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학사환생 028화
순간 천신우의 움직임을 놓쳤음에도 사내는 놀랄 만큼 기민하게 대응했다.
솨악!
뒤돌며 내지른 칼날이 정확히 천신우의 급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물론 천신우도 침착하게 검을 쳐냈다.
쩌엉!
방금 유설화도 사내가 던진 검을 쳐냈지만 그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검을 놓칠 것만 같은 충격에 사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천신우의 정체를 물으려던 사내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긴 네가 누구든 달라지는 건 없지.”
사내의 검이 갑자기 빨라졌다.
차차차차창!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사내의 검을 받아친 천신우가 잠시 손을 내려다봤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다.
지금 천신우를 지배하는 감정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상대는 주위에 쓰러진 괴인들과는 격이 다른 고수.
그런 상대와 격돌해 전혀 밀리지 않으니 흥분될 수밖에.
슈슈슈슉!
살의로 가득한 검이 쉬지 않고 날아드는데도 천신우의 두근거림은 오히려 강해졌다.
물러서지 않고 맞댄 검에 힘을 실었다.
따다다다당!
눈을 뗄 수 없는 그림 같은 공방전이 펼쳐졌다.
단지 방어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천신우는 계속해서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차차창!
독사들이 뒤엉켜 싸우듯 서로의 검이 쉬지 않고 엇갈렸다.
스가가가각! 쩌저저정!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이들은 입조차 다물지 못했다.
“미친…….”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천신우의 검이 사내의 목을 찔러 들어갈 때는 주먹을 불끈 쥐었으며.
반대로 사내의 검이 천신우의 옆구리를 향해 내리그어질 때는 숨이 멎는 심정이었다.
쩌엉!
격렬한 충돌과 함께 천신우와 사내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둘은 약속한 것처럼 숨도 고르지 않고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초승달을 그리며 날아드는 사내의 검을 천신우가 거침없이 쳐냈다.
찰나에 생겨난 빈틈을 파고들며 훅! 하고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사내가 몸을 기묘하게 비틀었다.
파고드는 주먹을,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쪽 팔로 휘감았다.
위험을 감지한 천신우가 곧장 주먹을 빼내며 뒤로 물러났지만 사내의 계산범위 내였다.
피잇!
집요하게 따라붙은 사내의 검이 천신우의 뺨을 그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내도 옆구리에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천신우는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막는 대신 사내의 옆구리를 노린 것이다.
지금까지 무조건 앞으로 달려들기만 하던 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
옆구리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피가 흘러나오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사내가 천신우를 노려보았다.
천신우 역시 뺨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냈다.
그제야 지켜보던 이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아아……!”
평소 천신우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이든. 적의나 질투심을 품고 있던 사람이든.
지금만큼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부디 천신우가 사내를 제압해 주기를.
유설화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거기에 더해 유설화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천신우를 향한 관심이었다.
‘분명히 망나니라고 들었는데…….’
천신우는 후기지수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했다. 상종 못할 망나니로.
하지만 지금 눈앞의 천신우는 소문과는 너무도 달랐다.
마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주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
유설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한눈을 팔다니. 바보같이!
어느새 지혈을 마친 사내는 땅을 박차며 천신우를 향해 달려드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될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쏴아아아앙!
맹렬한 기세로 날아드는 검을 피해 천신우가 몸을 비틀었다.
사내의 검은 허공을 갈랐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내가 극단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발을 돌려찼다.
발끝이 아슬아슬하게 천신우의 얼굴을 스쳤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젖히지 않았다면 코뼈가 날아가고도 남았을 위력이었다.
이어진 것은.
퍼어어억!
엄청난 힘이 실린 주먹이었다.
배를 가격당한 천신우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절벽까지 날아가는 천신우를 사내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지금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놔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가능하면 전부 살려서 데려가고 싶었다만…….”
협곡 아래로 추락하는 천신우를 향해 검을 내리치려던 사내가 멈칫했다.
천신우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발견한 것이다.
“웃어?”
그 순간, 천신우가 추락하는 자세 그대로 자운검을 내질렀다.
쩌엉-!
“큭!”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자세가 흐트러진 그를 향해 천신우의 검이 날아들었다.
마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경쾌한 공격이었다.
피하기엔 늦었음을 깨달은 사내가 반사적으로 검을 가로 세웠다.
스가가가각!
검과 검이 충돌하며 불꽃이 일어났다.
“크아아아악!”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사내가 뒤로 몸을 날렸다.
이미 팔이 잘리고 가슴팍까지 베인 상태.
절벽 위에 착지한 사내는 남은 한쪽 팔로 가슴을 움켜쥐며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방심하진 않았다. 다만 마음이 급했다.
눈앞의 천신우만 해도 버거운데 모용세가의 패검단주 모용훈까지 가세한다면?
그런 생각이 사내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화를 부르고 말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천신우는 상대의 심리를 이용해 함정을 팠던 것이다.
정면대결보다, 적어도 2할은 승산이 높은 승부수.
천신우 입장에선 승부를 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내가 핏물을 퉤하고 뱉어냈다.
“빌어먹을!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이 이상 날뛰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네.”
사내의 말을 끊은 것은 때마침 도착한 모용세가 패검단주 모용훈이었다.
그 뒤쪽으로 모용비와 제갈휘의 모습도 보였다.
모용비가 주변에 너부러진 시체들을 돌아보며 제갈휘에게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도 모르네.”
