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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22화 (2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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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22화

‘권왕! 설마 권왕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천신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상대는 전생에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낸 주인공.

바로 권왕이었다.

‘특히 풍운객잔에서의 일화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유명하지.’

마교의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무렵.

변방의 서하 지역에 위치한 풍운객잔.

그곳에서 권왕은 초저녁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마교의 고수들과 홀로 맞섰다.

그 수만 무려 수백.

그러나 다음 날, 해가 떠올랐을 때 그곳에 서 있는 것은 권왕이 유일했다.

그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고 알려졌다.

그 전설을 눈앞에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권왕이 천씨세가와 관련이 있을 줄은 몰랐군.’

권왕의 사부가 누군지, 어떤 무공을 익혔고, 어떻게 전설을 써내려갔는지는 알고 있다.

다만 권왕의 출신에 대해선 무림맹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오늘에서야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솔직히 당장 권왕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는데 말이야. 무엇보다 지금 시점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몰랐고.’

당초 계획은 다른 고수들을 먼저 영입해 천씨세가의 내실을 다진 다음. 권왕 같은 절대고수들을 초빙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곳을 방문한 이유도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를 다해 세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함. 그런데 이런 월척이 걸릴 줄이야.’

물론 눈앞의 청년을 당장 권왕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굳이 호칭을 붙이자면 미래의 권왕이랄까.

‘스승을 만나고 기연을 얻으면서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게 되지.’

사실 상식적으론 권왕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자칫하다간 권왕이 권왕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니까.

‘잠깐.’

하지만 그때 문득 천신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권왕의 스승 풍뢰권은 말년에 재능 있는 제자를 거두고자 무림 전체를 헤집고 다녔지.’

그러다 권왕을 제자로 거둬 무공을 전수하게 된다.

‘풍뢰권은 무공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제자를 키우는 재주가 탁월한 인물.’

권왕을 천씨세가에 영입하고 그를 미끼로 풍뢰권까지 끌어들인다면?

‘천씨세가는 몇 년 안에 엄청난 전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계산을 마친 천신우.

하지만 이번만큼은 천신우의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다.

미래의 권왕은 그를 보자마자 적의를 드러냈던 것이다.

“보아하니 천씨세가 사람들 같은데 일없으니 돌아가쇼.”

노부인이 황급히 권왕을 말렸다.

“운경아!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이분은 천씨세가의 대공자시거늘. 당장 사죄드리지 못할까.”

“대공자?”

권왕이 천신우를 돌아봤다.

“이 외딴곳까지 소문이 자자한 그 한량 말입니까?”

“감히 대공자님을 면전에서 모욕하다니!”

격분해 나서려는 무인을 제지하는 천신우였다.

“괜찮아.”

천신우는 미래의 권왕을 바라보았다.

큰 키에 각진 얼굴이 인상적인 권왕은 천신우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대공자가 아니라 가주가 왔어도 똑같이 말했을 겁니다. 천가의 핏줄들은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니까요.”

권왕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마다 천씨세가를 향한 강한 반감이 느껴졌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권왕의 아버지는 천씨세가에 일생을 바쳤지만, 보상은커녕 살해당하고 명예까지 잃었다.

권왕이 천씨세가에 품은 원한이 결코 가벼울 리 없는 것이다.

‘이제야 알겠군.’

권왕이 어째서 그토록 돈에 매달렸는지.

‘충성보다 계약. 명예보다 보상. 그렇게 생각하면 돈에 대한 집착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물론 권왕이 그렇게 변하는 건 나중의 일.

지금 권왕의 표정에 담긴 것은 천씨세가를 향한 순수한 적의였다.

‘확실히 하루 이틀 갖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어.’

물론 천신우는 이미 권왕의 어머니라는 든든한 아군을 확보한 상황.

과연 노부인은 천신우의 기대에 부응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꾸나. 너도 오늘 대공자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아야지.”

노부인은 권왕이 사냥해 온 사슴으로 요리를 만들어 천신우 일행을 대접했다.

천신우는 묘한 기분이었다.

‘권왕이 사냥한 사슴요리를 먹게 되다니.’

전생에선 권왕과 거의 접점이 없었던 그였다.

‘맛은…… 평범하군.’

노부인의 음식솜씨는 지극히 평범했다.

물론 그게 중요하진 않았다.

천신우는 노부인과 권왕의 대화에 집중했다.

“어머니. 이제 와서 그런다고 우리 모자가 지금껏 고통 받은 세월이 돌아오진 않습니다. 실추된 아버지의 명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위령제는 참석하자꾸나. 아버지도 그러길 바라실 게다.”

“…….”

여전히 불만스러운 권왕의 태도.

