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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5화 (5/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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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 005화

천씨세가 비천부대주는 욕심이 많은 인간이었다.

여자를 밝히고 술을 좋아했으며 도박도 즐겼다.

문제는 욕심만큼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부대주 월급으론 도저히 씀씀이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공금에 손을 대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리와 악행을 일삼기를 3년 남짓.

어느새 그는 흑도방파 흑사방 방주와 의형제가 되어 있었다.

사실 비천부대주 입장에선 나쁠 것 없는 관계였다. 흑사방의 악행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술과 여자를 무한정 접대 받았으니까.

하지만 오늘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어떤 미친놈이 작정하고 흑사방의 본거지를 급습한 것이다.

‘누가 소란을 피우나 했더니만.’

문을 부수고 들어와 검을 겨누는 청년을 보는 순간, 비천부대주는 술이 확 깼다.

충격적이게도 상대는 그가 몸담은 천씨세가의 대공자.

바로 천신우였다.

“대공자가 여긴 어쩐 일이오?”

이런 촌구석엔 얼씬도 안 하던 인간이 무슨 일로?

“대답부터 하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세 가지 모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오.”

발뺌하는 비천부대주를 보며 천신우는 피식 웃었다.

“시간 끄는 거 보니까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그 순간, 천신우의 등 뒤에서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쉬익!

그들이 날린 비수가 정확히 천신우의 머리와 심장을 향해 날아든다.

하지만 천신우는 믿기 힘든 움직임을 보여주며 날아드는 암기들을 모조리 낚아챘다.

“이거 믿고 그래?”

쉭쉭!

암기를 도로 집어 던지며 천신우가 앞으로 쇄도했다.

비천부대주가 팔을 뻗어 술상 옆에 던져둔 검을 잡기 직전.

천신우가 검을 발로 걷어찼다.

팍!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검은 벽에 칼집째 박혔다.

“아님 저거?”

“어, 어떻게?”

비천부대주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기습을 고스란히 되갚아주고 자신의 움직임까지 완벽히 봉쇄했다.

과연 이게 자신이 알던 대공자가 맞나 싶다.

몇 달 전 세가행사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던 모습이 생생하건만.

지금 눈앞의 천신우는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술에 취하지 않았더라도 솔직히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천부대주는 황급히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깐! 알겠소! 내 직접 세가로 복귀해 죗값을 받으리다.”

물론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다. 시간을 벌어 개수작을 부리기 위함.

지금까지의 비리가 모조리 밝혀진다면 그의 인생은 끝장이기에.

‘만일을 대비해 갖고 다니던 보람이 있군. 설마 대공자를 상대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비천부대주의 소매에 숨겨져 있던 암기가 스르륵 흘러나와 손에 잡혔다.

원통형의 그것은 한 번에 수십 개의 침을 쏘아 보내는 암기였다.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마비되는 마비독이 묻어 있어, 무림맹 주도로 사용이 금지된 물건이기도 했다.

달칵.

암기의 잠금장치를 푸는 찰나.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천신우가 검을 휘둘러왔다.

쉬이잉!

“이미 늦었다!”

그러나 비천부대주의 외침은 무색해졌다.

천신우의 속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 박자 더 빨랐던 것이다.

단숨에 공간을 좁혀온 천신우가 검을 내려쳤다.

투두둑!

발사장치를 누르기 직전, 비천부대주의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소리였다.

아래로 떨어지는 암기는 천신우가 낚아챘다.

천신우는 단번에 암기의 정체를 알아봤다.

“만통침이군. 무림맹에서 금지한 암기를 몰래 소지한 걸로도 모자라 직접 사용하다니.”

비천부대주는 사무치는 고통 속에서도 눈을 부릅떴다.

“네가 어떻게 만통침을!”

학사 시절에 봤다고 대답해 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길 누르면 독침이 발사되는 거였지.’

달칵.

천신우가 만통침의 발사장치를 눌렀다.

푸슈우우욱!

순식간에 빗발친 수십 발의 독침이 비천부대주의 온몸에 꽂혔다.

“……!”

눈을 부릅뜬 상태로 굳어버린 그를 보며 천신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망갈 가능성 자체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 * *

천신우는 초토화된 흑사방의 본거지에서 비천부대주를 바닥에 질질 끌고 나왔다.

일단 근처의 천씨세가 지부로 가려던 천신우가 순간 멈칫했다.

“…….”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3층 건물을 바라보던 그가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천신우에 의해 밝혀진 비천부대주의 비리는 천씨세가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세가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가주 천무흔의 지시하에 감찰단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했으며. 비천대 무인 전원은 대기발령 상태에 들어갔다.

일사천리로 후속조치를 단행하고 나서야 천무흔은 천신우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천무흔은 찻잔엔 손도 대지 않고 마주 앉은 천신우를 바라보았다.

“재악산에서의 수련이 성과가 있었었나 보구나.”

한층 깊어진 눈빛. 달라진 기도.

모든 것이 천신우의 성취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재악산 동굴에서 발견한 설삼은 시작일 뿐이다.

무림 곳곳에 숨겨진 영약과 보물들.

그걸 모두 독식해 마교에 대적할 힘을 키울 생각이다.

천무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공수련엔 끝이 없지. 그나저나.”

