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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6화 (6/171)

# 6

학사환생 006화

두두두!

마차가 대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차 안에 타고 있는 것은 남궁인과 남궁세미.

그들은 천씨세가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남궁세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파혼이라는 방문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남궁세미는 굳은 얼굴이었다.

그러다 뭔가를 결심했는지 입을 연다.

“숙부님.”

남궁인이 천천히 남궁세미를 돌아봤다.

“정말 숙부님은 이번 파혼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남궁인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이미 결정된 일이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말거라.”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나요. 대공자가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 숙부님도 보셨잖아요.”

남궁세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두고 보세요. 기필코 대공자가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요.”

“…….”

남궁인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사실 파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남궁세가다.

하지만 어린 조카는 태어나서부터 떠받들어진 탓에 모든 생각이 자기중심적이었다.

“얼마 후에 있을 세가지연에 대공자도 참석하겠죠?”

세가지연은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명문세가들이 단합을 위해 3년마다 개최하는 모임이었다.

또한 세가 후기지수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대공자 대신 이공자가 참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씨세가 내에서 이공자 천신혁을 차기 가주로 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천신우가 각성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이번에 세가지연에서 대공자를 마주친다면…….”

남궁세미는 어떤 식으로 천신우에게 복수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남궁인은 속으로 한숨을 삼킬 뿐이었다.

* * *

파파팟!

개인연공실 바닥을 미끄러지는 천신우의 움직임이 경쾌했다.

슁!

뻗어져 나가는 검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그러나 가상의 상대는 가볍게 피해내며 검을 휘둘러왔다.

미처 대처할 새도 없이 가상의 선이 천신우의 목에 그어진다.

“만일 실전이었다면 죽었겠군.”

천신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무리야. 천무검법으로는 당장 전생에서 나를 죽인 마인조차 상대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씨세가에 전해지는 천무검법에 알맹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천무검법이 원래부터 이렇게 부실한 무공은 아니었다.

‘100년 전이던가.’

천씨세가가 오대세가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던 시기.

그때 천무검법은 매우 강력한 무공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가주가 살해당하면서 천무검법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비급이야 남아 있긴 하지만 사실상 껍데기지.’

무공은 대개 10단계로 세분화된다.

1성부터 10성까지.

그 가치가 높은 무공일수록 9성에서 10성, 쉽게 말해, 최종단계의 비급은 극소수만이 전해진다.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문제는 천씨세가처럼 후손들에게조차 전승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당시 천씨세가 가주가 사망하고 9성 이후를 설명한 비급이 유실되면서, 천무검법은 8성까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후손들이 손발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들 실전된 천무검법을 복원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0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천무검법을 복원해 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천신우의 아버지인 천무흔조차도 8성이 한계였다.

그것이 바로 천씨세가가 쇠락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렇다고 천무검법을 버릴 수는 없다.’

내공심법과 보법을 비롯한 천씨세가의 다른 무공들이 모두 천무검법과 긴밀히 얽혀 있는 탓이다.

세가의 다른 무인들을 위해서라도 천무검법의 복원은 필수였다.

다행히 천신우는 천무검법을 복원시킬 단서를 갖고 있었다.

‘만상서고.’

세상의 모든 무공비급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전설의 서고.

만상서고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마교의 침공으로부터 1년 전이었다.

‘만상서고에는 분명히 천무검법과 관련된 단서가 존재할 것이다.’

물론 천신우도 만상서고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만상서고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찾아내지 못할 것도 없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만상서고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는 것이 먼저였다.

천신우는 전생에서 만상서고에 들어가려던 무인들이 대참사를 당한 일을 기억했다.

당시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죽어 나갔던가.

‘확실하게 가자. 일단은 세가지연이 열리기 전에 천무검법을 8성까지 완성시키는 것부터.’

이후의 계획 또한 천신우의 머릿속에 착실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세가지연에 참석하는 김에 무기도 하나 얻어야지.’

지금 쓰는 검도 그럭저럭 괜찮지만 이름난 명검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천신우는 명검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무기를 고르기만 하면 됐다.

‘금고도 두둑하게 채우고.’

현재 천씨세가의 재정은 상당히 열악했다.

천씨세가의 세력을 크게 키우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수적.

자금을 확보할 여러 가지 방법을 머릿속에 떠올린 천신우가 피식 웃었다.

‘다음 외출은 이래저래 바쁘겠어.’

