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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8화 (1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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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18화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주 천무흔과 감찰단 무인들이 창고에 도착했다.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의 천무흔과 달리, 뒤따르는 감찰단주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천신우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나중에. 일단 확인부터 하지.”

천무흔은 곧장 창고를 돌아보았다.

창고장의 도움도 마다하고 가득 쌓인 상자들을 하나하나 직접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대부분 날이 녹슬고 비틀린 무기로 채워진 상자들. 심지어 텅텅 비어 있는 상자들도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천무흔의 표정은 분노보다는 회한으로 가득했다.

장로원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권을 차례차례 내준 결과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보급이나 감찰 중에 적어도 한 곳은 장악했어야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감찰단주.”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감찰단주가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십시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당장 얼마 전에 올렸던 보고서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적지 않았던가.”

“분명 지난 점검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감찰단주가 창고장을 돌아보았다.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창고장이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실망이군. 감찰단주.”

천무흔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려고 했건만. 끝까지 거짓말에 책임회피라니.”

“가주님!”

감찰단주의 절박한 외침에도 천무흔은 단호했다.

“이 시간부로 감찰단주의 직위를 해제한다.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질 때까지 대기하도록.”

“이럴 수는 없습니다! 세가회의를 거치지도 않고 인사권을 휘두르시다니요. 이게 직권남용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도가 지나칠 정도로 저항하는 감찰단주를 보며 천신우는 입맛이 썼다.

아무리 장로원의 영향력이 커도 결국 가주 아래.

그런데도 감찰단주는 장로원을 믿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지켜보는 천신우의 심정이 이런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과연 천무흔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세가회의…… 그래.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그곳에서 시작되었지.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대공자!”

천무흔의 외침에 담긴 것은 세가를 바꾸겠다는 의지였다.

천신우 역시 진심으로 천무흔의 의지에 응답했다.

“하명하십시오!”

“가주의 직권으로 명한다. 대공자는 지금부터 감찰단주 대리를 맡아 이번 사건의 내막을 샅샅이 파헤치도록 하라.”

“명을 받듭니다!”

천신우의 시선이 감찰단주와 감찰단 무인들을 지나쳐 멀리 떨어진 건물을 향했다.

“진충!”

우렁찬 외침에 건물에서 일단의 무인들이 뛰쳐나왔다.

앞장선 무인을 확인한 감찰단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진충? 자네가 어째서 이곳에?”

진충은 한때 천씨세가에서 감찰단 부단주에까지 올랐던 인물. 그러나 공정한 수사를 고집하다가 장로원에 의해 좌천된 전력이 있었다.

그를 뒤따르는 이들 역시, 능력은 있으나 장로원의 줄을 잡지 않아 한직으로 밀려난 무인들.

천신우가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충! 감찰단주 대리로서 그대에게 명한다. 세가에서 무기납품과 관련된 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색출하여 조사하라!”

장내에 울려 퍼지는 외침을 들으며 진충은 세가지연 전에 있었던 천신우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한직으로 밀려나 허송세월하며 지쳐가던 진충이다.

차라리 천씨세가를 떠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평생을 몸담은 가문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그런 그를 불쑥 찾아온 천신우는 뜻을 펼칠 기회를 주겠다며 기다리라 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흘려들었는데.’

가주인 천무흔조차 장로원의 영향력에 밀려 진충의 좌천을 막아주지 못했다.

하물며 대공자가 무슨 힘으로.

그러나 이후 진충은 깨달았다. 천신우의 무용담이 들려올 때마다 흥분하는 자신의 모습을.

천신우가 하북팽가의 대공자를 손봐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지.

‘그렇다곤 해도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사실 사전에 언질을 받긴 했다.

천씨세가로 돌아오자마자 천신우가 가주 천무흔에 이어 만난 사람이 바로 진충이었으니까.

당시 천신우는 진충에게 제안했다.

천씨세가를 개혁하는 선봉에 서달라고.

그리고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언한 것이다.

‘과연 대공자는 어디까지 가려는 것일까.’

비천부대주의 개인비리를 파헤친 것처럼 이번 일도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는 있을까. 대공자가 상대하려는 적이 얼마나 강대한지.’

솔직히 지금도 천신우가 장로원과의 권력다툼에서 승리한다는 확신은 전혀 없다.

