입증하겠네.”

용천세가 덧붙였다.

“그리고 천 공자를 만나고 싶다는 자들이 있네만.”

“누굽니까?”

“사인문 무인들이네. 천 공자에게 두 번이나 구명의 은혜를 입었다며 반드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더군.”

사인문 무인들이라면 천신우가 산적에게서 구해준 이들이었다.

“아! 그들이 여기 와 있습니까?”

“그들 역시 백가장 소가주 사건의 피해자들 아닌가.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신변을 보호해 줄 생각이네.”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만나보지요.”

* * *

사인문 무인들은 천신우를 보자마자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흐뭇하게 지켜보던 용천세가 한마디 거들었다.

“마침 여기 두 사람이 호수 인근 마을 출신이라더군. 계속되는 실종사건을 조사하고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들었네.”

용천세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고개를 들기가 부끄럽구먼. 내가 부족한 탓에 사람 여럿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으니 말이야.”

결국 호수에서 발생한 실종사건 때문에 천신우와 사인문 무인들이 백가장과 얽힌 셈이다.

“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부 백가장 소가주 잘못이니까요. 그래도 정 미안하다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물론이네. 말만 하게.”

천신우가 사인문 무인들을 돌아봤다.

“당신들에게 은혜 갚을 기회를 주겠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호수까지 길잡이를 맡아주면 됩니다.”

지켜보던 용천세가 물었다.

“그럼 내게 하려는 부탁이 설마 저들을 내어달라는 것인가?”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건 천 공자가 아니라 나와 사인문 무인들만 이득 보는 거래네만.”

천신우의 길잡이를 맡는다면 사인문 무인들은 고향까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다.

동시에 용천세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저야 좋지요.”

그제야 천신우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용천세다.

“하하하! 알겠네. 이것 또한 달아두지.”

호수지역 조사에 이어 이번 일까지.

천신우는 용천세에게 빚을 지운 것이다.

그 빚을 어떻게 받아낼지는 전적으로 천신우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 * *

“이곳입니다.”

천신우를 안내하는 사인문 무인들의 태도는 무척 공손했다.

천신우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높은 산 중턱. 핏빛 안개에 둘러싸인 호수는 괴기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고생 많았습니다.”

이곳 토박이인 사인문 무인들이 길안내를 해준 덕에 상당한 시간을 단축한 천신우였다.

그들이 돌아가자 천신우는 가볍게 몸을 풀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 호수 밑바닥 수중동굴에서 단서가 발견됐음을 알고 있기에.

풍덩!

물속은 살이 익을 만큼 뜨거운 데다 온통 뿌옇게 흐려서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끝없이 육체를 단련해 오지 않았다면 수색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열기를 견뎌내며 호수 밑바닥을 헤집었다.

숨이 가빠올 때마다 다시 물 위로 떠올라 호흡을 고르길 수십 차례.

마침내 호수 가운데 부근에서 수중동굴을 찾아낸 천신우다.

‘여기군.’

천신우는 거침없이 수중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빠른 물살에 몸을 맡기자 어느새 천신우는 물가로 밀려나 있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천혜의 자연경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호수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구나.’

사방의 벽에 박힌 광물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반짝이는 광물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작은 굴이 보였다.

그곳 안엔 틈새가 녹아내린 상자가 보였다.

그 틈을 통해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천신우는 상자를 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뭐지?”

전생에 읽은 무림맹 보고서대로라면, 이 상자 안의 물건이 만상서고로 통하는 첫 번째 단서.

하지만 그 발견과정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천신우였다.

“보통 이런 경우엔…….”

천신우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과연 공명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는 상자.

서서히 끌어올린 내공이 거의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우우웅!

진동음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상자가 열리며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마침내 빛이 사라진 자리.

상자 안에 담긴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핏빛으로 물든 구슬이었다.

크기는 어린아이 머리 크기 정도.

천신우는 조심스럽게 구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빛과 함께 열기도 함께 사라졌는지 뜨겁진 않았다.

‘전생엔 이대로 무림맹에 장기간 보관됐었지. 누구도 이게 뭔지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천신우는 알고 있다. 구슬의 진정한 가치를.

그렇기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마침 내일이 보름달이 뜨는 날이군.’

천신우는 지체하지 않고 호수를 빠져나왔다.

더 이상 물속은 뜨겁지 않았다. 호수 주위를 뒤덮었던 핏빛 안개도 사라진 후였다.

천신우는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 근방을 수색했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전생에서도 실종자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금으로선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결국 천신우는 산을 내려와 근처의 객잔에 방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 날 밤이 되어 보름달이 떠오르길 기다렸다.

* * *

아침부터 시작된 비가 그친 덕에 초저녁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천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름 한 점 없군.’

다행이었다. 보름달이 보이지 않았다면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했을 테니까.

천신우는 달빛이 비치는 창가에 구슬을 올려두고 기다렸다.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있었다.

밤새 달빛의 정기를 한껏 흡수한 구슬에 새벽 햇빛이 비치는 순간.

쩌저저적.

구슬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구슬이 산산조각이 나며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신우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여기부턴 나도 모르는 영역이다.’

전생에 천신우가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는 첫 번째 구슬이 발견된 장소. 그리고 그것을 여는 방법뿐.

거기서 나온 내용물이 뭔지. 그리고 만상서고와 관련된 또 다른 단서들의 발견과정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일급기밀이었으니까.’

이제 그 비밀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두루마리였다.

마치 새것처럼 보이는 두루마리를 펼치자 수려한 필체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천신우는 직감했다. 두루마리에 적힌 문장이 두 번째 단서가 있는 장소를 나타냄을.

두루마리를 다시 접어 품에 보관한 천신우는 덩그러니 놓인 목곽을 바라보았다.

목곽 겉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전에 없이 흔들렸다.

승천단.

“승천단이라고?”

달칵.

목곽을 열자 특유의 향긋한 냄새와 함께 황금빛 단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신우는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틀림없었다.

증폭환의 일종인 승천단이 분명했다.

일반적인 증폭환은 복용하는 순간 내공을 증폭시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해주지만. 지속시간이 끝나면 죽거나 폐인이 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승천단은 한번 복용하면 원할 때마다 내공 증폭이 가능하다. 지속시간이 끝나면 일시적으로 탈진상태에 빠지는 정도가 유일한 부작용.

증폭환과 비교하면 사실상 부작용이 없다고 봐도 좋았다.

무림에서 극소수만이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그 승천단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심장이 터질 듯이 날뛰는 것도 당연했다.

“먹자.”

천신우가 내린 결론이었다.

꿀꺽.

승천단을 완전히 삼켰음에도 별다른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공을 끌어올리는 순간.

콰아아앙!

천신우에게서 뿜어져 나온 폭발적인 기운이 사방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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