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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31화 (3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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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31화

‘설마 내가 아는 미래가 바뀐 건가?’

천신우의 얼굴이 굳어지던 그때였다.

우당탕탕!

안쪽에서 뛰쳐나온 포목점 주인이 점원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에라! 이놈아! 없긴 뭐가 없어! 장사 말아먹을 셈이냐!”

더벅머리 점원의 목덜미를 잡아 옆으로 끌어낸 주인이 천신우에게 고개 숙였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천신우도 순발력 좋게 암구호로 대꾸했다.

“기왕 보는 김에 아이들 옷에 덧댈 옷감도 보고 싶은데.”

서글서글하던 주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안쪽으로 오시지요.”

안쪽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방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주인이 뒤돌며 물었다.

약속된 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이 몇이나 되시는지요?”

“외동일세.”

이건 비밀경매에 참가하는 인원수.

여럿이 참가할 경우 그에 맞는 숫자를 언급하면 된다.

“아시다시피 요즘 비단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1필에 5냥은 주셔야 합지요.”

비밀경매 참가자들의 신원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따라서 비밀경매에서 개인의 신용을 보증할 거라곤 돈뿐이다.

등록수수료. 그리고 경매대금.

천신우는 5천 냥짜리 전표를 가판대 위에 올렸다.

비단 1필에 5냥이란 암구호는 1명당 등록수수료가 5천 냥이란 뜻이다.

‘등록수수료만 무림맹 학사 시절 받았던 연봉과 맞먹는다니. 웃기지도 않지.’

전표를 확인한 포목점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받았습니다.”

그가 전표를 챙기고 대신 꺼낸 것은 만수전장의 지점명과 거래자 이름이 적힌 종이였다.

“전에 들어온 최고급 비단이 전장에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혹시 추가로 비단이 필요하다면 대금을 지불하고 인수하시면 됩니다. 기한은 내일모레까지입니다.”

내일모레 비밀경매가 열린다는 뜻이다.

그전에 전장에 가서 대금을 지불하면 담보와 함께 약속장소가 적힌 종이를 내어준다.

물론 전장에서 내어줄 담보는 최고급비단이 아니라 비밀경매에 사용되는 금패다.

‘1만 냥을 지불하면 1개의 금패를 주지.’

참가자들은 저마다 여력이 되는 만큼 금패를 확보해 비밀경매에 임하게 된다.

“고맙네. 그럼 수고하게.”

포목점을 나가는데 중년여인이 더벅머리 점원을 쏘아붙이고 있었다.

면포 가격을 깎으려고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

일반적인 포목점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위장을 위해 점원은 비밀경매와 관계없는 자를 쓰나보군.’

비로소 점원이 암구호를 알아듣지 못한 이유를 깨달은 천신우였다.

* * *

천신우는 만수전장 송산지점에 가서 미리 준비한 전표로 대금을 지불했다.

“금액 확인했고요. 맡기셨던 담보는 여기 있습니다.”

만수전장 송산지점 직원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가 건넨 것은 약속장소가 적힌 종이와 직사각형 모양의 금패가 담긴 주머니였다.

가죽주머니에 들어 있는 금패의 숫자는 100개.

‘1개의 금패는 1만 냥의 값어치를 갖지.’

다시 말해 천신우는 100만 냥을 군자금 삼아 경매에 참가하는 셈이었다.

천신우가 앞서 복용한 설삼의 평균거래가격은 50만 냥.

단순계산하면 천신우가 가진 돈으로 설삼을 2개까지 구입 가능했다.

‘현재로선 청빙환과 설삼의 거래가격이 비슷하다. 아직 청빙환의 숨겨진 효능이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숨겨진 진가가 드러나면서 청빙환은 100만 냥을 훌쩍 뛰어넘게 되지만.

그건 5년 후의 일이다.

현재 시점에서 청빙환의 평균거래가격은 설삼과 비슷한 50만 냥 수준.

그럼에도 천신우가 100만 냥이란 거금을 준비한 이유가 있었다.

‘경매는 항상 의외성이 있으니까.’

그날 참가자들의 자금상황과 목적에 따라 똑같은 물건이라도 낙찰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솔직히 생각 같아선 200만 냥까지 준비하고 싶었는데.’

청빙환 말고도 경매에 괜찮은 물건이 나올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

‘하긴 천씨세가의 새로운 정책과 사업들에 들어가는 자금이 워낙 많아야지.’

결국 당장 동원 가능한 자금은 100만 냥이 한계였다.

‘결국 이걸로 승부를 봐야 한다.’

천신우는 금패가 담긴 주머니를 품에 챙겼다.

* * *

약속장소인 음습한 골목.

대기하던 마부가 말없이 천신우를 마차에 태웠다.

마차 안엔 신분노출을 막기 위한 가면이 준비되어 있었다.

천신우는 악귀처럼 생긴 가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생 얼굴을 드러내고 살아왔던 그에게 눈앞의 가면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

피식 웃으며 가면을 착용한 천신우가 마차 벽에 걸린 거울을 쳐다봤다.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흐음.”