본론을 꺼내는 천무흔이었다.

“비천부대주의 비리는 어찌 알게 되었느냐.”

“외출한 김에 천씨세가의 영역을 두루두루 둘러보았습니다. 물론 월말마다 보고서가 올라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흐음. 그랬구나. 그래. 그것 말고 또 느낀 점이 있더냐?”

“비천부대주의 비리는 천씨세가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속으로 곪은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천무흔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에 취해 여자 엉덩이나 쳐다보던 아들이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을까.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말해 보아라. 세가의 문제가 무엇인지.”

“실제로 걷히는 세금과 서류상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마을상인들을 일일이 탐문한 결과 세가에서 정한 것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걷고 있었습니다.”

천무흔이 눈매를 좁혔다.

세가로 들어오는 세금은 항상 같았다. 결국 누군가 중간에서 더 많이 걷은 세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어째서 세가회의에선 그걸 말하지 않았느냐?”

“아직은 누가 진실을 은폐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

천무흔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확실히 비천부대주 독단으로 세금징수 건을 은폐하기란 불가능하다.’

윗선의 묵인 내지 개입이 없고선 불가능한 일.

물론 거기까진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정말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천무흔의 시선이 천신우를 향했다.

‘저 아이는 그걸 알고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당사자가 듣고 대비할 것까지 염두에 둔 행동.

‘과감함에 신중함까지 갖췄구나.’

천무흔은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겁게 꿈틀거림을 느꼈다.

맏아들에 대한 기대는 이미 오래전에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이 아이가…….’

천무흔이 생각에 잠긴 가운데, 천신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장 믿을 만한 이에게 비밀리에 관련된 상급자들을 조사하게 하십시오. 지금쯤 꼬리 자를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만하면 됐다.”

천무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하마.”

천무흔은 찻잔을 옆으로 밀어내더니 총관을 불러 귀엣말을 했다.

총관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주님…… 진심이십니까?”

“물론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잠시 후.

총관이 직접 은쟁반 위에 술병과 술잔을 가져왔다.

붉은 비단에 황금빛 수실로 덮여진 술병은 누가 봐도 진귀해 보였다.

천무흔이 물었다.

“이게 무슨 술인지 아느냐?”

술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원래 몸의 주인 천신우의 기억에도 없는 술이었다.

“무상이라 한다.”

“설마……!”

천신우는 깜짝 놀랐다. 전생에 술이라곤 입에도 대지 않았던 그이지만, 무상이란 술만큼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마시면 십 년 묵은 원한마저 사라지게 만든다고 하여 무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최고급 명주.

과거 앙숙이었던 칠룡문의 문주와 태산파의 장문인이 이 술을 함께 마시고 화해했다 하여, 더욱 유명해진 술이었다.

아무리 천씨세가 가주라 하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이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손님들에게조차 내주지 않은 그 명주를, 천무흔은 손수 천신우의 술잔에 채워주었다.

쪼르륵.

천신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매우 귀한 술로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천무흔이 가장 좋은 날에 마시려고 아끼던 술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마시겠느냐.”

천무흔의 목소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정감이 느껴졌다.

술잔을 채우는 천신우 역시 덩달아 기분이 묘해졌다.

엄밀히 따지면 천무흔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천애고아로 부모의 정을 모르고 살았던 전생엔 느낄 수 없던 감정.

자신도 모르게 술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 *

천씨세가의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숙소.

남궁세가 외당주 남궁인은 천신우의 감시를 맡았던 부하에게 보고 받는 중이었다.

“정말 대공자가 흑도방파 하나를 궤멸시킨 것이 맞는가?”

부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공자 혼자서 벌인 일입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아무리 작은 방파라고는 해도, 혼자 궤멸시켰다는 건 분명한 성과지. 앞으로 대공자를 주목해야겠군.”

“그게 말입니다…….”

“음?”

부하가 잠시 주저한 끝에 사실을 털어놓았다.

“대공자가 제 은신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정말인가?”

남궁인이 천신우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부하는 은신과 추적에 특화된 무인.

작정하고 몸을 숨기면 어지간한 고수라 하더라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제가 은신한 곳을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적어도 기척 정도는 알아차렸다는 뜻이군.”

흑사방을 궤멸시킨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잘 나가는 신진고수들이라면 흑사방 정도의 방파를 궤멸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과연 눈앞의 무인의 기척을 알아차릴 정도의 실력자가 얼마나 있을까.

“지금 대공자 나이가 스물이던가?”

“그렇습니다.”

“불과 1년 만에 이 정도까지 성장했다는 말인데. 우리 남궁세가가 큰 실수를 한 게 아닌지 모르겠군.”

“파혼을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섣부른 것이 아닌지. 당장 혼담이 오가는 문파들만 해도 천씨세가보다 한 수 위잖습니까.”

“생각해 보게. 만약에, 만약에 말일세. 대공자가 지금의 속도로 계속 성장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때도 과연 이 파혼이 잘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솔직히 나도 모르겠네. 과연 이번 파혼결정이 정말 세가를 위한 결정이었는지.”

그때,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인은 굳은 얼굴로 문을 열었다.

문 앞엔 남궁인보다 몇 배는 굳어진 표정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남궁인의 조카이자…….

천신우의 ‘옛’ 정혼자인 남궁세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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