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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43화 (43/171)

# 43

학사환생 043화

밤이 깊어서야 산에서 내려온 천신우 일행이다.

“어떻더냐?”

풍뢰권이 넌지시 물어온다.

“벌써부터 제자 자랑을 하시는 겁니까?”

천신우가 정곡을 찌르자 뒤늦게 헛기침하는 모습.

“험험.”

“이해는 갑니다.”

확실히 권왕의 성장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다.

실시간으로 실력이 느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얼마나 될까.

“됐고. 하나만 묻자. 교관 노릇은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냐?”

제멋대로지만 약속만큼은 확실히 지키는 풍뢰권다웠다.

솔직히 당장 그만둬도 아무도 뭐라고 못할 텐데.

“조만간 새로 교관들을 데려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아주시지요.”

“이놈아! 기다리다 늙어 죽겠다. 그러지 말고 실한 놈으로 하나 찍어줄 테니 데려다 쓰던지 해라.”

“누굽니까?”

“조충헌이라고. 무림맹에서 눈칫밥 먹던 놈인데. 지금 놀고 있으니 데려다 써도 문제없을 게다.”

천신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조충헌이라면 이미 물망에 올려둔 무림맹 교관 출신의 고수.

세상이 이렇게 좁다.

* * *

다음 날.

예정을 뒤로 미루고 새로 일정을 잡은 천신우였다.

풍뢰권의 추천까지 받은 이상, 교관 조충헌의 영입을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기에.

“여기군.”

천신우가 천씨세가 무인들과 함께 찾은 곳은 마당이 딸린 집이었다.

마당에 나와 나뭇가지를 치던 중년인이 눈매를 좁혔다.

천신우에게서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군가?”

“처음 뵙겠습니다. 천씨세가 대공자 천신우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천신우.

중년인은 허리를 펴며 중얼거렸다.

“천씨세가라…… 나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림맹 교관으로 재직하다 은퇴하여 고향에 내려온 조충헌이다.

딱히 남에게 원한을 사지 않았기에 이따금 찾아오는 이들은 무림맹 시절 제자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씨세가 출신을 지도했던 기억은 없다.

“인연이야 지금부터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천신우의 당당한 태도에 조충헌은 헛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예전에 만났다면 좋은 인연이 됐을지도.”

무림맹 교관으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무인들을 봐온 조충헌이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천신우는 수준급 인재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무림을 떠난 후라네. 이제 와서 천씨세가와 얽힐 이유가 무엇이겠나.”

“일단 제가 찾아온 이유부터 들어보시지요.”

“이유라. 은원관계는 아닐 테니 아마도 나를 영입하려는 거겠지. 어디서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네만.”

“풍뢰권 어르신이 알려주셨습니다.”

“……!”

천신우는 조충헌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분의 이름을 이런 자리에서 들을 줄은 몰랐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조충헌이 천신우에게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오게.”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

천신우는 흔쾌히 조충헌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조충헌의 소탈한 성품을 보여주듯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직접 차를 내온 조충헌이 물었다.

“그분이 나를 교관으로 추천하시던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로선 거절할 수가 없지. 가세.”

“아무것도 묻지 않으십니까? 조건이라든지.”

경력이 화려한 고수들은 오히려 무림맹에서 일할 때보다 대우를 잘해줘야 한다.

무림맹 출신이란 자부심과 명예를 다른 것으로 보상해 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충헌은 달랐다.

“그분 역시 아무 조건 없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네. 그런데 내가 조건을 따질 수는 없는 법이지.”

유명문파들이 조충헌을 영입하려다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는 정보를 입수한 천신우였다.

그런데 그토록 까다로운 조충헌을 이름만으로 움직이게 만들다니.

풍뢰권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지금 어르신은 어디 계신가? 최근 들어 무림 곳곳을 떠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천씨세가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렇군. 오랜만에 인사라도 드렸으면 좋겠지만. 귀찮다고 문전박대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설마 어르신이 예전에도 귀찮아하고 그러셨습니까?”

“물론이네. 그나마 지금이 많이 부드러워지신 거라네. 10년 전이던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하하하.”