제갈휘 역시 방금 도착했기에.
자연스레 모용비와 제갈휘의 눈이 천신우를 향했다.
사내를 따라 절벽에 내려선 천신우의 숨이 거칠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천신우가 칼끝을 사내에게 겨누며 말했다.
“끝났어. 단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여라.”
“개소리!”
사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익-!
그러자 협곡 주변에 은신하고 있던 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림없다!”
패검단주 모용훈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더니 가장 가까운 괴인의 등에 검을 내리그었다.
파파파팍!
“크아아악!”
모용비와 제갈휘도 주저하지 않고 달아나는 괴인들을 향해 검을 날렸다.
천신우 역시 괴인들의 도주를 막으려 했지만 뒤쪽에서 스산한 기운이 몰아쳤다.
“어디 가냐. 아직 안 끝났다.”
사내가 남은 한쪽 팔로 내지른 검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천신우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검을 바로잡았다. 아까보다 오히려 조심해야 했다.
마음을 비운 상대의 검은 훨씬 무서운 법이기에.
따다다다당!
다시금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펼쳐졌다.
여전히 사내의 검은 매서웠지만 사실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내의 검은 무뎌지고 움직임은 무거워진다.
솨아악!
승기를 잡은 천신우의 검이 날아드는 순간이었다.
사내는 검을 막거나 피하는 대신 검을 버렸다.
포기한 것도 극단적인 전략도 아니었다.
쐐애애애액!
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검은 정확히 모용훈의 등을 노렸다.
“단주님!”
까앙!
날아드는 검을 뒤돌아서며 후려친 모용훈이 모용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다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모용훈은 쓴맛을 감추지 못했다.
사내의 견제로 괴인들 중에 일부를 놓쳤기 때문이다. 워낙에 날렵한 놈들이다. 거리가 벌어진 이상, 뒤쫓아도 붙잡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허억…….”
괴인들 일부가 달아난 사실을 확인한 사내가 고개를 내려 깊게 파인 상처를 쳐다보았다.
어깨에서 시작된 칼자국이 허벅지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운명이란 참으로 재미있군. 설마 내가 이런 곳에서 목숨을 잃을 줄이야…….”
사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천신우를 올려다보았다. 사내의 눈에 담긴 것은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의 입술이 몇 번이고 달싹인다.
그러나 천신우는 피식 웃었다.
“궁금하지도 않아. 너 같은 쓰레기의 이름 따위.”
실은 이미 알고 있다.
사내에겐 이름이 없다는 것을. 마교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마교에서 그에게 하사한 호칭은 추혼객.
‘마교는 추종자들에게 객이라는 호칭을 내리지.’
눈앞의 추혼객뿐만이 아니다.
무림 곳곳엔 수많은 ‘객’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무림맹 내부에도.
그들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칠객이라 불리는 자들.
‘놈들을 쳐내지 않고선 마교의 침공을 막아낼 수 없다.’
물론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칠객 모두 무림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마어마하니까.
‘일단은 절명곡 사건을 마무리해야겠지.’
그때, 고개를 떨어뜨린 사내의 입에서 독단이 툭하고 떨어졌다.
독단을 씹어 자살하기도 전에, 숨이 먼저 끊긴 것이다.
“부상자들을 한곳으로 모으고 시체를 수습하라!”
뒤늦게 합류한 1조와 3조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린 패검단주 모용훈이 사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미 죽었군.”
모용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잔당들도 놓쳤으니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가 쉽지 않겠어.”
“단주님.”
천신우는 지금이 근거지에 대해 보고할 적기라고 판단했다.
조사를 뒤로 미루면 달아난 괴인들이 근거지에 남은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릴 것이기에.
“뭔가?”
“아까 3번길을 조사하던 중에 수상한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그걸 어째서 이제?”
“죄송합니다. 긴급상황이 발생해 일단 이곳으로 달려오느라 보고가 늦었습니다.”
“아아. 그랬지. 내가 잠시 간과했군. 대공자가 사과할 필요 없네.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으니.”
모용훈이 굳은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누구냐! 어떤 미친놈이 약속을 어기고 1번길로 오자고 했느냐!”
격노한 모용훈의 외침.
그럼에도 무인들은 물론이고 후기지수들조차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만 봐도 누가 범인인지는 분명했다.
반대편 절벽에 거품 물고 기절해 있는 팽우경.
그를 노려보는 모용훈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감히!”
모용비조차도 모용훈을 말리지 못했다.
모용훈은 평소 연장자답게 차분하고 사려 깊지만 일단 폭발하면 멈추지 않는 성격이기에.
잘못된 판단 하나로 수십 명의 무인들이 죽거나 다친 지금.
아무리 팽우경이 하북팽가의 후계자라도 모용훈의 분노를 피하기란 힘들었다.
“당장 끌고 와라!”
무인들이 팽우경을 데리고 와서 깨우려 했다.
“대공자님. 일어나십시오.”
“비켜라.”
무인들이 옆으로 물러서자 모용훈은 직접 팽우경의 상태를 살폈다.
마음 같아선 한 대 패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이미 팽우경의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으음. 상태가 너무 안 좋군. 일단 응급처치를 해주도록. 이번 일은 나중에 하북팽가에 정식으로 항의하겠다.”
바로 그때였다.
악몽이라도 꿨는지 팽우경이 침을 질질 흘리며 울먹였다.
“그만…… 그만 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