하지만 적어도 아까처럼 무조건적인 적개심이 느껴지진 않았다.

‘나쁘지 않아.’

지금은 가능성을 확인한 걸로 충분했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겠지.’

사실 권왕의 영입만큼이나 풍뢰권의 초빙 역시 중요하다.

권왕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건, 풍뢰권에게 무공을 전수받고 나서부터니까.

‘조만간 세가 무인들을 시켜 풍뢰권의 행방을 알아봐야겠어.’

뜻밖의 만남으로 더욱 바빠진 천신우였다.

* * *

천씨세가로 돌아왔을 때는 위령제와 더불어 합동장례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천패극을 포함해 죽은 장로들은 어쨌거나 천씨세가 소속.

‘대외적인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장례식 정도는 치러줘야겠지.’

가주 천무흔이 임명한 새로운 수뇌부들이 위령제와 장례식 준비상황을 점검하는 동안.

천신우는 장로원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이미 천패극이 숨겨둔 보물들은 모두 취했지만 걸리는 것이 남아 있었다.

천신우는 대장로 천패극이 죽으면서 했던 말을 기억했다.

‘자신이 죽으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했었지.’

천패극이 말한 그들은 아직 어떠한 행동에도 나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마교의 지시를 받는 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마교는 침공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림 곳곳에 마인들을 심어두었다.

천패극 역시 그런 마인들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들이 누구든 분명 관련된 단서가 장로원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하지만 단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가 마지막이군.’

과거 장로들이 사용하던 거처.

앞서 수색한 무인들은 이곳에 보관된 물건은 서적뿐이라고 보고했다.

‘과연 그렇군.’

방마다 작은 책장에 보관된 서책들이 전부였다. 아마도 전임 장로들이 심심풀이로 읽거나 기록했을 책들.

천신우는 그것들을 차례로 읽어보았다.

‘이건……!’

누군가에겐 의미 없는 낙서로 보일 수도 있는 기록들.

그러나 천신우는 깨달았다.

서책에 남겨진 기록들은 천무검법의 8성을 뛰어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란 사실을.

어느새 천신우는 과거 장로들이 남긴 기록에 따라 검을 휘둘러보기 시작했다.

솨아악!

몇 번 휘둘러보니 금방 느낌이 왔다.

‘대충 이런 식인가…….’

그렇게 아침부터 시작된 수련은 해 질 녘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과거 장로들이 이곳에서 거쳐 왔던 수백수천 번의 시행착오.

그걸 천신우는 몸소 겪으면서 다듬어갔다.

전생에도 무공에 대한 이해도 자체는 높았던 천신우다.

다만 육체의 재능이 따라주지 못해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뿐.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천신우는 머리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무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무검법의 가능성, 그리고 그 한계까지도.

밤이 깊어 달이 떠올랐지만 천신우는 쉬지 않고 자운검을 휘둘렀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갈수록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졌다.

* * *

시간은 흘러 위령제가 열리는 아침.

호위무인들이 천신우를 찾았다.

“대공자님.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드르륵.

장로원의 낡은 문이 열리며 천신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보다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그는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오늘이 위령제 날이냐?”

“그렇습니다. 장로들의 합동장례식도 예정대로 함께 열릴 겁니다.”

대답하는 무인들의 표정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들이 모시는 천신우가 식음도 전폐하고 꼬박 닷새를 장로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럼. 괜찮고말고.”

“하지만 대공자님…….”

천신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세가 내부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처음 과거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그를 걱정해 주는 이들은 손에 꼽았었는데.

요즘은 만나는 이마다 안부를 물어볼 정도다.

“정말 괜찮다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지난 닷새 동안 벽에 막혀 있던 천무검법의 실마리를 찾아낸 천신우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자지 않아도 몸이 가벼울 수밖에.

“가지.”

거처로 돌아온 천신우는 시비 난정의 시중을 받아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공자님이 장로원에 머무시는 동안 조문객들이 찾아왔답니다.”

난정의 이야기에 천신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문객?”

“가주님의 둘째 동생분과 막내 여동생분이요. 그러니까 공자님께는 숙부님과 고모님 되시는 분들이지요.”

천무흔에게 형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아 분가한 그들이다.

‘각자 중견문파의 후계자들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지.’

지금껏 세가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가 이제 와서 무슨 용건으로 찾아온 것일까.

‘진심으로 장로들의 죽음을 애도하려 왔을 리는 없을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성은 하나뿐이군.’

천신우는 무림의 당연한 진리를 떠올렸다.

시체 주위엔 까마귀가 모여드는 법.

가주 천무흔의 형제들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장로들의 유산일 것이다.

물론 천신우는 장로들로부터 빼앗은 재산을 남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단 한 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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