초면임에도 천신우는 조충헌과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눴다.

인연의 힘이란 이런 거겠지.

그날로 천씨세가에 합류한 조충헌은 아예 교관들의 교육까지 맡았다.

반발은 없었다.

무림맹 출신이라는 경력이 제대로 먹혔던 것이다.

그렇게 천씨세가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둔 채로 천신우는 길을 나섰다.

돌아와서 천씨세가 무인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 * *

일곱 개의 험준한 산이 한곳에 모여 있다 하여 칠악이라 불리는 지역.

이곳만 넘으면 목적지인 호수까지 닷새 거리였다.

‘만상서고로 가는 첫걸음이 머지않았군.’

천신우는 홀로 칠악 인근의 객잔에 들어섰다.

평소라면 천씨세가 무인들과 동행하는 천신우지만 이번만큼은 혼자였다.

이유가 있었다.

‘여긴 세가연합의 영역이 아니니까.’

무림은 24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무림맹의 영향 아래 있다는 점에선 모든 영역이 동일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이다.

천씨세가가 자리 잡은 제16영역처럼 문파들의 연합에 의해 다스려지는가 하면.

영역 한곳을 거대한 두 개의 세력이 양분하는 경우도 있으며.

아예 거대세력 한곳이 영역 전체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영역마다 세력의 크기도 제각각이다.

‘이곳 제13영역을 지배하는 세력은 남악련.’

남악련은 세가연합과 마찬가지로 문파들의 연합.

‘무림맹 보고서에 따르면 남악련의 세력은 세가연합과 비슷한 수준이다.’

24개의 영역 가운데 중하위권이라 보면 됐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표결을 통해 련주를 선출한다는 점이다.

‘지금 남악련주가 누구더라…….’

천신우가 기억을 떠올리던 그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과 그보다 한두 살쯤 많아 보이는 남자가 객잔으로 들어왔다.

천신우와 가까운 자리에 앉자마자 그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알아봤어?”

“그게 말이야. 형님. 요즘 칠악에 출몰하는 산적들이 부쩍 늘어났다더라고.”

“그깟 산적들 따위 베어버리면 그만 아니냐.”

청년보다 한두 살쯤 많아 보이는 남자가 등에 메고 있던 검을 툭툭 쳤다.

천신우의 짐작대로 무인인 모양.

하지만 청년은 여전히 근심 어린 얼굴로 목소리를 낮췄다.

“남악련에서 산적들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야. 산적을 베었던 무인이 남악련 고수에게 살해당했다던데. 우리 괜찮을까?”

“설마…… 헛소문이겠지.”

잠시 생각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산적을 무조건 만난다는 보장도 없잖아. 설령 일이 터지더라도 몸을 빼는 거쯤은 쉬울 테니 너무 걱정 말자. 산적 무섭다고 고향에 안 가볼 수도 없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해.”

이윽고 식사를 마친 그들이 방으로 올라가자 천신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여전하군. 남악련은.’

무림맹에 소속된 모든 문파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남악련 역시 마찬가지.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악련에 속한 일부 문파들은 흑도방파보다도 잔악무도했다.

그들이라면 산적의 뒤를 봐주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굳이 파고들 생각은 없지만.’

충돌이 벌어지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기에.

* * *

다음 날이었다.

사람들은 산적의 습격에 대비하고자 뭉쳐서 움직였다.

아무래도 여럿이면 설령 산적을 마주치더라도 통행료를 협상하기 수월하기에.

물론 천신우와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었다.

‘혼자 움직이는 쪽이 훨씬 편하지.’

천신우는 푸른빛으로 물들어가는 산을 감상하며 걸음을 옮겼다.

평범한 풍경조차도 천신우에겐 남다르게 다가왔다.

전생엔 무림맹에만 머무느라 돌아다닐 일이 없었기에.

고고하게 솟은 나무들. 불어오는 산들바람. 비명…….

“비명?”

천신우가 멈칫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고개 아래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천신우는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산길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

바위벽을 등진 채로 청년 하나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형님…….”

