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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25화 (25/171)

# 25

학사환생 025화

가주 천무흔과 동생 천신혁의 배웅을 받으며 천씨세가를 출발한 지 열흘.

천신우는 절명곡 인근 마을에 도착했다.

“대공자님. 말씀하신 대로 방을 예약해뒀습니다.”

앞서 도착한 천씨세가 무인이 천신우를 객잔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긴 4등급 객잔입니다만.”

객잔이라고 다 같은 객잔이 아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쾌적하고 안전한 숙소를 의미한다.

4등급은 일반인들이 머무는 숙소.

명색이 무림세가 대공자인 천신우가 머물 만한 곳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이런 곳일수록 여행자들 사이에 나도는 소문을 파악하기 편하다.

과연 객잔에 들어서기 무섭게.

보따리상인들이 실종사건과 관련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소문 들었는가?”

“무슨 소문?”

“이번엔 절명곡에서 유가장의 여식이 실종됐다네.”

“유가장이라면 여기서 제법 멀리 떨어진 문파로 아는데. 어째서 절명곡을 지났던 겐가?”

“하북팽가와 혼담이 오갔던 모양이야.”

“허어! 어떤 간이 부은 인간이 하북팽가를 건드렸단 말인가?”

“유가장은 또 어떻고. 유가장이나 하북팽가나 어디 보통 문판가.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걸세.”

천신우는 그들 근처에 앉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을 통해 들으니 새삼 실감이 됐다.

‘전생에 확인한 보고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후에 벌어질 상황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겠지.’

천신우가 머릿속으로 기억을 정리하던 그때.

북적거리는 손님들을 비집고 점원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무림인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봉변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점원의 태도는 무척 공손했다.

“식사는 어떤 걸로 준비해드릴까요?”

“돼지고기볶음과 야채볶음.”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무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해왔다.

“유가장에서도 고수들을 보내온다면 이번 일은 아주 수월하겠습니다.”

“그럴지도.”

지극히 타당한 의견이다.

유가장은 오대세가에 버금가는 세력을 갖춘 문파이니까.

하지만 미래를 아는 천신우 입장은 조금 달랐다.

‘전생에서도 유가장의 고수들이 조사단에 합류했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다. 결국 내가 막아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원이 요리를 내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목소리 한번 크군. 과연 음식도 그만큼 맛있는지 볼까.”

천신우는 젓가락으로 돼지고기볶음을 집었다.

뒤이어 요리를 맛본 무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러게.”

4등급 객잔임에도 요리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돼지고기볶음은 물론이고 후식으로 나온 다과와 차까지도.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천신우는 점원의 안내를 받아 미리 예약한 객실로 향했다.

문 앞에서 무인들이 고개를 숙인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너희들이야말로 편히 쉬도록.”

물론 이렇게 말해도 무인들은 쉬지 않고 호위에 만전을 기울일 것이다.

나중에 천씨세가에 돌아가면 휴가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신우는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방은 널찍해서 혼자 쓰기엔 충분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천신우는 바닥을 구르며 허벅지에 착용한 가죽보호대에서 비수를 뽑아 날렸다.

휙휙휙!

날아간 비수가 창틀에 동시에 박혔다.

시간 차를 두고 던졌음에도 날아가는 속도를 달리했기에 동시에 박힌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구르며 비수를 뽑아 날린다.

쉭쉭쉭!

팍팍팍!

처음 꽂힌 비수의 손잡이에 다음 비수가. 이어 마지막 비수가 꽂힌다.

파르르 떨리는 비수 끝을 바라보며 천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전생에도 틈틈이 비도술을 연습했었다.

비도술이나 암기가 비겁하다며 손도 대지 않는 무인들도 있지만.

천신우의 생각은 달랐다.

목숨이 걸린 싸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이다.

“이번엔.”

몸을 일으키며 천신우가 자운검을 뽑았다.

스르릉.

가상의 상대와 펼치는 대결.

