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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39화 (3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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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39화

천신우는 권왕과 풍뢰권을 데리고 천씨세가로 복귀했다.

당연히 권왕의 어머니 노부인도 함께였다.

천씨세가에 도착하자 미리 보고받은 가주 천무흔이 직접 마중 나왔다.

“어서 오시지요.”

천무흔은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낮은 자세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런 천무흔을 보며 천신우는 미소 지었다.

무림맹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를 봐온 그다.

당장의 성공에 도취돼 자만하고 콧대를 높이는 사람은 결국 몰락하게 마련.

다행히 천무흔은 적어도 자만해서 무너질 인물은 아니었다.

“총관. 앞으로 머물 곳을 안내해드리게.”

빈객인 풍뢰권은 물론. 권왕과 노부인에게도 가장 좋은 숙소가 주어졌다.

감찰단주 일에 대한 천무흔 나름의 사죄였다.

빈객을 초빙하면 으레 열리는 환영연회는 당사자인 풍뢰권이 사양함에 따라 생략했다.

풍뢰권이 애초에 거추장스러운 것을 꺼리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권왕을 한시라도 빨리 다듬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덕분에 천씨 부자들끼리 오붓한 식사자리가 만들어졌다.

물론 문파대전을 앞둔 시기이니만큼 식사 후엔 중요한 논의가 이어졌다.

“무림맹에서 문파대전을 허가하겠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차를 마시던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진 기한까지 참가명단을 제출해야겠군요.”

“그래.”

천무흔의 시선이 천신우를 향했다.

“혹시 명단을 생각해두었느냐?”

천신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먼저 빈객 중에선 풍뢰권 어르신을 참가명단에 넣어주십시오.”

“황보세가에선 혈염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괜찮겠느냐?”

황보세가 가주가 공들여 초빙한 혈염자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고수였다.

천무흔의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풍뢰권의 진면모를 알고 있는 천신우 입장에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애써 미소를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알겠다. 그럼 나머지 두 사람은?”

“일단 제가 나가겠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잠자코 아버지와 형의 대화를 경청하던 천신혁이 조심스럽게 간청했다.

“형님. 제게도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천신우는 흔쾌히 승낙했다.

“안 될 거야 없지. 아버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천무흔은 의외라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천신우에게 생각이 있을 거라고 여겼기에.

“들었지? 아버님이 기회를 주셨으니 남은 시간 동안 준비 잘해.”

“감사합니다! 아버님! 형님!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천신혁은 감격의 눈물까지 흘릴 기세였다.

천신우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만하면 좋은 동기부여가 되겠지.’

확실한 목표가 주어졌으니 천신혁은 보다 열심히 수련할 것이다.

지금은 그걸로 족했다.

어차피 문파대전의 결과는 천신우와 풍뢰권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럼 명단을 작성해 무림맹으로 보내겠다.”

일단 명단이 보내지면 타당한 사유 없인 교체가 불가능했다.

‘앞으로 한 달 남았군.’

문파대전을 기다리는 천신우의 눈이 빛났다.

* * *

천신우가 천무흔과 함께 문파대전 명단을 확정한 그날.

황보세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황루엔 초저녁부터 긴장이 감돌았다.

황보세가 가주의 방문 때문이었다.

취향에 맞춰 화려하게 꾸며진 특실에서 황보세가 가주는 술잔을 들었다.

“지금쯤이면 천씨세가에서도 명단을 확정했겠군.”

물론 아무리 황보세가 가주라 하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명단확인은 불가능했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천씨세가에서 풍뢰권이라는 인물을 빈객으로 영입했다더군. 모르긴 해도 아마 이번 문파대전 참가명단에도 들어갈 거요. 혹시 들어본 이름이오?”

가주의 물음에 혈염자는 고개를 저었다.

“풍뢰권이라…… 솔직히 처음 들어봅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들어본 적 없는 상대.

둘 중 하나다.

정말 미미해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실력에 비해 명성이 알려지지 않은 고수거나.

“너무 염려 마십시오. 천씨세가의 역량이야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에둘러 자신감을 표출하는 혈염자였다.

일리는 있었다.

천씨세가가 혈염자 이상의 고수를 영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고수들은 돈도 돈이지만 체면도 중시한다.

천씨세가 정도의 문파에 힘을 빌려주는 것을 탐탁잖아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일단은 인맥을 동원해 알아보겠소. 혈염자 그대도 한번 알아보구려. 어쨌든 그대와 맞붙을 상대이니.”

문파대전 선봉은 빈객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혈염자의 눈빛은 진지했다.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 성격답게.

황보세가 가주 역시 신중했다.

굳이 외부인인 혈염자에게 다른 출전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려. 준비야 내일부터 해도 되니 오늘은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십시다!”

서로 다른 속내를 가진 두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부분에선 의견이 일치했다.

이번 문파대전을 계기로 황보세가는 다시금 도약할 것이다.

* * *

봄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이었다.

나뭇가지 위에 드러누운 사내가 무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씨세가 감찰단주라 적힌 묘비 앞엔 조화가 놓여 있었다.

‘누굴까.’

운경은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아버지의 무덤 앞에 매일 아침같이 조화를 놓아두는 것인지.

그래서 오늘은 사부인 풍뢰권의 허락을 받아 이른 시각부터 무덤 앞을 지키는 중이었다.

처음엔 괴짜인 줄로만 알았지만 의외로 인간적인 구석이 많은 풍뢰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스락.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소녀는 무덤 앞에 조화를 놓고 잠시 애도를 표했다.

“잠깐.”