일행인 남자가 휘두른 검은 맥없이 빗나갔다.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뒤에서 거대한 팔이 그를 감싸 안았다.

지켜보던 청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형님!”

우두두둑!

간절한 외침이 무색하게 허리가 접힌 남자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휙!

마치 봇짐처럼 남자를 던져 버린 산적두목이 청년을 향해 다가왔다.

“이제 네놈 차례다. 우리 애들 다치게 했으니 책임을 져야지?”

“…….”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검을 세워 들었다.

쓰러진 남자와 그는 군소방파 사인문 소속 무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칠악을 넘어야 하는데 하필 산적들과 맞닥뜨린 것이다.

‘보자마자 달아났어야 하는 건데…….’

뒤늦게 후회하는 청년의 눈가로 방금 전의 광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동행하던 사람들에게 뒤로 피하라며 호기롭게 나선 그였다.

산적 서넛을 쓰러뜨릴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산적두목이 문제였다.

턱수염을 기른 산적두목은 겉모습만 위압적인 것이 아니었다.

무공 또한 사인문 무인들을 압도하는 수준.

‘이제 내 차례구나.’

남겨진 동행들은 험한 꼴을 당하겠지.

산적두목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쩌렁쩌렁 울린다.

“자아. 어디부터 잘라줄까.”

“흐흐흐. 두목. 얼른 끝내고 저년들이나 맛보시죠.”

“맛을 보긴. 여자가 무슨 음식도 아니고.”

“흐흐. 좋으시면서.”

여인들을 노골적으로 훑으며 군침을 흘리는 산적들.

“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가진 돈은 모두 드릴 테니…….”

중년인 하나가 용기를 냈지만 소용없었다.

“크흐흐. 어차피 네놈들 죽고 나면 우리 돈인데 생색내기는.”

“정신 사납다. 시끄러운 놈들부터 처리해.”

그러자 흐느끼던 울음소리와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산적두목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때였다.

뒤편 숲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산적들이 고개를 돌렸다.

한쪽 팔을 나무에 기댄 천신우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뭐하는 새끼야?”

빡!

건들거리던 산적이 뒤로 날아갔다.

부하를 날려 버린 산적두목이 천신우를 노려보았다.

“말했지. 시끄러운 놈부터 처리하라고.”

움찔한 산적들이 천신우에게 달려들었다.

박도와 도끼가 천신우의 머리 위로 내리쳐졌다.

쉬익!

하지만 산적들의 무기는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뭐…… 뭐야!”

빠바바박!

“……!”

산적두목의 눈이 커졌다. 보진 못했다. 그저 들었을 뿐이다.

천신우의 주먹이 부하들의 몸통을 타격하는 소리를.

털썩!

산적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이미 천신우는 산적두목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이놈!”

본능적으로 뒤로 주먹을 내지른 산적두목이었지만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턱.

산적두목의 주먹을 잡은 천신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차이 나는군.’

당연히 비교대상은 권왕이었다.

우두둑!

“크아아악!”

천신우의 악력에 의해 주먹이 으스러진 산적두목이 산이 무너져라 비명을 내질렀다.

“시끄러운 놈부터 처리하라더니. 네가 제일 시끄러운데?”

천신우의 주먹이 산적두목의 명치에 꽂혔다.

퍽!

이번엔 비명도 내뱉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산적두목이었다.

그런 산적두목을 보며 천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때리는 맛이 덜해.’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저런 꼴이라니.

벌써부터 권왕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천신우였다.

비틀거리던 산적두목이 다급히 외쳤다.

“잠깐! 나를 건드리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한다! 내 뒤에 뭐가 있는지 아느냐!”

“바위벽?”

“……뭐?”

천신우는 대답 대신 주먹을 날렸다.

풍뢰권이 알려준 대로 내공을 실어서.

퍼억!

팔다리가 벌어지며 날아간 산적두목은 그대로 바위벽에 처박혔다.

스윽.

천신우가 몸을 돌리는 순간.

꽈아아앙!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바위가 산적두목의 몸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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