상대는 전생에서 천신우가 봐왔던 무림맹의 고수들부터 시작해.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듯 전생에서 그의 숨통을 끊었던 마교 고수로 끝났다.

1시간에 걸쳐 수련을 마친 천신우가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힘들군.”

천무검법을 9성까지 익혔음에도 마교 고수는 너무나도 벅찬 상대였다.

‘설령 인연이 닿아 천무검법을 10성까지 대성하더라도 힘들지도. 역시 만상서고에서 새로운 무공을 찾는 수밖에 없나.’

절명곡 사건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만상서고를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무검법에 어울리는 무공을 찾아 익힌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자운검을 칼집에 집어넣은 천신우는 창가로 걸어가 비수를 회수했다.

기본적으로 비수는 소모품.

보통 실전에서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비수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부류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천신우 역시 마찬가지.

그가 소지한 비수는 주문제작한 고급품이었다.

형태와 무게 모두 그에게 최적화된.

물론 언제까지 이것들을 들고 다니며 사용할 생각은 없다.

‘폭풍비, 유성비, 벽력비.’

무림삼대비도라 불리는 무기들.

그중 하나만 얻는다면 적어도 비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비수를 가죽보호대에 꽂아 넣으며 천신우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절명곡에서 연달아 실종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그들은 심각한 표정이 아니었다.

‘실종자들이 모두 무림인들이었으니까.’

이미 세간엔 이번 사건이 무림세력들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마교는 절명곡에서만큼은 일반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천신우는 알고 있다.

절명곡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교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면 일반인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질 것이다.

물론 그대로 지켜볼 생각은 없다.

“내가 지켜내고야 만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절명곡에서 벌어질 싸움은 그 시험대나 마찬가지였다.

각오를 다지며 천신우는 따뜻한 물을 담긴 욕조에 몸을 담갔다.

뭉쳤던 근육과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리자 침대에 바로 누웠다.

절명곡 도착까지 앞으로 이틀.

지금부턴 실전을 위해 충분히 쉬어둬야 했다.

* * *

그로부터 이틀이 흘러 절명곡 부근.

천신우는 집결장소인 한림표국에 도착했다.

표국은 상단이나 여행자들의 호위를 생업으로 하는 무력집단.

일반적으로 문파들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지만, 상당한 세력을 갖춘 표국도 일부 존재했다.

한림표국 역시 어지간한 군소방파 이상의 힘을 지닌 곳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오대세가는 물론. 천씨세가보다도 아래.

“대공자!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그래서일까. 천신우 일행을 맞이하는 한림표국 국주의 태도는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소.”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천신우도 정중하게 인사를 받았다.

‘한림표국은 절명곡 실종사건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곳이다.’

절명곡은 한림표국이 주로 이용하는 이동경로이기 때문.

‘전생에서도 절명곡을 수복하기 위해 세가연합에 도움을 요청했었지. 당연히 물자와 자금 지원도 엄청나게 많이 했고.’

결과는 천신우가 아는 대로 처참한 실패.

한림표국 역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물론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천신우는 한림표국 표사의 안내를 받아 별실로 들어섰다.

자리마다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띈다.

세가지연 때와 구성원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 참석한 후기지수들에 더해 경험 많은 대주급 무인이 동행한 정도였다.

그래도 어지간한 문파 한둘 정도는 순식간에 쓸어버리고도 남을 전력.

‘문제는 마교에서 준비한 전력도 그에 못지않다는 사실이지.’

게다가 결정적인 패인은…….

천신우의 시선이 여러 후기지수들을 지나쳐 팽우경을 향했다.

애써 무시하는 척하지만 팽우경도 천신우를 의식하는 중이다. 비틀린 입가가 증거.

‘저놈의 잘못된 판단으로 조사단이 궤멸 직전까지 갔었지.’

보고서를 읽었을 당시 얼마나 화가 치밀었던지.

혀를 차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아우. 자꾸 어딜 두리번거리나. 여길세.”

