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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27화 (2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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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27화

거대한 바위가 팽우경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형님!”

황보도준이 다급히 외쳤지만 팽우경을 구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조차 살아남기 급급했기에.

다른 후기지수나 무인들도 저마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때.

쩌어억!

팽우경 머리 위로 떨어졌던 바위가 반으로 쪼개졌다.

팽우경이 도를 크게 휘둘러 바위를 쪼개버린 것이다.

“감히 잔재주를……!”

물론 모두가 팽우경처럼 바위를 박살 낼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크아아악!”

“살려줘…….”

파편에 맞은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바위에 깔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위는 쉬지 않고 굴러오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대공자님!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일단 피하십시오!”

대열을 정비한 하북팽가 무인들이 외쳤지만 팽우경은 코웃음만 쳤다.

“저딴 놈들이 두렵다고 달아나면 앞으로 무림에서 하북팽가를 어떻게 보겠느냐.”

팽우경이 굽혔던 무릎을 펴며 힘차게 도약했다.

타타타탓!

떨어지는 바위를 차례로 밟으며 단숨에 협곡 위에 도달한 팽우경.

“죽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괴인들을 보며 팽우경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가소로운 것들.”

팽우경은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앞으로 나아가며 도를 휘둘렀다.

디딤발에서 시작된 회전력이 허리에서 극대화되며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콰콰콰콰콰!

달려들던 괴인들이 검을 세웠지만 팽우경의 도는 부딪치는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휩쓸어버렸다.

검과 함께 몸통이 분리된 괴인들이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

팽우경은 오만한 시선으로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상자들이 소수 발생했지만 상황은 대충 정리되는 중이었다.

후기지수들은 저마다 문파의 무공을 선보이며 떨어지는 바위를 쳐내거나 박살 냈다.

그들 사이에서 황보도준이 팽우경을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형님! 무사하셨군요!”

수염이 홀라당 타고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린 모습.

그러나 팽우경의 눈길을 잡아끄는 광경은 따로 있었다.

‘저건…… 유설화?’

팽우경이 서 있는 절벽 반대편.

괴인들 사이에서 홀로 분전을 펼치는 것은 놀랍게도 유가장의 후기지수 유설화였다.

그녀의 검은 평소 성격만큼이나 빠르고 날카로웠다. 순식간에 간격을 지우며 날아든 유설화의 검에 괴인의 옆구리가 베어져 나갔다.

서걱!

“감히!”

동료의 죽음에 분개한 다른 괴인이 뒤를 덮쳐오는 순간.

유설화는 검을 역수로 바꿔 쥐며 뒤로 내질렀다.

“컥!”

목에 박은 검을 곧장 뽑아내며 그녀가 옆에서 날아드는 도를 받아쳤다.

까아앙!

충돌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유설화의 검이 괴인의 가슴을 향해 뻗어진다.

“어림없다!”

다른 괴인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것인지 상대는 검이 날아드는 경로를 사전에 차단했다.

하지만 마치 그걸 예상했다는 듯이 유설화의 검은 기묘하게 휘어지며 괴인의 목을 찔러 갔다.

푸욱!

목이 꿰뚫린 괴인이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제법인데……?’

팽우경이 속으로 감탄하던 순간이었다.

유설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벌써 지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천천히 돌아섰다.

유설화를 따라 고개를 돌린 팽우경이 숨을 집어삼켰다.

‘……대체 어느 틈에?’

협곡에서 조금 벗어난 숲속.

초겨울이라 황량한 나뭇가지 위에 날 선 인상의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방금 팽우경과 유설화가 해치운 괴인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존재감.

그야말로 압도적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사내가 음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가장과 하북팽가. 과연 군계일학이군.”

뒤늦게 절벽 위로 올라온 무인들이 괴인들을 정리해 나감에도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른한 눈빛으로 무인들을 바라볼 뿐이다.

“일단 버러지들부터 치우고 나서 대화를 나눠보실까.”

사내가 나무 아래로 내려섰다.

사박사박.

수풀을 밟으며 걸어오는 사내의 움직임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때마침 괴인들을 모두 제압한 무인들이 앞으로 나섰다.

“해치워!”

“후후.”

사방에서 달려드는 무인들을 보고도 사내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오히려 유설화가 소리를 질렀다.

“멈춰요!”

“그런 말은 내가 나타나기 전에 했어야지.”

대꾸하는 사내의 손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솨악!

앞서 달려들던 무인의 목이 잘려져 나갔다.

양쪽에서 덮쳐가던 무인들의 팔이 잘려 나가고 가슴이 갈라졌다.

지켜보던 팽우경과 유설화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단지 사내가 무인들을 쓰러뜨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전히 주위는 고요했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도 비명도. 심지어 바람 소리마저도 멎은 가운데.

