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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42화 (4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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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42화

협상이 끝나자 황보세가 가주는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천씨세가의 세력확장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날개를 달아준 상황.

대책을 준비하느라 당분간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물론 미래를 아는 천신우 눈엔 부질없는 짓에 불과했다.

‘어차피 곡물 파동이 터지고 나면 끝이니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천무흔의 표정도 밝았다.

“잠깐.”

뒤따라 일어나는 천신우를 불러 세운 것은 무림맹 제16지부 부지부장 공덕이었다.

“대공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소? 잠깐이면 되오.”

천무흔은 의아한 표정이었으나 굳이 이유를 묻진 않았다.

“그렇게 하시지요.”

천무흔이 밖으로 나가자 별실 안엔 천신우와 공덕만이 남았다.

공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비무는 아주 인상적이었네.”

“과찬이십니다.”

“진심이네. 천 공자 정도면 무림맹에서 활약하는 후기지수들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어.”

천신우는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학사 시절 목격한 바에 따르면 무림맹에선 팽우경이나 모용비도 평범한 수준이다.

물론 모용비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결국 무림맹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게 되지만.

‘그래도 사룡에겐 밀렸지. 그만큼 무림맹은 수준 자체가 다르다.’

전생을 회상하던 천신우에게 공덕이 불쑥 물어온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무림맹에서 활약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뜻밖이었지만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무림맹에서 실적을 내고 인맥을 쌓아둔다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생각이 없진 않습니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하니까요.”

일단은 천씨세가를 궤도에 올리는 것부터.

이후 구상해둔 계획을 차례로 현실화시켜나갈 예정이다.

“그런가? 아쉽군.”

천신우는 공덕의 반응을 보고 알아차렸다. 본론은 이제부터임을.

“사실 내가 천 공자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네.”

공덕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절명곡에서 천 공자의 활약은 익히 들었네.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던 본거지를 찾아내 실종자들을 구했다지?”

천신우가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절명곡과 공덕.

사실 전생에선 상당히 밀접한 조합이다.

팽우경의 그릇된 판단으로 조사대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철수한 이후. 절명곡 사건을 재조사한 주역이 바로 공덕이었으니까.

‘본의 아니게 공을 빼앗은 셈이 되고 말았군.’

이로 인해 공덕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이니만큼 어떤 식으로든 마교와의 전쟁에 일조하리라.

“그 얘기를 무림맹 다른 지부에 있는 지인에게 했더니, 천 공자를 소개시켜줄 수 있느냐고 묻더군. 천 공자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고.”

“그게 무엇입니까?”

“천 공자. 혹시 핏빛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천신우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처음 들어봅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핏빛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에 대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천신우였다.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만상서고로 통하는 첫 번째 단서가 발견된 곳이다!’

천신우는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며 공덕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나도 이번에 듣고 알았네. 지인의 말에 따르면 그 지역에서도 일부 주민들만 아는 사실이라더군. 지금까진 하늘의 노여움을 산다 하여 서로 쉬쉬했던 모양이야.”

“그렇다면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이유가 있겠군요.”

“과연 이해가 빠르군. 천 공자 말이 맞네. 최근 들어 안개가 더욱 심해지면서, 실종되는 사람이 늘어났다더군. 지인이 사람을 풀어 조사를 해봤지만 도저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고.”

공덕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다 나를 만나 천 공자 일화를 듣고, 부탁을 해온 거라네. 아직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천 공자가 그곳을 수색해 줬으면 하는 눈치야.”

“그렇군요.”

“어려운 부탁인 건 알고 있네. 성가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지. 그러니 꺼려진다면 거절해도 괜찮네. 물론 천 공자가 나서준다면 사례는 확실히 할 것이네. 나나 지인이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니 믿어도 좋아.”

공덕이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란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천신우였다.

이번 일을 해결해 준다면 분명 제대로 보상해 줄 것이다.

물론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천신우는 공덕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만상서고에 관한 단서를 놓칠 수는 없지.’