‘하지만 끝내 부러질지언정 당당하게 맞선다면 후회는 없겠지.’

그게 진충이 천신우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명을 받듭니다.”

돌아서는 진충의 모습은 과거 저승사자라 불렸던 감찰단 부단주 시절 그대로였다.

“일조는 창고를 통제하고 증거를 수집해라! 이조는 세가 내부에서 관련된 자들을 압송해 조사할 것이며! 삼조는 무기를 납품한 철방을 수색하여 증거자료를 확보하도록!”

진충의 지시를 받은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신우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야말로 새로운 천씨세가를 이끌어나갈 재목들이다.’

물론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인재들을 이끌어나갈 관리자도 필요했다.

그에 적격인 인물이 바로 눈앞의 진충이었다.

무림맹 학사 시절 봤던 천씨세가에 관한 보고서에도 진충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전생에선 천신혁을 보좌하여 내부비리를 파헤치고 마교와 끝까지 싸웠지.’

직접 만나보니 더욱 확신이 생겼다.

‘세가의 기강을 바로잡기에 진충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면 천무흔에게 건의해 진충을 감찰단주로 임명할 생각이었다.

물론 내부비리만 파헤친다고 세가의 힘이 커지진 않는다.

‘실력 있는 고수들의 영입이 필요해. 특히 무인들을 양성할 교관을 초빙하는 것이 급선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은 많았다.

전생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고수들.

‘문제는 그들을 천씨세가로 끌어들일 수가 있느냐.’

진충이야 원래 천씨세가의 무인이고 충성심까지 갖췄기에 설득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천씨세가 외부의 고수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확실한 유인책이 없다면 절대 천씨세가를 위해 검을 들지 않을 것이다.

‘장로원을 정리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놔야겠군.’

단심회를 통째로 집어삼킨 덕에 돈이야 웬만큼 갖고 있다.

그러나 천신우가 영입하려는 고수들은 돈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위인들이 아니었다.

‘뭐…… 돈만 주면 움직이는 인간도 있긴 하지만.’

천신우가 떠올린 것은 권왕이라 불린 절대고수였다.

권왕이 그를 초빙하려는 무림맹 고위간부와 나눈 대화는 매우 유명했다.

‘무림맹이 소유한 모든 황금을 저울에 달아도 본인의 주먹보다 가벼울 것이라 했었던가.’

놀랍게도 허풍이 아니었다.

실제로 권왕은 만금의 몸값을 지불한 부호를 마교의 습격으로부터 지켜냈으니까.

‘권왕의 무력이 탐나긴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당장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준비해야겠지.’

천신우는 고개를 돌려 장로원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천씨세가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그곳은 가주 천무흔조차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장로원이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장로들은 세가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보고 받으니까.

‘이번 일도 마찬가지. 장로들은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 중일 것이다.’

비천부대주 사건은 개인비리로 종결됐기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감찰단주까지 직위 해제시킨 만큼 장로원도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물론 무림맹에 남겨졌던 기록을 미루어 보건대 장로원이 꺼내 들 패는 정해져 있었다.

‘이번 일을 주도한 나를 암살하고 세가회의를 열어 상황을 진압하겠지.’

전생에 가주 천무흔을 암살했던 것처럼.

물론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장로원에서 어떤 살수조직에 의뢰할지 알고 있으니까.’

오래전부터 장로원은 같은 살수조직에 청부를 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흑살문.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천신우가 눈을 빛냈다.

* * *

천신우가 함정을 준비하던 그때.

천씨세가 장로원에선 노인 둘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노인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장로원의 장로들이었다.

일선에서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천씨세가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들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장로였다.

“대공자가 기어이 일을 벌였다오.”

삼장로가 말을 받았다.

“알고 있네. 어르신이 많이 노하셨다더군.”

“큰일이구려. 어서 처리하지 않으면.”

“걱정 마시게. 이미 손을 써뒀으니.”

“그럼 이번에도?”

흑돌을 바둑판 위에 내려놓으며 삼장로가 대꾸했다.

“그래. 흑살문. 그들이라면 이번에도 문제없이 처리할 걸세.”

“하하하.”

오장로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장로원에서 의뢰한 수많은 청부를 성공시켜온 흑살문이라면 이번에도 실패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천신우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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