목소리를 내거나 표정을 바꿔도 봤지만 가면이 벗겨지거나 헐거워지는 일은 없었다.

“완벽하군.”

누구라도 가면 속의 얼굴을 알아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마차는 다른 장소에 도착했다.

물론 아직 여정은 끝이 아니었다.

다시 새로운 마차로 갈아타길 여러 차례.

마침내 천신우는 비밀경매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어둡고 침침한 지하.

흔들리는 등불에 의지해 천신우는 걸음을 옮겼다.

구불구불 휘어진 통로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며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면적 자체도 넓지만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각 층마다 위치한 수십 개의 방에서 중앙의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안내를 맡은 사내가 천신우를 배정된 방으로 안내했다. 그 또한 천신우와 같은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방 안엔 간단한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안내인이 탁자에 설치된 장치를 가리켰다.

“낙찰을 원하시면 이 구멍 안에 금패를 넣으시면 됩니다.”

낙찰에 실패하면 투입한 금패가 반환되는 식이란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기 보이는 줄을 당겨주십시오.”

안내인이 물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 위로 경매중개인이 올라왔다.

‘역시 똑같은 가면이군.’

아마 오늘 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가면을 착용하고 있을 것이다.

“먼저 이곳을 찾아주신 모든 귀빈들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던 경매중개인이 가슴을 펴며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비밀경매에 출품되는 모든 물품의 가격은 최소 1만 냥.

고가의 물건만 취급하는 경매이니만큼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천신우도 소문으로만 전해 들은 보물과 영약들이 차례차례 경매에 올라온다.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밤 이곳에서 오가는 금액만 해도 어마어마하겠어.’

당연히 보안을 위해 동원된 호위무인들의 수준도 상당했다.

정말이지 이런 곳에서 보초나 서고 있기엔 아까운 실력자들이었다.

‘가능하다면 남는 돈으로 호위무인들과 계약하고 싶을 정도군.’

천신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언뜻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창이 전시대 위로 올라왔다.

천신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건 무영창……!”

현재 시점에선 아주 유명한 무기까진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주인의 손에 들어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신창의 애병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신창이 지인에게 선물 받은 무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신창은 창 한 자루로 정점에 오른 고수.

검성과 권왕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봐야 했다.

‘신창은 권왕과 달리 이미 이 시점에도 어느 정도 명성을 날리고 있지. 아직 신창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다만.’

그러는 동안에도 낙찰가격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정도면 내가 낙찰받을 수도 있겠는데.”

물론 정말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무영창은 자운검과는 다르다. 자체성능이 월등하기보단 주인인 신창 덕분에 유명해진 무기인 것이다.

무영창은 정확히 28만 냥에 낙찰됐다. 무기의 본래 가치만 놓고 보면 낮지도 높지도 않은 가격이었다.

‘낙찰받은 사람은 신창의 지인이겠지.’

물론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천신우는 무영창에 이어 경매에 출품되는 물건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시작이군.”

경매중개인이 외쳤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물건은 바로 청빙환입니다! 영약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알고 계시겠지요. 청빙환의 내공증진효과가 설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경매중개인뿐만 아닐 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청빙환의 가치를 설삼 정도로 생각하고 있겠지.

“청빙환은 30만 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32만 냥! 35만 냥! 40만 냥! 50만 냥 나왔습니다! 더 안 계십니까?”

천신우는 피식 웃으며 탁자 위에 올려놨던 금패를 장치 안에 털어 넣었다.

“오오! 드디어 청빙환의 진가를 아는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무려 60만 냥입니다! 지금부턴 1만 냥씩 가겠습니다! 61만 냥 없으십니까?”

흥분한 경매중개인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결국 천신우보다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은 없었다.

“청빙환은 60만 냥에 낙찰되었습니다!”

어설프게 경쟁하느니 차라리 과감하게 지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

드르륵- 철컹!

이윽고 장치가 작동하며 금패 대신 작은 상자를 토해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영롱하게 빛나는 청빙환이었다.

당장 복용하면 설삼에 준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터.

하지만 청빙환의 진가를 아는 천신우는 복용을 뒤로 미뤘다.

그리고 경매에 집중했다.

비밀경매가 모두 종료됐을 무렵.

천신우 앞엔 청빙환이 들어 있는 상자와 더불어 오래된 책이 놓여 있었다.

무림맹 장서각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고서의 초판본을 낙찰받은 것.

빛바랜 가죽표지를 바라보는 천신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천생 학사였다.

* * *

절명곡 사건을 마무리하고 청빙환까지 손에 넣은 천신우는 곧장 천씨세가로 복귀했다.

때는 이미 밤이 깊은 시각.

당연히 가주 천무흔과의 재회는 다음 날 이뤄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천신우의 거처를 직접 찾은 천무흔이다.

절명곡 사건에 대해 보고받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

사실 속내는 천신우와 천무검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나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안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시비 난정이 공손히 문을 열었다.

기대감을 품고 안으로 들어서던 천무흔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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