잠시 뜸을 들인 끝에 천신우가 대답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람들이 실종된다면 나서지 않을 수가 없지요. 장소를 알려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그래주겠는가? 정말 고맙네!”

공덕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장소는 바로 이곳이네.”

지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을 가리키는 공덕이었다.

“다만 이번 일은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지인이 조만간 무림맹 승진인사를 앞두고 있어서 말이야. 부끄럽지만 꼭 좀 부탁하네.”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천신우 입장에서도 밝힐 이유가 없었다.

혹시라도 경쟁자가 늘어나면 곤란하니까.

“언제쯤 시작하면 좋겠습니까?”

“그건 일단 지인을 만나서 상의해 보는 게 좋지 않겠나?”

“지금보다는 일을 처리하고 나서 만나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야 그렇지. 아무래도 그 친구도 지금 같은 시기에 외부인을 만나는 건 부담될 테니.”

천신우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승진인사를 앞둔 시점에선 청탁 문제로 활동반경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곰곰이 생각하던 공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지. 관련정보는 내가 알려줄 테니, 천 공자는 따로 누굴 만날 일 없이 독자적으로 조사해 주게.”

공덕은 시간을 헤아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나나 지인이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네만, 천 공자 입장은 또 다르겠지. 두 달 안에만 해결해 주면 되네. 자세한 일정은 천 공자가 알아서 정하게. 잘 해결된 후에 지인과 함께 술자리나 갖자고.”

사실 공덕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지인이 워낙 난처해 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천신우에게 부탁한 것뿐.

천신우가 해결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본전인 것이다.

“위치를 보니 가까운 곳은 아니군요. 천씨세가로 돌아가는 즉시 준비해서 떠나겠습니다.”

“그래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 다시 한번 고맙네.”

천신우는 공덕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발걸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전생에서 만상서고로 통하는 첫 번째 단서가 발견된 건, 지금으로부터 1년이 지나서였다. 심지어 그게 만상서고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밝혀졌지.’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만상서고와 관련된 실마리를 잡게 될 줄이야.

‘호수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일단 보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운이 따라주는군.’

호수의 위치를 알았으니 가서 첫 번째 단서를 찾는 일만 남았다.

‘분명 호수 밑바닥의 수중동굴에서 발견됐다고 했지.’

첫 번째 단서를 활용하는 방법까지도 알고 있는 천신우였다.

다만 그 이후의 진행사항까지 자세히 알진 못했다.

‘만상서고와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관련정보가 모두 일급기밀로 분류됐으니까.’

따라서 천신우가 알고 있는 사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단서에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었고.

그 단서들을 조사한 끝에 결국 만상서고의 위치가 밝혀졌다는 것.

그리고 그 만상서고에 들어가기 위해선 일정한 자격이 필요하다는 정도.

‘지금 시점에선 만상서고의 정확한 위치는커녕, 실마리조차 아는 사람이 없다. 그 말은 내가 가장 먼저 첫 번째 단서를 찾아내기만 하면, 만상서고를 독점할 수 있다는 뜻이지.’

전생에선 만상서고를 놓고 대참사가 벌어졌다.

만상서고는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인들끼리 만상서고를 독차지하려고 서로 죽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천신우가 만상서고를 독점한다면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천신우가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천무흔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

“무림맹에 추천해 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천무흔이 반색했다.

“좋은 일이구나. 부지부장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널 인정했다는 뜻이니까.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거절했습니다.”

천무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무림맹 추천이 좋은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네 생각이 더 중요하지.”

천신우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지지해 주는 천무흔다웠다.

“돌아가자. 피곤할 테니 마차에서 눈이라도 붙여라.”

물론 천신우는 마차에서 눈을 붙이지 못했다.

만상서고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 * *

천신우가 천씨세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구상이 끝난 상태였다.

‘전생대로라면 첫 번째 단서가 발견되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서둘러도 나쁠 게 없겠지.’

바로 시비 난정에게 이런저런 준비를 시키는 천신우였다.

하루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에.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리고 공자님.”