나무에서 뛰어내린 운경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너는 누군데 우리 아버지 무덤에 조화를 갖다놓는 거지?”

처음엔 화들짝 놀랐던 소녀가 운경의 정체를 듣더니 차분히 대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녀는 대공자님을 모시는 난정이라고 해요.”

“대공자?”

운경이 눈을 찌푸렸다.

“그럼 대공자가 너더러 시킨 건가?”

“그렇답니다. 평소엔 대공자께서 직접 이곳을 찾으셨지만 요즘은 아무래도 문파대전 때문에 바쁘셔서요.”

“직접?”

운경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다고 내가…….”

그러나 그의 표정은 분명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봄볕에 녹기 시작하듯.

* * *

덜컹!

개인연공실 문을 열고 나오는 천신우의 몸에선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천무검법 9성을 완벽하게 익혔을 뿐만 아니라, 기존에 복용한 영약기운까지 완전히 흡수했다.

이제 전생의 나약한 육체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솔직히…….’

문파대전에서 누가 상대로 나오든 가볍게 눌러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

천신우는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며 그길로 풍뢰권을 찾아갔다.

풍뢰권이 머무는 거처 앞뜰.

엎드린 상태에서 손가락만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권왕이 보였다.

그런 권왕의 등에 앉아 있던 풍뢰권이 탐탁잖은 얼굴로 물었다.

“오늘이더냐.”

“그렇습니다.”

“성가시게 하기는. 약속이니 지키긴 하겠다만. 나는 혈염자인지 적염자인지 하는 놈만 맡을 것이야. 나머지는 네놈이 알아서 해라.”

천신우가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풍뢰권의 진정한 쓰임새는 권왕을 키워내는 데 있다.

문파대전 참가 정도는 덤에 불과했다.

“그럼 가시지요.”

풍뢰권이 몸을 일으켰다.

“다녀오마. 내가 없다고 수련 게을리 하지 말고.”

뒤이어 일어난 권왕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할게. 할아범.”

퍼억!

곧바로 풍뢰권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인 권왕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끌끌. 엄살하고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싫지 않은 눈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제일 예쁘다고 한다 하지 않던가.

지금 풍뢰권에겐 권왕이 무슨 짓을 해도 예쁘게만 보일 것이다.

어느새 일어나 모래를 털던 권왕이 툭하고 내던졌다.

“대공자. 다치든 말든 내 알 바 아닌데 죽진 마쇼.”

천신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머리 위로 손만 흔들어보였다.

* * *

천씨세가와 황보세가의 문파대전이 열리는 장원.

무림맹 제16지부에서 파견 나온 무인들이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우리는 유가장에서 왔어요.”

무림맹 무인은 유설화와 그녀의 사촌여동생 유설아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들의 미모가 너무도 뛰어났기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확인했소. 들어가시오.”

사무적으로 대꾸하는 그였다.

그가 소속된 제16지부는 무림맹 내부에서도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했기에.

장원 안으로 들어선 유설화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왔어?”

먼저 도착한 세가의 후기지수들이 그녀를 보고 아는 척을 해온다.

천씨세가와 황보세가의 문파대전은 그들에게도 중요하기에 관전을 위해 멀리서 찾아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설화의 방문은 분명 의외였다.

유가장이 위치한 무림 제20영역은, 세가연합이 자리 잡은 무림 제16영역과 그다지 연관이 없었기에.

“그런데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 찾아오고.”

유설화와 안면이 있는 후기지수의 질문에 주변의 후기지수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 중엔 천신우의 정혼자였던 남궁세미도 있었다. 남궁세가 가주인 아버지와 이곳을 찾은 그녀였다.

남궁세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유설화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전에 신세 진 보답을 못했거든.”

유설화가 고개를 돌려 비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문파대전이 시작되기에 앞서 여섯 명의 참가자들이 마주 서 있었다.

공증인을 맡은 무림맹 제16지부 부지부장 공덕이 규정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런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유설화의 시선은 천신우에게만 머물렀다.

전에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진 느낌이다.

유설화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주변에서도 수군거리는 모습.

그러나 그들의 웅성거림은 뒤이어 들려온 공증인의 외침에 묻히고 말았다.

“지금부터 천씨세가와 황보세가의 문파대전을 시작하겠소이다. 본인은 무림맹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공증인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기나긴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예상을 늘어놓았다.

“풍뢰권이 누구지?”

“천씨세가에서 새로 영입한 빈객이라던데.”

“혈염자한테 상대가 되려나?”

“솔직히 힘들지 않을까? 혈염자가 보통 고수도 아니고.”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혈염자의 우세를 점쳤다.

귀빈석에 앉은 천무흔조차 다소 긴장한 얼굴이었다.

오직 천신우만이 그런 예상을 들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비무가 끝나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군.’

마침내 길었던 설명이 끝나고.

풍뢰권과 혈염자를 제외한 문파대전 참가자들이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들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풍뢰권이 천신우를 돌아봤다.

“퍼뜩 끝내고 바로 돌아갈 테니 마차나 준비해놓아라.”

“……!”

풍뢰권의 발언을 들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물론 당사자인 혈염자가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이가 없군.”

혈염자의 입가에 실소가 떠올랐다.

“왜? 기왕 하는 김에 장의사도 부르지?”

스르릉.

뽑혀져 나온 혈염자의 도에서 섬뜩한 마찰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그때였다.

슥.

어느새 혈염자 코앞에 나타난 풍뢰권이 맨손으로 칼날을 움켜쥐었다.

“애송아. 그런 말하기 전에 칼 쥐는 법이나 다시 배우고 오너라.”

다음 순간,

파스스슥!

혈염자의 도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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