* * *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

천신우는 실로 오랜만에 천무흔과 함께 정원을 산책했다.

평소 용건이 있으면 가주실로 호출하던 천무흔이 오늘은 천신우를 정원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성취가 나날이 깊어지는구나.”

천무흔은 가주이기 전에 무인이자 아버지.

당연히 천신우의 무공이 일취월장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천무흔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만 열면 천불 나게 만들었던 아들이다.

그러나 이젠 함부로 입을 열지도 않았고, 이따금 꺼내는 말에서도 진중함이 느껴졌다.

“일단 세금비리와 관련해서는 그물망을 좁혀두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일을 처리하진 않을 것이다. 왜인지 아느냐?”

“비천부대주 비리 건으로 인해 세가 내부가 많이 어수선해진 상황입니다. 당장 세금 건을 터뜨린다면 혼란이 가중되겠지요.”

뿌리는 단번에 뽑는 게 좋다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가의 모든 무인들을 납득시킬 명분과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세가지연을 비롯해 굵직한 행사들을 앞둔 시기입니다. 세가의 역량을 한곳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바로 그렇다.”

천무흔이 천신우를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요즘 너로 인해 낙이 하나 사라지고 말았구나.”

이번만큼은 천신우도 궁금해졌다.

“그게 무엇입니까?”

“자식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즐거움. 이제 너는 다 알고 있으니 내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농담 섞인 투정에 천신우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가끔씩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진심이었다.

전생에서 부모 없이 자란 천신우에게 벗이라곤 책뿐이었기에.

천무흔은 대답 대신 뒷짐을 지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러다 연못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아내가 생전에 심은 꽃이었다.

아내처럼 여리고 흐릿한…….

그래서일까. 아내는 이미 죽었지만 이걸 보면 그녀가 생각나곤 했다.

아내가 지금의 천신우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천무흔은 여러 감정이 들었다.

그런 감정의 편린들을 애써 감추며 그가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이제 세가지연이다.”

세가지연의 중요성에 대해 굳이 역설할 필요는 없었다.

천신우는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준비는 잘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혹시라도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아라.”

세가지연에 관해선 천신우도 말할 것이 없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다.”

“주제넘은 말일 수 있겠지만, 장차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천신우는 전생에서 학사의 신분으로 건의했다가 묵살당한 의견을 꺼냈다.

“무인이 전투 중에 사망하면,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주고 세가에서 돌봐주는 것이 어떨까요.”

곰곰이 생각하던 천무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무인들이 안심하고 싸울 수 있겠구나.”

무인들이 세가를 위해 싸운다지만 그전에 한 가족의 가장이다.

가족의 생계와 안전이 확보된다면 그들의 충성도도 높아질 수밖에.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면 소용없는 법. 현재 세가의 재정 상황으론 무리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

천신우는 재빨리 대답했다.

“자금문제라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융통해 보겠습니다.”

의문을 품을 법도 하지만 천무흔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만큼 천신우를 믿는 것이다.

“기대하고 있으마.”

“감사합니다!”

천신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학사 시절 책상머리에서 생각한 수많은 제도들 가운데 채택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상급자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지.’

이상을 현실화시킬 능력과 신분을 갖췄다.

전적으로 믿어주는 아버지가 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무림을 만드는 것이 꿈만은 아니리라.

* * *

덜컹.

개인연공실의 문이 열리며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열기의 주인공은 바로 천신우였다.

“공자님. 여기 있습니다.”

시비 난정이 건네는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내며 천신우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드디어 세가지연인가.”

천무검법을 8성까지 익힌 지금.

세가지연은 물론, 무기와 자금 모두 확실하게 확보할 자신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뿐.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천신우를, 난정은 힐끔힐끔 훔쳐보기 바빴다.

술을 끊고 무공수련에만 매달린 덕에 천신우의 육체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근육질의 팔과 탄탄한 복근.

거기에 살이 빠져 턱선이 살아난 얼굴이 방점을 찍었다.

“난정아.”

“네, 네? 아, 네!”

천신우가 돌아보자 화들짝 놀라 대답하는 난정.

“내 옷가지는 챙겨놨지?”

“그럼요.”

천신우에게 어떤 조합이 잘 어울릴지, 수십 벌의 옷을 비교해가며 준비를 마친 난정이었다.

“그럼 됐다. 오늘은 이만 가서 쉬어.”

“저, 정말 그래도 되나요?”

믿기지 않는 난정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천신우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난정은 그런 천신우에게서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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