난정은 풍뢰권이 찾는다는 말을 전해왔다.

“풍뢰권 어르신이?”

천신우는 그길로 풍뢰권의 거처를 찾았다.

하지만 풍뢰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풍뢰권 어르신은 어디 계시지?”

“뒷산의 폭포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천신우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뒷산의 폭포로 향했다.

천씨세가 뒤편으론 낮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엔 경관 좋은 폭포가 존재했다.

천신우도 가끔 찾는 곳이었다.

쏟아지는 폭포를 보고 있자면 머릿속이 홀가분해지기에.

콰아아!

마침내 폭포에 도착한 천신우.

풍뢰권이 혀를 찼다.

“이제 오느냐?”

문파대전 결과에 대해선 한 마디도 묻지 않는다. 궁금할 법도 한데.

물론 풍뢰권의 화법에 익숙해진 천신우이기에 웃으며 되물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나보다 저놈이 오래 기다렸지.”

풍뢰권은 폭포 속에서 물살을 맞고 있는 권왕을 가리켰다.

천신우가 관심을 보였다.

“저것도 수련의 일종입니까?”

“아니. 벌이다. 진도가 너무 느려.”

“…….”

천신우는 권왕이 풍뢰권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얼마나 빠르게 실력이 늘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진도가 느리다니?

“그래서 말인데. 네놈이 도와줘야겠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치고받으면 그만이지.”

폭포물살을 맞고 있던 권왕이 움찔했다.

전에 천신우에게 된통 당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내뱉는 권왕이었다.

“할아범! 너무하잖아!”

“왜? 자신 없느냐?”

“그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는 권왕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는 천신우였다.

천하의 권왕에게 저런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웃지 말고 주먹 한번 쥐어봐라.”

천신우가 주먹을 쥐자 풍뢰권이 혀를 찼다.

“이놈아. 이제 보니 너도 주먹 쥐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겠구나.”

헙!

이번엔 천신우가 긴장했다. 풍뢰권이 혈염자의 도를 박살 내던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풍뢰권은 그때처럼 천신우의 주먹을 박살 내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천신우는 풍뢰권이 시키는 대로 주먹을 바꿔 쥐었다.

“그렇지. 발은 이렇게. 그대로 허리를 회전시키면서 내공을 자연스럽게 실어라.”

풍뢰권은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오냐. 이제 여기 있는 바위를 그런 식으로 때려보아라.”

폭포 옆에 사람 키보다도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는 풍뢰권이었다.

천신우는 심호흡을 하고는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후우욱!

뻗어진 주먹이 바위에 닿는 순간.

꽈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위가 쪼개져 나갔다.

“……!”

생각도 못한 위력에 천신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거로 돌아와 주먹으로 많은 적을 상대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풍뢰권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다. 지금처럼 내부에 타격을 주면 외부는 알아서 무너지게 된다.”

풍뢰권이 권왕을 가리켰다.

“하지만 저놈은 머리가 나빠 알아듣질 못하니 네놈더러 도와주라는 것이다.”

“잠깐만! 할아범! 아무리 나라도 그걸 정통으로 맞으면……!”

“아서라. 맞으면서 배워야 금방 느는 법이다.”

천신우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권왕과 마주 섰다.

“그럼 시작해 볼까. 사제.”

“누구더러 사제라는 거요!”

“인정하기 싫다면 깨닫게 해주는 수밖에.”

퍼어억!

천신우의 주먹이 권왕의 복부를 강타했다.

뒤로 주르륵 밀려난 권왕이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었다.

‘확실히 어지간한 공격으론 생채기도 내기 힘들군.’

내심 감탄하며 천신우가 권왕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파바바박!

권왕을 두들겨 패며 풍뢰권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천신우다.

시간이 지날수록 권왕의 움직임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실컷 두들겨 맞고 바닥에 뻗은 권왕이다.

“젠장! 내 주먹은 왜 안 맞는 거야!”

천신우는 차마 말해줄 수 없었다.

맞으면서 배우는 것보다 때리면서 배우는 게 더 빠르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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