손까지 흔드는 사람은 팽우경 맞은편에 앉은 모용비였다.

옆에 제갈휘도 보인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푸른 눈의 미녀가 앉아 있었다.

천신우의 정혼자였던 남궁세미나 제갈휘의 여동생 제갈수연도 예쁜 편이다. 하지만 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도도한 분위기는 그녀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유 소저와는 초면이지? 유 소저. 이쪽은 내가 아끼는 동생.”

“천신우라고 합니다.”

천신우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이쪽은…….”

모용비가 소개하지 않더라도 천신우는 그녀가 누군지 알았다.

“유가장 장주님께 딸만 셋인 것은 알고 있지? 그중 둘째 유설화 소저다.”

“반가워요.”

유설화는 간단한 목례만 하고 천신우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실종된 사촌여동생을 구하고자 절명곡 조사를 자처한 그녀다. 다른 쪽엔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자. 다들 모였으니 이번 사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지.”

모용비가 절명곡 실종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동안 천신우는 유설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절명곡 사건 전만 해도 유설화에 대한 평가는 무인으로서의 재능보다 미모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하지만 절명곡 사건을 계기로 그녀에 대한 평가는 대폭 수정된다.

그녀가 숨기고 있던 실력은 모용비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던 것이다.

‘절명곡에서의 활약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공을 세웠지. 결국엔 죽고 말았지만…….’

그때, 모용비가 손뼉을 부딪쳐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설명은 이쯤 하면 됐고. 다들 준비하고 일어나지.”

* * *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나.

천신우는 일행과 함께 절명곡 입구에 도착했다.

각자 동행한 호위무인들까지 포함시키면 100명을 훌쩍 넘기는 대인원.

그들을 통솔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모용비였다.

“앞에 보이는 길이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1번길. 서쪽으로 나 있는 2번길은 가장 빠른 길이지만 눈이 쌓인 겨울엔 거의 이용되지 않아. 그리고 동쪽의 3번길은 외부인보다 주로 근방에 사는 사냥꾼이나 약초꾼들이 이용하는 길이지.”

제갈휘가 서류를 들추며 설명을 보탰다.

“대부분의 실종사건은 1번길을 통과하던 중에 발생했다네. 하지만 얼마 전에 유가장 사람들은 2번길을 우회하다가 종적이 끊겼지. 따라서 모든 경로를 염두에 두고 조사할 필요가 있어.”

유가장 사례가 언급되자 유설화의 눈빛에 냉기가 감돈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녀에게 실종된 사촌여동생은 친자매만큼이나 각별한 존재였기에.

모용비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유설화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외부에서 실종자들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제보는 없다. 따라서 실종자들이 살아 있다면 지금도 절명곡 어딘가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아.”

모용비와 제갈휘가 내놓은 의견은 천신우가 전생에 무림맹 보고서에서 읽은 것과 동일했다.

“따라서 앞서 실종사건이 발생한 1번길과 2번길은 물론. 3번길까지 샅샅이 뒤져 실종자들의 흔적을 찾아낼 계획이다. 물론 절명곡은 워낙 넓으니 인원을 나눠야겠지. 그전에…….”

모용비가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다른 의견 있나?”

팽우경이 손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굳이 어렵게 가지 말자고. 1번길로 가면 범인들이 알아서 찾아올 텐데. 실종자들 행방이야 놈들을 족쳐서 알아내면 그만이고.”

“하하. 형님이 계시는데 범인들이 얼씬거리기나 하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지는 황보도준의 아부.

팽우경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던 그때였다.

“저는 반대입니다.”

뒤쪽에서 들려온 천신우의 목소리에 팽우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유는?”

모용비가 묻고 제갈휘는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온다.

유설화조차 눈매를 좁히며 천신우를 돌아보았다.

황보도준의 탐탁잖은 시선과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는 남궁세미까지.

쏟아지는 관심을 담담히 받아내며 천신우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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