사내에게 당한 무인들이 소리 없이 수풀 위로 쓰러졌다.

기이하게까지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사내의 검은 주인의 명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수풀에 무인들의 시체가 쌓여간다.

한발 늦게 합류한 황보도준과 다른 후기지수들이 침음을 흘렸다.

“……이럴 수가.”

명색이 명문세가 후기지수들을 호위하는 무인들이다.

최정예라 부르기엔 손색이 있을지 몰라도 어디 가서 밀릴 실력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마치 갈대처럼 썰려 나가고 있었다.

걷잡을 수조차 없이 커져가는 피해에 팽우경의 목울대가 넘어갔다.

지금이라도 나서야 하는데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겁을 먹었다고? 내가?’

사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팽우경뿐만 아니라 다른 후기지수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심지어 겁에 질린 후기지수 하나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나 정도는 본보기로 삼아도 괜찮겠지.”

사내가 죽은 호위무인이 떨어뜨린 검을 발로 걷어찼다.

쉭!

누구도 반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유설화만이 검을 휘둘러 날아가는 검을 쳐냈다.

따앙!

날아가던 검은 추진력을 잃고 땅바닥에 볼품없이 처박혔다.

“오오오!”

모두가 유설화의 실력에 놀랐다.

지금껏 누구도 사내의 검을 막아내지 못했었기에.

하지만 정작 유설화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날아가는 검을 쳐낸 것뿐인데 손목이 부러질 듯이 저려왔다.

“도대체 이건…….”

사내가 피식 웃었다.

“막았단 말이지? 그럼 이건 어때.”

사내가 재차 걷어찬 검은 방금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이번엔 유설화조차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푸욱!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고개를 돌릴 필요조차 없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등에 칼이 꽂힌 후기지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살아남은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때늦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호위무인들이 쓰러졌을 때와는 충격의 강도가 달랐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친구가 죽은 것이다.

침이 바싹바싹 마르고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으으.”

앞쪽에 서 있던 후기지수들이 주춤주춤 물러난다.

그로 인해 가장 앞에 노출된 남궁세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도 달아나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남궁세미 앞을 남궁세가에서 호위를 위해 나온 책임자가 막아섰다.

남궁세미가 반색했다.

“아아.”

눈앞의 무인은 쓰러진 호위무인들보다 훨씬 강한 고수였다.

숙부 남궁인까진 아니어도 남궁세미가 믿고 의지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급히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평소의 여유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아가씨! 피하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동자는 흔들린다.

공포에 전염된 남궁세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협곡 반대편에 홀로 서 있는 팽우경이었다.

“오라버니!”

하지만 남궁세미의 애타는 외침에도 팽우경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다급해진 남궁세미가 이번에는 유설화를 쳐다봤다.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황에서도 유설화는 차분한 표정이었다.

물론 유설화가 눈앞의 사내를 상대할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 것뿐.

“절명곡에서 일어난 실종사건들. 모두 너희들 소행이겠지?”

사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다만.”

“동생은…… 어디에 있지?”

“곧 만나게 될 거다.”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덧붙였다.

“선택할 기회를 주마. 멀쩡한 얼굴로 동생을 만날지. 엉망진창이 돼서 만날지.”

대답 대신 유설화가 검을 움켜쥐며 앞으로 나섰다.

꿀꺽.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이 침을 삼키던 그때였다.

반대편 절벽에 홀로 서 있던 팽우경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팽우경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것이다.

유설화가 아니고선 사내를 상대로 시간조차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팽우경은 누군가와 부딪쳤다.

소스라치게 놀란 팽우경이 뒤돌며 도를 휘둘렀다.

솨앙!

하지만 그의 도는 속절없이 튕겨져 나갔을 뿐이다.

팽우경은 날아가는 도를 회수할 생각도 못하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천신우? 네가 어떻게 여길……?”

천신우는 대답 대신 물었다.

“너지. 개새끼야.”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모든 책임은 의사결정자인 팽우경에게 있는 것이다.

분노한 천신우는 팽우경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새우처럼 휘어지는 팽우경의 멱살을 잡고 명치에 주먹을 연달아 꽂았다.

퍽퍽퍽!

밀려드는 엄청난 통증에 팽우경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눈을 까뒤집었지만 천신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반대편 절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허. 그만. 여기 있는 놈들 멋대로 죽이면 곤란해.”

유설화와 대치 중이던 사내가 천신우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다.

단지 경고로 끝나지 않았다.

사내가 날린 3자루의 비수가 정확히 천신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천신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자운검을 휘둘러 비수를 모조리 쳐냈다.

따다당!

‘그걸 쳐내?’

사내가 미간을 좁히는 순간이었다.

분명 반대편 절벽에 있었던 천신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깜짝 놀란 사내의 등 뒤에서 천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내가 깜빡했네. 너부터 죽여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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